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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9.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윤호영목사
우리 함께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24장 14절에 있는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24장 1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시작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아멘 우리 함께 기도하고 우리 요한계시록 공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시고 저희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 말씀 속에 있는 참된 복음과 참된 진리로 돌아갈 수 있는 소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예언이 저희의 인생을 지도하셔서 저희 속에 있는 염려와 걱정을 지워주시옵소서!
이제 성령께서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령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성경 말씀은 이 세상의 끝이 오기 전 바로 직전에 있을 사건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짐승의 표도 어떤 사건보다도 이 세상에 완전한 예수님의 재림이 이 땅에 올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이 땅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슈퍼컴퓨터에서 계산을 해봤을 때 불가능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숫자보다. 태어나는 숫자가 더 많고 기독교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보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지는 현실 속에서 일은 불가능하다라고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오순절 초 이른비 성령의 역사하심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 늦은비 성령의 역사로 이 일들을 가능케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예언은 바이러스가 더 창궐하고 은행이 파산하며 재난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이 마지막 징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일들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에 부르신 사람들을 사용할 것이고 이 일들을 통해 온 세상이 하나님의 빛으로 밝아지는 때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데리러 이땅에 오실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
복음이라고 하는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경험하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하는 이 말씀을 복음이라고 하는데 그 복음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침례 공부를 했다고 해서 내가 온전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침례를 통해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더 하나님께 자랑할 수 있도록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성경을 연구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성경을 통해 깨닫게 되는 참된 복음과 참된 진리를 통해 그 사람을 어떤 성도로 만들어준다고 하시는 거예요
재림 성도입니다. 이 재림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의 소망을 가진 사람이 참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공부가 또 따로 있습니다. 그 공부는 바로 예언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마지막 대에 일어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지키시고
사단이 우리를 어떻게 공격하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말씀들을 예언의 말씀을 통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공부를 하는 사람들만이 마지막 때의 구원의 확신과 마지막 남은 무리로 불리우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되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말씀을 살펴보면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을 한번 마음속으로 답변해 주시길 바랍니다.
누가 짐승의 표 환난과 일곱 재앙을 통과할 것인가
어떤 성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인가
누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것인가
예수님이 오실 때 누가 그분의 얼굴을 대면할 것인가
이 질문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계시록 7장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내 천사가 땅 내 모퉁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뉴스를 읽기만 하면 사건 사고가 전례에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사방의 바람을 붙들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바람을 붙들어주시고 온라인이라고 해도 지금 장막 부흥회가 각 합회별로 미주에서 장막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영감의 말씀들을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시간들을 허락하시는 걸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은혜 시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기간을 통해 우리의 임하에 하나님의 사람들의 임하에 뭘 쳐주시려고 하는 거예요. 인을 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봄에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돋는 대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내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노란 글씨입니다. 시작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임하에 뭐 할 때까지 인치기까지 그러니까 이 사방에 바람을 붙들고 있는 내 천사가 언제 그 손을 딱 놓는 거예요. 그 이하에 몰 칠 때까지 인을 칠 때입니다. 