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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박채현의 장편동화『강태풍 실종 사건』
김 문 홍
주제와 소재가 형식을 결정한다
동화작가 박채현은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2021년 역시 동화로 황금펜아동문학상을 수상한 등단 5년 미만의 새내기 작가이다. 2022년에는 『냄새 폭탄 뿜! 뿜!』이라는 첫 동화집으로 ‘청연당 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뒤이어 의인 동화인 『아이 돌보는 고양이, 고마워』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번의 장편 동화 『강태풍 실종 사건』(2023.2, 우리교육, 139쪽)은 세 번째 동화로, 벌써 세 권의 작품집을 발간했으니 그간의 등단 연륜에 비해 활발한 창작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는 편이다. 이번의 장편 동화는 형식적으로 본격적인 판타지 동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내용적으로는 우리의 초미 관심사인 생태학적 환경 생태동화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괜찮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사람도 똑같이 위험에 빠졌어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 걸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식물과 동물, 지구와 우주가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동식물이 병들면 그걸 먹고 살아가는 사람도 병들게 마련이니까요. 탁해진 공기를 사람도 마실 수밖에 없으니까요...... 박채현, 작가의 말, 『강태풍 실종 사건』, 137쪽.
위 인용문은 ‘작가의 말’ 속에 들어있는 한 부분을 따온 것이다. 이 부분을 추론해 보면 이 작품을 쓰게 된 작품의 창작 동기, 주제의식, 나아가서는 이 사회와 세상을 보는 작가의 시각, 즉 현실 인식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작가의 생각이 여물어져 한 편의 장편 판타지 동화로 탄생한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개구쟁이 소년 ‘강태풍’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가 하면 주위에 있는 동식물을 함부로 괴롭힌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인 강태풍은 우리 주위의 자연을 함부로 대하고 파괴하는 인간의 상징적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을 읽는 독자가 어린이들인 만큼 그들의 눈높이에 맞고 친근감이 있는 어린이로 작중인물을 선택했을 뿐이다.
사실 이 작품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으로서의 고전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동화문학의 두 가지 기능은 서사적 재미를 추구하는 ‘쾌락적 기능’과, 읽고 난 뒤 교훈적 깨달음을 주는 ‘교시적 기능’이다. 작가는 동물들을 괴롭힌 만큼 벌을 받아야 한다는 서사적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가독성이 있는 서사 형식을 취했을 것이고, 동물과 인간이 한 공간에서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행동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판타지 형식을 취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이 작품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고 괴롭히는 환경 파괴자로서의 보편적 인간을 은유하는 강태풍을 자연 현장으로 소환해내다 보니,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서로 스며드는 판타지 동화의 형식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동물과 동물, 동물과 인간이 서로 말을 하고 알아듣거나 생각을 공유하는 등의 비현실적 서사구조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의 전체 분량 중 발단과 결미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사는 판타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강태풍이 실종되고 다시 탈출하는 부분만 현실적 공간을 택하고 있을 뿐 나머지 서사는 대부분 판타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엎치락뒷치락 재미를 추구하는 전개, 위기, 결정의 서사적 주요 동력은 거의 대부분이 판타지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실에서 판타지로 틈입하고 판타지에서 다시 현실 공간으로 틈입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①
할머니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화단을 따라 늘어선 울타리 사이에서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고양이는 꼬리가 잘리고 한쪽 눈이 꺼져 있었다. 엄지나 씨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꺄아옹, 꺄아옹, 꺄옹.”
“냐옹, 냐옹.”
할머니와 고양이는 심각하게 울음소리를 주고받았다.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던 할머니가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쯧쯧쯧, 강태풍의 강자도 꺼내지 말라는데. 아주 지긋지긋하게 심술궂은 녀석이라네.”
- 박채현, 「목격자」, 『강태풍 실종 사건』, 41쪽②
싹뚝! 할머니는 자른 머리카락을 고양이의 꼬리에 이어 달았다.
“냐옹, 냐아옹, 꺄아옹.”
