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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쁘라도(Prado) 미술관
깊은 잠은 아닌 듯했지만, 밖의 소음에도 인야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피곤했거나 어쩌면 여기 시간에 익숙해지느라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려는 몸의 반응일 수도 있었다.
그러다 일어나니 세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야는 조용히 일어나 또 조심조심 화장실에 다녀와 바로 컴퓨터 앞에 앉으니, 이태리여자 세레나한테서 답이 와 있었다. 그런데 이해가 잘 안 되는 그녀의 메일로는, 그녀는 지금 세빌랴에 있는 모양이고 4월 초에(부활절?) 이태리에 갔다 돌아온다는 뜻 같기도 했다. 그의 세빌랴 남자 친구와 잘 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한국에서도 시간적 여유를 갖고 혹시나하고 메일을 보냈었는데, 스페인에 도착한 뒤에나마 그 답을 받은 것은), 뭔가 긍정적인 신호로 보였다.
그 전날 통화를 했던 켄과, 오늘 메일을 받은 세레나... 인야에게는, 그 세사람은 은의 루트에서 그날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오랜 '까미노 친구' 아니던가.
'그렇담, 내가 그들과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얘기 아닐까? 정말,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거 같군......'
인야는 한껏 마음이 고무된 상태였다.
5시가 넘어가면서 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깨니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두커니 누워서 인야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가, 아무래도 일어나야 할 것 같아 컴퓨터 앞에 앉으니... 그 사이에 변화는 없었다.
페르시아나를 여니, 오늘도 밝은 날로 시작될 듯... 해가 한쪽에서 떠오르는지 오른쪽 창쪽에 햇볕이 비치고 있었다.
아침을 산티아고와 둘이서 먹고(마야는 잠을 계속 자고), 산책 나가는 시간이 되었는데...
"인야, 여기서 2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농촌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어때?" 하고 산티아고가 물었다.
"응, 좋은데..." 하다가 인야는, "근데 산티아고, 어제는 프라도 미술관에 가자고 했잖아?" 했더니,
"그럼, 프라도 미술관으로 갈까?" 하고 또 바로 수정을 했다.
그래서 둘이 버스를 탔다.
그런데 이번에도 산티아고는 인야를 ‘한국 문화원’으로 안내했다.
그 부근에 프라도 미술관이 있으니, 한국 문화원에 먼저 들른 뒤 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산티아고의 태도가 달랐다.
인야는 여전히 쭈뼛거렸지만,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런저런 문의를 한 결과,
그 당시에 문화원장이 없었지만, 그 며칠 뒤 다시 오라는 약속까지를 잡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얼마 뒤에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했다.
주말인데다 러시아 ‘에르미타지’ 박물관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선지, 미술관은 사람들의 줄로 입구가 혼잡할 정도였고...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돗데기 시장 같았다.
그날, 인야는 미술관을 관람한 뒤 산티아고 집에 돌아와...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오늘은, 여기 마드릳의 유명한 '쁘라도 미술관' 관람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술관 관람이야 그렇다 쳐도, 어쩐지 그 과정과 파생된 얘기를 하고 싶네요...
어제 산티아고가 묻더군요,
"우리 내일, 쁘라도 미술관에 갈까?"
화가인 나는 이미 그 미술관은 두어 번 갔었기 때문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 거기에 가봤는데......" 하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 조금 의아했던가 보았습니다.
화가라는 사람이 미술관에 가자는데, '왜 저런 반응이지?' 했을 거 같더라구요.(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쨌거나 그랬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 이 친구가 산책을 나가자던데...
"좋은 생각이야!" 라면서 가려다가, "산티아고, 어제 나한테 쁘라도 미술관 가자고 했잖아?" 했더니,
"그럼 미술관에 가자." 기에, 그냥 그러기로 했지요.
그랬더니 여기 그의 집에서 버스를 한 번 타면 약 30분 이내에 미술관에 닿는다며,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하드라구요. 그래서 또, 그러자고 했지요.
산티아고 처 마야는 오늘 저녁에 또 한 손님을 맞아야 한다며, 자기는 집에 머물겠다고 해서... 우리 둘만 나섰는데요,
버스를 타고 둘이 나란히 가다가,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스마트폰을 꺼내 음악을 듣기로 했습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는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음악을 듣곤 하거든요.
그런데 마침 내가 즐겨듣던 여기 스페인 여자 가수가 부른, '여름날은 얼마 남지 않았네...'라는 노래가 나오기에,
그에게 이어폰 한 쪽을 주면서 들어보라고 했더니...
(그는 내가 그 노래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압니다.)
금방 귀에 꼽더니, 고개까지 흔들면서 음악을 듣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노래가 다 끝나자,
"너무 좋은데?" 하는 겁니다.
그렇게 조금 가는데, 그는 금방 들었던 노래를 혼자서 흥얼흥얼 읊조리더라구요.
"?"
근데 웃기잖습니까? 스페인 사람이, 한국 사람이 듣는 스페인 노래를 따라부르는 게......
