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30일
숙소인 임실군 관촌면 청소년 수련원을 여덟시에 나서다. 전북의 대표적인 두메산골인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 중의 한 고을인 진안고원을 넘어가는 대운이재 내리막에서 차를 내렸다. 사방이 첩첩산중이고, 고봉준령의 너울이 눈앞에 전개된다. 진안 백운면 일대의 산세를 간략하게 안내를 받았다.
정면에 보이는 산이 덕태산, 우측 나무 숲 사이에 보이는 뾰족한 산이 선각산이고, 오늘 우리 기행의 시발점인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이 있는 산자락은 시야에 보이지 않고 선각산의 더 우측에 있는 봉황산 자락에 있다. 덕태산이나, 선각산이나, 봉화산 마찬가지로 해발 1100미터를 넘는 고봉들이다.
다시 이동, 데미샘 휴양림 관리사무소 근방에서 버스가 빙판에 미끌어진다. 하차를 하여 눈길을 걸어 오르기 시작하다. 발목을 덮는 눈, 겨울 산의 주인인 산새와 다람쥐는 칩거 중이고, 바람마저 잦아진 산길을 우리 도반들의 거친 숨소리로 채워가고 있다.
한 삼십분 가량 걸어 올라서 데미샘에 이르다.
백운면 신암리 초막골, 해발800미터, 섬진강 오백 삼십리의 발원지이다. 강물의 발원지는 강하구에서 가장 먼 곳을 친다. 이 골짝에서 흐르는 작은 개울물이 흘러가며, 진안, 임실, 순창, 남원, 곡성, 구례, 하동과 광양의 물을 모아 광양의 망덕포구에 이르러 오백여리 강물의 거친 숨길을 가라앉히고 남해바다에 이른다.
강물의 가장 큰 덕목은 겸손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낮게 낮게 흘러서 바다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샘물을 떠서 한 모금 씩 나눠 마시고 서로 앞으로 펼쳐질 장도에 격려와 덕담을 나누고, 단체 사진을 찍고 나서려는데, 여기저기서 노래 요청이 밀려온다. 겨울 산의 정취에 고조된 감흥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가곡이 있다. 사양치 않았다.
눈 김효근 시, 곡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국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내 작은 마음이 하얗게 물들 때 까지
새 하얀 눈길을 헤매이고 싶소
외로운 겨울새 소리 멀리서 들려오면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잃어버리오
가슴에 새겨보리라 순결한 님의 노래여
바람결에 실려 오는가 흰 눈 되어 온다오
저 멀리 숲 사이로 내 마음 달려가나
아 겨울새 보이지 않고 흰 여운만 남아있다오
눈 감고 들어보리라 끝없는 님의 노래여
나 어느새 흰 눈 되어 산길 걸어간다오.
눈길을 내려와 데미샘 휴양림 사무소 앞 팔각정에서 무사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막걸리와 고사 떡을 나누고 장정을 시작했다.
개울을 따라 내려오다 백암리 상백마을을 들렸다. 덕태산 자락 백암리는 우리땅의 걷기 행수 신정일 선생의 고향이다. 배고팠고, 외로웠던 산골소년의 아련한 기억이 여기저기 배어있다. 지금은 마을 공동주차장이 되어버린 옛 집터의 빈 공간에다 여기는 본채, 여기는 측간 여기에 감나무가 있었던 옛시절의 모습을 손으로 그려가며 설명하지만, 허망하다.
무너져가는 아랫집 상관이네 집에 가서 듣는 옛 이야기가 더 구체적으로 들렸다.
신샘의 고향을 나와 백운면 소재지 슈퍼마켓에서 고향방문 기념 막걸리 파티를 하다. 막걸리 파티의 소제목이 금의환향이다. 여기저기 신샘의 기억의 자락이 묻어난다. 국민학교 시절 잘살았던 주장집 딸램이, 방앗간집 딸램이 행자, 희자 등등의 이름을 가졌던 가스나들도
국밥집, 육번집, 대광철물, 간장, 계란, 양파, 설탕,쌀 들을 파는 식품상회 덕태상회, 풍년 떡방앗간, 희망건강원, 용호카 공업사 등이 있었지만 썰렁하였고, 가보세 이용원만이 성업 중이었다. 오래된 이발소 그림은 여전하였고, 연탄난로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이발중인 노인 한 분외에 대기 중인 노인이 두 분이 더 있었다. 이제는 영락해져 가는 시골 면소재지의 풍경이다.
백운천을 따라 내려가다 물레방앗간을 만났다. 어디에 가서도 보기 쉽지 않은 전근대와 근대의 과학기술이 기막히게 조합된 물레방앗간이다.
근대식의 도정시설에다 동력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냇물에 보를 막아서 물을 끌어다 커다란 수차를 돌리는 방앗간이다. 1999년에 발급된 양곡가공업 허가증이 있고, 도정요율은 80키로 한 가마에 4키로 라고 명기되어 있다.
인근에서 가장 큰 방앗간이었고, 방앗간 주인은 백운면에서 알아주는 유지였다는 데 지금 물레방아는 돌아가지 않고 있다.
