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개화예술공원 육필시비 건립 제막 및 문학상 수상
-김윤자 육필시비 <깊은 소리> 제막식 및 한국은유문학상 수상
날짜:2006년 11월 4일 토요일
장소:충남 보령시 개화예술공원
* 보령 개화예술공원
개화예술공원은 충남 보령시 성주산 자락 아래에 있는 6만평 규모의 종합 예술공원이다. 세계 각국의 조각가들이 조각한 작품도 있고, 미술관에는 상시 유명화가의 그림이 전시되고, 야외 음악당은 각종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연못 위에 아름답게 서 있다. 대천에서 부여 방면 성주.외산행 버스를 타면 20분 정도 소요되는 대천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방문객이 찾기도 쉽다.
한국육필보존회에서는 보령 개화예술공원에 시인의 육필시비를 건립하고 있다. 세상을 떠난 시인과 생존하는 시인을 구분하지 않고 작품성을 기준으로 하여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 작년에 이어 금년까지 총 107기의 육필시비가 건립되었는데 나는 금년 3차 시비에 선정되어 오늘 그 제막식을 갖는다. 아울러 오늘 이곳에서 시비제막과 함께 문학상을 시상하는데 나는 시인으로서 한국은유문학상을 수상한다.

개화예술공원 입구. 본인 김윤자 시인

개화예술공원의 육필시비공원 안내비
* 함께 걷는 문인의 길
나의 남편은 수필가다. 그래서 오늘 함께 동참하여 축하해 주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노년에 함께 문인의 길을 걷고자 금융계 지점장으로 퇴직 후 늦깎이 수필 공부를 하여 수필가로 등단했다. 나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표정,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오늘 출간된 <성주문화 2호> 문단지에는 우리 부부의 글이 함께 실렸다. 나는 '갈대, 존재의 이유', '어머니 집에 가면' 시2편을 육필로 실었고, 남편은 '성주산 바라기재' 수필1편을 실었다. 이 또한 오늘의 큰 기쁨이다.

개화예술공원 전경.축하해 주려고 함께 온 나의 남편 유기섭 수필가

개화예술공원에 들어 서서.남편과 함께 걷는 행복한 문인의 길
* 시비제막 테잎 컷팅식
시비제막 테잎 컷팅식이 본관 건물 앞, 시비공원 진입로에서 거행되었다. 내빈과 문인, 이번에 시비 건립되는 시인들이 주로 컷팅했다. 나도 미리 나누어준 가위와 하얀 장갑을 들고 나가서 테잎 컷팅식에 참여했다. 여러 문인들과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한 많은 분들로부터 뜨거운 축하의 박수와 함께 거행된 시비 제막식 서곡이다. 그 어느 행사보다 내게는 소중한 컷팅식이다. 오늘의 뜻깊은 행사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며, 시인의 사명에 더욱 충실하리라 다짐한다.

육필시비 제막 테잎컷팅식. 좌측에서 다섯번째 긴 스커트가 본인 김윤자
* 한국은유문학상 수상
무대를 야외 음악당으로 옮겨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조형의 건물에서 시상식 및 행사를 치렀다. 김우종 박사님 외 여러 문인과 지역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수상을 비롯한 문학강연, 시낭송 등으로 해질녘까지 진행되었다. 바람이 불고 싸늘한 초겨울 날씨지만 문학의 열기로 훈훈하다.
나의 한국은유문학상 수상에 대한 심사평은 아버지와 시인과의 관계를 독특한 은유법으로, 넓은 시세계로 잘 전개시켰다고 강범우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하여 깊은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깊은 소리로 은유하여 시로 짓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돋보이는 시라고 심사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내게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직결된다. 자녀 교육에 대한 열의가 남다르셨던 부모님이 항상 깊은 고마움으로, 깊은 소리로 다가온다.

