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편 귀거래
1장 남천택이란 사내
효자동 거리를 지나가는 전주의 갑부 전윤경은 십 년 전에 비하여 별로
늙은 것 같지 않았다. 변했다면 금테 안경이 로이드 안경으로 바뀌었다는
것, 차림새가 수수하며 점잖은 신사로 보인다는 그 정도였다. 부친이
세상을 뜨고 명실공히 호주가 된 때문인지, 댄디즘하고 손을 끊었는가.
대신 동행인 동년배의 좀 작은 듯한 사내는 요란했다. 활동사진에서
빠져나왔나 싶을 만큼 사십대의 모던보이, 밀빛 캡을 멋지게 눌러쓰고
연갈색 체크 무늬의 양복, 보타이는 갈색이었고 스틱을 짚었다. 스프링
코트는 팔에 걸린 채, 경박해보였으나 그 나름대로 세련은 돼 있었다.
윤경과는 동향으로서 남천택, 그는 최근에 일본서 돌아왔다. 가세는
변변치 않아 그저 먹을 만했으니 향리에서는 그 차림새로 하여 조롱을
적잖게 받았다. 항상 그런 차림새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전윤경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전윤경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 도움을 받는다.
천재적으로 그는 사람을 잘 사귀었다. 일본인이건 중국인이건 서양인이건
가릴 것 없이 부딪쳤다 하면 금새 친구가 된다. 행동 방위도 종횡무진
일본에서 중국, 가는 곳마다 친구, 도움받을 사람이 있었다. 그런 데는
물론 그럴 만한 특징이 있다.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어학
실력이다. 그에게 최초로 도움을 준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그로 인하여
남천택은 신학문의 문턱을 넘어 동경 Y대학 영문과를 통과했으니 영어,
중국어, 일본어 그 세 나라 말은 아주 유창하였다. 노어도 조금은 할 줄
안다. 결국 남천택은 천재였던 것이다. 다음 이 천재는 상대를 편하게
하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첨하고 뽐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도움을 주면서 그를 업수이여기지 않았고 풍부한 그의 학식에
접하면서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 묘한 애기지만. 지금 차림새와 같이 다소
격조가 높은 광대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서울이 좀 변했나?"
전윤경이 물었다.
"그렇고 그렇지 뭐. 내가 왜 부산서 전주로 직행한지 아나?"
"집이 거기니까 그랬겠지."
"집? 집이란 가족이 있는 곳이 집이네."
"형들이 살고 있잖아."
"이봐 윤경이. 사십 넘은 사내보고 형들이 가족이라 할 수 있겠나?"
"그도 그렇군. 하면은 장가들게나."
"이 사람 보게? 든 장가는 어쩌구. 벌써 일곱 번이나 들었다구."
"정식으로 들라는 게지. 참한 규수 골라서. 사십의 늙은 총각이지만
자네 같으면 올 여자가 있을 게야."
남천택은 팔을 내저었다.
"고리타분한 얘긴 관두어. 여자란 삼 년만 지나면 늙어서 못쓰겠더군.
정식으로 했다간 그 위자료를 누가 감당하누. 발목 잡히는 것도 난 딱
질색이야."
"미친놈."
"내가 미쳤나? 너희들이 탈을 쓰고 있는 게지."
"그래 집도 없는 전주인데 어째 직행을 했나."
"서울을 좀 넓게 볼려구."
"음 그러니까 동경서 든 허파의 바람을 전주에서 토하려 했다 그
말이군."
"내 대가리는 한시도 쉬어주지 않으니까, 좁쌀인가?"
"그래 좁쌀이다. 사내자식이, 단숨에 서울로 꽝! 하면 어떠냐."
"하하핫, 하하핫."
웃으며 스틱을 흔들어본다.
"윤경이."
"말해보게."
"상현이 그 자식 만주로 날았다며?"
"언제 일인데. 별안간 상현이는 왜 물어."
"임명빈 씨를 방문하려니까 그 미인 생각이 나서 그래."
"명희씨 말인가?"
"그래. 미인이었지. 상현이를 짝사랑했지 않아?"
"자네 나이 몇인데? 미친 소리 그만해. 명희씨는 남작 조병모의
자부일세."
"그런 사정이야 나도 알아. 그 여자 백계 러시아의 여자 같지 않든가?"
"언제 보았나?"
"일본서 학교 다닐 대 봤지."
"아득한 옛일이다."
"한 십오 년쯤, 그렇게 됐겠군."
