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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사는 어느 신도분의 약사여래부처님 가피로 죽은 목숨이 살아난 이야기
창원에 사는 어떤 신도분의 신행담, 영험담을 들으실 거예요.
스님이 시간이 있으니까 읽어드릴게요.
그리고 나서 직접 들으보시면 더 낫겠지요?
『2011년 12월 친구인 윤옥희의 소개로 현지사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저의 부처님에 대한 신심은 예전과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남편 무자생 박병용이 2012년 1월 11일 큰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리모컨 오작동으로 쇠를 만드는 기계 중간에 몸이 끼어서
모든 장기가 망가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갈비뼈가 8대 부러졌고 콩팥, 폐, 위 등이 크게 손상되었고
특히 간은 20%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즉시 부산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모든 장기 하나하나에 기계를 달아서 의존한 상태였으며
의사의 소견으로도 4일 후에 소변이 배출되지 않으면
살아날 가망은 전혀 없다고 하였기에 저로서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소변이 나오기를 바라며 정월 초하루 약사부처님께 첫 번째 공양을
간절한 마음으로 올렸습니다.
다행스럽게 공양을 올리고 그날 바로 소변이 나와서 재수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분원에서 공양을 올렸습니다.
일단 첫 번째 공양을 올리고 어느 정도 좋은 결과가 있어서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습니다.
여전히 환자의 간이 2/3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으며 환자의 의식도
전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암담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처사가(-남편이) 세상을 떠나든 살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자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현지사가 고성 약사궁의 점안식을 앞두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약사여래부처님께 처사 앞으로 공덕이라도 지어주자는 생각에서
현지사로 달려가 부처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리며
주지스님께 부탁하여 두 번째 약사여래부처님 공양을 올렸습니다.
남편은 오랫동안 당뇨를 앓고 있어서 지혈이 잘 되지 않아
몸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후 세 번째 공양을 올리고는 목에 구멍을 뚫고
산소 호흡기를 뚫는데 성공했습니다.
2월 달에는 남편 이름으로 현지사에서 천도재를 지냈고
25일만에 의식이 돌아왔고, 45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고
10일 정도 치료했습니다.
욕창이 심해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상태가 좋아져서 살이 차올라
수술이 필요 없어도 되었습니다.
지금은 집근처 창원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혼자 걸을 수 있고 음식도 잘 먹고 말도 잘하고 ‘운동가자!’라고
말할 정도로 회복이 되어서 정상인처럼 되었습니다.
의사도, 환자의 처음상태를 본 주위 사람들도 모두가
이건 기적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우선 약사여래부처님께 눈물로 호소하며 간절히 발원해 주신
부산 현지사 스님들께 감사의 예를 올립니다.
또 현지사로 인도해주고 병원에 출근하다시피하며 도와주고 걱정해준
친구 윤옥희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현지사에 가자고 해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의 생사문제에 닥치다보니 오직 부처님께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생의 마음에 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의심치 않고 믿고
스님말씀에 따른 것이 큰 가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들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처사가 현지사에 귀의케 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지사를 믿고 따르면 누구든 부처님께서 가피와 위신력을
증명해 보여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친구와 저는 남편을 살려놓았으니 이제부터는 우리 자신을 위해
공부하자고 약속하고 100일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 많은 가피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처사 앞으로 또 공양을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처사를 동참시키려고 합니다.
현지사 단월님들, 부처님과 큰스님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믿는 마음부터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첫 번째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발원을 해보십시오.
‘부처님! 저는 부처님과 큰스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고 따르고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에게는 큰 빽인 든든한 부처님이 계십니다’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심병에 걸리면 가피는 십만팔천리 달아날 것입니다.
현지사 부처님 정법에 귀의해서 부처님 공부 열심히 하고 부처님 믿고 따르십시오.
반드시 가피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큰 가피를 받은 저는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현지사 정법에 귀의하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드립니다.』
이제 그분이 나와서 실제로 말씀드리기 전에 그 친구 윤옥희씨가 쓴 글입니다.
『처음 약사여래부처님께 공양올리고 병원에 가서 처사의 부운 상태를 보고
약사여래불을 부르면서 처사의 온 몸을 주물렀습니다.
