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환의 '4전 5기 신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말이다. 힘을 주는 한마디 말은 천냥 빚만 갚는 것이 아니라 찬란한 인생을 꽃피울 수 있는 특별한 에너지다.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말을 전하느냐에 따라 행 불행도 결정되는 것이다.
"1t의 씀바귀로는 벌을 모을 수없지만 1g의 꿀로는 수 많은 벌을 모을 수 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비난은 살상무기요 칭찬은 육성무기로 희망의 소리는 희망의 꽃을 피우지만 상처주는 말은 불행을 자초한다.
효봉스님은 법관출신으로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사형 선고를 내렸다. 모든 증거와 나타났고 본인도 자백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후에 진범이 나타나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명복 빌어주려고 머리를 깍고 출가를 했다. 워낙 대단한 스님이어서 이 분을 뵙고 한마디 말씀을 청해듣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와서 하는 말들이 부정적인 말들이고 상대방을 비난하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상대방이 조용해지면 효봉스님은 "이제 말 다했느냐?"고 물어 그렇다고 대답하면 벽력같이 소리를 친다.
"너나 잘해라."
뭐 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효봉 스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그 다음부터는 결코
남을 탓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낸다.
우리가 힘들 때마다 희망을 준 스포츠 스타들이 있다. IMF로 우리가 빈사상태에 빠져있을 때 박세리 선수가 힘을 실어주었고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는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로 감동을 안겨 줬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선수는 권투의 홍수환선수다. 홍수환 선수와 같이 방송도 했고 기업체에 출강하여 프로정신에 대하여 앞뒤시간에 강의를 하기도 했다.
1977년 11월 27일 WBA 쥬니어 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홍수환 선수와 파나마의 헥토르 카라스키야의 경기는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17승 17KO승으로 승승장구하는 카라스키야와 더구나 그의 나라인 파나마에서 시합을 하게 되었을 때 홍수환 선수도 불안해 할수 밖에 없었다.
홍수환 선수를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절대로 살아서 못간다. 아마 죽어서 실려갈 거다."라고 말을 했다. 카라스키야는 경량급으로는 가공할 펀치의 소유자로 현지의 도박사들은 9대 1로 카라스키야의 승리를 확신했을 정도였으니 말하면 잔소리다.
권투 시합은 다운되어 카운트 10을 설때까지 일어나지 못하면 KO패가 선언되지만 파나마 측은 홍수환선수를 제물로 삼을 요량으로 이런 룰을 무시하고 영영 못 일어나는 사람이 지는 시합으로 룰까지 바꿨다. 링위에 올라간 홍수환 선수는 긴장 될 수 밖에 없었다.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몇번 들락거렸지만 소변이 나오지 않더라는 얘기를 들려준 일이 기억난다.
이 때 중계를 위해 함께 갔던 동양방송 박병학 앵커는 권투 중계의 1인자로 잔뜩 긴장해있는 홍수환선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그 동안 숱한 국제 경기를 중계했지만 시합 전에 이미 승부가 결정된다. 나는 직감으로 안다. 마음 편히 먹고 해라. 너는 이미 이겼다."
홍수환 선수는 링 위에서 4번이나 다운당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마지막 결정타를 날려 카라스키야를 링 위에 잠재워 4전 5기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상식적으로는 승리가 불가능한 시합이었지만 마음 속에 입력된 "너는 이겼다."라는 말이 신체세포에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천하장사도 죽는 소리를 하면 죽게 되지만 할수있다는 언어가 기적에 불을 붙인다. (이상헌 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