임명빈의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전윤경은 걸음을 멈추었다.
"천택이."
"말해보게. 상호가 왜 그 모양인고?"
"우리가 뭣하러 임명빈을 씨를 찾아왔지?"
"허허어, 이제사 술이 깨는 모양이군."
"술 깨다니?"
남천택은 낄낄 웃는다.
"아침에 자네가 찾아가보자 했지 않았나. 이 화상이 무슨 목적이
있구나, 하고 나는 따라나왔던 게야."
전윤경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까 자네 뭐라 했나."
남천택이 묻는다.
"내가 뭐라 해."
"근엄하게 말씀이야. 뱃속에서 소리가 나는 걸 참았지."
"...?"
"명희씨는 남작 조병모의 자부일세."
"그랬는데?"
"이젠 자부가 아니지 않는가."
"무슨 소리야?"
"어젯밤 술자리에서 듣던 얘기 다 까먹었어?"
"음..."
"선우일이 하던 말 생각 안 나는가?"
"그, 글쎄."
"자네 한 말도 생각 안 나나? 자네가 내일 임명빈 씨 찾아간다고 큰소리
탕탕 치지 않았어? 해놓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침에 내가 찾아가자 해서
따라나왔다구? 댓끼!"
전윤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술자리여서 실언을 한 모양이군. 나 실수는 좀체 안 하는 편인데."
전윤경은 아주 난처해하는 웃음을 띤다. 옛날에 전주에서 이상현과 술을
마셨을 때 결벽한 이상현과 기생과는 연애 안 된다 했을 때 그러면
안성맞춤이 있긴 있지, 명희아가씬? 했던 전윤경이다. 그때 상현은
취중에도 할 얘기가 따로 있다 하며 몹시 화를 냈던 것이다.
"그래서 자네, 상현이를 들먹였군. 원숭이 같으니라구."
"아아, 아닐세, 난 왜놈도 되구 뙤놈도 되구. 등치고 간 내먹고
쳐다보며 코 베어가구 변신무쌍 원숭이라면 잘 봐준 게지."
"아무리 그래봐야 부처님 손바닥이다. 그보다도 남아 장부 칼을 한번
뽑았으면 쳐들어가야지."
"아닐세. 제발 그런 일 없던 걸로 해주게. 취중에 무슨 말을 했는 지
모르지만 상대도 상대 나름이야."
"홀아비가 이혼녀를 두고 뜻을 품은들 그게 무슨 대역일꼬?"
전윤경은 팔을 내저었다. 부친이 세상을 떴을 뿐만 아니라 윤경은 이 년
전에 상배를 했으며 여태 재취를 하고 있지 않는 형편이었다.
"자아 들어가세."
"스틱으로 엉덩이를 떠민다."
"그런 일 아니라도 오래간만에 선배를 찾아보는 것은 무슨 허물인가."
"그렇기는 하다마는."
두 사람은 임명빈 집에 들어섰다.
"아니, 자네들이 웬일인가."
임명빈은 무척 반가워했다.
"오래간만입니다, 선배님."
"오랜간만일세, 몇 년 만인가? 자아, 어서들 앉게."
두 사람은 사랑에서 임명빈과 마주앉는다.
"한잔 해야겠지?"
"네. 어젯밤, 과음을 해서 술로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천택이 전윤경을 보며 실쭉 웃는다. 전윤경은 눈을 깜박깜박했다.
임명빈은 사람을 불러 술상 차리라고 일러놓고
"윤경이는 더러 보지만, 그렇다 해도 이삼 년 되나? 천택이는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그 동안 여기 안 있었지?"
"네. 얼마 전에 동경서 왔습니다. 한데 임선배께서는 교장 감투를
벗으셨다구요."
"그까짓 것 화젯거리나 되나 뭐."
"잘 하셨습니다."
해놓고 천택은 또 윤경을 본다. 윤경은 천택을 노려보았다.
"그래 그쪽 형편은 어떤가."
임명빈은 괴로웠다. 교장직 사퇴는 명희 신상과도 관련이 되기 때문에
화제가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차차로 말씀드리지요. 그곳도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아니 도리어
시끄럽다, 매우 좋잖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해야 할 겁니다."
"음, 참, 인사가 늦었네. 윤경이 자네 상배를 했다며?"
임명빈은 윤경에게 얼굴을 돌렸다.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는 나이에 큰일났습니다."
쓰게 웃는데
"임선배께서 신부 하나 구해주시지요."