병원에서는 부운 몸을 너무 주무르면 안 된다고 했지만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울면서 주물렀습니다.
그리고 처사의 귀에 대고 ‘미라 아빠! 할 일이 많으니 살아야 됩니다.
살고 싶거든 약사여래부처님을 부르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한쪽 눈에 콩알만 하고 불투명한 작은 눈물이 한쪽에 맺혔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제 살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달에는 얼굴에 황달이 너무 심해서 약사여래불 공양을 올린 청정수를
온몸에 바르면서 약사여래불을 부르며 4일 동안 온몸을 주물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4일이 경과되었을 때 처사가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공양을 올리고 의식이 없던 처사가 꾼 꿈을 이제 여기에다가 소개합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처사 꿈입니다.
『넓은 벌판을 가는데 다리를 건너니 50세 정도의 남자가 있었다.
큰 바다에 큰 배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저(-남편)보고 타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가 배의 열쇠가 없어서 가지고 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마침 옆에 작은 초소가 있어서 거기서 기다리라고 하여 들어가니 작은 공간에
신장이 2미터 정도 되는 남자가 누워 있었는데 가슴에는 엑스(×)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 남자가 ‘무엇 때문에 왔나?’ 하고 물어서 사연을 이야기하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아서 그 남자에게 ‘가야겠다’고 하니까
그 남자가 ‘그럼 가라’ 하고 누워서 발로 툭 차버렸다.
앗차! 하는 생각에 이러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서
눈을 떠보니 내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눈을 처음 떴고 그때 의식이 돌아왔다.』
자, 나오십시오. 오십시오. 우리 정경숙 보살님 친구분하고 나오시오.
오! 그래요. 이제 남편이 죽었다가 살아난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〇 정경숙 보살님의 이야기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 자리에 서 있게 해주셔서요.
첫 번째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윤옥희 보살이 이렇게 저를 인도해서
이런 가피를 받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지금 큰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처음에는 윤옥희보살이 저한테 이야기를 할 때
이렇게 해야 되나 안해야 되나 하고 좀 망설였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 이게 아니다 싶어서 내 남편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내가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둘이서 같이 부산의 주지스님을 뵈었지요.
그래가지고 이야기를 드렸더니 앞에서 큰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어쨌든 살려달라고, 최선을 다할 테니 살려달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부산의 병원에 들어가니 의사선생님이... (울먹이다)
중간 중간만 말씀드릴게요.
며칠 있으니까 저보고 하는 이야기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나오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웠지요.
무어라고 이야기를 해야 될지를 모르겠고...
그 다음 날부터 면회 시간에는 하루에 두 번씩 갔었어요.
12시 점심시간과 저녁 7시에요.
창원에서 왔다 갔다를 두 번 했지요.
아침에는 절에 갔다가 병원에 갔다가 또 집에 갔다가 이러기를 3번 왔다 갔다 했는데, 그 다음 날 병원 문을 딱 들어서려면 마음이 너무 무거워요.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또 오늘은 무슨 가망 없다는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또 무슨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그랬는데 기도를 스님 말씀대로 올리고 나니 부산 주지스님이
‘기도를 하니 기도가 굉장히 잘 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마음이 굉장히 편했어요.
‘아! 그래도 기대를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의 용기를 갖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서 힘을 썼습니다.
45일만에 병원 입원실로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저한테 하는 이야기가
지금 중환자실에 45일간 있었으면 굉장히 오래 있었던 것이거든요.
중중환자실이 되어가지고.
그런데 이래가지고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간다는 것은 힘들다고 했거든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자기네들은 이렇게 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고.
어쨌든 ‘감사하다’고 했지요.
윤옥희 보살이 나보고《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선물하라고 하여
제가 의사선생님한테 갖다드렸습니다.
시간 나면 읽어보시라고.
그러니까 고맙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지금은 창원병원으로 옮겨가지고 몇 개월 계셨는데 수술이 잘못 되어서
다시 또 해야 되었어요. 탈장이라는 것이 있고 내부가 정리되지 않아서
뭉쳐져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거예요.
다시 수술을 해가지고 아주 좋아졌습니다.
