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집정제, 盧만이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착상" - <홍사덕 인터뷰> 이
원집정제 찬성ㆍ중대선거구제 반대
2선 후퇴를 선언한 시한부 지도부, 소장 개혁파의 들끓는 개혁요구, 게다가 치열한 물밑 당권경쟁까지. 한나라당은 지금 아노미 상태다.
프레시안은 22일 혼돈에 휩싸인 한나라당의 유일한 조타수 격인 홍사덕 당 개혁특위 공동위원장을 만나 당 안팎의 '격변'을 보는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5선의 관록과 합리적인 성품 덕에 특위 위원장 인선 때도 무난함을 인정받았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두 분"
홍 위원장은 노무현 당선자와 인수위의 활동과 관련, "지켜야 할 규범에서 훨씬 벗어나 있다", "상궤를 벗어났다"며 "(당선자와 인수위가)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건 재벌 문제에 대해서건, 심지어는 주택문제에 대해서도 사실상 대통령 두 분이 있는 듯한 인상이다"는 홍 위원장의 말은 사실상 인수위와 노 당선자의 '월권' 행위에 대한 지적으로 들린다.
홍 위원장은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상궤를 벗어난 행보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행보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점은 사실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노 당선자의 선거구제 개편 관련 언급에 대해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는 것은 당을 통한 국회지배 시절의 폐단을 습관적으로 되풀이 하는 것"이라고 경계했다.
그러나 당선자 신분으로 여야 대표를 만나는 등 노 당선자의 새로운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제도적 미비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메워가는 것이니까 그 언저리를 탓할 바는 못된다"고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이원집정부제 구상에 대해서는 "노무현만이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착상"이라며 "국민들은 (노 당선자가) 이 기간만 잘 운영해 주면 우리 정치발전에 정말로 결정적인 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단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폭 환영했다.
이원집정부제의 전제조건으로 제시된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에 대해선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한꺼번에 도입하는 것은 대차대조표상 야당이 너무 불리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며 그 중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약간의 단서만 달면 어느 한쪽이 손해를 좀 보더라도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내각제 개헌론에 대해서는 개인 의견을 전제로 완강한 반대의사를 표했다. "제도의 운영을 잘못해 놓고 그 책임을 헌법에 돌렸던 지금까지의 못된 버릇은 삼갔으면 한다"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적어도 애국적인 동기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탐탁지 않은 반응이었다.
홍 위원장은 노 당선자와 민주당이 향후 경계해야 할 사항으로 "(개혁을) 주도해 나가는 당이 지극히 불안정한 속에서 개혁질주를 해가면 정치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 상당한 위험을 안겨줄 수 있다. 또한 정작 풀어야 할 현안들, 예컨대 북핵문제나 청년실업문제, 경제 문제들이 모르는 사이에 뒷전으로 물러나서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개혁 성공하면 내년 총선서 웬만큼 전적 올릴 수 있을 것"
상대적으로 개혁의 주도권을 빼앗긴 한나라당에게는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외에 특별한 방안이 있을 수 없다"고 '내실'을 강조했다. 그 방안으로 홍 위원장은 당 개혁특위 활동에 상당한 의욕과 기대를 내비쳤다.
홍 위원장은 "과거 야당은 대선 패배 직후 차기 당권문제가 바로 불붙었으나 한나라당은 차기 당권경쟁 대신 '어떻게 시스템을 바꿀 것인가'를 먼저 논의하기로 했다"며 "이런 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기만 하면 국민들로부터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개혁특위 논의 과정에서 공감대가 모아진 사항 중 ▲의원들의 입법기능, 정책기능 강화 ▲정통성 있는 지도부 선출과정 마련, 선출과정에서 비주류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당비 수입지출 공개와 당원명부 확보 등을 강조했다.
특히 지도부 선출방식과 관련 "과거 전당대회에서는 대표로 나서는 사람 따로, 최고위원 따로 갈라서는 바람에 대표 선거에서 낙선한 중진들은 어디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버리는 경우가 발생했다"며 "제도적으로 비주류를 만드는 일은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당원 투표제 등은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관심이 모아지는 지도체제 형식에 대해서는 "중요한 것은 간판이 될 사람의 성실성, 부지런함, 진지함이지 평론가들이 말하는 집단성이냐 단일성이냐는 아니다"라고 직답을 피했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되는 홍 위원장의 당권주자설에 대해서는 "게임의 규칙을 내가 정하고 있다. 만약 나도 한번 나설 뜻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그런 규칙을 만들 수 있겠나. 불가능이다"라고 일축했다.