천택은 능청을 떤다.
"내가 구해주고 말구가 있나. 윤경이 같으면 후보자가 줄지어 있을
터인데, 안 그래?"
천택은 그 이상까지는 가지 않았다.
"앞으로 선배님은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지요?"
윤경이 물었다.
"계획이라니, 계획이 뭐 있겠나. 밥벌이나 해야지. 기와 공장을 하나
차리기는 차렸는데."
"하필이면 요즘 같은 불경기에, 어렵겠습니다."
남천택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좀 어렵기는 어렵다마는."
"황태수 그 양반도 요즘엔 고전을 한다는 소문이더군요."
윤경의 말이었다. 임명빈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윤경이나 천택은 다같이
이맛살을 찌푸리는 임명빈을 바라보며 많이 늙었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누구보다 임명빈이 많이 늙은 것 같았다.
술상이 들어왔다. 세 사람은 술을 마시며 한동안 제각기의 생각에
잠긴다. 사사로운 문제, 임명빈의 경우나 전윤경의 경우 사사로운 문제가
없지 않았고 나름대로 고통스러우며 또 복잡했지만 역시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불안이다. 시국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얼굴을 대하고 보면.
"그쪽 얘기나 하지 그래."
임명빈이 입을 떼었다.
"흐음, 네, 별로 희망 있는 형편은 아닙니다만 이쪽 사정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천택이 말했다. 그의 눈빛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
"여러 가지 국면에서 그렇습니다만 살벌하다는 점, 대단히 시끄럽지요.
앞으로 뭔가 터지고 말 조짐 아닐까요?"
"전쟁 말인가? 아니면 일본에서 큰 변혁이 일어날 거란 그 얘긴가?"
임명빈은 마시려던 술잔을 상 위에 도로 놓는다.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사회 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은 짙습니다.
무르익었다 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결국엔 안 될 겁니다."
"하기야 그걸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게야."
"일본의 우익 세력이란 그런 사회 운동을 탄압하는 데 그치지 않을
거니까요. 사실 국내의 그런 것은 안중에 없는지도 모르지요. 또 한 가지
만주나 중국에 있어서 얻어낸 기득권을 보호한다는 따위도 시시한 얘긴지
모르지요. 그들의 흐름은 만주를, 몽고를 먹어치우겠다 바로 그겁니다."
"결국 전쟁으로 터진다 그 말이군."
"십중팔구는. 전쟁이란 자고로 국내의 변혁 세력을 눌러버리는 데
쓰여졌던 방법 아닙니까? 지금 전국에 만연하고 있는 경제 공황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요. 상당히 심각하니까요."
"세계적 현상이지. 미국이 특히 심한 모양이더군."
"물가는 폭락에서 또 폭락, 실업자는 홍수, 일본이라고 예외겠습니까?
문을 닫는 공장은 부지기수요, 실업자가 백만을 넘는다 했으니 남은
공장이나 기업도 임금 인하, 노사간 쟁의는 극심하지요. 최저 임금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면 그것은 기아선상 아닙니까? 실업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여비가 없어, 하여 철로를 따라서 걷는 남루한
모습은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어요. 물가 폭락으로 살 만하게 된 것은
중산층으로서 사치를 하게되는 아이러니, 오늘 일본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밑바닥이 왕창 무너져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해서 지하에 있던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 이때다! 하고 모두 뛰쳐나오는데 그런 만큼 또 철저하게
깍여버리는거지요. 말하자면 이제 그들은 소모품입니다. 뒤를 댈 시간도
없이 소모되어 가는 거지요. 보통선거법이라는 알사탕을 내놓고
치안유지법이란 독약을 만들었던 일본은 치안유지법에 걸리 자에게 십 년
내지 오년의 징역에 처한다, 그 조문을 사형 혹은 무기로 바꾸는 것쯤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일본 국내에서 일어날 변혁에는
기대하지 말라 그겁니다."
"정말로 중국하고 붙을까?"
"아마도."
"그럼 그건 우리에게 희망적인 것 아닐까?"
"낙관적이군요. 전쟁에서 우리들 씨를 말려도 말입니까?"
세 사내는 침묵에 빠진다.
"하긴 누군가도 그런 말을 하기는 하더라만... 전쟁이 나면 조선의
청년들은 일본 군대의방패 역할을 할 것이고 전쟁 수행에 있어서 노역을
전담할 것이라, 그럴 경우 국내에 있 는 가족은 인질로 써먹게 될 거라구.