아직까지는 병원에 계시지만 얼마 있지 않아 퇴원하시면
언젠가 이 자리에 한번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〇 윤옥희 보살님의 이야기
『반갑습니다. 제가 여기에 올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불려나왔습니다.
저도 그때 마침 귀의한지가 몇 개월 안 되어가지고 신심이 깊지 않았을 때인데
이상하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도현스님 하고 의논한 결과 ‘하여튼 믿고 해보자’라고 하시기에
저도 이제 신심을 내어가지고 무조건 사람을 살려놓고 보자.
돈은 차후다. 사람이 산 후에 돈이 있으니까 일단 스님 말씀대로 사람을 살리자.
그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오전에 기도 하고 오후에는 병원에 같이 갔다가 울고.
이것을 반복하다가 보니까 앞의 스님 말씀대로 말을 좀 알아들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더라고 절에 와서 이야기를 하니까 영체는 알아듣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 살겠다. 스님은 괜찮겠습니까?’ 라고 하니까
스님도 ‘기도가 잘 되니까 아마 괜찮을 거예요’ 할 때
한번 하면 달라지고 한번 하면 달라지고 해서 세 번을 연거푸 하니까
차도가 아주 빠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아! 이제는 잊어버렸다.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면서
‘돈 걱정하지 말고 해보자’라고 해가지고 천도재도 연거푸 하고 하고 해가지고
최종으로 수술을 두 번째 세 번째 할 때에는 장기보호막을 해야 되는데
그 수술하고 났을 때 전화가 와 가지고 친구가 하는 말이
‘야! 다른 사람은 뚱뚱 붓고 난리가 났는데 금방 회복 되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아! 그게 약사여래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은 저도 흔들흔들했던 마음이 이제 정말 철기둥 되려고 합니다.
저희들도 부처님 가르침대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도 부처님만 믿고 살아봅시데이. 좋은 일 있을 겁니다.
그리고 스님들 감사합니다.』
〇 주지 혜명스님
잘 들으셨지요? 제가 이렇게 발표를 해도 되지만,
여러분들이 그 못 고치는 병, 암이라도 걸리신 분들한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이 약사재일에 가능한 한 체험사례를 직접 발표하게 하려고 해요.
그런데 나으신 분들이 많은데 창피하다고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저는 그래요.
‘약사여래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떳떳이 나와서 발표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약사여래부처님의 위신력을 보고 따르고,
사람들이 과연 약사여래부처님 계심을 알고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소생을 했는데 창피하게 여기지 말아라.’
여러분, 이것은 다 전생의 업병이어요.
그러니까 이 분이 약사여래부처님 공양을 올릴 때마다 다르다고 그러잖아요.
기도가 아니고 공양을 올리신 거예요. 왜 공양을 올리시나?
전생의 업병을 씻어주시고 소멸시켜 주시니까.
그러니까 차도가 있으신 거예요.
그래서요, 누구든지 창피하게 여기지 말고
‘아! 나도 이것을 이렇게 발표하여 우리 신도분들이 희망을 갖게 해줘야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약사여래부처님한테 갚을 은혜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는 의미로서
창피하게 여기지 말아요.
정신병도 나은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흉측하고 이상한 몸을 가진 사람도 나았어요.
그래서 제가 발표를 하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얼마나 우리 약사여래부처님이 위대하시냐고요!
여러분들이 강원도 고성까지 오시려면 좀 멀지요?
멀어도 나 같으면 두말 않고 옵니다.
지금 우리 태사부님이 안 내려오셨잖아요.
왜 안 내려오셨느냐 하면 여러분들을 삼매 속에서 가능한 한 한 가지씩이라도
낫게 해주시려고, 한 분 한 분 업장을 씻겨주시고 소멸시켜주시고
이렇게 해가지고, ‘여기 머나먼 고성까지 왔는데 한 가지 병은 낫게 해가지고
가게 해야지’ 하는 그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태사부님이 부처님들하고
이 작업하시는 것을 들으시면 우리 신도분들은 눈물 없이 못 들어요.
오늘도 9시부터 12시까지 법당에서 하시더라고.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 두 분 큰스님이 가시는 길은 부지런히 따라다니십시오.
그것이 사는 길이예요.
출처:2012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