성경은 디모데후서 2장 19절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인치는 세 가지 과정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견고한 터가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을 맞을 성도들의 특징은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감정으로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기분이나 내 습관이나 내 생활의 행동을 벗어나 성경 위에 바로 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그 임아에 인을 쳐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인침이 있어 주께서 자기 백성을 뭐 한다고 하셨어요. 아신대요. 그럼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내가 안다. 이 사람은 나의 사람이다. 이 사람은 증인이다라고 하는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부리에서 떠나는 사람입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죄는 지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물과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도 여전히 육체의 욕심과 욕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연약한 우리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더라도 그 죄를 미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우리 임아에 뭐가 쳐진다는 거예요. 인이 쳐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불러주신대요. 저 백성을 내가 뭐 한다고요. 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오장 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뭘 이루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육체와 시작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어디에 어디에요.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욕심과 종용을 십자가에 못 받게 되기를 결심하시겠습니까 그 의지를 성령께서 붙들어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고하시겠습니까 그 간절한 심령을 가진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늦은 비 성령으로 옷입혀주실 것입니다
오늘 그 믿음을 가지고 우리 일곱 교회에 전하는 편지 그 기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폈던 내용이죠 계시록 1장 11절의 말씀 일곱 교회의 편지를 합니다. 왜 일곱 교회를 선택했다고 설명드렸어요. 일곱 교회의 위치가 당시 위치하고 있는 비중이 매우 중요한 교회였다라고 제가 설명을 드렸었습니다
주요. 도시에 교회였으며 인구가 많고 영향력이 큰 교회였어요. 지금 이 지역을 보시면 지역과 지역이 만나는 위치예요. 그래서 이 편지가 전해질 때 빨리 전해지며 신속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수 있는 일곱 개를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그 이름마다. 오늘 우리가 에베소 교회를 살필 텐데요. 그 이름마다. 그 의미와 그 상황을 드러내는 명확한 특징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떻게 쓰여졌다고 했죠 교차 대구법으로 쓰여졌습니다. 이것을 카야짐이다라고 우리가 함께 배웠었는데요. 지금 보시는 이 그림을 화살표가 두 개가 나오는 것을 같이 눈으로 따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계시록 전반부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계시록 12장부터 이어지는 장면은 종말적인 부분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살폈던 그림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시는 분들은 요한계시록 강의 삼강과 사강을 복습해서 들으시면 이 말씀을 명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장면 속에서 지금 빨간색 박스 안에 있는 이 일곱 교회를 오늘 우리가 살필 것입니다
이 일곱 교회도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모든 방식은 다. 타이아짐입니다. 맨 앞과 맨 뒤가 갖고 중간과 중간이 이 네 가지는 가운데 있는 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방법 그것을 교차 대구법이라고 하는데요. 일곱 교회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기술했습니다. 한번 볼까요
서머나 버가모 두 아들이랍니다. 그럼 카이아짐이니까 옆으로 똑같이 올라가겠죠 버가모하고 어느 교회가 사대 교회가 서원학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가 에베소와 라오디게아 교회가 병행해서 똑같은 내용들을 강조하며 기록하고 있는 편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와 라우디계학 교회는 사랑을 잃은 교회로 대표하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유일하게 책망이 없는 두 교회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버가 모아 4대는 죽어가는 교회를 의미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두아디라인은 이 가운데 웅축되어 있는 두 배의 기별이 쓰여져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일곱 교회에 정리된 내용입니다
일곱 교회의 편지를 쓰는 사도 요한의 상황과 형편을 잠시 살피겠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십자가에서 제자 요한에게 뭘 부탁하셨었죠 내 어머니다라고 하는 장면 기억하시나요. 요한복음 19장 2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대 보라 내 어머니라 하신데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이니라 그 제자가 누구예요. 요한입니다. 요한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가서 모십니다.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이 있기 전 요한은 에베소로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이주해서 살았던 지역이 바로 에베소입니다
그러니까 살았던 동네니까 그 지역에서 잘 알까요. 모를까요. 제가 이 대한민국 전체 땅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잘 아는 땅들이 있죠 이문동 잘합니다. 삼육중앙 근처 잘합니다. 삼육대학교 근처 잘합니다. 저기 영월 잘합니다. 왜 알까요
거주하고 살며 생활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사도요한이 에베소교에 편지할 때 더 간절한 심정으로 쓸 수 있을까요. 그 교회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를 지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사도요한이 직접 지도했던 교회였기 때문에 초대교회 중심 교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교회의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내부 사정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도 요한이 그 교회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이야기 붉은색 반점 보이시나요. 이것이 바로 에베소입니다. 단모섬에서부터 90키로 떨어진 지점 이 일곱 교회의 예언의 네 가지 특징이 있다고 설명드렸죠 첫 번째는 각 시대의 교회 이름마다