홍 위원장은 또 한나라당의 시스템 개혁은 "민주당이 흉내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 개혁이 성공하면 "새 정부와 민주당이 특별한 실수를 하지 않아도 (내년 총선에서) 웬만큼 전적을 올릴 수 있을 것"고 자신했다.
이에 따라 소장개혁파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강도 높은 개혁 요구에 대해 "제의는 일정부분 활력을 준다는 점에서 막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순수한 동기와는 다른 결과가 올 가능성이 너무 크다"며 내년 총선을 대비한 '자중'을 당부했다.
다음은 2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된 홍사덕 위원장과 정관용 프레시안 상임편집위원 간의 인터뷰 전문.
"당선자와 인수위 상궤를 벗어났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 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대선에서는패했고, 새 정권은 아직 출범하지 않은 지금의 시기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규정하나.
홍사덕 : 헌정사에서 보면 하부구조의 발전을 정치가 따라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맞은 시기라고 본다. 이 기간동안 과연 하부구조에 걸맞는 상부구조를 만들어낼지 여부는 아직 전망이 서지 않지만, 개혁 특위의 임무는 바로 거기에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했듯이, 경제 사회적으로 마련된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정치 제도문화간에는 현격한 괴리가 보이지 않나. 그런 하부구조에 걸맞는 상부구조를 만들어 내는 기간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당선자가 여야 총무나 대표와 만난 것 등은 과거 사례가 없는 변화의 측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홍사덕 : 아직 판단은 이르다. 당선자와 인수위가 지켜야 할 규범에 의하면 당선자와 인수위가 훨씬 벗어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프레시안 :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
홍사덕 : 인수위와 당선자의 규범은 미국에서 확립됐다. 같은 제도를 시행해 온 미국에서 검증되고 확립된 예를 기준으로 볼 때, 인수위가 (규범에) 넘치는 일을 해 온 것이 사실이고 당선자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그것이 헌정사적 측면에서 부정적인지, 아니면 긍정적인지에 대해서는 지금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노 당선자와 인수위가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인가.
홍사덕 :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같은 제도를 오래전부터 시행해서 시행착오 끝에 확립돼 있는 규범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규범에서) 대단히 벗어나 있다는 게 사실인데,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말이다.
프레시안 : 추상적 표현이다. 우선 미국에서 확립된 규범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홍사덕 : 인수위를 먼저 말하자면, 선거 기간동안 당선자가 인쇄 또는 말의 형태로 내놓았던 모든 정책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가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인수위의 임무다. 인수위원들이 해당부처에 가면 공통적으로 내놓는 첫 번째 질문은 앞으로 90일 동안 제기될 문제가 무엇인가이다.
그러나 우리 인수위는 사실 제도의 변괴에 대해 훨씬 관심이 있는 듯한 말을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다. 내부적 검토가 없었는데도 그렇다. 이런 나쁜 관행은 연원을 따지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상궤를 벗어난 행보를 허용했던 것이 잠재의식 속에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하는 판단이다.
당선자의 경우에는 사실 더 심하다. 역시 김대중 대통령이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보여줬던 행보가 (외환위기 상황과 다른) 지금같은 상황에서도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지키는 첫 번째 수칙은 미 합중국에는 대통령이 오직 한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건 재벌 문제에 대해서건, 심지어는 주택문제에 대해서도 사실상 대통령 두 분이 있는 듯한 인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은 사실 본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 : 속된 표현을 좀 쓰자면 너무 설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나.
홍사덕 : 양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단 하나, 북핵문제 뿐이다. 나머지는 상궤를 벗어났다고 본다.
프레시안 : 여야 총무와 함께 만난다든지, 야당 당수를 찾는 등의 행보와 관련한 질문이었다. 그 부분이 아닌 포괄적인 측면에서 노 당선자와 인수위가 상궤를 벗어났다는 지적인 것 같다. 정치적인 행보만 떼어내서 보자면 어떤가.
