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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자료 스크랩 성서의 윤리적 가치
이웃사랑 추천 0 조회 20 14.04.23 09: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성서의 윤리적 가치

 

 

1.마태복음 5: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에 대한 터툴리언과 어거스틴 견해

 

 1)터툴리언: 문자 그대로 주님이 요구하는 행동(윤리적) 강령으로 믿는다. 즉, 문자 그대로 비록 악한자가 자신의 오른편 뺨을 치거든 물리적으로 대항하지 말고 왼편뺨도 돌려 대 주라는 것이다. 이 해석적 특징은 평화주의적이다.

2)어거스틴:이 구절은 "육체적 행동"보다는 "내적인 기질"을 요구한다고 본다. 즉 이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과 기질을 강조하기 위한 구절이다. 이와같은 해석의 의미는 크다. 왜냐하면 이는 사랑의 표현이 꼭 절대적으로 비폭력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시사하고 폭력이 비폭력보다 더 큰 선을 이룰 수 있어 어거스틴은 전쟁 정당법을 주창한다.

 

 2."가서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한 예수의 명령에 대한 윤리적 가치

 

 이를 문자적 윤리 강령으로 본다면 먼저 가진 것을 다 팔으라는 내용의 한계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생겨나고 가난한 자의 한계가 거론되어져야 한다. 무조건 있는것을 다 팔아 막연히 가난하다고 느끼는 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는 없다. 한편 이 윤리 강령이 모든이들에게 적용된다면 이땅에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윤리 강령을 위반한 자들이요, 이땅에 가난한 자들은 모두 부해져 그들이 다시금 이 강령에 위반되어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윤리관은 주로 종교적이고 절대적이다. 복잡한 사회,정치적 상황과 사실들이 고려되지 않았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재물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을 불가능하게 하는 방해물로 본다. 그래서 부자 청년에게 "가서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한 것이다. 이러한 권고를 오늘날 모든 이들에게 윤리적 강령으로 주장할 순 없다. 이는 당시 부자 청년에 대한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와 헌신의 여부를 시험하신 것이지 윤리적 강령으로 주신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윤리적 강령보다 종교적.영적 신뢰와 헌신의 시험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다 할 것이다.

 

3."죄 없는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한 예수의 명령에 대한 윤리적 가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것을 사회적 윤리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다.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는 사회를 생각할 수 없다. 결국 이 명령은 이 세상의 사회적 윤리의 기준으로 수용할 수 없다. 모든 재판장들에게 이것이 윤리 강령이 된다면 아무도 재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명령은 종교적인 명령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라면 들어야할 명령이다. 우리는 얼마나 마음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이렇게 하여 자기의 의을 드러내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 명령은 바로 이런 우리가 들어야할 명령인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재판장들도 비록 재판을 하고 형을 언도한다 해도 이 명령은 자신에게 들려오는 내적인 윤리 강령이 될 것이다.

                         

4.윤리적 관점에서 본 신 구약의 관계

구약과 신약을 같이 취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구약의 도덕적 규범과 기독교적 기르침 사이의 긴장을 신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쟁에 관하여도 다른 면들을 볼 수 있다. 신약을 근거하여 평화주의를 논할 수 있으나 구약을 근거하여 할 수 없다. 긍정적인 권고가 부정적인 명령보다 더 효과적임를 강조하는 현대교육자들은 구약의 십계명이 오늘날의 윤리적 교육에 적합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5.카톨릭의 동적축자영감설과 개혁자들의 동적축자영감설의 입장에서 본 성서의 윤리적 지침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최종 권위를 강조, 윤리적인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교회의 전통보다는 성서의 권위에 복종해야 할것을 주장한다. 반면 카톨릭교회와 영국 성공회는 하나님의 법이 성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양심 안에서도 활동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연법을 성서와 함께 윤리적 척도로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 종교개혁자들은 신구약 성경만을 윤리적 척도로 삼는다. 인간의 선한 양심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의에 척도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나 카톨릭 교회 모두 윤리적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의 잘잘못을 판단함에 성서적 권위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성서의 무오성 때문이다. 성서의 무오성은 영감설과 관련되는데 이들 모두 축자영감설을 지지한다. 성서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무오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모든면 윤리적 지침서로서 무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축자영감설에 대한 이 두 교회의 입장이 서로 다른데가 있다. 카톨릭은 외적,정적,물질적인 성격의 축자영감설을 제안하는 반면 개혁자들은 내적,동적,영적인 성격의 축자영감설을 제안한다. 카톨릭 교회에 있어 성경의 외적 문자 자체를 이 말씀이 주어지는 장소로 제시한는 반면 종교개혁자들에겐 신앙의 내적 주체가 그 장소가 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의 동적 축자 영감설은 성서의 외적문자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윤리적 말씀과 명령으로 수용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왜냐면 이는 성서의 문자 자체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6.기독교 경험과 신념과 전통과 사회적 요소들을 기본으로 하는 기독교 윤리

기독교윤리는 기독교 전통에 기본해야 한다. 기독교는 역사적 즉,전통적 종교이다. 이는 사도들과 교회 교부들의 가르침에 근거한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교회마다 기독교의 전통에 대한 이해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를 기독교 전통에 기본한다는 것도 그리쉬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윤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또한 기독교 경험이다. 신앙생활을 통하여 실제로 경험된 내용들을 윤리적 척도로 삼는 것이다. 기독교 경험에 기본하지 않는 윤리를 참 기독교 윤리로 볼 수 없다. 경험에 기본하지 않는 윤리는 추상적이고 개념적 공허로만 남을 수 있다. 기독교 경험에 윤리를 기본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경험도 전통에 따라 다양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신념적 기본은 기독교윤리가 기독교 신학과 교리를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 윤리는 창조론이라고 하는 기독교신학을 전제하지 않고는 이의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다. 창조론은 기독교윤리의 출발점이다.기독교윤리와 사회적 요소와는 떨어질 수 없다. 기독교윤리는 특정한 사회적 환경과 처지속에서 형성된다. 기독교윤리는 사회를 선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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