특별한 의미와 경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그 장면을 하나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각 시대 교회마다. 예수님의 무엇이 있다고요. 칭찬이 있습니다. 왜 칭찬이 필요할까 은하수 교회의 칭찬이 필요할까요. 필요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교회일수록 또 초대교회 건축하는 교회일수록 칭찬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책망도 필요할까요. 칭찬만 받으면 무엇이 잘못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책망도 예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교회마다. 사탄이 거짓 선지자로 누구를 공격해요. 교회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그 당시 교회에 전하는 기별과 각 시대에 보내는 기별과 각 개인에게 보내는 기별이 있다라고 설명을 드렸죠
이 장면의 이해를 위해서 어떻게 그당시 교회에 보낸 편지가 오늘날 우리 교회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그 장면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마태복음 이사장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 교회 역사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던 중에
제자들이 질문합니다. 어느 때 질문했다고요. 예루살렘 멸망에 대해서 이야기하실 때 제자들이 뭐라고 질문했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노란 글씨 한번 같이 읽어주시겠습니까 또 뒤에 임하심과 시작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릴까
지금 뭐 할 때 질문한 거라고요. 뭐 할 때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 제자들이 뭐라고 질문했어요. 세상 끝에는 종말 때에는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하는 질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멸망을 예로 들며 세상 역사의 종말에 대해서도 동시에 이야기한 것이다라고 성경 주석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일곱 교회의 편지를 하시며 그 영적 상태의 기준을 시대 시대마다. 또 각 개인에게 전하시는 말씀으로 기록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살피는 일곱 교회는 단순하게 수천 년 전에 있었던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 교회에 있는 오늘 나에게 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1장 19절에는 사도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본 것과 이제 있을 일과 장차될 일을 뭐하라고 하셨죠 기록하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일곱 교회에 대한 진단 신약 시대에 대해 전개되는 역사의 마지막 시대 교회 실질적인 이야기를 기록하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선하게 싸움이라는 걸 우리가 살펴지요. 선악의 싸움입니다. 중간이 없어요. 선학의 싸움은 중간이 없어요. 어느 편에서든지 반드시 한 편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선은 여자와 여자의 후손의 편이고 악은 뱀 용 용의 후손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편에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도표를 놓고 어느 편에 서시겠습니까라고 이야기하면 선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인 우리의 생활 속에서 돈과 명예와 권력과 자녀와 가족과 연관되는 일들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고민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기억하셔야 될 것은 하나님의 싸움에는 선하게 싸움에는 뭐가 없다고요. 중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명확하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은 지는 듯하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지만 반드시 뭐하는 겁니까 승리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아무리 강력해 보이고 그 힘이 아무리 세 보여도 그 편은 반드시 멸망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의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셨고
발견한 진리에 목숨을 걸고 순종하는 믿음과 인내를 가지라고 우리에게 건면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뱀은 사탄은 그 여자를 멸절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피박합니다. 그 여자 교회는 살아남기 위해 목까지 걸었어요. 목숨까지 걸었어요. 예수님께서 그 백성을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교회가 세상을 핍박하는 세력과 싸우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뭐라고 하냐 하면 기독교회 사라고 부르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이것이 한 기간만 있었던 게 아니라 시대의 시대마다. 끊임없이 교회를 죽이려고 했던 사단의 세력과 그 세력과 싸우기에 뭘 걸었다고요. 목숨입니다. 그냥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게 아니라 진리의 말씀 위에 견고있어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뭘 버릴 생각으로 따라간다고 했죠 목숨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뭐라고 했죠 내 개명을 지키라고 하셨죠 그리고 성경에서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내 뜻을 다하고 뭘 다하라고 그랬죠 목숨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그다음 뭘 다하여 목숨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시대별 일곱 교의 경험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이 일곱 교회의 이야기는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 하나님의 백성들도 뭐 할 수 있는 거예요. 넘어질 수 있어요. 교회를 잠시 떠날 수 있어요. 교회를 비만 할 수 있어요. 교회 안에 새로운 걸 가지고 들어와서 분란의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교회를 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책망하셨고 그때 칭찬하시며 그를 붙들어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온전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의인은 뭐 하겠다고 그랬어요. 일곱 번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손에 의로운 오른손에 그들을 붙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 그 말씀들을 하나씩 확인해 보겠습니다
