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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의 바탕 이론은 천문학
1. 문제 제기
2. 해례본의 가운데 소리 나열 순서가 지금과 다른 이유
가운데 소리는 천문도(天文圖)인 하도(河圖)에서 기원함
3. 해례본의 첫소리 나열 순서가 지금과 다른 이유
첫소리는 천문도인 낙서(洛書)에서 기원함
4. 한글이 모두 28자로 만들어진 이유
5. ㅋㅌ과 에 획()을 더한 모양이 서로 다른 이유
6. 맺는 말
한글 창제 원리는 학자들 간에 이미 다 밝혀진 것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창제원리에 대한 연구는 일단 관심거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오늘날 학계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한글 창제원리와 천문학과의 관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학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발표는 한글과 천문학의 관계를 각론적인 측면에서 깊이 파헤쳤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1. 문제 제기
1) 해례본의 가운뎃소리의 나열 순서에 대해서 어떠한 논문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2) 해례본의 첫소리 나열 순서가 전청-차청-불청불탁으로 나열하였기 때문에 ㄱ ㅋ ㆁ, ㄷ ㅌ ㄴ, ㅂ ㅍ ㅁ, ㅈ ㅅ, ㆆ ㅇ, ㄹ, △ 의 순서가 되었다고 정의하고 있는 학자들 중 어느 누구도 왜 전청-차청-불청불탁으로 했는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 첫소리의 나열 순서를 불청불탁-전청-차청(ㆁ ㄱ ㅋ ~)의 순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해례본의 전청-차청-불청불탁으로 나열된 이유에 대해서는 역시 어떠한 언급도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3) 한글이 28자로 창제된 이론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4) ㅋ ㅌ과 에 획()을 더한 모양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5) 앞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우선 해례본 서문에 있는 초성과 중성의 나열 순서 이유부터 다룰 필요가 있으므로 그 문제에 대한 발표자의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이유는 동양 천문학이 창제의 기본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2. 해례본의 가운데 소리 나열 순서가 지금과 다른 이유
가운데 소리는 천문도(天文圖)인 하도(河圖)에서 기원함
‘ㅗ가 처음으로 하늘에서 나니 천일생수天一生水(임壬. 북)의 자리이며,
ㅏ가 다음이 되니 천삼생목(天三生木: 갑甲. 동)의 자리이다.
ㅜ가 처음으로 땅에서 나니 지이생화(地二生火: 정丁. 남)의 자리이며,
ㅓ가 다음이 되니 지사생금(地四生金: 신辛. 서)의 자리이다.
ㅛ는 두 번째로 하늘에서 나니 천칠성화(天七成火: 병丙. 남)의 수數이며,
ㅑ가 다음이 되니 천구성금(天九成金: 경庚. 서)의 수이다.
ㅠ가 두 번째로 땅에서 나니 지륙성수(地六成水: 계癸. 북)의 수이며,
ㅕ가 다음이 되니 지팔성목(地八成木: 을乙. 동)의 수이다.
ㆍ는 천오생토(天五生土: 무戊. 중앙)의 자리이며,
ㅡ는 지십성토(地十成土: 기己. 중앙)의 수이다.
ㅣ만이 자리와 수가 없는 것은 대개 사람은 무극의 진리와 음양오행의 정기가 묘하게 합하여 엉긴 존재이니 진실로 일정한 자리와 온전한 수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가운뎃소리 역시 스스로 음양과 오행, 방위, 수를 지니고 있다.’01라고 하여 가운데 소리의 제자 원리가 바로 오행성의 운행을 나타낸 하도라는 천문도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하도(河圖)>와 <중성도(中聲圖)> 참조.
이러한 해박한 천문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한글이 창제되었기 때문에 정인지(鄭麟趾) 서문에서도 “정음 지음이 조술(祖述)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이룬 것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니 사람의 힘으로 한 사사로운 일이 아니다.”02라고 찬사를 거듭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자연(自然)에서 이루었다’라는 말은 바로 다름 아닌 우주 천체의 운행원리, 창조주의 섭리에 맞추어 한글을 창제하였다는 뜻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는 가운데소리의 제자원리 내용에 의거하여 만든 위의 <중성도>는 <하도>와 너무나 닮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중성도>는 하도라는 천문도에 1기원자(●)와 2기원자(● ●)를 가미함으로써 <하도>보다 그 표현이 더욱 완숙하고 세련된 구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5행성의 운행원리를 나타낸 하도의 원리보다 진일보한 중성도가 생겨남을 볼 수 있다. 이렇듯이 하도라는 천문도에 1기원자를 더한 ㅗㅏㅜㅓ와 2기원자를 더한 ㅛㅑㅠㅕ가 바로 가운뎃소리가 된 것이다.
