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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에달뜨면 스크랩 전설적인 여배우, 고두심.
2244 추천 0 조회 53 07.06.22 14: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배우 고두심을 말하다.

 

 

 

2004년 12월 31일. 53세의 여배우가 남긴 말이 있다.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어머니를 사랑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사랑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이렇게 위대한 것인가 봅니다. 제가 어머니를 연기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큰 상이 이렇게 두번씩이나 저에게 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사랑합니다."

 

 

1989년 <사랑의 굴레>로 KBS 연기대상 수상. 1990년 <춤추는 가얏고>로 MBC 연기대상 수상. 2000년 <덕이>로 SBS 연기대상 수상. 2004년 <한강수 타령>으로 MBC 연기대상 수상. 그리고 같은 해 <꽃 보다 아름다워>로 또 다시 KBS 연기대상 수상. 방송 역사에 길이남을 방송 3사 연기대상을 모두 수상한 것도 모자라 2004년 한해에 두 개 방송사의 연기대상을 손에 꿰찬 파란의 주인공 고두심의 수상소감은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했다.

 

 

무려 34년동안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고두심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꿈 많은 제주 소녀.

 

 

실제 고두심의 손을 본 사람들은 '이게 우아하기만 한 고두심 손이 맞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한다고 한다. 투박하고 거친 손을 가지고 있는 고두심은 "어렸을 때 일을 많이 해서 그래." 하면서 쑥쓰러워 한다. 그녀가 대표적인 제주도 출신 연예인이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고향 제주도를 그리워하고, 제주도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라면이 막 나왔을 때 이야기야. 누구나 억시게 일을 많이 했을 땐데, 특히 논이 없는 제주는 척박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내가 7남매의 다섯째인데 등잔에 필요한 석유랑 불쏘시개로 쓸 나뭇가지를 한 보따리 업어 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밭까지 한시간 반을 걸어갔지. 그런데 그 땐 어려서 그랬는지 힘든 줄 몰랐어요. 집에 올때는 엄마가 싸 준 보리랑 군 고구마 먹으면서 사탕 수수를 짊어지고 왔구."

 

 

그러나 배우가 되고 싶었던 어린 고두심에게 제주도는 한 없이 좁은 공간에 불과했다. 연기가 하고 싶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던 그는 결국 공부하는 오빠를 뒷바라지 한다는 핑계로 서울행을 결정한다. 고두심에게 있어 서울이란 곳은 단순한 수도가 아니라 기회의 땅이자 성공의 땅이었던 것이다. 제주도를 떠날 때 눈물을 많이 흘린 그는 "반드시 성공한다." 라는 독한 생각을 가지고 땅을 밟았다.

 

 

그리고 드디어 1972년, 나이 22살에 그는 MBC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 입문에 성공한다.

 

 

 

 

씁쓸한 실패, 그리고 달콤한 성공.

 

 

그러나 공채 탤런트가 되었다고 해서 '유명 배우' 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무대 공포증, 카메라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던 고두심은 카메라 불만 켜지면 온 몸을 후들후들 떨며 대사 한 마디 못할 때도 많았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그가 공채로 들어온 후 처음 하는 드라마였는데 신인치고는 상당히 큰 배역이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서도 고질병인 '떨림증' 때문에 그만 퇴짜를 맞고 만 것이다.

 

 

"정동 MBC 시절에는 탤런트실과 대본 연습실이 붙어 있었는데, 돌아보니 문을 빠끔히 열어 놓고 5기생들이 고개를 들이밀고 지켜 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내 차례가 세 번이나 돌아오도록 죽어도 입이 안 떨어지는 거예요. 대본 든 손이 어찌나 떨리던지 그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어요.

 

귀까지 빨개져 연출 선생님께 대본을 돌려주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서는데, 동기생들이 “야, 너 이렇게 좋은 기회는 없어. 다시 한 번 가서 하겠다고 그래. 너 미쳤어?” 이러면서 안으로 막 밀어 넣는 거예요.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얘기죠. 그때만 해도 모두들 너무나 순수했어요. 그런데도 울면서 그냥 나와 버렸어요. 화장실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그때의 절망감이란..... 결국 그 역은 못 해버렸죠."