에베소 교회입니다. 31년부터 100년까지 이 시대는 에디 31년은 언제냐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던 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50일이 지났을 때 무슨 사건이 있었어요. 오순절 성령의 역사 사건이 있었죠 교회가 뜨거운 성령의 붕으로 하루에 몇 명씩 침례받는 경험이 있었죠 3천 명씩 침례받는 일들이 있었던 시대가 바로 이 시대입니다. 무슨 교회 에베소교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백년 사도들이 순교당하기 시작합니다. 그 시대를 우리는 사도 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근데 이 시대를 사도행전의 말씀을 살펴보면 염병의 시대와 같다라고 이야기했어요. 염병 뭐예요. 코로나 바이러스도 연병이죠 어떻게 퍼지는 거예요. 순식간에 퍼지죠 복음이 어떻게 퍼졌대요. 염병처럼 펴집니다. 그 당시 로마 당시에 로마의 600만 명이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이야기했어요. 무슨 말이에요
수백만 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사랑하며 말씀 위에 바로 서는 일들이 있었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에베서 시대입니다. 그러니 사단이 볼 때 가만히 두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죽여야죠 뿌리째 뽑아야죠 그 시대가 바로 서머나 시대입니다. ad 100년부터 3013년까지 기독교를 공인하는 이 시간까지 어떤 시대가 시작되냐면 박해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 어떤 시대도 이렇게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죽였던 시대가 없었어요. 교회를 나가면 벌을 주는 시대가 아니라 잡았다가 한 번의 기회를 줬습니다. 어떻게 기회를 줬는지 보십시오 마지막 때에 이런 역사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서 들으셔야 합니다
잡아 왔습니다. 바로 원영 경기장에 넣지 않았어요. 한 명씩 물었습니다. 당신 교회에서 장로님이셨다면서요. 지금 가정에 지켜야 될 자녀들 아직 있잖아요. 당신이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안 됩니다. 지금 기회를 줄 텐데 여기 술잔이 있습니다. 이 술잔의 술을 따라서 황제 상 앞에 넣고
절을 하면서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나는 오늘부로 예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면 당신은 삽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 마음의 갈등과 고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미 하나님의 이은 우리 마음과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의 마음에 충만히 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 내가 지키는 게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 내가 지키는 겁니까 내가 잘해야 우리 자녀들이 살아나는 겁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죠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겁니다. 그때 꼭 기억하셔야 돼요. 이 때가 마지막 믿음의 결단의 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가지고 순교의 자리에 걸어가게 된 거예요. 근데 화가 났을까요. 안 났을까요. 엄청 화가 났겠죠 이 그림들 보셨죠
이 그림을 볼 때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단순하게 그냥 화용을 시켜 죽이고 사자에 물려 죽었다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역사적인 사건들을 다시 찾아보니까 사자에 물려 죽으면 사람이 너무 빨리 죽는데요. 그러니까 이 로마의 군인들과 황제가 어떻게 죽였냐면 들개때 이리때 늑대대를 보내서
순간순간 살점을 뛰어먹게 죽이고 순간 순간 목숨이 붙어 있는 겁니다. 몸은 뜯겼는데 아직 살아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을 사람들을 통해 지켜보게 했고 죽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그 순간이라도 변질된 마음을 갖기를 소망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사람도 마음 가운데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며 그 시대에 변질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믿음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음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은 뭐하지 않는다고요. 죽지 않는 것입니다. 왜 안 죽을까요. 복음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살아계신 하나님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가파도끼아라고 하는 터키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대린쿠유라고 하는 곳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대린쿠유라고 하는 곳은 지하도인데 무려 80미터나 들어가는 지역입니다
제가 그런데 그때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여러 개가 있었지만 그 밑이 도입니다. 그 사람들은 복음을 선택하기 위해 햇빛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섬기기 거기 하루 이틀 숨을 여고 간 곳이 아니라 거기서 평생 살겠다고 결심하고 들어간 사람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얼마나 넓은지 몰라요. 도시였어요. 제가 더 깜짝 놀랄 많았던 사실은 그 안에 침대 탕이 있었어요. 침례를 그 당시에 어떻게 받았느냐면 물로 침례를 경험했습니다. 그 지하 세계에 뭐가 부족했을까요
물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탕이 있었다고요. 김의 탕입니다. 물로 하나님께서 경험하신 구원의 길을 그 침례를 경험하는 일에는 햇빛도 포기하며 먹는 물도 포기하며 하나님의 복음은 죽지 않는다는 그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걸어갔던 믿음의 선배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인을 맞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상에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목적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린다라고 하는 그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걸어가야 그 결단의 순간