고양이는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꼬리를 휘감으며 공중제비를 몇 바퀴 돌았다.
“산장맨션 옆 쥐똥나무 울타리 아래를 찾아봐요. 거기 유리구슬이 하나 있을 거야. 모락모락숲은 그 유리구슬 속에 있어.”
“네에? 우리 태풍이가 유리구슬 속으로 들어갔다고요?”
-위의 글, 43〜45쪽.
③
강태풍은 학교 가는 길에 엄지나 씨가 말한 탐정사무소를 찾아갔다. 건물은 흔적도 없었다. 휑한 빈터에 새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다지고 있었다. 서둘러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구두수선 가게 역시 없었다.
“엄마는 어떻게 나를 찾으러 온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강태풍은 저만치 앞서가는 동미를 발견하고는 달려갔다.
“동미야, 같이 가.”
동미가 뒤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싫지 않은지 강태풍을 기다려주었다.
“냐아옹, 냐아옹.”
강태풍이 떠난 버스정류장 화단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꼬리가 잘리고 눈 하나가 찌부러진 노란 고양이였다. 뒤로 하얀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졸졸 따라갔다.
산장맨션 쥐똥나무 울타리 아래엔 깨진 구슬 조각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 「또 다른 구슬, 앞의 책, 134〜135쪽
위의 인용문 중 ①과 ②는 서두 부분이고 ③은 결미 부분이다. 그 중 ①과 ②는 현실 공간에서 판타지 공간으로 스며드는 부분을 서술하는 장면이고, ③은 판타지 공간에서 현실 공간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을 서술하는 부분이다.
인용문 ①은 강태풍의 어머니인 엄지나 씨가 현실 공간에서 판타지 공간으로 틈입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할머니와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 할머니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어 노란 고양이를 불러내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 역시 판타지 공간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노란 고양이는 인간의 학대로 한쪽 눈이 꺼져 있는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 상처는 딱히 강태풍에 의해 생긴 상처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강태풍이 먹이를 먹고 있는 고양이에게 물을 흩뿌린 심술을 부린 것은 강태풍이니 아예 그 연관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할머니 역시 그 현장 가까이에서 나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강태풍이 고양이를 괴롭히는 것을 목격한 할머니가 혀를 차며 안쓰러워한 것으로 보아, 달리 생각하면 관련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인용문 ② 역시 현실 공간이다. 이 장면에서는 할머니가 강태풍의 어미니에게 그의 소재를 넌지시 알려주는 장면이다. 어머니 엄지나 씨는 탐정과 함께 아들인 강태풍의 소재를 찾고있던 중에 할머니를 만난다. 이 장면에서 할머니는 한두 가지 마법을 부린다. 머리카락을 잘라 고양이의 꼬리에 다는가 하면, 고양이는 몇 바퀴 공중제비를 돌기도 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산장맨션 옆 쥐똥나무 울타리 밑에 유리구슬이 있으며, 그 유리구슬 속에 모락모락 숲이 있다고 넌지시 알려기도 한다. 그 유리구슬이 바로 현실과 판타지 공간의 경계선이다. 그 저쪽은 판타지 공간이고 이쪽은 현실이다. 할머니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고양이 꼬리에 매달아 주고, 고양이가 공중제비를 도는 것은 판타지 공간은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은유적 장치이다.