홍사덕 : 제도의 미비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메워가는 것이니까 그 언저리를 탓할 바는 못된다. 가령 인수위법이 아직 통과되지 못한 상황이고 국회에서 인준을 해야 총리 노릇을 할 수 있고, 총리서리도 인정하지 않는 법적 미비를 메우자는 것이니까 당선자로서는 특별한 행보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프레시안 : 기존 여야관계는 당정분리가 안되면서 당선자 시절부터 여당 총재로서 기능하며 야당과의 관계를 이끌어 온 것이 사실 아닌가. 그걸 좀 깨보자는 시도로 받아들일 수 없겠나.
홍사덕 : 본인이 그런 취지의 얘기를 한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충분히 입증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가령 국회의원 선거 제도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는 것은 당을 통한 국회 지배 시절의 폐단을 습관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아직 의지와 말을 입증할만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중대선거구제 언급 등이 국회에 대한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인가.
홍사덕 : 압력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당을 통한 국회 지배 시절에나 있었던 관행을 거의 습관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어쨌든 노 당선자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가면서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는데, 반대로 한나라당은 이끌려가고 있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이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홍사덕 : 묵묵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 외에 특별한 방안이 있을 수 없다. 가령 어제만 해도 정치개혁 특위에서 당의 회계를 매 분기마다 사실적으로 공개한다는 결정을 했다. 이것은 정당 투명성 차원에서 보면 거의 혁명적인 결정이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국민들에게 전한 매체가 없었다. 그러나 묵묵히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그 끝에 길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2월5일까지 각 지구당 당원명부 제출토록 지시"
프레시안 : 개혁특위에서 지금까지 결론 내려진 것은 무엇인가.
홍사덕 : 이제 2주일 지났다. 그 사이에 무슨 결론이 내려졌겠는가. 다만 대체로 공감대는 몇 가지 형성됐다.
첫째, 당의 국회 지배를 막기 위해서 의원들의 입법 기능, 정책 심사기능을 강화해야 하고 이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모아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임위 활동을 보좌할 수 있도록 당이 추천하는 전문 스탭들의 배치, 그리고 국고보조금 중에 상당부분을 투자해서 전문연구인력이 있는 당의 연구기관, 한나라당의 경우 여의도연구소인데, 그런 연구기관을 입법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체로 공감대가 모아졌다. 그렇게 되면 당이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의원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틀 중에 상당부분이 제도적으로 없어지게 된다.
둘째, 우리 정치문화에서 당의 간판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1년여 뒤에 있을 선거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새 지도부를 선출할 때 비주류가 생기는 것은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의 간판을 선출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정통성(legitimacy)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기에는 아직 성숙되지 않아서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세 번째는 투명성을 높여야겠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이나 여론주도층들이 취미클럽 가입하듯이 당원이 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투명성의 결여 때문이다. 이를 다시 나누면 회계의 투명성과 당 지도부나 공직 후보 선출과정의 투명성이다. 이번 특위에서 다루는 회계 투명성 문제는 이미 해결을 했다. 기업 회계에 준해서 지출을 공개하고 수입은 정치자금법에 따라서 항목별로 6개월마다 공개하고 홈페이지에 올리고, 매회 내, 외부 감사까지 받기로 했다. 공직 후보 선출과정을 특위의 해결과제로 삼기에는 활동기간이 너무 짧아서 다음 지도부로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선출과정은 아주 투명하게, 적어도 정통성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겠다.
프레시안 : 어제 개혁특위 전체회의 과정에 결론 난 사항 중 당원 명부 파악은 투명성 부분에 해당하는 것인가.
홍사덕 : 그렇다. 전 지구당에 2월 5일까지 현재 가지고 있는 확인된 당원명부를 올리도록 지시를 내렸다. 사실 요즘같은 정보화시대에는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나 무슨 방법으로든 얼마든지 전 당원에게 접근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합관리 하는 것이 적절할뿐더러 대의기구를 만들 때도 위원장의 자의적인 선발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당원들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부터 확정해 둘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 지시를 내렸다.
프레시안 : 거기서 말하는 당원은 당비를 내는 당원을 말하나.
홍사덕 : 민주당의 경우 진성당원이 6천여명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당은 아직 파악조차 안되고 있다. 아마 1만명 내외 될 것으로 본다. 한나라당의 당원임을 스스로 선언하고 누가 물었을 때 당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만 돼도 당원으로 인정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지난 주말 기자회견을 통해 3월 전당대회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 부분은 어떻게 결정된 사항인가.