즉, 하도 생수(生數)에 속하는 모음을 오행상생의 순서로 ㅗ부터 배열하면 수(ㅗ)→목(ㅏ)→화(ㅜ)→토(·(ㅣ))→금(ㅓ)의 차례가 되어 ㅗㅏㅜ ㆍ (ㅣ)ㅓ의 순서가 되고, 하도 성수(成數)에 속하는 모음을 오행상생의 순서로 ㅛ부터 배열하면 화(ㅛ)→토(ㅡ)→금(ㅑ)→수(ㅠ)→목(ㅕ)의 차례가 되어 ㅛㅡㅑㅠㅕ의 순서가 된다. 천인합일 사상으로 볼 때 ㅣ의 자리는 ㆍ와 같은 자리로 배정된다.
다시 정리하면 ㅗ ㅏ ㅜ ㆍ (ㅣ) ㅓ ㅛ ㅡ ㅑ ㅠ ㅕ의 순서가 된다. 여기서 ·(ㅣ)와 ㅡ는 나머지 여덟 소리인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의 머리가 되므로 ㆍ(ㅣ)ㅡ를 맨 앞으로 배열하였고 그 ㆍ(ㅣ) ㅡ를 다시 천天(ㆍ), 지地(ㅡ), 인人(ㅣ)의 순서에 따라 ㆍ ㅡ (ㅣ)으로 재배치 한 후 나머지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는 그대로 나열하여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의 순서로 최종 배열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창제 당시의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의 순서로 바꾸어 사용해야 하는 충분하고도 당연한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이 순서대로 하면 학습면에서 더 합리적이며 효과적이다. 여기서 하도와 천문과의 관계에 대하여 잠깐 살펴보자.
1, 6 수는 수성으로 매일 밤 자(子)시에 북쪽 하늘에 보이고 매월 1일과 6일에 해와 달이 북쪽에서 수성을 만나며 매년 1월과 6월의 저녁에 북쪽 하늘에 보인다. 그러므로 1과 6은 수(水)와 합한다(一六水)고 하였으며 하늘의 1이 수를 낳고(天一生水), 땅의 6이 수를 이룬다(地六成水)고 하였다. 따라서 1일은 수성이 처음 보이는 때이고(天一生水星), 6일에는 수성이 마지막 보이는 날이라고 하였다.(地六成水星)
2, 7 화는 화성으로 매일 낮 오(午)시에 남쪽 하늘에 보이고 매월 2일과 7일에 해와 달이 남쪽에서 화성을 만나며 매년 2월과 7월의 저녁에 남쪽 하늘에 보인다. 그러므로 2와 7은 화(火)에 합한다(二七火)고 했으며 또 땅의 2는 화를 낳고(地二生火) 하늘의 7은 화를 이룬다(天七成火)고 하였다. 따라서 2일은 화성이 처음 보이는 때이고(地二生火星) 7일에는 화성이 마지막 보이는 날이라고 하였다.(天七成火星)
3, 8 목은 목성으로 매일 인(寅)시에 동쪽 하늘에 보이고 매월 3일과 8일에 해와 달이 동쪽에서 목성을 만나고 매년 3월과 8월의 저녁에 동쪽 하늘에 보인다. 그러므로 3과 8은 목(木)과 합한다(三八木)고 하였고 또 하늘의 3은 목을 낳고(天三生木) 땅의 8은 목을 이룬다(地八成木)고 하였다. 따라서 3일은 목성이 처음 보이는 때이고(天三生木星) 8일에는 목성이 마지막 보이는 날이라고 하였다.(地八成木星)
4, 9 금은 금성으로 매일 신(申)시에 서쪽 하늘에 보이고 매월 4일과 9일에 해와 달이 서쪽에서 금성을 만나며 매년 4월과 9월의 저녁에 서쪽 하늘에 보인다. 그러므로 4와 9는 금(金)과 합한다고 하였다. 또 땅의 4는 금을 낳고(地四生金) 하늘의 9는 금을 이룬다(天九成金)고 하였다. 따라서 4일은 금성이 처음 보이는 때이고(地四生金星) 9일에는 금성이 마지막 보이는 날이라고 하였다.(天九成金星)