물론 그럴 가능성이야 충분히 있지. 허나 이런 상태가지속된다면,
지속되는 한에 있어서 무슨 희망이 있겠나. 와장창 터져버리기라도 해야
숨구명이 터지든지 아예 죽어 자빠져버리든지."
임명빈은 의기소침하여, 그래서 자초자기하듯 말하였다.
"지속도 운동은 운동이지요."
남천택은 눈빛은 여전히 싸늘하게 빛났다.
"그건 또 무슨 뜻 일고?"
"역사라는 것도 생명을 지닌 것 아닐까요?"
"...?"
"끊임없이 탄생하고 움직이다가 벗겨진 허물처럼 계속 죽어가니까요.
지속은 바로 역사의 생명, 그 생명의 운동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낮도깨비 같은 소리 시작한다."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전윤경은 말리듯 핀잔주듯 말했다. 그러나
임명빈은
"역사도 생명이 있는 거라면, 그, 그도 독자적인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되는 겐가?"
"독자적이라면 어폐가 있겠습니다만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요."
"그, 그렇다면 역사나 민족은 절로 갈 길을 가고 우리네 개인은 별반 할
일이 없다..."
"아니지요. 사람이 감나무 밑에 드러누워 입 벌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그렇지. 하니까 역사에는 역사의 의지가 있다,"
"그렇지요. 생명, 모든 생명은 존재하고 운동하는 한에 있어서 의지가
있다 할 수 있겠지요. 풀잎 하나에도."
"그렇다면 역사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면 지배하는 건가?"
"능동적인 공동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흠."
"다시 말하면 상부상조의 관계라고나 할까요? 생명체끼리의."
"그렇다면 어째서 역사는 늘 강자의 편이었나."
찌가 흔들리는 순간 낚싯대를 잡아채듯 명빈은 재빨리 말했다.
'청춘이구나. 십 년 가까이 교육계에 몸담았어도 변한 게 없어. 여전히
문청 시대, 사람이착하고 순수한 것도 어느 정도지, 희극이다 희극.'
전윤경은 짜증이 나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악을 두고 강자라 하신다면 역사가 그들 편에 선 게 아니지요.
상부상조의 묵약 내지 질
서에 대해 인간이 반역한 거지요. 그러나 강약이 선악과 늘 일치했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뺏고 빼앗기는 상태에서 본다면 강자는 악이요
약자는 선이겠으나 이룩하고 다스리는상태에서 본다면 강자가 선일 수
있고 이룩하고 다스리는 것을 저해하는 기생충 같은 약자는 분명 악일
것입니다."
"다스리고 이룩한다... 그런 정치 개념이 지배한다는 것과 얼마만큼이나
다를꼬? 그런 것휘두르지 않았던 정복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지요. 반역자들은 사양하는 게 없지요. 빼앗고도 영웅이 되고
살육하고도 시혜자가 되고 파괴하면서 창업주가 되고, 허허헛헛..."
웃다가
"저는 뭐 정치적 측면에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황하를 다스릴
능력을 가진 사람, 즉 요순을 제왕으로 선발하였다는 고사를 두고, 진실한
뜻에서의 강자, 이상적인 정치형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재미나는
것은 도편수는 재상감이다, 한 그 말입니다. 결국토목에 능한 사람이
치자로서의 자격이 있다,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연장이야 칼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은 강자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요순 시대의 잠꼬대로구나. 아전인수, 사기 치기 좋은
주둥이야."
전윤경이 또 빈정거렸다.
"자네는 술이나 마시게."
해놓고 남천택은
"요순 시대의 얘기라 비웃고 믿지 않으려는 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착각이며 모순이며 오류란 말입니다. 특히 조선 사람,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그래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와 혹은 마르크시즘, 그런
것들이 서구에서 들어온 새로운 사상이라 하여 양복 걸치듯,또 이상적인
정치 형태라 신봉하면서 보국 안민의 정치적 요체를 간직한 동학은
핫바지라거들떠보지 아니하고 일종의 사교로 치부하거든요. 다스린다 함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루족하였는가 보살피는 일이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이며 취하고 버릴 것을 선택하는 일,결국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가면서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백성이 필요로 하는 것을 백성과더불어 이룩해가는
일인데, 정치 이념이야 언제나 명쾌한 것 아닙니까? 왜 사람은
존재하는가, 왜 탄생하고 사망하는가, 생명은 어디서 왔고 무엇이냐,
그거야 우선은 정치의 소관밖의 일일 터이고, 강자에 대한 개념도 그래요.