홍사덕 : 저절로 결정이 됐다. 4월에 보궐선거가 있다. 마비상태에 있는 현 지도부에게 보궐선거, 특히 대선 패배 이후 첫 번째 맞이하는 선거를 끌고 가게 할 수는 없다. 천상 새 지도부가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새 지도부 선출은 3월 중순을 넘기기가 어렵다.
"진성당원화는 이상론, 원내정당은 함흥에 제주 감귤 심는 격"
프레시안 : 새 지도부 선출 방법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논의가 됐나. 쟁점이라든지…
홍사덕 : 나름대로 형성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비주류를 양산하지 말아야하고 지도부에 골고루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전당대회에서는 대표로 나서는 사람 따로, 최고위원 따로 갈라서는 바람에 대표 선거에서 낙선한 중진들은 어디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버리는 경우가 발생했다. 제도적으로 비주류를 만든 셈이다. 그런 일은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럼 집단지도체제 쪽인가.
홍사덕 : 언론이나 현실정치 참여자가 아닌 평론가들이 즐겨쓰는 용어중의 하나가 집단이냐 단일성이냐 하는 분류다. 현실정치에서는 사실 그런 구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예를들어 나에게는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을 당수로 모시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두 분이 당을 끌고갈 때 국민과 언론이 보기에 완전히 전횡하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두 분은 단일성 지도체제와 합의성 집단지도체제를 모두 경험한 분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그 두 분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없다. 일일이 만나서 두 번 세 번 이야기를 하고 끊임없이 전화를 하기 때문에 막상 회의에서는 격렬한 반대를 할 수 없도록 사전작업을 해 놓는다. 그런 리더십, 그런 부지런함을 가지고 있는 양반은 집단지도체제라 하더라도 강력한 리더십을 보일 것이고 그런 부지런함이나 성실성이 없는 사람은 단일성 체제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이탈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간판이 될 사람의 성실성, 부지런함, 진지함이지 평론가들이 말하는 집단성이냐 단일성이냐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프레시안 : 대선 이후 당 개혁 바람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원내정당화, 진성당원화 논의가 제기됐다. 물론 이 둘만이 핵심적인 대목은 아니겠지만 이 부분에는 어떻게 생각하나.
홍사덕 : 진성당원화는 리얼리티를 무시한 이상론이라고 본다. 당 개혁이 이뤄지고 나면 마치 동호회에 가입하듯이 아무 거부감 없이 5천원 1만원을 내는 당원들이 생겨날 것이다. 지금 당장의 당 시스템이나 문화로서는 현재 당비를 내는 그 사람들만을 가지고 당을 꾸려가는 것은 당과 정치를 망치는 첩경이다.
원내정당화라는 말은 내용과 표현이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특위에서도 그런 용어를 쓰지 않고 있다. 사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그런 주장을 펴는 분들이 말하는 모델이 있다면 오로지 미국 하나다. 정치문화에서나 제도 운영의 축적된 경험에 있어서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가져오는 것은 함흥에 제주도 밀감나무를 심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의원들의 입법기능, 정책 심사기능을 높이기 위한 구상을 말했는데, 원내정당화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그 내용 가운데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택할 예정이다.
프레시안 :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한나라당 내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 모습들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홍사덕 : 그런 개혁이 이뤄지고 나면 인텔리들도 "나는 건강한 보수니까 이 자식들(한나라당) 고생하는 꼴을 못보겠다. 한달에 만원이야 내가 못내겠냐"고 클릭 한번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돈 내러 일부러 오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 가령 인터넷 들어와서 자기 계정에서 바로 (당비가) 나갈 수 있게 하고, 자기 전화요금에 청구되도록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그 결과로 진성당원이 늘어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정책기능 강화라는 것도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미국식을 지향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홍사덕 : 미국식의 제도의 일부를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제도와 문화가 이상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굉장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뜻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원내정당화가 이뤄지려면 현재의 대통령 중심제가 계속 간다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새 정부와 민주당이 큰 실수 없어도 내년 총선서 해볼만 하다"
프레시안 : 대선에 패배한 마당에 내년 총선에서 어떻게 지금 정도의 위상을 유지하느냐가 관건 아니겠나.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당 내에서의 몇가지 제도적 개혁, 간판의 교체 정도로 가능하겠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면 어떤 것인가.