5, 10 토는 토성으로 매일 진(辰)시에 하늘 중앙에 보이며 매월 5일과 10일에 해와 달이 중앙에서 토성을 만나며 매년 5월과 10월의 저녁에 하늘 중앙에 보인다. 그러므로 5와 10은 토(土)와 합한다(五十土)고 하였다. 또 하늘의 5는 토를 낳고(天五生土) 땅의 10은 토를 이룬다(地十成土)고 하였다. 따라서 5일은 토성이 처음 보이는 때이고(天五生土星) 10일에는 토성이 마지막 보이는 날이라고 하였다.(天五生土星)
이렇듯이 가운뎃소리의 나열 순서와 더불어 1기원자를 더한 ㅗㅏㅜㅓ와 2기원자를 더한 ㅛㅑㅠㅕ의 글자 형태가 바로 오행성의 운행 원리를 나타낸 하도의 천문 이론에 바탕을 둔 것임을 알 수 있겠다.
3. 해례본의 첫소리 나열 순서가 지금과 다른 이유
첫소리는 천문도인 낙서에서 기원함
첫소리의 위치를 <오행 방위 낙서>에 배속시켜 보면 아래 그림과 같은 <초성 오행 방위도>가 생겨남을 볼 수 있다.
1976년에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6세기 초 고구려 고분인 평안남도 대동군 덕화리 쌍고분 중 동쪽의 2호 고분벽화에는 북두칠성, 남두육성, 해와 달을 비롯한 스물여덟 별자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19개의 별자리가 남아있는데 자료에 의하면 그 중 먹으로 쓴 류, 정, 위, 벽 네 별자리의 이름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가운데 그림 <오행 방위 낙서>이며 천문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첫소리의 나열순서에 대하여 한 가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첫소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리의 세기에 따라 여린 순서부터 가획하였다고 하면서도 소리가 여린 순서인 ㆁㄱㅋ, ㄴㄷㅌ, ㅁㅂㅍ, ㅅㅈ, ㅇㆆ의 순서로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정음 28자 천문 방각도>에 배치된 센 순서인 ㅋㄱㆁ, ㅌㄷㄴ, ㅍㅂㅁ, ㅈㅅ, ㆆㅇ의 순서로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정한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오행성五行星의 방위도인 <오행 방위 낙서>의 원리를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오행 방위 낙서> 역시 다름 아닌 천문도이다. 첫소리의 글자꼴은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으되 나열 순서는 바로 <오행 방위 낙서>라는 천문도에 근원 하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첫소리를 ㄱ ㅋ ㆁ, ㄷ ㅌ ㄴ, ㅂ ㅍ ㅁ, ㅈ ㅅ, ㆆ ㅇ, ㄹ, △ 의 순서로 나열시킨 이유는 바로 앞의 <초성 오행 방위도>에 배당된 첫소리를 오행 상생의 순서인 순방향(화살표 방향)으로 배열시켰기 때문이다.