다니엘과 새 친구의 믿음뿐만 아니라 대린쿠유 밑에 들어가 평생을 햇빛을 보지 않고 살지라도 일대에 물려 죽을지라도 화영의 처에 십자가에 달려 죽을지라도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과 하늘에서 만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그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바로 버가모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이 버가모 시대의 이야기를 살피면 313년부터 538년까지 교회의 세속화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삼백13년 밀라노 칙령이 내리자 교회가 자유함을 얻게 되면서부터 교회는 서서히 타협과 타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때 외쳤던 음성이 무엇이냐 하냐면 마음대로 믿어라라고 이야기했어요. 재산이 불어났죠 많은 이교도들이 몰려옵니다. 이교도들이 개종하여 들어오지만 원래 있었던 교인 수보다. 들어온 숫자가 더 많아지기 시작한 곳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습관과 생활 방식과 종교관이 금방 고쳐질까요. 안 고쳐질까요. 안 고쳐집니다
점점 힘을 얻다가 명목상 교인들이 교회에서 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교회도 수석 장로님이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교회도 선교 회장님이 바로 서야 올바른 교회의 선교 방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침례 받은 지 얼마 안 됐지만 교회 열심히 출석한다는 이유로 아직 세상의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분이 교회 지도자가 되는 순간 교회는 여러 가지 혼합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했던 방식으로 교회에서 일하려고 하고 세상의 마케팅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 순간 교회가 변질되는 이상한 모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어요. 버가머 시대였어요. 이교 풍습이 들어옵니다. 태양신을 섬길 때 부활절이 있었는데
예수님도 부활했으니 예수님의 뭘 만들자는 거예요. 부활절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태양의 탄생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뭘 만들자는 거예요. 예수님의 탄생일을 만들자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된 날이 바로 12월 25일 크리스마스입니다. 태양의 탄생일입니다
우리는 태양신을 섬길 때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는데 예수님을 의의 태양이라고 하니 예배일을 무슨 날로 바리죠 바꾸자 선데이 무슨 날 일요일로 바꾸자 이때 진실한 기독교인들은 사라지고 그 사람들은 묵인하고 있었어요. 그것이 올바른 믿음이 아니에요. 잘못된 것을 잘못 됐다고 이야기하며 그 기준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어야 돼요. 성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목숨을 하나님께 드린 백성들이 있어야
암묵 시대의 빛이 있는 것입니다. 로마 감독이 점점 힘을 얻기 시작합니다. 감독이 굉장한 힘을 가지게 되자 황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렇게 탄생된 단어가 교황입니다. 누구도 무서워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황제도 무서워하는 사람 교황이 되었어요
이게 역사적인 사건이에요. 교황이 힘을 점점 얻다가 반대 세력을 완전히 꺼꾸러뜨렸던 시대가 동고투족을 무너뜨리는 전성 시대가 바로 538년입니다. 그럼 이때부터 뭐가 시작된 거예요. 로마 교황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이때로부터 시작되는 천년기를 뭐라고 부르냐면 종교 암묵 시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천년 종교 암옥시대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릴게요. 지금까지는
사탄이 교회를 죽이고자 사탄과 용이 죽이고자 했어요. 그런데 지금부터는 천 년 동안은 여자가 여자를 죽입니다. 이 여자는 어떤 여자냐면 배도한 여자가 정결한 여자 여자는 뭐라고 했죠 교회라고 했죠 배도한 교회가 정결한 교회를 죽이고자 하는 이야기 그것을 계시록에서는 음료라고 표현합니다
비슷하게 생겼어요. 왜요. 겉의 이름은 다. 뭐예요. 교회이기 때문이에요.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힘이 큰 교회가 작고 소수인 교회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두아디라의 이야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당시 유럽에서 오천만 남미에서 오천만이 죽었다라고 역사는 이야기합니다
일제히 쓸어버리려고 했던 이 시대에 마태복음 10장 삼십육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군이라 왜 이렇게 이야기했을까요. 교회가 교회를 죽였기 때문인데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이라고 시작한 게 아닙니다. 성경을 읽다. 보니까 잘못된 것이 있어서
위템베르크 대학 강당문에 붙여놓은 98개의 잘못된 교리들을 붙여놓으니 그것이 불씨가 되어 일어난 것이 1517년 종교개혁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은 바로 사대 이야기입니다. 사대 시대는 종교개혁이 일어나는데요. 이 시대를 개혁 시대라고 부릅니다
루터 종교개혁 시대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으로 돌아가려는 순결한 여자와 이미 배도한 여자가 피나는 투쟁을 연속해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배도한 여자를 대표하는 교황의 권력은 1798년 교황 비오육세가 나폴레옹 장군 빌티오 장군에게 포로로 잡혀감으로 일단락이 나는 듯 싶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뭐라고 했죠 죽은 듯하나 다시 뭐 하겠다고 그랬어요. 살아나겠다라고 이야기했죠 교황의 몰락이
성경을 대량으로 보급하며 생산하기 시작하는 라티노 성경과 성경이 번역돼서 시작되는 이야기 그 시대가 바로 사대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대 빌라 델비아 교회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179이 1755년부터 1844년까지 지성소 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어떤 운동이 시작됐습니까 종교 재림 운동 시대가 시작됩니다
제가 이 조사 심판에 대해서는 계시록 공부가 끝날 때쯤에서 아주 연속적으로 4편의 설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죠 왜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복음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기다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성경이 보급됐기 때문이에요. 성경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신약 성경에 삼백 번 이상 기록되어 있는 단어 재림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만 믿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성경을 직접 읽어보니 예수님이 뭐 하시겠대요. 다시 오겠다. 다시 오겠다. 다시 오겠다. 일어나 머리를 들어라라고 하는 말씀들이 무려 300번이나 기록이 되어 있었어요. 그때 그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며 전세계적으로 재림 운동이 일어납니다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많은 종교들이 그 안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와 모이기 시작했죠 수많은 지도자들 목사들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천8백44년을 향해 전진 전진 전진했습니다. 