인용문 ③은 강태풍이 판타지 공간을 탈출하여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현실 역시 조금 달려져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탐정 사무소와 구두 수선 가게 역시 사라져 버리고 없다. 또한 버스 정류장 화단에는 상처 입은 노랑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분명 현실 공간인데도, 그동안 어머니가 거쳐 왔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서사적 공간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배치한 일종의 서사적 트릭이다. 즉, 지금까지 강태풍과 그의 어머니 엄지나 씨가 활보하고 있던 현실적 공간 역시 판타지 공간처럼 묘사하여, 독자는 어쩌면 지금까지의 모든 서사 자체와 공간 역시 판타지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작가가 꾸민 일종의 ‘서사적 미장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이 작품은 판타지 공간 속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판타지 공간이 있는 듯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공간 역시 판타지일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시공간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
이 작품은 일종의 환경 동화이고 생태 동화에 가깝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서로의 공간과 삶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인간에게만 정신과 영혼이 있다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 동식물들에게도 그들 고유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 작품이 창작되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오만한 생각과 행동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심술궂은 개구쟁이 소년 강태풍을 판타지 공간 속에 불러들여 그동안 인간이 동식물들에게 저지른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비판하며 그 죄상을 묻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하게 동식물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는 단세포적인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고 서로의 삶을 바르게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세상은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파괴되고 오염되면 모두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창작의 출발점을 찾고 있다. 단순하게 인간은 동식물을 보호해야 하고 환경 파괴를 멈추어야 한다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범우주론적 관점에서 이 세상은 어느 한쪽이 아닌 모두가 즐기고 살아가야 할 공간이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과 삶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태학적 인문학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때문에 이 작품은 기존의 동화가 가지는 단선적인 사고를 지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①
청개구리는 긴 자루가 달린 뜰채를 강태풍 앞에 던졌다.
“네 놈이 더럽힌 연못을 깨끗이 청소해. 이 연못은 모락모락 숲의 날씨를 점치는 연못이라고.”
강태풍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뜰채를 집어 들었다.
“해지기 전에 끝내!”
청개구리는 야자나무 아래에 있는 바위 위에 올라가 강태풍을 감시했다. 강태풍은 뜰채를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 청소를 어서 끝내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뜰채에 플라스틱 통이 올라왔다. 다음으로 비닐봉지, 신발 한 짝, 줄넘기 줄이 올라왔다.
“이건 내가 예전에 쓰던 줄넘기 줄이네. 이 신발도.”
쓰레기는 건져도 건져도 끝없이 올라왔다. 어느새 연못 가에는 플라스틱과 비닐봉지, 헌 신발과 가방 등 쓰레기 산이 생겼다. 해가 뉘엿뉘엿 산마루를 넘어가려 했다.
- 「벌거숭이가 더럽힌 연못」, 『강태풍 실종 사건』, 81쪽
②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동물들을 만나 반가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들리지 안 들리냐? 우리는 모든 소리를 알아들어.”
“어이, 꼬마 뒤에 벌벌 떨고 있는 동물 친구들아, 너희를 해치지 않아.”
암탉이 꼬꼬 거리면서 여러 번 달랜 후에야 동물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영혼들이 벌거숭이와 아는 사이 같은데?”
멧돼지는 그제야 한숨을 쉬었다. 영혼? 강태풍은 멧돼지의 말을 듣자니 새삼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나 아들 태풍이? 난 지나 어릴 때 친구야. 흰둥이라고.”
하얀 개가 껑충 뛰어올라 재주를 부렸다.
“흰둥이?”
강태풍은 엄마의 어릴 적 사진에서 보았던 개를 기억해 냈다. 엄마의 어린 시절 함께 놀던 강아지, 흰둥이를 만난 것이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흰둥이는 송아지만큼 큰 개가 되어 있었다. - 「잃어버린 동물의 숲」, 위의 책, 93쪽
위의 인용문은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은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은유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대목이다. 어느 것 하나가 잘못되면 다른 공간의 또 하나가 그것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어느 한쪽이 파괴되면 다른 쪽의 삶도 무너진다는 범신론적 세계관을 표명하고 있다. 범신론이란 일체 만유의 신이며, 신은 일체 만유라고 하는 종교관이며 찰학관을 표명한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가 결코 우위에 서는 일이 없으며, 서로가 대등하고 공평한 위치에서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모든 것이 인간 중심으로 운영되고 펼쳐져 나가고 있다. 우리는 정신과 영혼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으로 모든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만 판단하고 있다. 동물이 병들면 그 동물을 먹고 사는 인간 역시 병든다는 사실을 잊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결코 버티지 못한다는 지극히 간단한 원칙과 철학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용문 ①은 환경오염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심술궂은 개구쟁이 소년 강태풍은 연못에다 많은 것을 던져넣어 ‘모락모락 숲의 날씨를 점치는’ 연못을 오염시킨 것이다. 그래서 판타지 공간 속의 청개구리는 그동안 강태풍이 저지른 죄에 대한 징벌로 뜰채로 연못을 깨끗하게 창소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일종의 인과응보이다. 이것은 자신이 이룩한 결과이니 자신이 매듭을 지으라는 것으로, 동식물의 서식처를 오염시킨 인간들에 대한 징벌인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강태풍이 뜰채로 연못 속의 물건들을 건져내자, 그가 그동안 무심코 버렸던 비닐봉지, 신발 한 짝, 줄넘기 줄이 연이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연못은 인간에게는 쓰레기를 던져넣어도 무방한 단순한 하나의 연못이었지만, 숲속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동식물들에게는 그 숲의 날씨를 예고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아주 소중한 공간인 것이다.
