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로마서 8 : 21 - 30
많은 성도들이 ‘성령’에 대한 오해를 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꿈속에 자주 하나님을 만나고 어떤 응답을 받는 다고 합니다. 자신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함을 받았다는 사람을 찾아가서 기도를 받고, 어려운 문제를 상담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은 이미 성령을 받았고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가서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6).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가셔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 안에 성령이 계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믿음이란 성령이 내 속에 계시고 나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 작고 큰 것은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이 어느 정도이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큽니까 작습니까? 모든 성도들 속에는 성령이 있습니다. 동성교회 성도들은 성령이 내 속에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 성령의 도우심을 많이 받을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성령은 우리안에 계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성도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여기까지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8: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 나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인 나와 여러분 속에는 성령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 속에 있으면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죽은 귀신이나 섬기는 사탄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은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형제가 됩니다. 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으로 버려졌던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여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예수님을 형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26절 말씀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연약함’이란 말은 육신의 연약함을 병들어 죽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약함’이란 근본적으로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약함’과 ‘연약함’은 같은 의미의 말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약함’은 어렵고 힘들어도 노력하면 스스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함’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는 연약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자기 스스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를 자라면 어리지만 넘어져도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약함’은 노력해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를 말하지만 ‘연약함’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스스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죄악에 빠졌을 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으로만 산다고 하는 성도도 물질에 유혹에 빠지면 욕심에 자신도 모르게 죄를 범하게 될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예수를 믿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다고 해서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죄의 유혹에 얼마든지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고 골리앗도 물맷돌로 쳐서 죽일 정도로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왕으로서 전쟁에 한 번도 패한 일이 없는 백전백승한 장수입니다. 이러한 다윗도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하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이웃집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정욕을 참지 못해 불러다 동침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충신인 그의 남편 우리아를 맹렬한 전쟁터로 보내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자기 아내를 삼았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도 이렇게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죄를 범하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러한 다윗을 넘어지지 않게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죄에 빠져 어려움을 당해도 성령께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까 신들린 여인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삼상28:8). 결국 사울은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죄값으로 불행하게 죽고 그의 자손까지도 망하였습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말씀은 스스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죄악에 빠졌을 때 성령께서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이 간구하여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도 범죄하여 스스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해졌습니다. 마땅히 기도하여 잘못을 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해 졌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연약하여 스스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더 이상 다윗은 회복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여 스스로 일어날 수 없지만 죄악의 험한 파도를 헤치고서 하나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믿음이 좋은 성도라고 자만하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자신도 모르게 죄의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역시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벌써 죄중에 버려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여러분을 도와주시므로 넘어지지 않고 붙잡아 일으켜 주심으로 오늘도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였을 때 성령께서 탄식하며 다윗을 위하여 간구하셨습니다. 성령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회개하도록 하여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였다면 다윗을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시지 않았다면 다윗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복한 다윗은 더 이상 그 죄에 매인 죄인이 아니였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은 여생을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 많아도 기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위하여 간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의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므로 어려운 문제가 풀리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줄 몰라 기도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은 성령께서 여러분을 대신 하여 간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정도라면 현실에서 어느 정도라고 생각을 합니까? 어느 정도가 되어야 기도할 바도 알지 못할 정도이겠습니까? 완전히 마음이 둔하여 마비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때가 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기도도 할 수 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기도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들에게 어려울 때 가장 중요한 탈출구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할 수 없을 정도라면 영적으로 타락하여 어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죄에 빠져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도 할 수 없을 때, 아니면 큰 어려움에 빠져 회복 할 가능성도 없을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을 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위기에 빠졌을 때 성령께서 탄식하며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셔서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고 간구하십니다. 27절에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내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내 뜻대로 기도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실 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고 간구하십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는 누굽니까? 기도를 듣고 응답을 하시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내 아버지 내 말을 들으시는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느라’고 말씀하시므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역시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도 성부 하나님께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면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고’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한 것을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하시는 것은 혹 내 뜻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바라고 기도한 대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이 바라고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고 전혀 다른 응답이 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된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성령께서 간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동쪽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는 길은 전혀 반대로 서쪽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동쪽은 형통의 길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는 서쪽 길은 험난한 가시밭길 일 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시는 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험난한 가시밭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실 때 믿음이 작은 자들은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간구하시고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심을 믿고 그 길을 갈 때 결국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길은 형통해 보이지만 그 길은 망하는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는 길은 험한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 길은 선을 이루는 축복의 길이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길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축복입니다. 결코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지 우리를 어렵게 하거나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나와 여러분 속에 계시며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여 기도도 하지 않았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