근데 문제는 예수님이 오셨어요. 안 오셨어요. 안 오셨어요. 무엇에 대한 부족이었죠 성서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 성서에서 봉사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이 성서에서 어디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이 지성서로 들어가고자 하는 그 사역의 의미를 명확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대실망을 경험하였고 알곡과 가라지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코로나 사건 이후에 교회 안에 여러 분파가 생기게 되겠죠 교회 안에 밥을 먹지 못하지 또 여전히 뭐 먹으라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때 교회가 한 마음을 품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왜요
성경이 그런 일들을 예언했고 역사적으로 그런 일들이 반복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실망을 경험한 이후에도 새부르를 검험됩니다. 예수님 안 오나 보다. 하고 포기한 사람들과 내 삶 속에 예수님을 믿긴 믿지만 이제 내가 온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라고 하는 사람들과 자기의 교단으로 원래 돌아간 사람들 예수님을 완전히 떠난 사람들 세 번째 사람들은 다시금
오시지 않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간절한 심령으로 예수님을 향해 더 전진해 나갔던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도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 살려고 하는 부류와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내 믿음의 구원으로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며 성령을 갈급해하는 심령의 사람들이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광신주의라고 이야기할 거예요. 그때도 그랬거든요. 그러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말씀을 들고 견고한 반석위에 서서 예수님이 그 사람들을 뭐 한다고 했죠 내가 너를 안다
부리에서 떠나는 그들에게 머리에 인을 쳐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가 라우디기아교의 이야기입니다. 근데 지금 라오디기아 교회 다음에 교회가 있어요. 없어요. 별한 끝에 선 것입니다. 더 이상 교회가 없어요. 이 교회 다음엔 교회가 없어요. 이 말은 무슨 말이에요. 예수님의 재림만 남은 것입니다
처음에 읽었던 말씀 기억하시죠 어느 때 끝이 오겠다고 했어요. 이 복음이 어디까지 전해지면요. 세상 끝까지 전해지면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이때를 조사심판 시대라고 부르는데요. 이 시대에 있는 일은 아이 예수님이 오셔서 여자 예수님 피로사신 교회가 하늘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는 시대 그 시대가 조사 심판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삼 무슨 선택을 하든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삼 어떤 길을 가든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길을 가는 삶 그 삶을 훈련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
이 일곱 교의 편지 이야기 중에 오늘은 에베소교회를 살피고 오늘 말씀을 줄이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름의 뜻이 부러워할 만한이란 뜻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누가 세운 교회입니까 3차 선교 여행에서 사도바울이 3년간 머물러서 온 열정과 힘을 다해 섬겼던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리고 아덴이 신상을 뒤덮었던 곳이고요. 은장색의 대소동이 있었던 곳이고 사도바울이 오기 전에 이미 아볼로와 브리스길라가 전도의 열정을 냈던 곳입니다. 그리고 바울에 이어 누가 목회를 했던 곳입니까 디모데 목사님이 목회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생활하며 지도했던 초대교회의 중심지 그래서 에베소교의 이름의 뜻이 뭐예요. 부러워할 만한
그리고 ad 62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의 편지를 쓰죠 그게 성경 에베소서입니다. 그런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께서 어떤 칭찬과 어떤 책망을 하셨는지를 우리 함께 살피겠습니다. 에베소 교회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뭘 붙잡고 계시대요.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근처 때 사이를 걸어다니시는 니가 이르시대 지난 시간에 이 내용 구체적으로 살폈기 때문에 설명 없이 넘어가도 되겠죠 지난주 설교를 반복해서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이어지는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시작
내가 내 행위와 수고와 내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내가 뭐 했다고 되어 있어요. 내가 드러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일까요. 에베소교회의 신항을 회복하라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신항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심적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내 고집과 편견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으로 서 있던 사람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고치라고 하면 단순하게 고쳤던 사람들 그 교회에 어떤 칭찬을 하고 계셔요. 자칭 사도라 하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내가 드러냈다라고 이야기했죠
어떻게 하면 거짓 사도가 하는 말을 분별할 수 있을까 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도행전 17장 11절에 있는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유명한 말씀이죠 이 말씀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으로
이 말씀이 어떤 장면이에요. 바울이 강론을 했대요. 이 말씀을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읽었구나 이 말씀이 아니에요. 날마다. 성경을 상구했다라는 말은 비교 대조하며 그 사람과 토의했다. 이 말이에요. 이 말은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검증했다. 이 말입니다. 성경 공부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낸 사람들이 아니라 잘못된 성경 말씀을 구약과 신약을 대조하며 연구해서 누가 설교하더라도