 

 

연거푸 드라마 진출에 실패하자 고두심은 '이래서는 배우가 될 수 없다.' 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여러 대본들을 들여다 보면서 스스로 혹독한 연기 연습을 시작했고 카메라와 친해지는 연습도 병행했다. 한인수, 현석, 박정수, 이계인 등 난다긴다 하는 동기생들 속에서 점차 빛을 발하기 시작한 그는 결국 당대 최고의 톱스타 김혜자, 이정길과 함께 드라마 <갈대> 에 동반 캐스팅 되는 행운을 누린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 속에 방영 된 드라마 <갈대> 는 고두심에게 '신인치고는 무난한 연기력' 이라는 평가를 얻게 해줬고 고두심 스스로도 "신인치고는 못하지 않았던 것 같아." 라며 만족감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갈대> 의 성공 이 후, 고두심은 거칠 것 없는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배우' 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전원일기, 잘났어 정말!

 

 

<갈대> 이 후, <새아씨><밀물><정화>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진 고두심은 다시 한번 자신의 배우 인생에 길이 남을 작품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22년 동안 장수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 <전원일기> 였다. 작가 김정수가 집필을 맡고 정애란, 김혜자, 최불암, 유인촌, 김용건, 박순천, 김수미 등 당대 최고의 연기파가 합류한 <전원일기> 는 한 때 40% 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그 속에서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현명하고 자상한 캐릭터를 연기한 고두심은 뭇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이 시대 최고의 맏며느리' 라는 찬사를 받기에 이른다. 1980년 10월 21일 "박수칠 때 떠나라" 로 첫방송을 시작해 "박수할 때 떠나려 해도" 로 22년 2개월의 시간을 뛰어넘은 <전원일기> 는 고두심에게 어떤 의미의 작품일까. <전원일기> 에 대해 고두심은 극도로 말을 아꼈지만 종영 뒤 한 없이 흐른 그의 눈물 속에서 <전원일기> 에 가지고 있는 고두심의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전원일기> 가 22년 세월 동안 꾸준히 방영될 때에도 고두심의 작품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사극 <설중매> 에서 주인공 인수대비 역으로 열연해 찬사를 받은 그는 89년 KBS <사랑의 굴레> 를 만나면서 최고의 배우로 그 명성을 검증받기에 이른다. 지금까지도 "잘났어~ 정말!" 이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이 드라마에서 고두심은 짙은 화장과 파격적인 연기 변신으로 경이로운 시청률을 이끌어 냈고 그 해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방송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녀의 나이 39살, 데뷔 한지 18년만의 일이었다.

 

 

 

 

이혼, 그리고 부활.

 

 

89년 <사랑의 굴레> 로 대상을 탄 후, 1년 만인 1990년에 고두심은 <춤추는 가얏고> 로 MBC 연기대상을 수상한다. 오연수의 데뷔작으로도 유명한 <춤추는 가얏고> 의 성공으로 고두심은 90년대를 화려하게 열어보였고 전에도 그래왔듯이 지칠 줄 모르는 작품활동을 지속한다. <마당 깊은 집><대원군><산너머 저쪽><남편의 여자><아들과 딸><박봉숙 변호사><코리아 게이트><목욕탕집 남자들><엄마의 깃발><내가 사는 이유> 등 이름만 대도 '아~ 그거!' 할 작품들이 바로 이 때 터져나왔다.

 

 

그러나 배우로서의 성공과는 다르게 고두심의 결혼생활은 여느 스타들 처럼 편치 않았다. 76년 결혼해 신혼 초 부터 끊임없이 불화설에 시달려온 고두심은 결국 결혼 22년 만인 98년도에 합의이혼의 종지부를 찍고 만 것이다.

