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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와 우리 어머니의 인생은 시종일관 두 아들교육에 헌신하신분 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어 두 아들 교사가 되기 위해 군산사범병설중학교에 입학 시켰고 비록 자취하며 공부했지만 교통이 불편할때라 쌀 여섯말을 자루에 짊어지고 4KM 홍산까지 걸어나오셔서 버스타고 장항까지 오시고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군산에 도착하면 다시 쌀 여섯말을 어깨에 짊어지고 4KM 되는 거리인 군산시 흥남동까지 걸어 오십니다.
그 작업을 매월 6년을 하셨습니다. 두 아들 교사되게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형은 사범학교를 들어가지 못했고 대신 군산고등학교 나와 전북대학교를 졸업해서 중등교사가 되었습니다.
저도 형처럼 군산사범학교를 떨어질까봐 어머니께서 직접 겨울방학때 군산에 오셔서 밥을 해 주시며 수고하신덕에 군산 사범학교 시험에 합격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술담배를 안하시며 농사지어 정성으로 자녀를 뒷바라지 하여 드디어 그분들의 꿈이 이루어 진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소학교를 다니셨고 면사무소에 다니셨고 이승만 대통령때 면의원을 하셨읍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공부를 하지 않은 글자를 모르시는 문맹이셨으나 판단력은 항상 바르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리드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 결혼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셨습니다.
나의 담임 백일균 목사님이 어느날 내가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배구를 하는데 이웃교회 처녀 G양을 학교로 데리고 와서 선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당한일 이었습니다 내 교실로 들어가서 백 목사의이야기를들었습니다 그녀가 독일에 갈수도 있다고 그녀의 비전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속하여 만나지 않았고 1년을 만나지 않다가
내가 마태복음 6:33절 말씀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는 말씀 믿으며 주님에 대한 헌신의 삶이 깊어 가면서 시골에서 계속 살 생각을 하며 실용적인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심하고 한번 만나자고 하니 그녀 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대화를 통한 이해를 바랍니다”
그래서 3번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결혼할 마음이 결정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가 백일균목사와 자기교회 목회자 앞에서 자기는 감동이 없는데 내가 일방적이라는 것 이였습니다. 그때 그녀는 이미 중학교 교사 한사람과 혼담 이야기가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 선생이니까 초등학교 선생보다 중학교 선생을 택한 것 같습니다
나는 이때 혼란에 빠졌는데 이 일후 새벽에 교회 가서 기도하기를 “ 하나님 내가 시골에서 주님섬기며 살기위해 보건소 아가씨 학력이 중졸이라도 시골에서 주를 위해 헌신하려고 백일균 목사님이 소개해준 그 사람하고 결혼할려고 하는데 왜 내 ,맘대로 안됩니까?” 학고 물으며 항의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새벽에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이에 글쎄 우리 집에 실제 Fire 즉 불이 난 것입니다
시골이라 우리동네에 옛날 전기 없을때 석유 등잔불을 사용할 때 였습니다 새벽 기도하러 갈애 불을 켜놓고 갔는데 그불이 어떻게 해서 인지 벽지에 붙어 훤하게 타오르던 것을 어머니가 변소가시다가 발견하여 급히 끄신 사실을 집에 돌아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머니를 안깨워 주셨더라면 큰 불이 났을것을 생각하고 나니 하나님이 내 사정을 아시고 또 어머니를 들으셨다는 하나의 사인 같았습니다
나는 이후로 하나님의 무슨 계획이 있는가 보구나 하고 하나님의 하실 일을 잠잠히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집에서 4킬 떨어진 곳에 전통시장이 있는데 어머니가 그 전통시장인 홍산장에 가서 색시 감을 고르시기로 결심을 하시고 내 사진 한장을 가지고 시장안 여러 사람을 눈여겨 보시다가 큰 잡화상을 하는 얼굴이 예쁜 아줌마를 드디어 찾아 말을 했습니다.
