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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날,
인연이라는 이름의 1 박 2 일을 우리는 단풍 불타오르는 문경 새재에서 시작하여 안동 병산서원에서 이별하였다.
50 여년전, 우리는 태백산 산자락에 있는 춘양이라는 산골에서 만났다.
코흘리개 초등학교 졸업반 학생과 햇병아리 초임 선생으로 우리의 인연은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랜세월 가마득한 세월을 우리는 이 인연의 끈을 놓지않고 오히려 새롭게 또 덧붙혀 끈끈한 정을 쌓아 나갔다.
대학다닐때도, 군대에 갈때도, 또 장가갈 색시를 고를때에도,
아 ! 지금 생각해 보니 신혼 여행조차 우리집에 왔더랬구나 !
그리고 홍콩, 뉴욕 근무할때도 우리는 번갈라 만남을 이었고 또 서로 신세를 많이도 지고 살았다.
언젠가 나에게 준 액자에
< 우정은 산길 같아서, 오고 가지 않으면 사라지나니... >
그래 ! 우린 그렇게 오고 가면서 50 여년을 정을 쌓았고 연을 이어 오고 있다.
그리고 공직에 쫒겨 한참을 안부만 묻다가 이제 공직을 퇴직하였다면서,
아니, 아내의 아픈 몸이 깨끗이 다 나았다면서,
가을 나들이로 안동땅 우리집으로 오겠다는 전화를 해 온것이다.
멀리서 반가운 빈객이 찾아오니 어찌 반갑지 않을수 있을건가 !
우리 내외는 마음까지 설레여가며 다른 약속을 다 미루고 이 반가운 50 년 인연의 내외분을 반갑게 맞았고 함께 1 박 2 일을 하였으며
문경새재를 함께 거닐고, 봉정사 저녁노을을 등지고 우화루 저녁 연기를 쐬이고,
산사 뒷방에 쩌서 말리는 국화차 향기와 달이 여섯개씩 뜨고 진다는 보름달 비치는 안동호 월영교에서 달을 건지는 농을 나누고
내 손길이 잠깐씩 스치고 머물렀던 이 육사 문학관, 한국학진흥원, 그리고 퇴계 종가와 태실이 있는 노송정종가를 한바퀴 휘~ 이 일람하고,
우리는 영국여왕 길이라 꼭 봐야하는 물돌이동 양진당, 충효당, 신목이 모셔진 골목길 굽어진곳에 그들 내외는 두손을 예쁘게 맞잡고,
나는 조금 뒤 쳐저 그 보기좋은 그림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마지막 병산서원 앞 넓다란 모래뻘을 같이 걷고 노오란 낙엽을 함께 밟으며 못다한 정담을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었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저녁까지 먹어가면서 이 짧은 만남을 아쉬워 하였고 또 만나고, 만날걸 다짐하면서 지는 해를 서산에 넘기며 깜깜해진 서울길 고속도로를 휑~ 하니
그저 손한번 서로 흔들고 인연이 이리도 좋은건데 서로 생각하면서 1 박 2 일을 마감하였다.
집사람은 보내고 나서도 그저 무엇 하나 쥐어주지 못해서 속을 끓이고 있지만 나는 그저 더 받지 못해서 그날밤을 뒤척이었다.
그건 마음이었고,
그건 정 ! 바로 그것이었다.
( 참, 빠진 이야기가 하나 있다.)
문경새재 제 2 관문, 조곡관 앞에서 뜻밖에 대구 청소년 교향악단 안 국환 감독을 만나고 그저 반가와서 서로 붙잡다가 문경읍내 새재식당에서 맛있고 정이 담긴 점심까지 얻어 먹었는데 들어가면서 앞질러 밥값을 찔내 내어놓는 사모님 성화로 얻어 먹는 결례를 저질르고 말았는데 이건 두고 두고 갚아야할 신세가 되었다. 그저 보고싶던 친구여서 그저 함께 하였을 뿐인데 신세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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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찌기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저는 어릴적 유년기를 보낸 태백산밑 산골마을을 그리워하는 실향민 아닌 실향민으로 살며 어언 환갑을 훌쩍 넘긴 이즈음에 평생의 스승님이 계시는 안동이 언제 부터인가 저에게는 그리운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고향의 정,고향의 향기 듬뿍안고 돌아왔습니다. 순서울내기 저의 아내도 스승님 내외분의 지극정성에 진한 감동받고 친정다녀온 듯 즐거워 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스승님 내외분 부디 만수무강 하소서!
사진이 안보여영.....ㅠㅠ
사진이 많이 숨어 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