 

 

의외의 소식이었다. 지난 76년에 결혼한 고두심, 김지홍 부부가 4월 초순, 22년 동안 쌓아온 부부의 인연을 접고, 남남으로 돌아섰다는 보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소식’ 이었다. 단아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모습의 연기자로 인정받고 있는 배우 고두심의 이혼은 이혼 자체보다 그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더 많은 호기심을 갖게 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브라운관을 통해 본 그녀의 모습에서 아무도 사생활에서의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드라마에서 고두심은 다부져 보이는 맏며느리의 모습과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전통적인 우리시대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이런 드라마 속에서의 모습은 은연중에 주관이 뚜렷하고, 매사 분명한 성격의 그녀를 예상케 했다. 그리고 그런 예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오랫동안 만나온 한 방송 기자는 "그녀의 성격을 볼 때 대단히 어려운 결심 끝에 내린 결론일 것" 이라며, "어쩔 수 없었던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런데 왜 그녀는 이혼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고두심은 언젠가 이혼에 대해 담담히 말한 적이 있다.

 

 

"처음 사업에 실패했을 때는 사업가로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었기 때문에 빨리 이겨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두 번째 사업에도 실패를 하고 나니 사업가로서, 남자로서, 아버지로서의 자신에게 남아 있던 모든 것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어버렸나 봐요.

 

남편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저 역시 많이 힘들었죠. 그 사람이 힘들어 할수록 용기를 주면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까지도 그 사람에게는 커다람 부담감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가 의지할 수 있는 주변의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98년 이혼의 아픔을 겪은 뒤에도 고두심은 배우로서 멈추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혼의 아픔을 연기로 치유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 같기도 하다. 2000년, 고두심은 드라마 <덕이> 로 S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방송 3사 연기대상을 모두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한국 대중문화 역사 상 유례없는 일이었고, 고두심은 이로써 다시 한번 그 명성을 공고히 하기에 이른다.

 

 

그의 나이 50살, 데뷔 한지 28년만의 일이었다.

 

 

 

 

꽃 보다 아름다워.

 

 

<덕이> 로 연기대상을 수상한 이 후로 이혼의 아픔을 떨쳐낸 고두심은 2004년 생애 최고의 작품을 만난다. 바로 드라마 <꽃 보다 아름다워> 였다. 고두심 스스로 "내 평생 이런 작품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으려나?" 하고 평가했던 <꽃 보다 아름다워> 는 그야말로 '꽃 보다 아름다운' 내용으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고두심의 그 대단한 연기력에 혀를 내두르게 했다.

 

 

하나같이 '아픔' 을 갖고 살아가는 이 드라마의 인물들 사이에서 고두심은 자식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의지처로 나온다. 결국 자식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다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치매에 걸리는 '엄마' 는 그 모습만으로도 찬란히 빛을 발했고 한층 고두심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고두심은 <꽃 보다 아름다워> 로 KBS 에서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MBC 에서도 <한강수 타령> 으로 연기대상을 수상한다. 고두심으로서는 통산 5번째 연기대상 수상이었다. 

 

 

 

 

전설적인 배우로 이름을 남기다.

 

 

'누군가의 스캔들이 터져 여자 분장실에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신나게 입방아를 찧어 댈 때도 두심이는 한번도 동조하지 않았다. 유명한 후배의 결혼식장에는 더러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드라마에서 몇 년째 모습을 볼 수 없는 후배의 결혼식장이나 무명 배우의 상갓집에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게 고두심이다. 두심이에게는 함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귀한 향이 흐른다. 나도 두심이처럼 늙고 싶다.'

 

 

<전원일기> 에서 오랜 시간 같이 호흡을 맞췄던 배우 김수미의 말이다. 그는 분명 한국 대중문화 역사 상 가장 뛰어난 배우지만 동시에 훌륭한 인격을 갖춘 배우였다. 비록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아픔마저 연기로 승화해 낼 줄 알았던 그는 평생의 연기 생활 동안 '어머니' 라는 존재를 그려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 왔다.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절절한 연기를 보다 보면 피천득 선생의 ‘엄마’ 라는 수필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폭포 같은 마음을 지닌 채 호수같이 살려고 애를 쓰다가 바다로 가고야 말았다...’ 고두심은 아마 한 평생 이러한 '어머니' 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배우 고두심....그녀는 과연 역사에 어떠한 배우로 기억될까. 아마 이렇게 기억되지 않을까.

 

 

'한국 대중문화 역사 상 가장 위대하고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전설적인 배우'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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