4. 한글이 모두 28자로 만들어진 이유
동양천문학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외에 <28수(宿) 천문 방각도>라는 천문도가 있다. 그것은 천구(天球)를 동, 서, 남, 북으로 나누고 각각 7별자리씩 배당하여 모두 28별자리로 나눈 천문도이다. 이 천문도가 바로 한글이 28자로 만들어지게 된 이론적인 배경이 되었다. 이것은 또한 고분벽화의 사신도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만 아무튼 이 천문 이론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창제 원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관되게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천문에 이론적인 바탕을 두고 창제하였기 때문에 한글이 모두 28자가 된 것이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기간 동안 천문대에 행차한 횟수가 28회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왕이 왜 그토록 천문 관측에 심취하였을까. 아무튼 훈민정음이 28자가 된 것은 천체의 운행원리를 나타낸 동양 천문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지 우연히 28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 세종 15년(1433)에는 세종이 직접 28수의 거리와 도수, 12궁에 드나드는 별의 도수를 일일이 측후하여 새로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기고 이순지에게 명하여 천문 역법에 대한 책을 편찬케 하였다.03
세종의 이러한 천문지식으로 미루어 볼 때 천문이론이 훈민정음 창제의 이론적인 바탕이 되었음은 조금도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을 알아야 한글의 우수성을 외국인에게도 설명할 수 있으며 이 기본 지식을 알아야만 비로소 한글이 왜 세계에서 그 유래가 없는 과학적인 문자가 되었는 지를 상대방에게 제대로 납득시킬 수 있는 첫 관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며, 아울러 해례본의 첫소리와 가운뎃소리의 순서가 지금과 다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글이 28자로 창제된 이유는 28별자리를 나타낸 <28수 천문 방각도>라는 동양 천문도를 그 철학적인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이며, 첫소리의 글자꼴은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떴으되 나열 순서는 천문도인 <오행 방위 낙서>의 원리에 바탕하였고, 가운뎃소리는 천지인 3재합일 사상에 의거하였으되 그 나열 순서는 바로 <하도>라는 천문도의 원리에 바탕하여 창제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한글 창제 바탕에는 동양천문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초, 중성의 글자 모양은 가림다문(字倣古篆)을 참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5. ㅋ ㅌ과 에 획()을 더한 모양이 서로 다른 이유
이번에는 첫소리 중에서 ㅋ ㅌ과 의 가획 원리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ㅋ ㅌ과 을 다같이 획(━)을 더한 글자라고 했으면서도 ㄱ과 ㄷ에는 ㅋ ㅌ으로 획(━)을 더하였지만 ㅈ과 ㆆ에는 으로 획(━)이 아닌 각점 (ㅣ)을 더한 것을 볼 수 있다.04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첫소리인 ㅋ, ㅌ, 을 분명히 모두 가획한 글자라고 하였다.(제자해 13~14쪽) 그런데 왜 가획한 모양이 서로 다른 것일까? 앞의 <28수 천문 방각도에 배당된 ㅋ ㅌ, 의 위치도>에 배당되어 있는 자리를 보면 ㅋ ㅌ은 지호의 권역에, 은 천문의 권역에 서로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지호(地戶)의 위치는 음(땅)의 권역이므로 여기에 배당되어 있는 ㅋ ㅌ은 당연히 땅을 상징하는 ━(획)이 더하여져 있다. 그러나 과 은 천문(天門)의 권역에 위치하고 있다. 천문의 권역이란 바로 양(하늘)에 해당되는 권역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ㅈ과 ㆆ에 땅을 상징하는 ━(획)을 더하지 못하고 하늘을 상징하는 ㆍ(원)을 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ㅈ ㆆ)
그렇지만 첫소리와 가운뎃소리를 서로 비교하자면 가운뎃소리는 갑, 을, 병, 정~ 의 천간(天干)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양(陽)의 성질을 지닌 글자이고, 첫소리는 어디까지나 자, 축, 인, 묘~ 의 지지(地支)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음(陰)에 해당되는 글자이므로 ㅈ과 ㆆ에 ㆍ(원, 하늘)을 더하지 못하고 ■(각점, 땅)을 더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05 (ㅈ ㆆ) <해례본 13-14쪽. 제자해>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글이 철저하게 천문이론에 바탕을 두고 창제되었기 때문에 글자의 획 하나에도 이렇듯 오묘한 이치가 무르녹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훈민정음 창제와 천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으며 세종 임금께서 한글을 창제하시면서 글자꼴의 획과 점 하나에 이르기까지 순리와 자연의 이치, 즉 천문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얼마나 심사숙고 하였으며 세심한 배려를 기울였는가를 볼 때 실로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이렇듯 전체를 아우르는 치밀하고도 일목요연한 창제 이론을 볼 때 개인의 단독 연구물이 아니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렇듯 천문과의 관계를 모르고서는 세종의 깊은 창제 의도를 영영 알아낼 수 없다. 아니 이러한 의문조차 품어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제가 아니라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이다.
