꾸불꾸불 소 창자 꼬이듯 한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이래서 리아스식 해안이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백만 년 간 바닷물의 침식을 받아 내륙 깊숙한 곳에 형성된 대규모의 만들은 바다로 통하는 입구가 너무 좁아서 언뜻 보기엔 모두 커다란 호수로만 보이고, 막상 드넓은 바다 앞에 서면 점점이 스포이드로 찍어놓은 듯한 섬들이 장관을 이룬다.
지형이 복잡한 만큼 기수역 즉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접경지대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기수역이 만들어내는 영양가 높은 습지는 게와 갯지렁이들을 키우고, 갯것을 먹고 사는 물새들의 사랑방이 된다.
여름이면 저어새와 황새가 찾아온다는 마동호와 사천시 서포에서 셋째날 일정을 출발했다. 새들의 개체수는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드물게 발견된다는 송곳부리도요를 비롯 노랑부리도요와 꼬까도요 등 몇 종의 매력적인 도요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해안도로가 바로 바다와 접해 있어서 관찰하기가 편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해안도로는 오히려 갯벌과 물새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산과 농경지에서 흘러나오는 유기물과 토사가 갯벌에 영양분을 더해줘야 하는데 해안도로가 갯벌과 농경지 사이를 가로막으면서 영양분 공급이 중단된 채 바다의 침식 작용만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뻘이 쓸려 내려간 갯가에는 유독 큼직큼직한 자갈과 바위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해안도로는 갯벌의 영양창고라 할 수 있는 염습지에 세워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바다에서 일정 거리 떨어진 염습지 바깥쪽에 도로가 만들어져야만 갯벌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 ‘해안 그린벨트(Coastal Greenbelt)'를 도입하면 해안도로의 위치 역시 재조정되어야 한다.
다음날 남해와 광양의 갯벌을 돌아볼 때는 더욱 쇠약한 모습의 갯벌을 목격해야만 했다. 수어댐이 들어선 후 상류로부터 민물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생명이 살지 않는 ‘고요한’ 갯벌이 된 수어천 하구에선 단 한 마리의 물새도 관찰할 수 없었다. 앞으로 하천정비 공사를 통해 석재 둑을 높이 쌓을 계획이라니 댐 위쪽의 민물생태계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광양제철 부지 내의 갈사만을 내려다볼 때는 안타까움과 경이로움이 교차했다.
제철 폐기물을 매립할 계획으로 사들인 바다가 20년 간 자연상태 그대로 방치된 갈사만 슬러그매립지부지는 조사단이 찾아간 날 5백여 마리의 흑꼬리도요의 군무를 보여주며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너구리가 근처 마을까지 먹이를 먹으러 오고 갈대숲에는 수달이 둥지를 틀고 있다고 했다. 이곳을 생태공원으로 보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광양환경연합은 포스코 측에 서한을 전달해둔 상태. 대규모 공단이 들어선 부작용으로 전국 5대 환경특별관리지역의 하나가 된 광양의 습지 복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다른 지역에게도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처입은 땅의 회복을 기원하며 넷째날 조사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