한국은유문학상 수상. 본인 김윤자 시인

한국은유문학상 상패

문인들 단체 기념사진.야외 음악당 행사장.맨앞줄 우측 두번째 앉은 여자가 본인 김윤자 시인
* 육필시비 <깊은 소리>
어두어질 무렵에서야 나의 시비 앞에 섰다. 서울에서 문인들을 태운 버스가 늦게 왔고 준비가 지연되어 예정보다 모든 일정이 늦어진 까닭이다. 허브식당 주변 뜨락에 나의 육필시비 <깊은 소리>와 <시인 김윤자 약력> 두개의 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나의 친필로 쓴 시를 그대로 새겼다는 것에 대하여 '2006년 3월 28일 화요일 송화 김윤자 씀'이라는 나의 마지막 구절 친필까지 매우 소중한 시비다.
나는 보령에서 나고 자랐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곳이다. 충남문인으로, 보령문인으로 활동도 하고 있고, 부모님께서도 아직 이곳에서 생존해 계시다. 또한 가족친지 외 옥계초등학교, 대천여중, 공주사대부고, 공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였기에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동문들이 이 부근에 많이 살고 있다. 후일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이곳에 올 연고가 없어질 때 나는 부모님을 뵙듯 찾아오려고 육필시비의 시도 아버지의 생시 말씀을 은유한 시 [깊은 소리]를 선택했다.
깊은 소리는 아버지의 교훈이 담긴 시이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아버지께 바치는 시다. 노환으로 오늘 참석치 못하심이 애석하지만 자손으로서 마지막 효도한 계기다. 아버지는 나가 교사가 되길 원하셨고, 시인이 되길 소망하셨다. 나는 교사가 되었고, 시인이 되어 아버지의 두 가지 소원을 이루어 드린 셈이다.
여전히 포근한 고향, 이곳에 나의 육필시비가 있음에 더욱 행복한 일이다. 나의 호흡이, 나의 영혼이 나의 사후에도 이곳에서 빛나리라. 나의 영롱한 시혼이 고향의 품에서 아름다운 향기로 영원히 발하리라. 나의 후손이 이곳에 올 때 어미를 대하듯, 할미를 대하듯 저 육필시비는 큰 힘으로 존재하리라.

본인의 육필시비 앞에서. 시인 김윤자 <깊은 소리> 육필시비와 약력비
추천해주신 이양우 선생님과 심사에서 선정해주신 황금찬, 김남조 선생님외 여러 심사위원님 그리고 박용서 사무국장, 용미자 시인 등 관련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반가이 맞아주신 문상재 보령문협 회장님, 끝까지 자가용으로 도와준 김동민 소설가, 김진경 아동문학가 등 보령 고향문인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글로 새겨둔다.
* 부모님께 드린 시비제막 축하 꽃바구니
밤은 깊어가고,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간다. 나는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내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남편은 내일 급한 일이 있어 올라가고 나는 고향 벗들의 모임인 오삼밭 친구들이 보내준 시비제막 축하 꽃다발을 들고 고향집으로 갔다. 그 꽃다발은 부모님께 드리고 싶어서 내가 가지고 갔다. 내 친구의 부모와는 우리 부모도 함께 친구이기에 보시면 더욱 기뻐하시리라는 생각과 비록 육필시비는 보시지 못했지만 축하의 리본 글씨를 보시면 실감으로 다가오시리라는 생각이다.

오삼밭 벗들이 보내준 시비제막 축하 꽃바구니.부모님께 드리고 옴
* 성주문화에 게재된 육필시 2편
신산행 고향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꽃다발을 보고는 한 중년 여인이 물었다. 병원에 문병 가느냐고. 나는 시인이며 시비 제막식 등, 오늘의 일을 말해주었다. 네 아이의 엄마라며 고향분이 시인이라는 것에 대하여 기쁘다고, 꼭 개화예술공원에 가보겠다고 한다. <성주문화> 책에서 나의 시2편을 보여주었더니 '어머니 집에 가면'이 참 좋다며 어느 곳에 가면 이책을 사느냐고 한다. 나는 부모님께 드릴 책 한권만 가지고 있어서 주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가까운 서점이나 문화원을 통해서 구하라고 말해주었다. 고향에서 환영하는 독자와의 짧은 만남,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다.


<성주문화>에 실린 육필시 2편
장현리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등불을 들고 마중 나오셨다. 아버지 연세 82세, 어머니 77세, 바라보기조차 애석한 슬픈 생의 언덕에 이르셨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거두어 날려버리고 싶은 세월이다.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 그래도 생생한 정신로 큰딸의 시비제막과 문학상 소식에 흐뭇해 하신다. 성주문화에 실린 시2편 중 '어머니 집에 가면'을 읽어 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어쩌면 이렇게 잘 썼느냐고 칭찬하신다. 바로 나의 어머니를 예찬한 시다. 밤 늦도록 앉아서,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님 곁에서 행복한 밤이다.
여전히 포근한 고향, 이곳에 나의 육필시비가 있음에 더욱 행복한 일이다. 나의 호흡이, 나의 영혼이 나의 사후에도 이곳에서 빛나리라. 나의 영롱한 시혼이 고향의 품에서 아름다운 향기로 영원히 발하리라. 나의 후손이 이곳에 올 때 어미를 대하듯, 할미를 대하듯 저 육필시비는 큰 힘으로 존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