백제 문화 연구회 회장이자 『위례성 백제사』의 저자인 한종섭 선생의 이론에 따르면 졸본 부여의 고분이나 산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8각형의 고분이나 8각 건물을 금성이 태양을 도는 공전주기인 8년과 연관지우고 있다. 한종섭 회장의 이론에 따르면 금성이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은 태양은 왕을 상징하며 그 주위를 도는 금성은 왕을 보호하는 호국의 별이며 졸본(卒本)이라는 국호도 브리아트어로는 ‘촐본’ ‘솔본(率本)’이라는 말이며 ‘태양을 따른다’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금성의 공전주기가 8년이며 그 궤도도 8자 모양과 비슷하므로 이것으로부터 유래하여 팔각형태의 고분들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성산성, 설봉산성, 검단산성, 환도산성 등에 나타나고 있는 8각 건물도 금성을 졸본 부여의 상징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특히 서울 강동구와 하남시에 걸쳐있는 전방 후원 분인 민둥산고분과 황산고분은 8각 고분에다가 꼬리와 지느러미가 달려있다.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연못에 조성되어 있는 팔각정은 금성이 은하수를 유영하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또 용(龍)이라는 말은 28별자리 중 동방의 각, 항, 저, 방, 심, 미, 기, 7별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잠겨 있는 용은 쓰지 못한다(潛龍勿用)’라는 말은 아직 수평선 밑에 숨어서 떠오르지 않은 동방의 7개의 별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며 ‘현룡재전(見龍在田)’이란 수평선 위로 떠올라온 7개의 별은 쓸 수 있다라는 말이다. ‘비룡재천(飛龍在天)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는 뜻도 대인(大人)은 달을 말하는 것이니 ‘대인을 보니 이롭다’라는 말이 아니라 ‘동쪽 하늘에 떠오른 창룡(蒼龍) 7개의 별은 달을 보아야만 이롭다’라는 뜻이다. 천문이 없었다면 주역이 생겨나지도 않았다. 원래 주역도 천문의 해설서이다.
우리 민족의 영혼관은 우주 천문을 떠나서 이야기할 수 없다. 고분 내의 벽화뿐 아니라 고분의 외형도 천문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우리의 궁궐과 건물 이름도 천문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지었으며 윷판도 북극성과 28별자리에 바탕하고 있다. 고분 벽화의 사신도도 28수 천문도에 다름 아니다. 우리 민족은 죽는다는 것이 본 고향인 우주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망자를 북두칠성의 칠성판 별자리에 뉘여 묻었으며 무덤 내부의 공간도 우주공간의 별로 장식하였다.
임금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北極星)의 자리에 오른다는 뜻으로 등극(登極)한다고 하였다. 경복궁의 월대에 세워놓은 석상들도 북극성에 해당하는 근정전의 옥좌를 호위하는 28별자리를 상징한 것에 다름 아니다. 창덕궁 내에 돌아가신 선대왕들의 어진(御眞)을 모신 건물을 선원전(璿源殿)이라고 한 것도 ‘선원’이 죽음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직성이 풀린다’는 표현도 맺혔던 성미가 풀려 누그러진다는 뜻으로 운명을 관장하는 직성(直星)이라는 별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렇듯이 우주천문이라는 개념을 떠나서는 한글의 창제원리나 태극의 원리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저변에 살아 숨쉬고 있는 예술과 문화의 맥을 짚어낼 수 없게 되어 있다.
