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3.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행 14:1~7
*제목; 사도행전강해(23) 믿음의 길, 복음의 길에는 실패가 없다!
1. 지난 주일 이야기
늘 하나님의 말씀(뜻)을 “듣는 마음(지혜)”를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역사가 성경처럼 우리에게도 임하게 하소서!
사탄의 배후세력을 깨뜨리고 날마다 주의 살아계신 능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믿음과 기도로!) 아울러 이처럼 우리 삶이 늘 영적 전쟁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
2. 복음과 핍박
이제 주의 복음이 유럽으로 점점 더 확장되어져 갑니다. 그러나 ‘복음의 역사’와 함께 반드시 같이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1~2절’입니다.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행 14:1~2)
바로 핍박과 어려움입니다. 믿음이 힘든 이유는 지난 주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성정이 믿음에 합당하지 않은 죄성을 가진 것도 있지만,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영의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바로 살아가려면 이처럼 악한 영의 유혹이 있습니다. 이를 잊지 말고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여기에 하나님의 경륜(經綸)이 숨어 있습니다. ‘벧전 2:6~8’을 보겠습니다.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전 2:6~8)
여기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보배로운 모퉁잇돌”이 등장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이 돌이 어떤 이들에게는 “머릿돌”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에는 “믿음의 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8절’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하늘 복음이라고 이를 믿고 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고, 믿지 않고 오히려 이를 통해 심판의 확증을 받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데, 그래서 모두에게 “모퉁이돌”을 알게 하셨는데, 이를 믿지 않는 자들이 있고, 이를 통해 심판의 확증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안 믿는지를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반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동일한 죄인으로 이런 믿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았다는 것이 감격이 기쁨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멘.
이어서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3절’입니다.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행 14:3)
보통 이런 핍박이 오면 주춤되거나 물러날 만한데, 사도들은 더욱 복음을 전함에 힘을 썼습니다. 이 ‘3절’에는 접속사 생략되어 번역되었습니다.(왜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이런 미숙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생략된 접속사는 “멘 운”(μέν ούν)이라는 두 단어 접속사입니다. 이 뜻은 “참으로/틀림없이 그래서/그러므로”입니다. 그러니 박해가 일어나자 참으로 더욱더 복음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반응하는 반응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우리는 어려우면 그만두고, 물러납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래서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이것이 그들이 받은 “사명”(행 20:24)이고 이들이 믿음으로 가야할 “길”(요 14:6)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그런데 사도들이 이렇게 반응할 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의 말씀”(복음)이 증언되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삶에 “표적과 기사”가 사라진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과 믿음의 길에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믿음의 길을 간다면 그 자리에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아멘!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너무나 힘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이 잔이 떠나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길이요 사명”이란 것으로 고백하시고 나서는 그 자리를 버티셨습니다.
그러자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인류가 구원을 허락받는 역사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 2:9~11)을 얻게 되신 것입니다. 아멘.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그러나 표적과 기사 그리고 은혜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핍박하는 세력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4~7절’입니다.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 14:1~7)
그러나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역사를 열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롬 8:28)이시기 때문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3. 정리
복음의 역사와 믿음의 길은 반드시 어려움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죄성과 악한 영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믿음으로 반응합시다. 그러면 모퉁잇돌이 머리돌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부딪히는 돌이나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됩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면, 우리의 어려움이 우리를 막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으로 반응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의 자리, 사명의 자리에 버티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믿음에는 결코 실패가 없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아멘.
첫댓글 핍박이 오면 주춤되거나 물러날 만한데, 사도들은 더욱 복음을 전함에 힘을 썼습니다. 이 ‘3절’에는 접속사 생략되어 번역되었습니다. 생략된 접속사는 “멘 운”(μέν ούν)이라는 두 단어 접속사입니다. 이 뜻은 “참으로/틀림없이 그래서/그러므로”입니다. 그러니 박해가 일어나자 참으로 더욱더 복음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믿음의 도전에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조금만 더 믿음으로 달려가시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