다스리고 이룩한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군왕이든 혹은 대통령이든 단위의
크고 작음의 차이일 뿐 일가의 가장이라 하여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요. 또 대상이 사람에 한한것도 아니구요. 양치는
소년은 양의 지도자요 갖바치는 사람의 발을 보살피며 신발을 이룩하고
농부는 땅과 작물을 다스리면서 곡식을 만들어내고 모든 것은 합일 내지
통일을 향한 운동으로 전화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우주의 질서는 벌레나
풀잎에도 축소된 상태로 작용하고 우주의 질서, 그것을 신으로 지칭하여도
무방하지요. 그 신이 천지만물을 다스리며 날로 이룩해나가듯 인간도
천지만물을 다스리며 이룩해나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요. 물론 생명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유한한 것이지만 존재하는 한종횡으로
다스리며 창조하는 것, 허황한 얘긴가요? 아까저는 반역자란 말을
했습니다. 파괴하고 약탈하고 정복하고 그런 자들이 강자다, 그런 생각에
중독된 식자들에겐 그야말로 허황한 얘기지요. 사실 우리 조선 사람들
머리통 속에 일본은 강자다, 하는 관념이 고약같이 눌어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일본은 강국이다, 노대국 청국과 러시아에게 도전하여
승리한 강국, 이 강국이라는 관념은 그들의 빈약하고보잘것없는 문화까지
승격하게 했지요. 상스럽고 조잡한 문화가 위대하게 보여지기 시작한다 그
말입니다. 무례한 관습이 당당하게 보이고 섬세한 예의범절이 비굴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때려부수어라, 파괴자에 대응하는 것은 파괴니라,
이런다고 선배님 오해는 마십시오. 총독부 청사에 투탄하는 사람, 왜놈
대갈통에 총알 꽂는 사람, 그 의혈단의 투사들을 두고 빈정대는 말은 결코
아니니까요. 찬밥 더운밥 가릴 겨를도 없는 사람들이 유성기 소리가 귀에
들어가나요? 구습을 타파하라, 기존 가치를 모조리 때려부수자,
무용지물, 망국을 초래한 것들, 고루하고 미개하며 변변한 총 한 자루
없는 문명 부재의 상태에서 하루 빨리 탈피하라, 수치스런 과거를
불식하지 않고 고질적인 것을 뿌리째 뽑아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눈을 떠라, 양양한 바다건너 찬란한 문화를 보라,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미개하고 몽매하였는가를 알 수 있으리,
보자보자하니 어느덧 애국 애족하는광대들 구호는 일본이 이 땅에
발붙이려 했던 그 시절의 구호와 흡사해가고 있었더란 말입니다. 해서
민족 개조론이 나오고 해괴한 신종론도 나오고, 참말 웃기는 일들이지요.
지사연, 지도자연하는 그 광대들, 무지막지하고 교활무쌍하고 한치 바늘
가지고 보검 휘두르듯하며 천재를 우러러 받들라고 호령하는 염치 좋은
낯짝들, 천재가 어디 있습니까? 천재는누군가요? 망토나 인버네스 같은 것
입고 미츠코시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본 위인이 천잽니까? 데이게키의
입장권을 사본 사람이 천잽니까? 전답 팔아 공부한 값을 한답시고
돌아온그들 천재들의 일성은 미신을 타파하라! 유교 교육의 해독을
아는가! 주역 따위는 숙명론이니 망국의 씨앗이다! 삼강오륜이 뭣이냐,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여 중히 여긴다는 것은 넌센스다, 미래를 위해
자식들은 부모의 고혈까지 빨아 살찌워야 하며 부모 곁에 어물쩍 거리는
그 따위 효도야말로 망가망국의 흉도이니라, 무지몽매한 부녀자들이 치성
드리려고들락거리는 절은 어떠한가, 중놈 놀고먹고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비관주의 허무주의의 불교, 그것도 일없다, 숙명론적이긴
마찬가지겠으나 야소교는 두고보자, 서양 문물의 창구니까 목사나
신부들은 서양 옷 입고 온 사람,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낭만주의, 고전주의, 공리주의, 실리주의, 야수파, 추상파,
주지파, 인상파, 다 좋다, 서양서 배 타고 온 거니까, 이하는 누구인가?
