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그림이 올라온 곳 :
https://www.youtube.com/watch?v=OQaVlRX6pyQ
▶ 옮긴이(잉걸)의 말 :
나는 ‘미스르(영어 이름 “이집트”)의 메르(“피라미드”)와 스핑크스와 투탕카멘의 황금 유물들과 신전들을 보고 감탄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보았어도, ‘배달민족의 중세(나는 서기 4세기 ~ 7세기를 “중세”로 보지, “고대”로 여기지는 않는다. 이는 윤내현 교수가 고조선 시대 이후를 “중세”로 보자고 제안한 사실과, 김상 교수가 서기 4세기 이후를 “중세”로 보자고 제안한 사실을 따른 것이다) 유적인 대릉원이나 중세 유물인 계림국(鷄林國)의 유물들을 보고 감탄하는 미스르인 관광객들’은 –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 이집트 편>을 보기 전에는 – 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분 좋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서 이 움직그림을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내가 이 움직그림을 소개하는 데에는 다른 까닭도 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북아프리카의 나라고, 콥트인과 아랍 무슬림이 사는 나라인 미스르 사람들이 종교와 인종과 민족과 국적을 뛰어넘어 계림국과 중기신라(황룡사 목탑은 중기신라 때인 서기 7세기에 세워진 건축물이니까)의 유적/유물/문화에 감탄하고 그것을 칭찬할 수 있다면,
- 이는 ‘순혈’ 한국인이고, 국적도 한국이며, 태어나서 자란 곳도 한국이고, 콥트인도 무슬림도 아랍인도 아닌 내가 옛 헬라스 땅에 건너가 식민지를 세우고 원주민에게 문명을 갖다준 옛 케메트(Kemet. ‘이집트’의 첫 이름. ‘검은 땅’이라는 뜻이다. 이는 한국과 조선 공화국[수도 평양]의 첫 이름이 ‘배달국[倍達國]’인 것과 같다)에 관심을 품고, 케메트의 민중문자에 흥미를 느끼며, 세소스트리스 파라오의 정복전쟁을 살펴보고, 임호텝의 메르 건설이나 의학 연구를 파헤치고, 네두 메테르(흔히 ‘신성문자’로 불리는 미스르의 상형문자)가 나타난 사연을 배우고, 중세 카이로의 번영이나 맘룩(맘루크) 왕조의 몽골군 격퇴나 나지브 마흐푸즈 작가의 소설들에 찬사를 보내는 것과 같다 –
이는 “문명과 문명의 만남”이나 “문명 간의 대화”가 민간인인 관광객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나아가 그것이 문명의 교류나 “문명의 공존”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의사가 말했듯이, “우리는 이해하는 동시에 이해되어야”하며, 이 움직그림에 나온 미스르 관광객들의 한국 갈마(‘역사’)/문화 이해와, 내가 이 글을 통해 – 그리고 다른 글들을 통해 – 소개한 나의 미스르 갈마/문화 이해는 그 말의 옳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여러분은 그 점을 생각하면서 이 움직그림을 봐 주시기를 바란다.
- 단기 4357년 음력 4월 16일에, ‘우리는 “문명의 충돌” 대신 “문명과 문명의 만남”과 “문명 교류”와 “문명 간의 대화”와 “문명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세계 시민의 자세다.’하고 생각하는 잉걸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