“ 당신 혹시 딸이 있소 ?” “ 네 있습니다” 하니까 “직업이 무엇입니까?” “ 교사입니다” “그럼 어디 졸업했습니까?” “공주교대 졸업했습니다” “그래요 우리아들은 군산사범학교 나와서 당신 딻 보다 학력은 낮지만 책상 잡고 일하는 것은 같으니 한번 만나게 합시다” 하고 내 사진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 아줌마가 집에 가서 딸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자 아가씨가 깜짝 놀라며 “이 남자 어젯밤 내 꿈에 본 바로 그 사람인데 어제 밤에 아담과이브처럼 벌거벗은 몸으로 팔을 내밀어 굽혔다 폈다하며 힘자랑 을 하는데 내가 어쩐지 싫은 느낌이 들지 않더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학교 교구내 여러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수소문이 시작되었습니다 학교의 뒤에 지산교회가 있었는데 그 전도사님이 색시 아버지가 속한 홍산제일교회와 교단이 같았습니다 그 지산교회 목회자가 말하기를 “그 함선생은 오르간도 잘 치며 아이들을 사랑하며 헌신적으로 가르치는 예수를 잘 믿는 좋은 청년이라” 는 것을 알게 되었고 드디어 그 처녀 집에서 선을보게되었습니다.
나는 그 아가씨나 여자의 부모가 거절은 안해서 일단 안심이 되였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결정을 못하고 질질 끌어서 답답 했습니다. 가부간 빨리 결말을 보기로 마음 먹고 이제 까지 밤을새워 공부해오던 영어 책 한 짐을 싸가지고 가서 여자에게 보여 주면서 “나 이런사람입니다”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붉은 글씨로 가득찬 대학수준의 영어 책들과 아프리카 선교사 슈바이쳐 박사의 영어 원서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기를 “ 당신이 가부간 결정해서 나에게 연락해 주기까지 내가 다시는 이 홍산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돌아왔습니다. 당시 공용버스도 다니지 않는 벽촌이라 자전거타기 4킬로를 가야하는 거리고 한번 거절 당한경험이 있어 다시 당할지도 모를 일이라 공연히 시간낭비 처럼 느껴져서 였습니다
그런지 며칠 지나서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수업을 할때 그 장터 아줌마가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때 그 아줌마가 거절통보하러 온줄 알고 실망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고 그녀가 드디어 결혼하기로 결심해서 약혼 반지를 재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 색시 가정은 이북 평양에서 온 사람들로써 조상 대대로가 크리스찬들 있었고 할아버지가 의사이고 색시의 아버지는 평양의 유명한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실중학교 교감을 하신 분으로 장로님이시었습니다
자기 밭을 교회에 바쳐 그 위에 교회를 지은 주님을 매우 사랑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청혼을 거절한 G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임을 후에 들어 알았습니다
성경 이사야서 55장8,9절 “여호의의 말씀에 내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아니라 는 말씀대로 내 생각보다 더 좋은 색시를 아내로 주셨습니다 .
저의 결혼에 당시 불신자 였던 어머니의 기가 막힌 중매로 장로님 딸과 기적적인 결혼을 하게 하는 큰 공헌을 하신 것입니다.
두 분의 종교는 아버지는 유교 철학을 믿으셨고 어머니는 칠성님 즉 별을 믿는 이교도이셨습니다.귀신이 충만하여 온 식구에 질병이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마을에서 일은 하지 않고 얻어 먹기만 하는 교회에 다니시던 교회 밑에 사는 함용현 어머님이 임종하는 자리에 가셨는데 그분이 임종전 “아 여기가 천국이구만 여기가 천꾹이구만” 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게 되신 계기가 있었습니다.
저의 아내가 첫 아기를 낳을때 산고의 진통중 전도를 받고서 였습니다.
어는 날 산비둘기 한 마리가 처가의 마당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제 아내가 첫 아기 낳으려고 할 즈음이었습니다. 70년대 우리 어머니가 시골 사람이라 처가에서 출산하기를 원하시는 시어머니 눈 높이에 맞추어 병원에 가지않고 집에서 나으려고했습니다.