지자체에서 아니면 국가에서 보조를 하여 이렇게 독특한 방앗간이 운영된다면 꽤나 괜찮은 볼거리가 될 것인데 아쉽다.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 본류는 백운면소재지에서 백운천과 합류를 하고 마령면에 가서 마령천을 받아들여서 내려간다. 다시 마이산에서 흐르는 마이천과 합강을 하여 제법 너른 강물이 되어 흐른다. 마령평야를 완만하게 흐르던 강물은 성수면을 지나면서 좁은 협곡을 힘들게 좌우로 비틀어 내려간다.
성수면 좌포리에서 냉혈풍천을 둘러보다. 독특한 자연현상이다. 돌틈사이로 찬바람이 나오는데 년중 영상 4도가 유지되는 곳이다. 겨울이라 손님이 없어 열쇠를 잠가놓은 것을 주인에게 사정을 하여 둘러보았는데, 느낌이 묘하였다. 사방을 콘크리트 벽으로 막아서 찬 기운이 밖으로 못 세어나가게 하였고, 손님을 받는 탁자가 있었다. 자연이 주는 바람도 이렇게 개인소유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아심이 일었다.
오후 여섯시에 성수면 포동리에서 첫날 일정을 마쳤다. 오늘 26,6키로를 걸었다. 뻐근한 하루였다.
1월 31일
아침 여덟시 반에 포동리에서 일정을 시작하다. 진안군 성수면 포동리에서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로 군계가 바뀌었다. 차량 운행이 적은 방수리 강변길을 택하여 걷다. 어제 오후에 녹았던 눈이 얼음이 되어 길이 미끄럽다. 앞뒤에서 도반들이 넉장거리로 넘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산 선생의 옥호가 여유당이라 해서 아호를 여유당이라 쓰곤 하셨는데, 겨울 내를 건너듯이 조심하라는 것이 노자에서 따온 여유라는 뜻인데 실감이 난다. 미끌어 넘어지는 것도 조심해야하고 물에 빠지는 것도 조심해야하고,
강건너 수변에는 갯버들이 촘촘하게 밀식하여 자라고 있고, 강물 폭은 넓어졌고, 강심이 깊어졌다. 강변로는 메타세콰이어가 곧게 줄을 이어 서있다.
차량이동은 거의 없고 아주 기분 좋은 강변길이다.
밤사이 기온이 많이 낮아져 얼음이 두껍게 얼어있다. 강변로를 따라 국도를 가로질러 다시 강가에 이른다.
방수리 취수장이다. 용담댐이 생기기 전에는 전주시의 아주 중요한 상수원이었다. 취수장 다음부터 하천 띄숲을 따라 내려간다. 한 2키로 정도 2백여년 전에 황장군 부부가 조성하였다는 홍수 방지 숲이다.
강변을 넘어서 내려간다. 두 시간 반 걸려서 우리가 묵었던 숙소 사선대 관광지에 도착하였다. 운서정에 올랐다.
사선대공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좋은 곳이다. 흔히들 착각하기 쉬운 것이다. 臺나 樓라하면 높은 곳에 있어서 사선대하면 사선대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 이곳 운서정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네명의 선녀가 목욕을 한곳인데 여기 산꼭대기는 아니고 저 아래 강물이 흐르던 소택지나 늪지였을 것이다. 지금은 직강 공사로 아름다운 못은 흔적만 남아있고 체육공원과 조각공원 등이 사선대를 대신하고 있다.
사선대를 지나 전주 남원 간 4차선 국도를 가로 질러 운암호 쪽으로 내려간다. 신평면 호암리에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 호암리에서 다시 걷기 시작하여 임실군 운암면 학암리 까지 오후 네 시까지 걸었다. 드디어 운암댐 상류에 이른 것이다. 어제 26키로 오늘 25키로 만만치 않은 일정을 마쳤다.
어릴 적 기차를 타고 남원을 갈 때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다. 저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운암호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저수지가 있다고
오늘 나는 그 거대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방죽일 거라고 상상을 했던 운암호의 시작을 보았다. 그리고 강물의 시작은 아득히 먼 고장에서부터 흘러내려올 것이라고 상상했다. 어제 그 시작에서부터 걸어서 하루 만에 관촌대교에 도착했다.
전라선 관촌교를 중심으로 흘러내려오고 흘러내려가는 강물을 보며 상상을 해왔던 신비스러움은 이제 걷혔다. 세상사의 모든 신비로움이 다 그렇다.
알고 나면 좀 시시하고 약간 허탈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더 친근해지고 임의로워지는 것이다.
아 ! 그러나 그 아득한 물길의 시작 어디쯤에서, 그 상상을 시작하여 오십년 후에, 벗이 될 아이가 살고 있었다는 것은 새삼 느끼는 경외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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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바우, 사진과 글 잘보고 간다. 데미샘이라는 이름이 정겹다. 역시 글에 다 사진을 추가하니 현장감이 있어 좋다!
데미샘이라 이름이 붙게된 것은 샘 주위에 쌓여진 돌더미를 이른 것인데.
그 지방 사투리로 돌데미라하여 데미샘이 되었다네
눈 쌓인 데미샘에서 노래부르던 순간을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설레네.
유튜브에서 "눈"을 찾아 감상하고 있네. 이런 가곡도 있었구나!
준태,, 2016년 새로운 시작이군.
새출발을 축하하고 건각들의 족적을 잘 남겨 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