인용문 ② 는 동식물들도 제 나름의 정신괴 영혼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라는 물활론적 사고를 표현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표명하고 있는데, 동물들끼리만 말이 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사이에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또한 동물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강태풍은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동물들을 만나 감정이 울컥해진다. 실체를 가진 현생의 동물들과 이미 죽어 영혼이 된 동물들도 서로 깊이 결속되어 있다는 사실과, 강태풍이 어린 시절 관계를 맺었던 흰둥이가 크게 자란 모습으로 자신 앞에 나타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에게도 진정성이 있다면 동식물들과도 서로 대화가 가능하고, 동물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물활론적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동식물들에게도 인간과 똑 같은 정신과 영혼이 있으며, 서로 다른 종이라도 서로에 대한 진정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고 서로의 정신을 공유할 수 있다는 물활론적인 사상을 작가는 이 대목에서 표명하고 있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동식물들을 괴롭히고 학대한 강태풍을 판타지 공간으로 납치해 벌을 받게 하는 것으로만 서사를 채우지 않고 있는 점은 이 작품의 큰 미덕이다. 위의 인용문처럼 인간과 동물들이 진정성만 바탕이 된다면 서로 대화가 가능하고, 동물들에게도 정신과 영혼이 존재한다는 가정은 작가에게 있어 하나의 획기적 상상력이다. 몇몇 아쉬운 점은 강태풍에 대한 재판을 줄이는 대신, 강태풍이 숲속이라는 판타지 공간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서사에 좀 더 많이 넣어 사건을 전개했더라면 좋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태 묘사를 통한 성격 묘사의 적확성과 가독성
이 작품은 가독성이 아주 높다. 가독성이 있다는 말은 서사 전개가 물 흐르듯이 막힘 없이 빨라 독자들이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데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사에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묘사보다는 서술에 치중하고, 대화체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 설정과 행동에 대한 적확성을 시도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 인물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들이 인물에 대한 정서적 일체감으로 서사에 깊이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①
늑대는 물뱀호스를 모락모락고발단에 견주었다.
퐈퐈퐈.
물줄기가 쏟아졌다.
“으아! 물 뿌리지 마세요.”
“여긴 내 땅이야. 내 땅에서 물 좀 뿌리겠다는데, 왜!”
늑대는 물을 더 세차게 뿌려댔다. 물에 흠뻑 젖은 모락모락고발단이 뒤로 물러났다. 신난 늑대가 이번에는 누런 흙을 팍팍 뿌렸다.
“마지막 경고야. 썩 꺼져라, 이놈들”
늑대는 손을 탁탁 털며 구시렁거렸다.
“에잇, 저놈들 때문에 우리 가게 이미지만 구겼잖아.”
다투는 소리는 숲속 곳곳에 피어있는 나팔꽃으로 전송되었다. 숲속 동물들은 나팔꽃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벌거숭이가 불쌍해.”
“뭐 어때. 비싼 값을 냈으니까 벌거숭이를 실컷 만지고 구경해야지. 안 그래?”
숲속 동물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 「모락모락 고발단」, 『강태풍 실종 사건』, 64〜65쪽.