황진이는 기생이었지, 보들레르를 모르고 하이네, 바이런을 모르고
톨스토이를 안 읽고서, 참말 모래알만큼 많기도 하지, 조선에는 뭐가있나,
텅텅 빈 자루 밖에 없다. 미신 바람이 흠뻑 들어찬 빈 자루,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은 송장이 썩은 묘소뿐이다. 서양에서는 공동 묘지에 꽃
한송이 놓고 고개 숙이면 그만인데, 조선에는 이케바나"꽃꽂이"조차 없다,
그만큼 정서가 메마른 민족이며 정서가 메말랐다는 것은 아무것도
창안하지 못하고 예술도 꽃피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제에기랄!
그릇이없어 대통에 밥 담아 먹던 왜놈이 임진왜란 때 도공들 끌고 간 일은
몰랐던가, 죽일 놈들,그 주둥아릴 가지고서 애급의 피라밋이 어떻고
스핑크스가 어떻고... 조선인은 게으르다, 그것은 온돌 때문이다, 온돌을
없이하라, 필요하면 침실로만 써라, 왜놈들하고 꼭같은 곡조로나온다 그
말입니다. 침실? 조오치요. 농가에도 침실 있고 거실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제일 부지런해야 할 농부에겐 그야마로 쌀 생산을 위한
시책으로도 게으름은 되지돼야겠지요. 그것은 총독부에 건의할 사항인 것
같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벼락부자가 생긴 일본에서는 거실 하나 꾸미는
데 이삼만 원 처넣는 작자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삼십 원짜리
농가에 침실 하나, 하하핫 하하하핫... 담뱃대도 분지르고 요강도
까버리고 조선옷은 불살라버리고 하, 그런데 갓만은 아깝군요. 왜놈이야
본시 머리에 올려놓은 것이 없으니 만큼 그까짓 존마게 잘라도 버려야 할
관이 없으니 덜 억울하겠습니다만. 거상과 제사도 폐하고보면 가보같이
내려온 제반 집기는 엿장수 차지가 될거구. 군자대로행이라, 한르
올려다보며 팔자걸음 걷는 양반님네, 그도 게을러 못쓸 것이며 등
구부리고 땅 내려다보며 안짱걸음 걷는 왜인을 닮아야 할 것인즉."
"그만하고 숨 좀 돌리지 않겠나?"
참다못한 전윤경이 남천택의 팔을 잡아 흔든다. 어리벙벙해 있던
임명빈이
"자네 입에서 그런 말 나올 줄은 몰랐다."
술 한 잔을 마신 남천택은 아무말도 한 일어 없었던 것처럼 씩 웃었다.
"왜 그렇습니가. 취신 유행의 옷 탓입니까?"
임명빈은 실소한다.
"알기는 아는군."
남천택은 크게 소리내어 웃는다.
"착오가 생겼지요. 시골에 가니까 양반들도 평준화 되었다고나 할까요?
할 일이 없기론 마찬가진데, 왕시의 권위를 고집하기론 오히려 등과도
못해보고 그늘살이를 하던 측의 양반들이더군요. 아전 나부랭이들도
그렇고."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겐가."
"본시 버릇이 그렇습니다. 이 작자 동경 얘기 하려면 서울에서 시작하고
서울 얘기 하려면 동경서 시작하니까요."
전윤경의 말이었다.
"서울의 신파들을 만나려면 마땅히 도포에다 갓을 써야 하는 것이지만
상투가 없는 처지고 보니, 두루마기라도 걸쳐야 하는 건데 잘못된
거지요."
하는 수 없이 임명빈은 웃는다.
"그렇다면 신파의 욕은 그쯤 했고 시골 구파 양반보고는 무슨 말을
했는가?"
"네.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라 했습니다. 노발대발 쫓겨났지요.
하하핫핫, 하하하핫..."
어디까지 진담이며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종잡을 수 없다. 임명빈은 뭔가
우롱을 당한 듯
하여 불쾌감을 가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불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남천택의
말에는 수긍할만한 것이 있었지만 편협한 일면도 있었다. 터를 넓게 잡아
울타리를 쳐오는구나, 싶었는데 지극히 속된 일상적인 내용로 흘러갔고,
좀 당황하나, 그러나 이론 정연한 곳도 있었다.