(근데요, 그 친구가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 나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도... 우리는 이따금 그런 노래 몇 곡을 흥얼흥얼 부르곤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에겐 이상할 것 하나도 없는 일이긴 했지만, 지금은 버스 안이었다는 얘기지요.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던 그......
좀, 웃기긴 했지만, 늘... 그랬기 때문에, 또 그러려니 넘겼지요.
바람이 제법 센 선선한 날씨였습니다.
나 개인적으론 이런 날을 좋아하는데, 내 짧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도록 다소 센 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였지요.
근데요, 마드릳 중심부 쁘라도 미술관 주변엔 명소들이 많은데요...
그 친구는 거기에 있는 '한국 문화원'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거기서 버스를 내렸다며... 쁘라도까진 조금 걸어야 한다더라구요.
그런데 가다 보니,
"인야, 저기가 아주 유명한 까페야." 하고 설명을 해주던데,
아래 사진에 보이는 까페는, 스페인의 유명한 문인 화가 등 예술가들이 자주 찾던 유서가 깊은 까페라고 합니다.
미술관에서 약 500 여 m 떨어진 곳이긴 한데, 혹시 나중에 마드릳에 가게 되면 참고로 알아두셔도 될 것 같네요.
'그란 까페 데 히혼(Gran Cafe de Gijon)'
나도 몰랐는데 이 친구가 알려준 겁니다.(참고 하세요.)
그리고 우리는 쁘라도 미술관에 도착을 해서, 주말을 맞아 그리고 지금은 '러시아 에르미타지 미술관 특별전'이 열린다고,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지... 딱 질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는, 이 미술관 특별권이 있어서...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근데, 아래 사진은... 미술관에서 나온 뒤에 찍은 것이라, 사람들이 많을 때는 아닙니다.
사실, 나도 이런저런 사진을 좀 찍고도 싶었지만... 난 그렇게 관광객들이 많은 곳에선 정신이 없기도 해서, 그런 일에 주춤거리는 스타일이랍니다.
그래서 사진도 별로 찍지 못하고 말았는데요.
더구나 미술관 내에서도 사진은 금지돼 있기 때문에, 그저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는데요.
어쨌거나 그 거대한 미술관에 들어가, 그 중 몇몇 주요한 화가의 방을 찾아가는 것으로 대충 미술관을 한 바퀴 돌았는데요.
내가 좋아하는 '고야' 그리고 '벨라스께스' 등을 중심으로 보고, 나머지는 대충 넘기는 걸로 미술관을 둘러보았답니다.
그런데요. 이 친구 미술관을 돌면서도, 가끔 아까 내가 들려줬던 스페인 노래를 혼자서 흥얼흥얼대드라구요.
그래서 내가,
"산티아고, 미술관에서 노래를 부르면 돼?" 하고 핀잔(?)을 주면서... 함께 웃기도 했는데요.
어쨌거나 미술관을 나와서는, 둘이 사진이라도 한 방 찍어야겠기에 포즈를 잡았지요.
그런데 이 친구, 아까부터 목이 탄다고 하기에... 나 역시 갈증이 났던지라,
"산티아고, 이번엔 내가 살 테니... 어디 가까운 바에 가자." 고 했더니,
자기가 잘 아는 곳이 있다며, 바로 쁘라도 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바로 나를 데려갔습니다.
근데요, 어쨌거나 미술관 관람을 잘 하고 나온 뒤라... 뭔가 기분도 좋았는데,
이 친구, 처음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겠다더니...
내가 맥주를 못 마시는지라 비노 한잔을 시키자, 본인도 비노를 하겠다던 겁니다.
그리곤 거기서 잘 한다는 '따빠(Tapa)' 올리브를 시키던데...
그 까페가 깔끔한 것도 그랬지만, 나름대로는 상당히 위생적이고 깔끔한 음식을 제공하는 유명한 곳이드라구요.
거기 이름은 '에스따도 뿌로(Estado Puro)'니, 나중에 한 번 들러 보세요.
비노가 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아주 깔끔한 맛이드라구요.
이 사진을 거기서 찍었는데, 둘 다 노인 같이 나왔네요. (아니, 속일 수 없는 노인이네요.)
그런데 이 친구 발동이 걸렸는지, 따빠 하나를 더 시키자며 뭔가를 주문하던데...
나온 음식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아래 사진)
근데요. 재미있었던 건,
아래 음식을 세어 보세요.
일곱 개지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비노와 곁들여 올리브(이들은 '아쎄이뚜나'라고도 부른답니다.)와 아래 음식을 먹는데, 나중에 보니... 하나가 남드라구요. (홀수이다 보니...)
그런데 그 친구는 날더러 먹으라고 했고, 나는 그 친구 먹으라고 하는...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 순간 나는 또 장난기(?)가 발동해,
"산티아고, 그럼... 좋은 수가 있어!" 하며, "우리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에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먹는 사람을 정하거든?" 하자,
"그럼, 우리도 그렇게 해 볼까?" 하드라구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친구도 그건 알고 있더라구요.( '가위 바위 보'는 아마 세계적인 어린이 놀음인가 봅니다.)