6. 맺는 말
을지문덕 장군을 기리어 ‘을지로’라는 길 이름을 정하였으나 사실은 을지문덕의 성은 ‘을지’씨가 아니라 ‘을’씨이다. 그의 아들이 단기 2853년경(서기 520년경)에 다물 흥방가로 군사를 조련했던 을밀 장군이며, 그가 군사를 조련시키던 곳을 지금도 ‘을밀대’라 하고 있다. 이렇듯 을지씨가 아닌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잘 못 끼워진 첫 단추를 다시 풀어 ‘을로’로 고친다든지 ‘을지 무공훈장’을 ‘을 무공훈장’으로 고친다는 일은 쉽지가 않다. 을지로의 이름을 바르게 고친다고 교통체증이 해결되어 더 편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낫 놓고 ㄱ자를 몰라도 일꾼이 풀을 베는 데에는 불편이 없다. 그 일꾼이 ㄱ자를 배워 안다고 해서 풀을 더 잘 베는 것도 아니다. ㆁ은 분명히 ‘여린기윽’인데도 ‘옛이응’으로 한다고 해서 언어생활에 당장 불편한 일도 없다. 한글 초, 중성의 나열 순서가 잘못되어 있다고 해도 문자 생활을 하는데 큰 불편함을 모른다. 해례본대로 고치면 분명 지금보다 낫다. 그러나 고쳤을 때 일어나는 출판업계의 여러가지 혼란과 부담을 상쇄시킬만한 엄청난 효율을 가져다주는 것은 또 아니다. 고칠 때의 혼란도 상당히 클 것이다. 지금 고친다고 해도 통일 후의 한글 나열 순서 문제가 또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정을 다 접어두더라도 세종의 창제 원리만큼은 한글 학자라면 반드시 알고는 있어야 한다. 바르게 알고 있어야 나중에라도 이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바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편함이 없다고 그냥 쓸 것인가 고칠 것인가는 우리의 의식수준에 달려 있다.
이제 창제기원의 실체가 모두 명백하게 드러났다. 비록 개인의 연구물이라 하더라도 중요성을 감안할 때 하루 빨리 국어학계의 주요 주제로 논의되어야 한다. 현재 몇몇 연구가들에 의하여 제기되고 있는 <옛 글자를 살린 한글 국제 공용화 정책>도 이제 정부에서 나서서 정면으로 감당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통일 후의 언어 정책 결정의 중요함을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 하나하나 준비를 해 나가야 할 때이다.
01 『훈민정음』 해례본 23~25쪽. 제자해.
ㅗ 初生於天, 天一生水之位也 ~ ㆍ 天五生土之位也 ~ 亦自有陰陽五行方位之數也
02 『훈민정음』 해례본 68쪽. 정인지 서문. 殿下 天縱之聖 ~ 而成於自然 ~ 非人爲之私也
03 『세종실록』 15년 조.
04 『훈민정음』 해례본 7~8쪽. 서문.
05 『훈민정음』 해례본 13~14쪽. 제자해. ㅈ而, ㆆ而 ~ 其因聲加之義皆同
‘9’의 상징적 의미
예부터 사람들은 “언(言)은 의(意)를 다 나타내지 못한다.” 하여 신비한 수(數)에다 그들의 철학관과 우주관, 심리적 상태 등을 함축시켜 표현하곤 하였다. 우주의 신비를 세상에서 흔히 쓰는 언어로는 그 뜻을 다 나타낼 수 없었기 때문에 은유적이고 상징적 언어인 숫자를 통해 그것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숫자 ‘9[九]’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신비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교운 1장 9절)
…상제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신 신축(辛丑)년 겨울에 창문에 종이를 바르지 않고 부엌에 불을 지피지 않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음식을 전폐하고 아흐렛 동안 천지공사를 시작하셨도다.….(공사 1장 1절)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기를 “九년간 행하여 온 개벽공사를 천지에 확증하리라.”….(공사 3장 38절)
위에 제시된 것처럼 『전경』에는 숫자 9와 관련된 여러 구절들이 나온다. 교운 1장 9절에 나오는 구천(九天)에 대해 『요람』에서는 ‘삼계(三界)를 통찰하시고 이 우주를 관할하시는 상제님께서 머물고 계시는 가장 높은 위(位)’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때 숫자 9의 상징적 의미는 이 우주에서 가장 크고 높은 자리를 뜻하는 것이니, 이는 곧 상제님의 위격(位格)을 표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의 신화에서는 신의 거처로써 하늘을 아홉으로 나누어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신이 거주하는 하늘을 아홉 번째 하늘, 즉 구천(九天)이라 하였다. 그런가 하면 땅도 깊이에 따라 단계가 있는데, 사람이 죽어서 가는 가장 깊은 지하를 구천(九泉)이라 한다. 이 구천은 극락과 지옥이 가려지지 않은 과도기적 과정으로써 저승에 안착하지 못한 영혼이 사는 곳이다. “귀신이 구천을 헤매고 있다.”는 말은 죄 많은 인간이 죽어서 구천(九泉: 나중에 구소九라 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고혼(孤魂)이 되었음을 말한다.