홍사덕 : 대선에 패배한 이후 야당이 된 당이 걸어가는 패턴을 잘 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에 그 패턴을 완전히 깬 셈이다. 과거 야당은 대선 패배 직후 차기 당권 문제가 바로 불붙었다.
한나라당은 차기당권경쟁 대신 '어떻게 시스템을 바꿀 것인가'를 먼저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 차기 당권과 관련된 불씨가 언론을 통해 지펴지고 실제로 거기에 뛰어든 사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며칠 전 전당원 투표제라는 아직 완전 합의되지 않은 말을 던진 것은 종전의 시스템으로 뽑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의원 지구당 위원장 연찬회에서 나온 합의를 전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새 지도부가 정통성을 가지고 당이 투명하게 운영되면 새 정부와 민주당이 특별한 실수를 하지 않아도 웬만큼 전적을 올릴 수 있다고 나는 본다.
프레시안 : 민주당에서는 당 개혁을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준비도 하고 있고, 한편 신구 주류간의 격론도 활발하고, 또 과감한 외부세력 수혈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나라당은 조금 미비한 것이 아닌가.
홍사덕 : 민주당에는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이라는 완벽한 방화벽이 있다. 어떤 불을 질러도 핵심부분은 절대 연소되지 않을 완벽한 방화벽이 둘씩이나 있다. 따라서 많은 창의적인 시도를 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우리당의 경우, 그런 대담한 시도를 충분한 합의 없이 시험하려 했다가는 방화벽이 없기 때문에 전소되거나 무너질 수 있다. 일부 의욕 넘치는 젊은 의원들이 이 점에 주목하지 않고 여러 가지 제의를 한다. 물론 제의는 일정부분 활력을 준다는 점에서 막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채택할지 여부는 대단히 신중하게 하려 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국민들이 볼 때 한나라당의 변화를 느끼기 힘들지 않겠나.
홍사덕 : 당이 쪼개지고 무너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프레시안 : 시스템을 고치고 꾸준히 해 나가면 민주당의 실수가 없어도 해볼만 하다고 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홍사덕 :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투명성을 민주당이 따라오기 어려울 것이다. 회계 공개라거나 공직후보 선출과정에서의 투명성 등 기본 방향은 정해진 것이 아닌가. 거기에 어떤 요소를 보탤 것인가가 남았다. 지도부 선출에 있어서도 적어도 당원들의 뜻이 그대로 담겨있고 정통성에도 국민들이 문제없이 받아들일 여지가 대단히 넓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그것 역시 흉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런 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기만 하면 국민들로부터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아낼 수 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프레시안 : 지난 대통령선거 결과 노무현 당선이라는 것이 기존 정치권의 질서로 보면 의외성 아니겠나. 한국 정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런 변화가 지속적으로 가속화되면 홍 의원이 말한 한나라당의 체제안주식 개혁은 현격히 뒤쳐진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홍사덕 : 지금은 그 변화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예측하는 것조차 어렵다. 지켜볼 따름이다. 거기에는 입증도 되지 않은 가설들이 포함 돼 있다. 우리 당이 정치특위에서 대선 백서를 내기로 결정하고 모든 분야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로부터 레포트를 받고 있다. 최종 정리는 아웃소싱을 하겠지만, 그것이 나올 때쯤에는 도대체 변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서 현실성 있는 객관적인 판단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건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나.
홍사덕 : 예컨대 당에 기초하지 않아도 큰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종전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종전 같은 성원으로 구성돼 있고 종전 같은 의사결정 방식으로 일관할 때는 혹시 성립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개방되고 선진화된 정당 형태일 때도 가능할 것인가는 전혀 입증되지 않은 것이다.
"프랑스식 이원집정제, 노 당선자만이 할 수 있는 좋은 착상"
프레시안 : 흔히 언론에서 한나라당을 분류할 때 보수중진, 혹은 개혁파, 소장파 이런 용어들을 쓴다. 홍 의원 자신을 위치시키자면 어디쯤 된다고 생각하나.
홍사덕 : 개혁파들은 나더러 개혁파라고 하고 보수파들은 나보고 보수파라고 한다. 나는 자신을 '건강한 보수'로 자기규정 하고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진보나 보수라고 얘기할 때 진보의 건너편 극단, 보수의 건너편 극단이 아니라면 최종적인 도달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간의 유일한 차이는 최종목표까지 걸리는 기간과 절차에서만 차이가 나야한다. 그래야 토론을 통해 타협이 가능하다. 목표를 서로 달리할 때는 타협이 불가능하고 토론을 통한 극복이 불가능해진다.