'나를 향해 쏘아댄 화살일까?'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남천택은 자기 자신을 야유한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외모를 봐서는 그가 매도한 바로 그런 인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임명빈의 마음을 관대하게 한 것은 조찬하의 말을
상기했기 때문이다. 남천택은 조찬하와 같이 일본과 조선을 구체적으로
비교해가면서 상반된 점을 명쾌하게 끄집어내지는 않았다. 어쩌면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애매한 말, 뛰면서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마는 그런
식이었으나 또 묘하게 상통되는 것이 있는 듯 싶기도 했다.
"의외로 자넨 보수적 인물이군."
"천만에요. 저는 단순한 댄디스트지요."
"자네도 서양서 배 타고 온 걸 좋아하는군 그래."
"댄디즘이 어디 뭐세나 보들레르의 전용물입니까? 이조의 선비들 중에도
그게 많았지요. 많았을 정도가 아니라 조금씩은 가지고 있었다
해야겠어요. 의상에서 서가의 일용품에서 기생과 노는 품에서, 깔끔하고
세련된 멋을 볼 수 있고 권문 세가에 대한 차디찬 모멸과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자존심 따위, 그 당시는 꼬부랑 글씨로 이름붙이지
않았다뿐이지요. 윤경이 이자도 한 때는 그런 폼을 재고 다녔습니다만
밑천이 짧았지요. 전주의 갑부라지 만 족보가 시원찮았고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남의 호주머니 믿고 살아왔으니 광대기가 몸 에 붙어서 여러모로
좀 찌그러졌지요. 남이 열 올려 지껄일 때 비웃듯 말 없는 윤경이가
제격이긴 한데 말입니다."
"언제 자네가 열 올려가며 지껄였나? 입만 놀고 심장은 정물이었지.
하기는 심장까지 함께 놀았으면 큰일났을 게야. 선배님, 제 잔
받으십시오."
윤경이 명빈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부어준 술을 마신 명빈은
"참말로 세상만사가 답답하네."
한숨을 내쉰다. 남천택이 한바탕 휘저어놨는데 여전히 의기소침한
상태다. 몰골도 초췌했다. 그새 많이 여위어 목은 길어졌으며 고수머리의
두상은 전보다 커 보였다. 교장직을 내던진 뒤 기와 공장을 한답시고
동분서주, 설상가상으로 명희 문제가 복잡해졌다. 당장 어떻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세도 기우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남군 자네는 요즘 뭘
하나. 학벌 좋고머리 좋고 오라는 데도 많을 터인데."
임명빈은 화제를 일상으로 돌려놓는다.
"오라는 데도 별로 없지만 어중간하지요. 나이도 그렇고 모든 것이...
신문사, 학교... 주저앉아볼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얼마나
가겠습니까?"
"하기는 그래. 빤하지. 아예 친일파가 된다면 모를까 중간 지대에서
어물쩍거리다 보면 해괴한 사회 잡기나 쓰게 되지. 그 대표적 인물이 이모
아니겠나.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발붙일 곳이 없는 게
현실이라구."
"좌파든 우파든 활로는 결국 뛰는 것밖에 없겠지요. 뛰지도 않고
저들한테 빌붙지도 않고 사는 사람들, 이제는 바닥이 났을 겝니다.
윤경이야 아직 멀었겠지만."
"사사건건 한 번씩 들먹여야 속이 편하겠나?"
"농담 아닐세. 아무튼 앞으로 안전 지대는 없어질 게야."
"그럴 테지."
전윤경도 동의하기는 한다. 임명빈도
"하기는 일본이 만주를 단념하지는 않을 테니까."
"만주뿐입니까? 수차 국민혁명군이 북별을 시작할 때마다 재류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일본이 출병한 일이며 만주를 장악한
장작림의 열차를 폭파하여 장작림의 사망으로 혼란된 틈을 타서 만주를
점령하려 했던 일이며, 물론 그것은 다 실패로 돌아갔고 오히려 아들
장학량이 보기 좋게 국민당과 합작하는 결과를 낳아 중국은 명목상 통일이
되어 일본은 복장을 쳤겠지만 하여튼 그간의 집념으로 보아 일본은 결코
만주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일본은 결코 중국도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실현 불가능이야. 아무리 일본이 강하기로 조그마한 섬나라가
어찌 그 광활한 땅과수억의 인민을 다스릴 수 있겠나."
임명빈이 고개를 저었다.
"지난 1927년에 국민혁명군이 상해로 들어갔을 때 열강의 어느 나라보다
혈안이 된 것은일본이었습니다. 혁명군의 반쪽이 공산당이었거든요.
중국이 공산화된다면 중국은 그림의 떡이 될 테니까요."