가락국 시조신화에서 허황옥을 횃불을 들고 맞이했다는 구간(九干: 금관가야국 형성 이전에 김해지역을 다스린 9명의 우두머리)은 낙서(洛書)가 거북의 등에서 나왔다는 구궁수01에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도교 경전인 『옥추보경(玉樞寶經)』에는 구(九)가 양수(陽數)이며 하늘의 도(道)를 나타낸다 하였다. 무가(巫歌)에서는 만물을 낳는 3이 곱해져(3×3) 이루어진 9수를 양(陽)의 극치로 보고 모든 우환의 때를 이겨내는 길조의 상징으로 여겼다. 절일(節日) 중에서 양수가 겹치는 음력 9월 9일을 양기가 충만하다 하여 가장 좋은 길일(吉日)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9가 부처의 삼보(三寶)중 법(法)을 의미하는 숫자로 상징된다. 진표율사(眞表律師)는 미륵보살에게서 2개의 간자(簡子: 점을 치는 대쪽)를 받았는데, 9간자와 8간자였다. 여기서 ‘9’는 법, 즉 진리 그 자체를 뜻한다.
서양에서도 9를 중요한 숫자로 여겼음을 의미하는 사례들이 있다. “I"m on cloud nine(직역: 나는 아홉 번째 구름 위에 있다)”은 ‘기분이 너무 너무 좋다’는 뜻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최고로 좋을 때 쓰는 표현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도 9가 최상급의 의미를 지니고, 히브리어에서는 불가사의한 힘을 뜻하기도 한다.
이처럼 숫자 9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위와 같은 사례들을 종합하여 그 상징적인 의미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여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 9에는 단계적 순서에 따른 ‘최종’의 단계와 ‘최상’의 의미가 있다.
알타이어족의 천계신화(天階神話)에 의하면 하늘은 9층으로 되어 있으며 천상의 신들이 수직선상에 배치되어 각 층을 다스린다고 보았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지으면서 구제궁(九梯宮)을 세웠다. 구제궁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으로, 하늘의 9층 구조를 건물 형태로 재현해 놓은 것이며, 꼭대기인 9층을 가장 높은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보았다.02
불교에서는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서방극락 정토(淨土)는 수도의 단계에 상응해 9품(品)으로 나뉜다[구품정토九品淨土]. 사람들의 행업이 얕고 깊음에 따라 상중하의 3품으로 나뉘고 각각에는 3생(生)이 있어 9품이 되는데, 이에 따른 수인(手印)03도 다르다고 한다. 그리하여 행업에 따라 최고의 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주역』을 상수(象數), 즉 괘효(卦爻)의 조합과 수(數)의 원리로써 해석하는 상수학04에서는 9가 극수(極數)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1부터 그 의미와 역할이 있는데 수가 높아져 9에 이르면 모든 수의 우위에 있는 최종적인 수(궁극적인 수)로 간주한다. 한방에서도 구증구포(九蒸九曝)라 하여 아홉 번을 찌고 아홉 번을 말려야만 약효가 완전히 발휘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홉이라는 단계적 순서에 따라 최종의 단계와 최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9는 완성을 위한 완전수로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무속신화 바리공주에서는 아홉이 완전수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부모에게 버림받았으나 죽어가는 부모를 구하기 위해 생명수를 얻으러 간 바리공주는, 무장승의 요구에 의해 물긷기 3년, 불때기 3년, 나무하기 3년씩 9년 간 일해 주고 생명수를 얻어 부모를 구한다. 바리공주는 아홉 해를 채우고서야 생명수를 얻을 수 있었고, 더불어 무조신(巫祖神)으로 추앙받는 인물로 새롭게 태어난다.