내가 보수라고 할 때, 또는 내가 진보라고 얘기할 때 서로 확인해야 할 것은 최종 목표가 같은가이다. 가령 종업원들의 경영 참여, 공동의사결정 같은 것만 해도 건강한 보수가 "그것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 시점으로부터 셈을 하면 5년 이상을 잡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그에 대해 건강한 진보라면 "왜 그렇게 오래 걸려야 하나. 우린 당장 개정안을 내겠다"고 해야 둘 사이에 토론이 형성된다. 종업원들의 경영참여는 아주 오래전부터 독일 등에서 실시되고 있는 제도인데, (보수는) "그것 빨갱이 아니냐"라고 얘기하거나 (반대로 진보는) "정말 근본적인 뒤엎음이 있어야 모순이 해결된다"고 하면 더 이상 타협이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 본인은 중도라는 뜻인가.
홍사덕 : 나는 구식이어서 그런지 중용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
프레시안 : 노 당선자는 내년 총선 이후 원내 다수세력에 총리를 주는 프랑스식 이원집정제를 얘기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홍사덕 : 우선 그 열매를 꼭 따먹고 싶다.(웃음)
노무현만이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착상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노 당선자가) 이 기간만 잘 운영해 주면 우리 정치발전에서 정말로 결정적인 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단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프레시안 : 노무현만이 실천할 수 있는 착상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홍사덕 : 그 전에 대통령을 했던 분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 발상이 불가능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천은 더욱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의원들을 빼가고 그런 것 아니었나.
프레시안 : 노 당선자에게 민주적 리더십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인가.
홍사덕 : 어떤 말로 칭찬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점들은 모든 부분에서 계속 살려나가기를 바란다. 가령 대기업 관련해서, 나는 노 당선자 주변에서 신뢰받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해줬으면 한다. "우리 경제규모가 세계 12~13위 수준이다. 우리 경제규모의 몇 분의 1밖에 안 되는 네덜란드나 벨기에에 가면 삼성그룹 정도의 큰 대기업이 몇 개씩 있다. 따라서 세계 12위권의 대한민국을 더욱 업그레이드시킬 멋진 꿈을 가지고 있다면 삼성그룹의 대여섯 배쯤 되는 대기업을 한 열개쯤 더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노 당선자 주변에서 해주지 않는지 유감으로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원집정제 얘기를 하다가 조금 어긋났는데, 그런 구상에서 발견되는 노무현 당선자의 장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홍사덕 : (노 당선자가) 정치철학이나 우리 민족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속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런 결단을 내린 것은 대단히 뛰어난 정치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원집정부제라는 말로 덧씌운 것은 당선자가 가지고 있는 원래 취지를 좀 훼손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
프레시안 : 원래 취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홍사덕 : 짐작이지만, 여야 간의 간격은 남북 간의 간격에 비하면 간격이라고 할 것도 없다. 장차 남북 간의 간격을 메우고 좁혀갈 사람이 여야 간의 좁은 간격을 가지고 생사를 거는 듯한 투쟁을 하면 도대체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정리된 형태이건 그렇지 않건,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한나라당 일부 개헌 주장, "애국적 동기는 아니었을 것"
프레시안 : 이원집정제의 전제조건으로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제를 거론했다. 그 점은 어떻게 보나.
홍사덕 :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한 묶음으로 전제조건을 삼은 것은 아닐 것이다. 대단히 현실적인 접근방법이라고 느꼈다. 다만 우리 특위에서는 내각제를 포함한 개헌문제나 선거구 문제는 다루지 않기로 일찌감치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오늘 내가 말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
프레시안 : 홍 의원 개인 소견을 밝히자면 어떤가.
홍사덕 : 선거구제 변경은 겉 포장지인 명분과 이해관계라는 속 알맹이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야 한다.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한꺼번에 도입하는 것은 대차대조표상 야당이 너무 불리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약간의 단서만 달면, 설령 어느 한쪽이 손해를 좀 보더라도 대의를 위해서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개인적 의견을 가지고 있다.
프레시안 : 중대선거구제는 어렵고 비례대표제는 협상 가능하다고 정리해도 되겠나.
