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NEXT) 소희
제목을 써놓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편지를 씁니다. 마음이 많이 아파서요. ‘다음 소희’란 작년 2월에 개봉된 영화의 제목입니다. 전주 아중호수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고, 한국 영화 최초로 75회 칸 영화제 폐막식에도 선정되어 상영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은 영화여서 그랬는지 하시겠지만, 마음 아프고 시린 내용입니다.
줄거리는 2017년 1월 추운 겨울에 아중호수에서 특성화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학교 담임선생님이 대기업이라며 취업을 시켜준 곳은 어느 통신사 콜센터였습니다. 콜센터 중에서도 악명 높은 ‘세이브(SAVE)’ 부서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해지 방어’ 부서인데, 서비스 해지를 원하는 고객들을 상대로 어떻게 해서라도 해지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욕을 다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명 ‘욕받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일을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여린 학생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죽음은 그 여학생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고 그 학생의 삶도 꿈도 차가운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은 것이지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냥 묻어두고 지났는데, 이번 주에 화성 어느 배터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를 대하고 보니 ‘소희’ 생각이 났습니다. 화재의 원인이야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이런 것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더 싸게 세상을 돌리고, 더 싸게 사람을 죽이고, 더 싸게 책임을 떠넘기고, 더 싸게 기계의 부속처럼 사람을 끼워 넣으면서 더 비싼 이득을 취하려는 세상이 원인이고 범인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지난 16일에도 전주 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19살 꽃다운 청년이 입사 6개월 만에 기계실에서 설비 이상유무를 확인하러 기계실에 갔다가 쓰러져 숨졌다는 것인데, 역시 원인과 범인은 동일하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가깝게, 지금 여기에서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요? 탄식만 할 수 없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첫댓글 이래서 기본소득이 있어야 한다구요..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