진통이 왔는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우리집사람이 진통이 와서 앜소리를 내는데 그 옆에서 아이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시어머니를 향하여 “어머니 예수 안믿으시면 지옥에 가세요. 아앜 아앜 고통스런 소리를 지르면서도 어머니 이렇게 불속에서 고생해요” 진통하며 시어머니에게 전도를 하는 것이 었습니다.
처가는 장로 가정인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불신자 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하늘의 별 칠성님을 섬기는 귀신 충만한 분이었고 아버지는 유교 철학을 믿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듯이 여인이 임산하렸으나 해산할 힘이 없다고 말했듯이 제 아내가 힘이 없어 애기를 못나서 병원의 의원을 불러서 났으나 애기가 질식해서 사산을 했습니다.
손자를 기다렸던 어머니는 완전히 실망을하고 슬피 우리 본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일을 맞아 사실 감사한 마음은 없지만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 했으니 감사헌금했습니다
그랬는데 생전 교회 나가실 것 같지 않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시게 되는 기적이 일어 났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나이드셔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가까우심을 알고 자신들의 산소를 미리 다 만들고 비석까지 다세우셨습니다.
우리가 객지로 돌아다녀 살게될 것이니 나중에 산소관리를 못할 것을 아시고 미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장하시어 자기들의 묘위에 안치하시고 그 밑에 자기 산소를 미리 만들어 두셔서 돌아가셨을때 우리가 간단히 안장만하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두분이 잘 믿으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큰 아이를 실패한 후 둘째를 낳을 때가 되었습니다 첫 아기 낳을 때 놀라서 이번에는 한국에서 최고로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를 찼았습니다.
애써찾은 것은 서울 제일병원 노경병박사였다. 나는 서울 수유리에 있는 한국신학대학 졸업반이었고 나는 학교 기숙사에 있었으며 교회는 성암교회에 다녔고 새벽기도는 학교에서 가까운 송암교회로 나갔습니다.
만삭이 된 제 아내는 학교 앞에서 따로 하숙을하고 있었다. 아내가 하숙하던 집에 송암교히 다니던 집사 한분이 전도하러와 우리집 사람을 만났는데 남편은 일본인으로 한신대 교환교수로 와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기 낳을 병원은 제일 병원이라 하니 깜짝 놀라며 우리교회 황정금 집사님이 그 병원 간호 부장인데 그 분에게 한번 말씀 하겠다고 해서 그 병원에서 입원하여 애기를 낳는 날 갑자기 꿩이 병원 유리창을 깨고 들어왔는데 살았습니다.장기 숫꿩이었습니다.
첫아이 낳을때 산비둘기가 마당에 떨어져 죽었는데 아기를 낳았으나 죽어 났는데 오늘 서울 제일병원에 서 은실이를 낳을때는 숫꿩이 유리 창을 깨고들어 왔으나 살으니 그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는 듯 했고 또 하나님이 축하해 주시는 사인 같았습니다
애기를 낳자 내가다니는 성암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이 병원방문왔는데 돈없는 신학생이 자기들도 올 상상도 못하는 최고로 고급병원 비싼곳에 왔는가 라고 비웃었습니다.
노경병박사는 성남교회 집사로 내가 다니던 성암교회 이영찬 목사님이 잘 아시는 분이어서 그분이 노경병박사에게 내가 한국신학 다니는 가난한 신학생이라고 이야기하고 새벽교회 나가던 송암교회 황정금 집사는 제일교회 간호 부장 이어 그분도 노경병 박사에게 가난한 신학생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어 퇴원 할때 입원비의 90%감면받았습니다.