②
강태풍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물어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거숭이가 또 있어? 나처럼 생긴 동물을 또 봤어?”
강태풍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다가갔다. 그렇지만 동물들은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저, 저리 가. 떨어져.”
토끼가 뒷걸음질 쳤다.
‘아참, 동물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강태풍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다람쥐가 사슴의 등 위로 풀쩍 뛰어올라 강태풍을 빤히 쳐다보았다.
“쉼터에 있는 벌거숭이랑 많이 닮았네?”
멧돼지가 코를 벌름거리며 강태풍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맞아. 냄새도 비슷하네.”
“가족이 흩어진 거 아니야?”
동물들이 수군거렸다.
‘가족? 가족이라고?’
강태풍의 가슴이 콕콕 쑤셨다. 엄마 아빠 생각에 목이 메었다.
“엄마…, 엄마!”
강태풍은 그만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또 다른 벌거숭이」, 위의 책, 86-87쪽.
위 인용문 ①은 판타지 공간인 모락모락 숲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인 ‘모락모락고발단’의 활약상을 아주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요즈음을 살고 있는 동화문학 독자인 우리 아이들은 영상문화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서사 전개의 지루함과 느슨함, 지루한 묘사의 남발은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문장의 길이가 짧아야 하고, 묘사보다는 속도감이 있는 서술적 표현을 시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야기 속의 인물들에 대한 성격 묘사가 적확하여 친근감이 느껴져야, 인물에 대한 정서적 일치가 수월해 독자가 서사 속에 깊이 빠져들어가게 된다.
인용문 ①처럼 이 작품은 판타지 속의 동물들에 대한 생태학적 성격 설정과 행동이 적확하여, 어린이 독자들이 서사 속의 동물들과 친근감과 정서적 일체감을 느껴 서사에 쉽게 빠져들게 하고 있다. 물뱀의 주둥이를 고무호스로, 늑대가 땅의 흙을 헤집는 생태적 행동 장면, 나팔꽃의 생태학적 모습을 스피커에 연결한 점 등, 동식물의 생태학적 특징을 성격과 행동에 그대로 치환시켜 아주 생동감 있게 장면을 형상화하고 있어, 어린이 독자들을 작품의 서사 속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아주 강하다.
인용문 ②는 문장의 길이를 짧게 하고 서술과 묘사보다는 대화체를 적극 활용하여 서사 전개의 템포와 리듬을 촉진시키고 있다. 대화 속에 또 다른 서사 진행을 알린다거나 성격을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린이 독자들은 지루해할 틈도 없이 쉽게 시사 진행 속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가독성을 높이고 있다. 아주 긴 문장이라야 50자를 넘지 않고, 30자 내외의 문장 길이를 주로 사용하여 가독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장면의 변화가 잦고 빨라, 영상 세대인 어린이 독자의 호흡과 생체적 리듬을 잘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숲속 판타지 공간에서의 서사 진행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유사한 장면이 연속되어 다소 지루한 느낌을 준다거나, 장면의 변별적 특성에 대한 차별화가 애매해 장면의 메시지가 명확하지 못한 점, 강태풍은 판타지 공간 속에, 그리고 어머니 엄지나 씨는 현실 공간 속에 각각 병치시켜 둔 채 서사를 긴박하게 진행시켰으면 좋았을 법한데, 함께 판타지적 공간 속에서 모험을 시도하게 해 의미가 중첩되고 있는 점, 또한 판타지 공간 속에서의 서사가 너무 평면적인 단순함으로 일관한 점은 다소 아쉽다. 판타지 공간 속에서 입체적인 서사의 변화를 시도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주제가 작품 속에 용해되어 있지 못하고 표면에 드러나고 있는 점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작가는 널리 그리고 오래오래 두고 남는 작품을 남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영속적인 작품, 그리고 지역과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소재와 주제를 작품 속에 담아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작가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곧바로 그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이 기억에 떠오를 만큼, 두고두고 독자의 기억 속에 불멸의 인장을 찍을 수 있는 작품을 남겨야 한다. 앞으로의 작가의 건투를 빌어마지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