사도바울이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강론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인가요. 설교를 듣고 강론하고 논증했다. 그 이야기 듣고 좋아할 설교자가 누가 있겠어요. 근데 예수님은 그것을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왜요. 마지막 때 거짓 사도들이 교회를 혼탁하게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때를 대비하여 성경을 성경대로 읽을 수 있는 믿음을 성장시키기를 기대하셨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주는 성경 말씀만을 듣고 아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저 성경이 성경적인 말씀인지를 알고 안식일학교 교과 공부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읽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느 교회 사람들이라고요. 에베소교의 사람들이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런 신앙을 칭찬하십니다. 상고한다라는 뜻은 면밀히 조사한다
심사하다. 연구하다. 그리고 연구하는 것으로 끝낸 사람들이 아닙니다. 마침례 모한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어요. 마침례 발견한 진리를 모한 사람들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또 칭찬하십니다. 또 내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내가 안다
내 이름을 위하여 견뎌다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산다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했을 때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을 찬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나는 점점 작아지고 예수님이 점점 커지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삼육대학교 옆에 큰 산 하나 있지요. 그 산 이름이 불암산이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제가 춘천에서 서울을 가끔 갈 때 삼육대학 후문으로 가다. 보면 처음에 운전을 하다. 보면 불암산이 커요. 작아요. 운전을 할 때 보면 얼마나 작은지 몰라요. 손바닥으로도 가려줍니다. 얼마나 작아요. 손바닥으로도 가려져요. 그런데 그 산의 특징이 뭔 줄 아십니까 산에 가까이 가면 가까이 갈수록 점점 산은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산에 진짜 등반을 하기 시작하면 앞도 산이고 옆도 산이고 좌우도 모두 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런 것입니다. 멀리 있으면 엄지 손가락 하나로도 가려집니다. 그럼 누가 더 커 보이는 거예요. 내가 큰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가까이 가까이 가까이 갈수록 예수님은 커지고 나는 작아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께 호소합니다. 매일 저녁 매일 아침
시간이 날 때 교회에 와서 기도하십시오 물론 집에서도 기도할 수 있고 일터에서도 기도할 수 있지만 교회에 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기도를 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만나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아픔과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겠습니다. 에베소 교회
니골라라고 하는 당이 생겼어요. 니골라라고 하는 사람이 누군가 성경 사도행전 6장을 살펴보면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이 누구예요. 니골라입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하면 무슨 사람들인지 우리가 알고 있죠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스데반하고 동급인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누구였냐면 니골라였어요
근데 그 한 순수한 집사가 완전히 돌아서자 교회를 두쪽내는 사람으로 주동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게 니골라당입니다. 니골라당이 뭘 지도하고 뭘 강조했는지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니골라당은 그 당시 지식을 추구하고 지식 위기의 신앙을 추구했던 영지주의 사람들입니다. 밑에 글씨를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구태여 육체의 정력과 욕구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없다. 없다. 해요. 지금 이것이 기독교에 완전히 만연해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입으로 한 번 믿으면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이미 구원은 뭐 한 거예요. 확정돼 있으니까 할레루야 하면 모마 하면 돼요. 아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됩니다. 그 당시에 그런 종교가 생겼어요. 교회 안에 말입니다. 너무나 순수했던 집사가 말입니다. 변질되었죠 예수님은 초자연적으로 잉태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랑 비슷해요. 예수님의 인성론이 그때도 있었어요
예수님은 침례를 받을 때 한 번 성령을 받았다가 그 다음부턴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 믿을 필요. 있다. 없다. 없다는 거예요. 율법도 십자가에 밖에서 끝났기 때문에 율법 강조하면 된다. 안 된다. 안된다는 거예요. 율법 강조주의, 율법주의자들이라고 강조하며 나왔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니골라당 사람들이었어요
영감의 글을 보면 사탄은 그 뒤에서 그들을 조종하며 하늘의 전쟁을 또 한 번 준비하였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니골라당의 주장은 한 번 믿은 죄는 죄가 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살아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말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믿음으로 하면 됩니다. 안식일 믿음으로 지키는 겁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투쟁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잠시 전 베뢰아 사람들 상고했던 사람들의 특징이 뭐였죠 비교 대조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면 그 말씀을 가운데 두고 목숨을 걸고 순종했던 사람들이 베뢰아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에베소 교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책망을 받았어요. 어떤 책망인지 보겠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뭘 버렸답니까? “처음 사랑을 버렸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며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분들은 교회를 어느 교회에 나가고 싶어할까요? 작은 교회에 나가고 싶어 할까요. 큰 교회에 나가고 싶어 할까요. 이야기를 좀 바꿔볼까요. 건축하는 교회 나갈까요. 건축이 끝나고 빚 없는 교회 나가고 싶을까요?