나중에 안사실은 이 병원이 최고급병원이라 각국 대사 부인 등 외교관 부인이나 김지미 같은 영화 배우들 돈많은 사람들만 올 수있는 유명한 병원에 주님 백으로 가서 우리 은실 은주 은비 세아이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습니다. 당시 의술로는 제왕절개 수술은 2아이 밖에 낳지 못한다고 했으나 우리는 세아이를 제왕절개 수수로 낳았는데 수술한 자국이 하나도 없는 명의의 도움을 하나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
우리 아버는 제가 초등학교에서 받는 봉급에서 제가 십일조헌금을 떼고 아버지께 드릴 때 제일 기뻐하셨고 저도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것을 보므로 참기뻣습니다. 아버지가 제 십일조 헌금을 받으시고 기뻐하신 이유는 형님을 대학에 보내느라고 빚을 졌기 때문에 그것을 갚을 생각하시며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근검절야가셔서 충남부여군에 있는 전통시장인 홍산장에 콩밭사이에서 자라는 콩밭무우를 아버지께서 지게로 전통시장에까지 가지고 가셔서 팔에는 제게 팔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께서 이승만 대통령 때 면의원을 하셨기 때문에 조금 부끄러워 그리하신 것 같습니다 체면 때문에 그리하신 것같습니다 콩밭무우를 홍산장에 가지고 가면 아주 잘팔려 마치 게눈 감추듯이 팔렸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사다가 김치를 담기 때문입니다 콩밭무우를 다 팔고나면 저에게 국밥을 한 그릇 사주시는데 제가 그것을 먹는데 꿀맛 같이 맛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때 아버지께서 면의원에 출마하셨는데 후보자는 두명이었습니다
저는 이 때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어머니께서 맛있는 음식을 해놓으셨는데 특히 그 중에서 저는 메밀 묵을 좋아 해서 그것을 어머니 몰래 도둑으로 훔쳐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투표결과를 알아 오던 사람들이마을 입구에 들어 오면서 면의원에 우리 아버지께서 당선되셨다고 크게 환호하며 동제사람듶이 만세를 부르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때의 나이 6살 때였는데 저도 덩달아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함인순은 제 여동생입니다.
남편이름은 이진규씨이고 그 남편 이진규씨는 성격이 불 같아 여동생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아주 심하게 핍박해 왔습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함인순 내 여동생의 딸 이선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주님을 모르는 불신자들 입니다.
제 여동생명은 잡안일을 잘하여 우리집이 농사를 지을 때면 많은 품꾼들을 고용하여 일을 하는데 일꾼들이 먹을 음식을 손수해 가지고 당시는 오늘 날과 같은 운반수단이 없어서 그 누거운 여러 일꾼들의 짐을 머리에 날랐습니다.
내 여동생은 우리집 모든 식구들이다 크리스찬들은 선교사. 목사님. 사모님 장로님. 집사님. 또는 평신도들인데 내 동생 함인순만은 주님을 모르는 불신자 입니다.
그래서 선교사인 제가 매일 수시로 열심히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소유하고 있던 부모에게 물려 받은 토지를 여동생게 주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해도 여동생은 교회를 잠시 나가다가 남편의 아주 심하자 곧 중지하고 말았습니다.
함유순은 나의 여돌생으로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홍산중학교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시험에 떨어져 재수를 하여 홍산중학교 입학 시험을 다시 보았는데 합격자 발표로 합격이되어 형이 말하기를 "신이 도와 주어서 합격을 했다" 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양환 한신대생 시절에 우리동네에 사는 함순희양과 선을 보기위해 우리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여동생이 밥상을 들여 올때 동생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함순희 양으로 부터 거절당하여 내가 니앙환 목사에 미안 했습니다.
이 후에 나양환 목사가 한국신학에 돌아 왔을 때 마침 여동생에게서 편지를 보내왔는데 "오빠 나 총각을 소개하여 주세요" 그래서 내가 여동생을 소개헤줄려고 미안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더니 나양환 신학생이 기꺼이 허락하며 말하기를 함순희양 보다 내여동생이 더욱 마음에 들었었다고 말했었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섬기고 저도 선을 보았던 홍산제일교회에서 선을 보았습니다.
나양환 한신대를 졸업한 후에 군산 성광교회에서 전도사로시무핳ㅍ때 나전도사가 결혼을 했습니다.
제 여동생 유순이는 나야환 목사가 딸이 변호사인 나정은과 나광균 목사 그리고 목사 사모인 나정은이 있습나.
그런데 딸 나정은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여 사법고시를 볼 때 여동생 유순이가 기도를 많이 했습나다.
합격하여 강남구 서초동에 있는 고시 연수원에서 지금 남편을 만났습니다.
