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폐지된다. 새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새 정부의 실용 정책을 내세우면서 현행의 행정부처를 대폭 축소, 통·폐합하고 정부 내 26개 위원회도 폐지한다고 발표하였는데, 거기에‘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포함된 것이다.
2005년부터 시행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이 위원회에서 첫 임기 3년을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사실상 위원회 폐지에 대한 느낌이 매우 복합적이다. 과학기술이 생명윤리와 안전에 조화되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생명과학계, 윤리학계 그리고 시민사회의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국가의 정책 수립에 관해 노력해왔던 귀중한 시간과 열정들이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여지없이 평가절하 되는듯한 느낌에 허탈함이 매우 큰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 위원회가 위원의 구성이라든가 정부의 거센 입김 등 여러 문제점들이 있어, 출범 초기부터 특히 생명윤리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온 위원회였긴 했지만, 그나마 생명윤리가 존중되는 생명과학, 그리고 그에 따르는 국가의 정책에 대해 진솔하게 열정을 가지고 의견을 내고 또 토론할 수 있었던 유일한 국가위원회인데, 이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도 크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폐지 발표 후 보건복지부에서는 이 위원회의 기능을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자문위원회로 변경할 것을 검토하다가 그나마도 포기했다는 연락까지 받고 보니, 새 정부가 아예 생명윤리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마저 든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지난번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는 앞으로 보다 바람직한 위원회 운영을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심도깊은 연구를 하자는 결의를 했고 그후 예산까지 할당되었는데, 위원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위원회가 폐지되는 마당에 위원회 운영의 바람직한 방향 제
시가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숙고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위원회의 폐지를 위해서는 위원회의 구성을 요구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개정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법률은 “생명과학기술에 있어 생명윤리와 안전을 확보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제1조)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고, 인수위원회는 이를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이다. 이 법률의 기본 정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현재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보다도 더 강력한 성격의 위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다. 폐지되기는커녕 오히려 생명윤리와 관련하여 실질적인 조사 및 감독, 심의 권한이 부여되는 위원회로 강화될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지하는 가운데 바람직한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을 선도해갈 수 있는 정부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몇 년 전 ‘국익’인가, ‘윤리’인가? 하는 국민적 논란이 크게 일어났던 때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