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원 출산, 당연한가요? 이상한가요?
안소희
나는 아이를 조산원에서 낳았다.
조산원은 가정집 같은 분위기였다. 거실을 둘러싼 방에서 간난아이와 산모가 함께 생활하고 한 쪽 방에는 분만을 위한 방이 있었다. 출산 예정일이 지나자 병원에서는 유도분만을 권했지만 조산원에서는 태아 상태를 살피며 기다려보자고 했다. 예정일보다 2주가 지나서야 진통이 시작되었다. 간헐적인 진통 속에서 산책도 하고 밥도 먹으며 이틀을 더 보내고 출산을 했다. 관장도 하지 않았고 회음부 절개도 하지 않았다. 수중 분만이었는데 막 태어난 아이는 물 속에서 꺼내도 울지 않았다. 몸무게를 재기 위해 형광등 빛에 노출되자 그제야 울음을 터트렸지만 아빠의 노래 소리에 금새 그쳐서 오히려 아빠가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출산 후 첫날부터 아이와 함께 있으며 서로에게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엄마’라는 역할이 어색하고 낯설었다. 하지만 아늑한 곳에서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출산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이 낯선 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아이도 같을 거라 생각한다.
조산사 선생님은 산통이 제법 오래되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젖을 물 때 까지 끈기 있게 도와주었다. 손쉽게 분유 젖병을 물리지 않았다. 출산이라는 엄청난 일을 겪었지만 느긋하고 자연스러운 편안함이 있었다. 남편과 온돌방에 누워서 아이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 지금도 따뜻한 기억으로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나는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문화가 빠르게 변하리라 예상했다. 병실의 공기는 세상에 나와 첫 숨을 쉬는 아기를 맞이하기엔 너무 차갑기 때문이다. 기다려주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20년이 넘게 흘렀다. 세상은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많이 변하지 않았다. 물론, 모자동실과 인권 분만 등 기존 병원 출산 문화가 바뀌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그대로인 것 같다. 제왕절개 수술율이 60%를 넘는다는 23년 통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내가 조산원에서 두 아이를 출산했다고 하면 그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도 대다수 사람들과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선택하지 못했다고. 나보고 대단하다고. 나는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인데 말이다. 다만 이건 아닌 것 같은데...하는 일에 대안이 있다면 선택했을 뿐이다. 다행히 문제의식이 있는 곳에 함께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니 “좋으면 한다”는 단순한 원리를 실천할 힘이 생겼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출산은 병이 아니므로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 후에 내가 공동육아와 대안학교를 선택했을 때도, 공동체 주택을 지었을 때, 마을도서관을 만들 때도 사람들에게 비슷한 말을 듣곤 했다. 아니다. 다수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리 어렵고 두렵고 힘든 일이 아니다. 아닌 일은 아닌 것이지 참을 일이 아니다. 좋다면 하면 된다. 대한민국 공교육을 다니는 학생들이 몇 년 치의 선행학습을 하고 학교를 마치고 다시 학원에 가는, 이 이상한 세계를 벗어나는 일.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가장 두려운 것은 이상한 일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회이지 않을까.
첫댓글 소희쌤👍
소희쌤 글을 기다렸던 1인으로서 일단 선생님 글을 보니 반갑고
읽어보니 좋고😄
조산원 이야기를 시작으로 문제가 있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대안을 발견하고 선택하고 순리를 따르듯 단순하게 그러나 용기 있게 살아온 선생님의 삶이 휘리릭 그려지는 글입니다!!
역시 소희쌤은 그저 그런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쌤~~!! 저도 조산원에서 아이 둘 낳았어요. 저희 때 막 자연출산 다큐도 나오고 막 엄청 유행이었다능 ㅋㅋㅋ
저는 큰 애 22시간 무통없이 쌩으로 진통하면서 낳았는데, 너무 죽도록 힘들어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 교조적이었나 싶기도 해요. ㅎㅎ
그래놓고 둘째도 거기서 낳았다며...
조산원 이야기에 반가워서 댓글 달아봅니다.
아이를 낳는 선택부터 남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주저하지 않은 쌤,
그게 지금도 소희쌤의 독특한 매력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저 그런 어른이 아니라는 혜화쌤의 화룡점정 같은 한 마디에 쌍따봉을 날리며!!!
저는 고위험 산모라 (그래서 결국 애도 하나만 낳았고) 대학병원에서 출산했어요. 다양한 선택권을 가진 사람이 부러운 저 같은 사람도 있답니다. ㅎㅎㅎㅎ
바뀔 줄로 예상했던 출산 문화가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에 공감이 가요. 저도 그런 경험 많이 하거든요.
다수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인데 소희샘은 어떻게 안 그러실 수 있는지가 궁금하네요.
와! 조산원 출산… 저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애 낳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안전이 최우선이다 생각했거든요. 저는 큰 아이가 거꾸로 있어서 날 잡아 수술하고, 둘째도 첫째 수술했으니 당연히 안전하게 수술하자… 그러고 둘 다 수술해서 낳았거든요. 그래서 애 둘을 낳았는데도 진통을 몰라요.ㅎㅎㅎ
소희 샘 글 보면서 저는 출산 문화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아요. 당연히 주어진 대로, 남들 하는대로 살았던 거 같네요.^^;;
소희 샘은 자신이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이 평범하다 하셨지만, 제가 보기엔 삶을 관찰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행동할 줄 아는 용기있고 특별한 분 같아요~^^
따뜻한 반응 감사해요 쓰다보니 또 화를 냈나 머쓱 하네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점점 답답해지네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도 버겁고 비오는 가을 밤 울적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