양심적인 대답 속에 후자에 더 마음이 가는 건 인지상정,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것은 죄가 아닐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내 욕심과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회를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는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똑같이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말로 어려운 교회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애절하게 기도하는 처음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믿음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큰 교회에도 문제 있나요? 그럼 작은 교회 문제 없을까요? 똑같습니다. 크나 작으나 갔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처음 주셨던 은혜의 사랑을 잊지 말고 간절한 심령을 끝까지 품어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교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교회가 조직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나면서 연로한 지도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자리에 쓰러져 갔다. 초대교회를 세운 열두 제자들과 사도들의 짐을 넘겨받아야 할 젊은 사역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반복되는 진리의 실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옛 신앙을 싫어하게 되었고 신기하게 놀라운 것들을 추구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교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들은 복음의 근본 원칙에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교리를 도입하고자 했다.”
많은 사도들이 순교를 당해서 죽어가자 그 다음 세대들이 그 다음 바톤을 이어받아야 했습니다. 근데 문제가 생겼어요. 예수님이 남겨주신 재림의 약속 너를 위하여 처소를 예배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잊게 하겠다는 말씀은 사라지고 에베소 교회의 나이 많은 장로들이 이야기했던 이것들은 다. 뭐가 된 거예요. 구태의연한 예전 복음으로 바뀌어 버리고 지금 시대가 오십 년이 지났습니다. 장로님 이제 좀 내려가십시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교리 새로운 교회를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복음을 찾겠습니다
그러면 회개하고 좁은 길로 가야 한다는 호소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젊은 장로들은 더 이상 피밥받는 교회가 싫어졌습니다. 가난하게 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새롭고 신기하고 더 놀라운 복음을 찾기 시작하며 옛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교리를 찾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노란 글씨만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벌였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시작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내 촛대를 뭐 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무서운 말입니다. 첫 때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 안에 진리가 있어야 하고 그 진리가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성도들의 마음과 삶에 들어가야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라는 촛대가 환한 빛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처음 사랑이 식자 진리가 사라지고 그러자 교회 안에 인내가 사라지며 불신과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교회 그 교회에 누가 온 겁니까? 거짓 선지자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반복된 형태예요. 처음 복음 처음 진리를 회복해야 되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교회에서 빛이 나와야 합니다. 빛이 나오지 않으면 그 교회는 건물이 될 것이고 건물이 된 교회는 사람만 오고 가는 장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성경에서 교회가 위기에 처할 때 반드시 당신의 종들을 보내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이기는 그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
어떤 사람들이 귀 있는 사람일까요. 말씀을 양심의 소리에 비추어 말씀을 들릴 때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한 번 눈물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침례요한이 뭐라고 이야기했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이야기했죠 제가 설명드렸죠 뱀은 뭐가 없다고 그랬어요. 귀가 없어요. 그러면 독사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 입으로 아멘은 하지만 마음으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다시 한 번 하나님은 이야기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베드로가 무리를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이 오라할 때 걸어가야 걸을 수 있는 겁니다
믿음이 있어서 걸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뭐 하라고 하셔야 돼요. 오라고 해야 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그 사랑을 회복해야 지금 이 교회가 늦은 비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치며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고 마칠려고 합니다. 지금 이 사람이 뭐하고 있어요. 나파를 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참미에서 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에게 분부하시고 명령하신 한 사건은 나팔을 들어 크게 불라는 곳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팔을 불어주십시오. 우리에게 분부하신 나팔을 불어주십시오. 그래서 이 교회가 처음 사랑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고 임재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있는 성도들이 되므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열매를 먹게 되는 저와 우리 귀한 하늘 가족들이 되길 바라며 오늘 저녁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