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에서 희망을 찾다
살면서 우리는 늘 씨나리오를 쓴다.
그대로 된 적은 그리 없다.
그래도 우리는 또 씨나리오를 쓴다.
신이 인간을 에덴동산에 내 쫓으면서
달랑 준것이 희망인 것 같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밤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길 채비를 했다.
아침을 담으러 고삼저수지를 간다.
물론 멋진 씨나리오를 또 썼다.
'하얗게 물안개가 필 것이고
여명은 환상적으로 물들 것이고
저수지 물은 잔잔할 것이다.
거기에 소품으로 조각배가 매어 있고
낚시좌대가 조용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물오리도 몇 마리쯤은 자맥질을 하겠지.
멋진 구도로 그림같은 작품을 만들어야지.'
다른 동행들도 나름 멋진 씨나리오를 썼을 것이다.
밤길 헤매다 어찌어찌 도착한 고삼저수지!
역시 씨나리오는 씨나리오 일 뿐이었다.
현실은 너무 자주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 같다.
현지 상황을 읊어보자.
우선 저수지의 수위는 형편없이 낮았다.
겨우내 비도 눈도 안와서란다.
여명은 물들듯하다 슬그머니 사라졌다.
물안개는 솔솔 피어나는가 했더니 뭐가 불만인지 피다 만다.
물오리는 호수 구텅이에 몇마리 있으나 사거리 밖이다.
낚시좌대와 좌대를 잇는 부교의 모습은
구도를 잡기가 극히 난해하다.
매어 있는 낚싯배는 사진에 담기에 너무 위치가 않좋았다.
이쯤이면 아무리 명필은 붓탓을 안한다고 하지만
참 상황이 나쁘다.
그러니 어쩌랴.
생물이 환경에 적응해 살아야하는 것은 진리다.
자연더러 조건을 맞추라는 것은 우리의 권한 밖 아닌가?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의 빛을 찾는 것이 사람이다.
동행들은 허락된 조건에 맞춰 작품을 만들기에 잡념이 없다.
지금 이 순간
어떤 결과가 나올까는 중요하지 않을 지 모른다.
하는 일에 충실한 사람은 멋지다.
삶의 매 순간마다
전력을 다하여 집중하는 것 자체가 숭고한 것 아닐까?
어떤 작품들이 탄생하던
그 자체로 소중하다.
그 사람만의 순수한 영혼이 깃들어 있기에.
첫댓글 지도위원님의 작품은 물론이지만 세련된 문구의 프로필이 보는이의 이해를 돕는데 한층 매력을 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