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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Sanskrit language 인도의 고어로서 중국과 한국에서는 범어(梵語) 어 로는 푸자니('pūjanā) 라 고 말 하는 공양(供養)은 처음에는 물질적인 것만을 지칭하였으나 이후 정신적인 것도 포함하게 되었다.불법승 삼보(三寶)에 대해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공물(供物)을 올린다. 일반적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을 불공(佛供), 부모에게 공양하는 것을 부모공(父母供), 스승에게 공양하는 것을 사공(師供)이라 한다.공양의 참된 정신은 대승불교의 수행덕목인 6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베푸는 수행)과 깊은 관계가 있다. 따라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에게는 재시(財施: 재물을 베풀음)를, 마음이 풍요롭지 못한 자 에게는 법시(法施: 불법을 베풀음)를, 두려움에 차 있는 자에게는 무외시(無畏施: 두려움이 없도록 함)를 베푸는 것이 참된 공양이라는 것으로 확대되어 갔다. 예전 부터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식사를 하는 것을 ‘공양(供養)이리고 하였다.
불기 2559년 부처님 오신날 (四月初八日)인 올해는 매년 가든 불교종단을 통털어 제일인 신도수 36만명,3만개의 연등이 달려있는 부산 초읍동 삼광사를 두고 부처님 오신날 전후 하여 3일간 한번도 가 보지않은 괴정동 해인정사(5/23.용호동 백련사(5/24) ,정관 석탑사(5/25)등 세군데의 사찰을 방문하였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용수공단 2길 언덕배기 윗산에 위치한 평범한 사찰 석탑사(石塔寺)의 창건 전설은 ...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정관면 용수리 덕전마을을 지나다가 동해에서 큰 광명이 백운산 중턱에 비치는 것 을 보았다. 그래서 신기하게 생각한 두 대사는 그 곳에 가보니 미륵부처가 나타나 설법하고 있었다. 이에 미륵불의 설법을 들은 원효대사가 “ 나는 여기에서 중생의 무상도를 기필코 이루겠다. ” 하고 의상대사와 헤어져 백운산 상봉에 작은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 그 절이 바로 석탑사이다,기장 읍지의 기록에 의하면 석탑사의 위치는 통일시라시대에 창건된 선여사지(船餘寺址) 라고되어있고, 후일 선여사에서 망일암으로 사명이 바뀌어 일제감점기까지 향을 피웠다고한다. 또 이곳 엣지명이 탑이있어 탑골이라하여 탑골사 라는 사찰명도 전해오고있다 .또 어느 자료에는 선여사지 의 창건일자가 범어사 보다도 더 빠르다고 한다.기장 제일가람이었던 이 사찰이 없어지게 된 사연이 전설되어 내려오고 있는데....이유가 바로 빈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잡아도 잡아도 끝없이 생겨나는 빈대 때문에 도저히 견디지 못한 스님들이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이 절에 불을 질러서 그 많던 빈대를 모두 박멸하였다고 전해온다 해서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선여사지라 하지 않고 빈대절터라고 하고 있다고한다.이를 반증하듯 석탑사 대웅전 뒤편에는 석탑 모양으로 추증해보면 다보탑,석가탑보다 오래된 석탑재의 기단으로 추증되는 부재는 인공괴형으로 1단탑신으로 되어있고,옥개서받침은 3단 ~5단 까지되어있다.보통석탑은 절마당에 있지만 이곳의 석탑은 절 뒤켠에있다.현재 이 탑은 석탑사 신도들의 시주로 현재 복원 공사 계획중에 있다. 그러나 선여사지가 왜 없어졌는지, 5층 석탑은왜 헤체된 석탑재만 남아있는지, 임기천 주변에 방치 되어 있던 것을 지장암에서 임시로 보관해 오다 임기마을 입구 소공원으로 옮겨 자리하고 있는 상륜부의 형태를 표현한 석탑의 부도(浮屠)는 왜 이곳에 있는지석탑사는 언제부터 불리어 졌는지 ...? 주지스님도 정확히 알길이 없다고한다
부산지하철 4호선 종점 안평역에서 내려 73번버스를 타고 철마를 거쳐 정관 에 도착 , 석탑사(727~2599) 를 둘러보고 그 윗 산에 병풍처럼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매바위 ,옛날 매바위의 넓은 대에 두루미가 둥지를 짓고 살았다고 하여 부른다는 소학대(巢鶴臺)를 거쳐 정관면 일품 경관이 펼쳐지고,붂쪽으로는 양산시 일부가 보이며 동쪽으로 정관신도시 서쪽으로는 금정산 자락이 펼쳐지며 남쪽으로는 황령산, 배산,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을 볼 수 있고.특히 날씨가 좋아 시야가 트일 때는 부산시청 및 남쪽 멀리 영도와 부산 남항이 보이는 등 기장군에서 부산시 전제를 조망 하기에 가장 좋은 망월산 (521.7m)정상 ,장미 소공원 을 거쳐 정관 박물관의 청강리 유적 출토 물인 독 무덤을 보고 ,인근 카페 에서 차 한잔하고 돌아오는 계획 이었는데 ... 석탑사에서 곱배기 비빔밤을 먹고 사찰 전경(全
아파트가에 있는 정관 장미 소공원은 잘가꾸어진 핑크하제,심파시,에비골드, 루리베이앙,콘체티노등 겹겹 장미가 한창 피어있어 아름답게 그지없고 ,신도시사업으로 사라지게될 문화재의 보존 방향으로 2015년 1월 건립된 정관 박물관(720~6300)은 기동 마을과 기장 청강대리리,철마면 고촌 마을 의 유적에서 출토된 당시의 생활 유적들을 전시하고있었다, 28도 가까운 햇빛 더위에 걸어서 마지막 간곳이 박물관 길 맞은편 자리에 있는 메스컴이 소개하여 알려진 카페 박물관 "명차( 727~55959)에서 복분자 팥빙수로 열을 식히고, 마상태(67세),이혜성(56세) 부부의 안내로 바로옆 콘테이너 3곳에 수십년간 차곡히 수집된 휘귀 골동품 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카페실내에도 많은 골동품 이 천장까지 도배지하고있고, 이름모를 잡새가 울어되어 무드가 있는 바깥 테라스(terrace)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진 종일 돌아다닌 피로를 싹 가시게 한다, 사장 부부가 부산서 살다 1년전 이곳에 정착하여 건물을 짓고 개업하여 유명세를 타고있는 이곳은 전통차(名
줄을 서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차례가 되어 비빔밥 한 그릇을 받아들고 절 마당의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으니 꿀맛이다. 부처님 오신 날 많은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배품을 나눠주는 점심공양인 비빔밥 한 그릇이 우리에게 몸소 나눔을 실천하라는 무언의 교훈을 주는 것같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불가에서 말하는 ‘사바세계의 어리석은 중생들’이 시기와 질투 그리고 악한 마음에서 벗어나 착한 마음으로 서로 나누며 베풀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아닌가한다. 나눔, 봉사.희생 등 남을 위해하는 모든것들이 공양(供養) 이리라... (지면상 photo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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