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고파’가 고인의 대표작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로 시작하는 ‘내 마음’도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목련화’ ‘못 잊어’ 등 그의 작품은 이전의 가곡에 비해 규모가 크고 형식이 자유롭다. 여기에 서정적인 선율과 화성을 더해 한국인의 감성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고인이 남긴 가곡만 100편이 넘는다. 군가·동요 등을 합해 500편 이상을 작곡했다.
‘슈베르트’라는 별명을 얻도록 다작을 한 고인은 일찍 음악 교육을 받았다. 고인은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목사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교회 음악을 배우면서 음악의 구조와 규칙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진학, 바이올린과 피아노·작곡 교육을 받았다. 맑은 느낌의 가곡 ‘봄이 오면’은 그가 18세에 만들었으며, ‘가고파’는 불과 스무 살이던 1933년 작곡했다.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면서 가곡 ‘뱃노래’ ‘파초’ 등 서정적인 작품을 계속 내놨다.
50년 6·25 전쟁 중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에 정착한 뒤 서라벌예술대학과 경희대 음대에서 후학을 길렀다. 이 시기에는 ‘목련화’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심청전’ ‘춘향전’ 등 판소리를 가곡으로 만든 ‘신창악’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이때다. 84세이던 97년 오페라 ‘춘향전’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절 듣고 감명받았던 판소리를 50여 년 동안 연구해 완성했다. 여든이 넘어서도 가곡은 물론 칸타타 등 대규모 합창곡으로 영역을 넓혔다.
작곡가 진규영(61·한국작곡가협회 이사장)씨는 고인을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곡 작곡가”로 꼽았다. 진씨는 “미성의 테너였기 때문에 목소리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끌어내는 데 능숙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유족은 아들 신영(사업)·신원(경희대 예술디자인대 교수)씨와 딸 신화씨가 있다. 발인은 3일 오전 7시. 빈소는 서울 회기동 경희의료원 장례식장이다. 02-958-9549.
김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