"중국은 고사하고 그렇게 됐으면 만주도 침노할 수 없지. 조선조차
그들은 보존하기 어려웠을 게고. 그러나 중국을 먹겠다는 생각은
황당하다. 그렇게는 안 될 게야. 아무리 간덩이가 부었기로."
"영국을 생각해보십시오. 영국은 스승입니다. 스승보다 더욱 간교하고
잔악한 게 일본이 요."
"그러나,"
"그러나가 아닙니다. 두고보십시오."
하는데 윤경은
"정말로 일본은 전쟁을 할까?"
짚고 넘어간 일을 되새겨보듯 말했다.
"중국이 만주하고 분리되어 있고, 국내서는 좌우 알력이 극심했을 때
일본으로선 그때가좋은 기회였는데 다 놓치지 아니했나. 중국의 정세가
대체로 통일로 굳어져가는데 쳐들어간다는 것은 여간한 결단 아니고는
어렵잖을까?"
"그것은 일반적인 생각일세. 일본은 지금 급해 있거든. 중국이 통일되어
물론 아직은 국공간의 도저히 용해될 수 없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일단은
내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은 일본에 비하여 두말할 것도
없이 대국 아닌가. 공포지. 꿩도 매도 잃게 될지 모른다는 것은 상상만이
아닐 걸세. 확장할 식민지에의 꿈-산산히 깨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손아귀에 넣은 것조차 위태롭다는, 그러니까 영토 면에서도 그렇지만
거대한 시장을 잃는다는 면에서도 등골에 땀이 흐를 지경이지. 특히
공산당의 집권을 무서워한 것은 바로 시장을 잃는다, 그것과 직결이
되는데 그럴 경우 일본은 바람 빠진 풍선꼴이 되어 순식간에 쭈그러들어.
해서 그들은 만주를 두고 염치 좋게 일본의 생명선이라 외쳐대는데
그들이현실이 그런 것만은 사실이거든. 초조해하고 서둘러대는 건 조금도
무리가 아니야. 그간엔열강들의 눈치를 살피노라 마른 입술에 침만 바르고
있었지만 이제는 눈치 따위 볼 여유가없어졌다. 여유가 없어지면 쾅, 하게
마련이지. 경제 공황 때문에 미국을 위시하여 세계 각국은 넋이 빠진
상태, 일본도 국내 사정이 극심하고 보면 정치, 경제, 사회풍조, 게다가
혁신 세력의 표면화, 흉작에 허덕이는 농촌, 기아선상에 있는 임금
노동자, 중소기업은 쓰러지고 대기업조차 흔들리는 혼란은 당분간
수습하기 어려울 게야. 그런 제반 문제들은 꾹꾹눌러버리는 데 전쟁같이
적절한 무기는 없는 법. 한편으론 굶주린 이리떼 같은 실업자, 중소기업,
중류 이하의 민중들 대다수는 신천지를 향할 듯 고무하는 국책에
자포자기의 동의를 하게 되는 게지."
"실업자가 백반이 넘는다면, 농촌이 피폐해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련만."
임명빈은 기대하는 것도 아닌 어투로 말했다.
"그 기대는 일본 내의 혁신 세력이 가져본 기대였었지요. 그러나
적당하게 문명의 물을 마셔본 일본인들은 철저하게 통속적 타성에
빠져버렸고, 네, 감상이라 해도 무방하겠지요.껄껄한 구석이 없어요. 글너
특성이 쉽게 전쟁으로 동화돼가는 겁니다. 예를 들어 "깅구"라는 대중
잡지 말입니다. 이게 보수적인 오락집니다. 권선징악에 에로를 가미한
그런 성격인데 백만 부의 판매 부수를 가지고 있다니까 놀랍지 않습니까?
철저한 통속성이 통속적 독자를 부르는데 그 책 구매자는 대체로 혁명의
저해 분자로 봐야 할 겁니다. 그 잡지뿐일까요? 대부분 일본의 문화
형태를 그 범부에 넣고 생각하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런노래가
있어요. '장발의 맑스 보이 오늘도 안아보는 붉은 사랑', 공산주의자도
그런 달콤한사탕으로 발라버리는 게 일본의 국민성이지요. 녹두장군
전봉준을 두고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하고 노래한
조선의 농민들과는 시대적 차이도 있겠으나 기질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지요. 뚝뚝하고 까끄러운 조선의 민중들하고는 말입니다."
임명빈은 조찬하의 얘기를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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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0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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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익
17.07.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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