다만, 가위, 바위, 보... 에서, '보'를... 우리는 '보자기'인데, 그들은 '종이'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 둘 셋! 하며, 냈는데...
나는 보, 그는 가위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긴 것이지요.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돌려(?),
"이긴 사람이 먹는 거야!" 하고 그가 먹어야 한다고 했(우겼)더니...
내 속 뜻을 알 리가 없는 그가, 웃으며 남은 것을 먹었습니다.
그가 한참 음식을 씹기에,
"산티아고, 사실은 진 사람이 먹는 건데... 내가 거짓말을 한 거야." 하자,
그는 먹던 음식을 뱉어낼 자세를 취하며, 날 죽이려(?)들더라구요. 하 하 하......
그러면서 또 둘이서 얼마나 웃었는지......
그런데 그런 우리 둘을 지켜보던 그 옆에 있는 사람들도, 재밌다는 듯 웃드라구요......
(에휴! 사진으로 보면 둘 다 엄숙하게 차려입은(?) 할아버지들인데, 왜 그리 철이 없는지......)
그 친구와 둘이서는 또 이렇게 늘쌍 히히덕거리며 웃으며 다닌답니다.
어쨌거나 그 친구가 날 쁘라도 미술관에 데려갔기 때문에, 이 따빠는 내가 낼려고 했는데... 이 친구, 펄쩍 뛰면서 나를 꼼짝 못하게 하던 겁니다. 그래서 또,
'우리, 다시 가위 바위 보 할까?' 하려다, 너무 까부는 것 같아서(?) 다음에 써먹기로 했는데...
근데 이 까페는 돈을 받는 것도 재미있드라구요. 아래 같이 캔 병을 함께 주던데, 그건... 거기에 팁(이들 말로는 '쁘로삐나')을 넣어주는 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까페에서 나와,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거기가 지하철 역으론 '스페인 은행(Banco Espan~a)'역입니다
곧 버스가 왔고,
단 한 잔의 비노를 마셨을 뿐인데도... 어쩐지 얼굴엔 다소 열기가 느껴지도록 붉은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집에 가면 부인이 점심을 해놓고 기다릴 겁니다. 이들은 웬만해선 집에서 식사를 해서 먹습니다.) 버스를 탔고, 둘이 나란히 앉았는데...
나는 또 문득, 음악이 듣고 싶어... 스마트폰을 꺼냈습니다.
이 친구도 본인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기에, 나는 이어폰을 귀에 꼽았는데...
나오는 음악은, 비지스의 '할리데이'였습니다.
나른한 비노 기운에, 역시 그리 급하지 않은 음악인 할리데이......
순간, 나는... 무한한 '자유'가 느껴졌습니다. 혼자서 누리기엔 너무 아깝고도 소중한 감정이지요.
아,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그래서 나는 그 음악이 다 끝나도록, 그 감정을 즐겼고... (이런 일련의 행동이, 철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지금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지요.)
그 친구에게도 음악을 들어보라며 이어폰을 넘긴 뒤, 그 음악을 다시 틀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도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더군요.
(아마 이 친구와 내가 그렇게 잘 통하는 건, 그 역시(?)... 철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럴 겁니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엔 철 없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아, 그들과 이렇게 철 없이 살다... 가고 싶습니다......)
아, 상큼한 바람이 부는 마드릳의 맑은 오후가... 평화만 가득한 세상 같아 보였습니다.
비노 한 잔의 힘을 빌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자유를 느꼈고... 그건 곧, 행복이었습니다......
사실, 오늘의 얘기는 '쁘라도 미술관' 관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얘기는 맨 마지막 대목이었습니다.
미술관이야 안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사람의 감정이지요.
그렇듯... 여기에 와서, 이번에도 나는...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3 . 19
두 사람이 집에 돌아오니 마야가 점심을 차려놓은 뒤였다.
여느 때처럼 셋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식사 자리였는데, 대화 끝에... 산티아고의 형제 얘기가 나왔다.
"나, 5형제 중 막내야. 위로 형이 둘, 누나가 둘. 그리고 맨 끝이 나!" 하는 산티아고라는 말에,
인야는 갑자기 웃고 말았다.
그러자 부부가 의아한 듯 인야를 바라 보았는데,
"그래? 나도 막둥이거든? 산티아고? 하 하 하......"
"그럼, 당신네 형제는?" 하고 둘이 물었고,
"나는 형이 둘, 누나가 하나... 맨 꼴찌가 나! 하 하 하......"
인야의 웃음이 쉬 끊기기 않은 것은,
'그런 것까지도 공통점이 있네?'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너덧 살 위이긴 해도, 철없는 구석과 그래서 오히려 순수하기까지 한 산티아고가 너무 웃겨서(?)였다.
정 많고 장난기 많은 것도 서로가 닮아 있었던 것이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