미국 신화학자인 조셉 켐벨(Josept Campbell)은 『신화의 힘』에서 아홉이란 숫자가 “통상적으로 세계의 거룩한 어머니 및 세계의 신들과 결합된 수”라고 하였다. 이미 수많은 어문학자들이 9를 뜻하는 독일어 ‘neun(노윈)’을 비롯하여, 다른 여러 가지 언어로 9를 의미하는 단어들이 ‘새롭다(neu)’를 뜻하는 단어와 눈에 띌 만큼 형태적인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에 주목해 왔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9와 함께 하나의 새로운 영역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새로운 생명인 태아가 9개월 동안의 수태기간 후 완전한 인간의 형태를 띠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것처럼, 9에는 완성을 통한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역(周易)』에서는 1건(乾)이 8곤(坤)과 합하여 9수(數)를 이룬다고 한다. 9수는 양(陽)인 건과 음(陰)인 곤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수이다. 여기서 건(乾)은 창조의 근본이고 만물(萬物)은 건의 양을 받아들여 시작된다. 곤음(坤陰)의 작용은 건의 양을 받아들여 그에 형태(形態)를 주어 완성된 사물로 키우는 것이다. 즉 건과 곤의 조화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또한 팔괘(八卦)와 인간의 조화를 구궁(九宮)으로 보아 우주의 형성과 도(道)의 완성을 상징하기도 한다.05 이처럼 서양 언어의 어원과 동양 고전의 역리(易理)에서 9라는 숫자는 완성을 통한 새로움의 시작이란 뜻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셋째, 사람이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 갖추어야 할 ‘덕목(德目)’의 수라 할 수 있다.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서, 하(夏)나라의 우(禹) 임금은 홍범구주(洪範九疇)06로서 나라와 자연현상의 관계를 총망라하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아홉 가지 기본원리를 가르쳤다고 나온다. 또 옛날 서당에서는 민들레를 심어 포공구덕(浦公九德: 민들레의 아홉 가지 덕)을 교훈으로 삼았다. 이는 민들레에게서 배울 아홉 가지 덕목을 인간 정신교육의 필수요건으로 삼은 것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율곡 이이(李珥)는 성리학의 입문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군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구용(九容: 아홉 가지 몸가짐)과 구사(九思: 아홉 가지 마음가짐)에 대해 논한 바가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9’는 나라를 다스리거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덕목을 상징하고 있다.
이 외에도 중국에서는 9가 8방위와 중앙의 아홉째 번 지점으로 이루어졌다 하여 명당의 수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제사나 제례를 올리는 장소로서 신성시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에도 제사 지낼 때 혼령이 진지 드시는 시간을 ‘유식(侑食)’이라 하여, 이때에는 자손들이 방 밖으로 나가 혼령이 진지 아홉 숟가락을 뜰 정도의 시간 동안 고인의 생전 일화를 이야기하며 기다리는 유교적인 풍습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동서고금의 실례를 통해 ‘9’의 상징적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전경』에 언급된 9의 상징적 의미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9라는 숫자가 가진 의미의 중요성은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비록 모든 수가 중요하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특히 ‘9’는 어떤 수로도 대신할 수 없고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일이 성사되고 완성되며 최상의 경지를 뜻함과 동시에 인간의 필수적인 덕목임을 알 수 있다.
가장 높은 구천(九天)이란 위치에 계셨던 상제님께서는 9일 동안 천지공사를 시작하셨고 9년 동안 완벽하게 공사를 보신 후에 화천하셨다. 이로써 우리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가장 완성된 세상인 후천선경(後天仙境)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01 (九宮數): 음양가(陰陽家)가 구성(九星)을 오행(五行)과 팔괘의 방위에 맞추어서 길흉화복을 판단하여 내는 수.
02 『한국문화 상징사전 2』, 두산동아, 2000.
03 불보살의 공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 모양.
04 상(象)과 수(數)로써 나타내는 생극의 우주원리를 설명하고 만사만물을 반영하며 예측한다.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실질적 수의 의미는 상수학에 근거한다 할 수 있겠다.
05 배영희 외 공저, 『한국민속학보』 제5호, 민속원, 1995. pp.67~91.
06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 때 하늘이 낙서(洛書)를 내려 주었는데, 그것을 본받아 진술하니 홍범이 그것이다.” 하였다. 여기서 ‘홍’은 크다(大), ‘범’은 法의 의미로서 홍범은 곧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을 가리키고, 주(疇)는 종류라는 의미로서 ‘구주(九疇)’는 곧 아홉 가지 종류라는 뜻이다.(유교사전편집위원회, 『유교대사전』,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