유순이가 정은이가 사법고시를 수차 낙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않고 기도줄을 끈지 않고 사법고시 합격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자신의 인생의 장면들이 번쩍이며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그는 모래 위에 난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어 온 길에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버리지 않는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간 때이기 때문이니라............
Mary Stevenson
Huellas en la arena
Una noche un hombre tuvo un sueño.
Era un sueño de caminar por la playa con el Señor.
Escenas de mi vida brillaron y se reflejaron en el cielo.
Cada vez que pasa una escena, vuela sobre la arena
Vi dos pares de huellas.
Uno era suyo y el otro era del Señor.
Cuando brilla la última escena de la vida
Volvió a mirar las huellas en la arena.
Tiene sus huellas en el camino
Noté que hubo muchas ocasiones en las que solo había un par.
Es entonces cuando en su vida
También aprendí que estos eran los momentos más difíciles y tristes.
Estaba tan molesto que le preguntó al Señor.
"Señor, una vez que haya decidido seguirte,
Dijo que siempre me acompañaría.
Pero ahora que veo, en los momentos más difíciles de mi vida
Solo hay un par de huellas.
Cuando más necesitaba al Señor
No sé por qué el Señor me abandonó ".
El Señor respondió.
"Mi precioso y precioso hijo,
No te abandono porque te amo.
En los días de tus pruebas y dificultades, viendo solo un par de huellas
Porque es el momento en que te cargué ...
María Stevenson
모래 위의 발자국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자신의 인생의 장면들이 번쩍이며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그는 모래 위에 난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어 온 길에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버리지 않는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간 때이기 때문이니라............
Mary Stevenson
Huellas en la arena
Una noche un hombre tuvo un sueño.
Era un sueño de caminar por la playa con el Señor.
Escenas de mi vida brillaron y se reflejaron en el cielo.
Cada vez que pasa una escena, vuela sobre la arena
Vi dos pares de huellas.
Uno era suyo y el otro era del Señor.
Cuando brilla la última escena de la vida
Volvió a mirar las huellas en la arena.
Tiene sus huellas en el camino
Noté que hubo muchas ocasiones en las que solo había un par.
Es entonces cuando en su vida
También aprendí que estos eran los momentos más difíciles y tristes.
Estaba tan molesto que le preguntó al Señor.
"Señor, una vez que haya decidido seguirte,
Dijo que siempre me acompañaría.
Pero ahora que veo, en los momentos más difíciles de mi vida
Solo hay un par de huellas.
Cuando más necesitaba al Señor
No sé por qué el Señor me abandonó ".
El Señor respondió.
"Mi precioso y precioso hijo,
No te abandono porque te amo.
En los días de tus pruebas y dificultades, viendo solo un par de huellas
Porque es el momento en que te cargué ...
María Stevenson
모래 위의 발자국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자신의 인생의 장면들이 번쩍이며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그는 모래 위에 난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어 온 길에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주님께서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버리지 않는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간 때이기 때문이니라............
Mary Stevenson
Huellas en la arena
Una noche un hombre tuvo un sueño.
Era un sueño de caminar por la playa con el Señor.
Escenas de mi vida brillaron y se reflejaron en el cielo.
Cada vez que pasa una escena, vuela sobre la arena
Vi dos pares de huellas.
Uno era suyo y el otro era del Señor.
Cuando brilla la última escena de la vida
Volvió a mirar las huellas en la arena.
Tiene sus huellas en el camino
Noté que hubo muchas ocasiones en las que solo había un par.
Es entonces cuando en su vida
También aprendí que estos eran los momentos más difíciles y tristes.
Estaba tan molesto que le preguntó al Señor.
"Señor, una vez que haya decidido seguirte,
Dijo que siempre me acompañaría.
Pero ahora que veo, en los momentos más difíciles de mi vida
Solo hay un par de huellas.
Cuando más necesitaba al Señor
No sé por qué el Señor me abandonó ".
El Señor respondió.
"Mi precioso y precioso hijo,
No te abandono porque te amo.
En los días de tus pruebas y dificultades, viendo solo un par de huellas
https://youtu.be/izjbIk2unX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