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말씀 이사야40:26-31
요절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서는 크게 전반부인 1장에서 39장까지를 제 1이사야의 저작이라고 하고 40장에서 66장까지는 제2, 제3 이사야의 저작이라는 것이 통상적인 신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럼에도 같은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은 그 주제와 문체가 매우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40장 말씀부터는 거의 신약성서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메시야에 관한 내용들이 이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가 이사야서 1장에 나와 있습니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니까 웃시야 왕의 시대는 크게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유다가 344년 동안 총 20명의 왕이 다스렸는데 웃시야가 열 번째 왕입니다. 그리고 웃시야는 16세에 왕위를 물려받아 52년간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니까 68세에 죽은 것입니다. 유다의 왕들의 수명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웃시야는 나라를 크게 번성시켰습니다. 경제적으로 영토적으로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거의 좋은 점수를 줘야 할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제사장이 해야 할 직분을 스스로 하려다 그만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갇히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된 일이 그의 아름다운 삶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왕이 되고 그 이후에는 히스기야의 문제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이어받아 55년을 다스렸는데 이것이 유다가 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국제 정세를 보면, 먼저 아하스 시대를 보면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공이 있어 친앗수르 정책으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임마누엘의 예언이 있었던 때가 바로 이때가 아닙니까? 그의 아들 히스기야 시대에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북쪽의 제국인 앗수르가 남하정책을 통해 유다를 노리고 남쪽에는 애굽이 북진정책을 추진함으로 유다는 진퇴양난에 몰리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를 사는 유다는 얼마나 불안하고 어려울까요? 그런데다 나라 안에는 우상의 제단들이 난립하여 우상숭배가 가득하니 일반 백성들은 얼마나 마음이 심란하고 우왕좌왕할까요?
그 시대의 영적 상황에 대하여 이사야는 이사야서 1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사야 1장2-4절 까지 말씀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2)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런 시대에 사는 예언자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그는 창조주 하나님께 눈을 돌립니다. 눈을 들되 높이 들어라고 합니다. 하늘과 하늘 저 너머를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을 누가 창조하였는지 생각하라고 합니다. 온 우주에 펼쳐지는 놀라운 은하의 세계와 별들의 세계,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의 세계를 누가 만들었는지 보라고 합니다. 그 수효가 끝이 없습니다. 빛가 어두움과 하늘과 궁창과 물과 끝없는 바다와 땅, 그리고 갖가지 나무들과 채소들과 식물들과 해와 달과 별들과 그리고 바다의 무수한 고기들과 하늘과 숲속을 나는 새들과 들짐승들과 곤충들과 기어다니는 모든 것을 만든 분이 누구냐고 상기시킵니다. 이스라엘은 먹고 사는데 지쳐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신 그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른 무엇에 신경을 쓰다가 나를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댓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찾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유다 백성들에게 그 권세가 놀랍고 그 능력이 놀라운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촉구합니다. 이것이 삶의 답이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창조의 그 놀라운 권능과 그 놀라운 간섭하심을 발견할 때 삶의 답이 보입니다. 힘이 생기고 의미가 생깁니다. 방향이 생기고 할 일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유다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왜 나의 인생이 이 모양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 길을 봐 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은 전혀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불평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할 때 인생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였지만 실상은 믿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믿는척했지만 실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방 사람들의 뭔가 있어 보이는 우상을 흠모했습니다. 그들의 것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흉내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만홀히 여겼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고는 불평은 하나님께 늘어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백성들에게 예언자는 무엇을 말씀합니까? 28-31절 말씀입니다. 먼저 28,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첫째,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땅끝까지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결코 피곤치 않으십니다. 쉼이 없습니다. 또한 그의 명철은 끝이 없습니다. 어찌 연약한 인간을 도울 수 없겠습니까?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다 아십니다. 명철이 한이 없으면 이와 같은 일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도 남습니다. 무능한 자에게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예언자는 이 하나님을 바라고 이 하나님을 붙잡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동일한 말씀이 강조되어 나옵니다. 이번에는 30절, 3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 삶에 힘이 중요합니다. 육체의 힘, 지성의 힘, 영혼의 힘, 이런 힘이 있을 때 삶의 어려운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소년이 어떻게 피곤합니까? 참 그들은 하루종일 놀아도 피곤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도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방향을 알지 못할 때 쉬이 지칩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를 때 곤비해집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여호와를 앙망할 때 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휩싸이고 그 심령에 말씀이 충만할 때 성령의 임재가 가득해집니다. 이때 놀라운 힘을 얻습니다. 블레셋을 물리친 삼손이 그러했고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베드로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을 때 감옥 문이 그를 묶어 둘 수 없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습니다.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그 큰 몸을 하늘로 올립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까? 달음박질 할 때 얼마나 숨이 찹니까? 달음박질 해 본지도 까마득합니다. 나이가 들면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크고 힘든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모든 피곤함이 물러갑니다.
제가 사실 쉽사리 지치기를 잘합니다.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이 얼마나 부족한지 회개케 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힘을 얻는다고 새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옆에 계신 것을 믿어야겠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앙망'이라는 뜻은 '우러러보다'라는 뜻의 '앙'과 '바라다', '기대하다'라는 뜻의 '망'이 합쳐진 말입니다. 즉, 자신의 요구나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러러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앙망하다"는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걸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바라는 것을 뜻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온 세상과 나와 우리 공동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의지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창조주 하나님께 나의 모든 소망을 걸고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다리고 바라야겠습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40:31)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