홍사덕 : 대충 그렇게 가지 않겠나.
프레시안 : 개헌문제는 특위에서 얘기 안한다고 했으나, 이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의견을 밝힌다면 어떤가.
홍사덕 : 개인적으로 헌법은 아주 성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통일과 같은 큰 일이 아니고서는 고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다. 우리 헌법은 옛날 독일의 기본법처럼 통일을 염두에 둔 헌법이 아니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손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도의 운영을 잘못해 놓고 그 책임을 헌법에 돌렸던 지금까지의 못된 버릇은 사회가 이만큼 성숙했으니까 삼갔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다.
프레시안 : 현행대로 가자는 뜻인가.
홍사덕 : 헌법 잘못돼서 안된 일이 무엇이 있었나.
프레시안 : 개헌을 얘기하는 많은 분들 주장에는 총선과 대선의 선거기간을 맞추자는 취지도 있다.
홍사덕 : (운영의 문제지) 선거제도나 선거문화의 탓이겠나.
프레시안 :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런 논의가 불거진 것으로 아는데.
홍사덕 : 적어도 애국적인 동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 극히 일부인지 모르지만 성급한 사람들 가운데 이회창씨의 정계복귀 얘기를 하는 경우가 벌써 있는 모양이다.
홍사덕 : 나는 아직 한번도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가 우리 당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정당들도 적절한 시스템으로 원로들을 잘 모시는 관행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프레시안 : 정치일선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뜻인가.
홍사덕 : (고개를 가로 저으며) 본인이 들으면 대단히 화를 낼 것이다.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입장에서 당권도전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 과거 인터뷰에서 당권도전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그 후에 여기저기서 자꾸 홍 의원이 거론된다.
홍사덕 : 게임의 규칙을 내가 정하고 있다. 만약 나도 한번 나설 뜻이 있다고 얘기를 하면서 그런 규칙을 만들 수 있겠나. 불가능이다. 과거 시스템을 가져간다면 내가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 가능하겠지만….
프레시안 : 한나라당은 당의 모양을 유지하면서 개혁하는 방식이라고 했는데, 민주당은 그보다는 더 큰 변화가 예상된다. 민주당의 변화가 어느 수준까지 이르리라고 보나. 신당창당이라거나…
홍사덕 : 당선자나 당선자를 서포트 하려는 이른바 개혁인사들의 욕심은 거의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장벽도 지금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대단히 두터울 것이다. 안정적인 정치발전을 위해서 빠른 시일 내에 적절한 합의가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프레시안 : 욕심을 많이 부려도 현실적으로 안될 것이라는 말인가.
홍사덕 : 개혁그룹이나 당선자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장벽이 대단히 두터울 것이다. 역사에 의해서 형성된 장벽은 단순히 제도의 개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문화하고 싸우는 것인데, 문화하고 싸워서 이긴 사람이 없지 않나. 진시황이나 비스마르크나 모택동이나….
프레시안 : 민주당과의 개혁 경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홍사덕 : (민주당 개혁의) 반사이익은 당을 개혁하려는 나나 우리당 사람들도 누릴 수 있으니까 좋은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가 염려스럽다. 주도해 나가는 당이 지극히 불안정한 속에서 개혁 질주를 해가면 정치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 상당한 위험을 안겨줄 수 있다. 또 하나는 정작 풀어야 할 현안들, 예컨대 북핵 문제나 청년실업 문제, 경제 문제들이 모르는 사이에 뒷전으로 물러나서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 노 당선자의 국정 운영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대목으로 봐도 되겠나.
홍사덕 : 그렇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 젊은 의원들 사이에는 일부 이탈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홍사덕 : 대체로 지목되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나는 그들이 제도 정치권 내에서 계속 살아남고 발전하기를 힘닿는 대로 도와 온 처지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순수한 동기와는 다른 결과가 올 가능성이 너무 크다. 그저 자중하면서 당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쪽으로 에너지를 모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순수한 의도와 다른 결과라는 것이 무엇인가.
홍사덕 : 내 경험으로 보면 국민들 심판은 순수한 동기를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프레시안 : 낙선의 위험 말인가.
홍사덕 : 그렇다. 느낌이 안 그런가.
프레시안 : 혹시 민주당으로 가면 모를 일 아닌가.
홍사덕 : 우리 당이 앞으로도 극우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그런 꼴이야 되겠는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