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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7일 아침 줄지어 기지로 향하는 사드 장비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구실로 사드 발사대 4기를 전격 '추가 임시배치'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촛불시위로 휘청거리던 박근혜 정부가 탄핵심판을 앞두고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를 들여온데 이어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4월 26일 새벽, 사드 발사대 2기를 성주 기지에 전격 배치, 이른바 ‘사드 알박기’가 진행됐다. 이같은 무리한 알박기는 김관진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이 절차를 무시하고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먼저, 사드 배치에 대해 ‘핵심 이익 침해’라며 반대해온 중국의 반발은 경제적 보복조치로 이어졌고, 한‧중 관계는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다. 그러나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시험으로 미국의 사드 추가 배치 요구 압력은 더욱 강화돼 새 정부는 미․중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출발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참여정부의 맥을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통일외교안보 분야 인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장관에 기존 관료 출신들이 포진했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은 통상외교전문가가, 1차장은 국방부, 2차장은 외교부가 나눠먹는 식의 인선이 이루어졌다.
미‧중‧일‧러 4강 대사 발탁 역시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해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을 상대하기에는 취약점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미국을 방문해 조건부 한미군사훈련 축소를 언급한 것을 두고 청와대가 부인하며 진화에 나선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트위터리안 트럼프’와 값비싼 평화비용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빈 방한해 7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집권 초기 한․미 정상회담을 서둘렀고, 6월 30일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내세우는가 하면 ‘최대의 압박’이나 ‘킬-체인’ 등이 거론됐다. 물론 ‘제재가 외교의 수단’이라고 밝히는가 하면 ‘조속한 전작권 전환’이나 ‘한국의 주도적 역할’도 강조됐다.
잇단 북한의 핵, 미사일 시험과 북에 억류됐다 풀려난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 등이 겹치면서 첨예한 북․미 간 설전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최신판인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 현실화 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트럼프’라는 독특한 개성의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을 하더라도 저쪽(한반도)에서 하고, 수천명이 죽더라도 저쪽에서 죽지 이쪽(미 본토)에서 죽지 않는다”는 발언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직접 “‘리틀 로켓맨(김정은)’과 협상을 시도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글 등을 끊임없이 올려 논란을 빚었다. 특히 “화염과 분노”, “북한 완전히 파괴”, “모든 옵션” 등을 거론해 긴장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 한반도 인근에 미국의 전략 자산들이 어느 때보다 빈번하고 강도높게 전개돼 군사적 일촉즉발의 상태가 지속됐고, 이 과정에서 ‘코리아 패싱’ 논란은 더욱 가열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를 위한 압박과 제재’, ‘전쟁 만은 안 된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 그나마 상황관리를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한 셈이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빈방문해 11월 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 각계 221개 단체와 정당들로 구성된 ‘NO트럼프 공동행동’이 11월 7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시각 청와대 앞 팔판길에서 규탄집회를 갖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지난 11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군사적 옵션 제외’를 확인했고,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지지와 “한국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한국을 건너뛰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끌어냈다.
미 항공모함 3척과 핵잠수함이 한반도 인근에 전개된 상태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의 대가는 천문학적인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적 전략 자산의 획득”으로 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한국은 수십억 달러의 (미국) 장비를 주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트위터리안’이 아니라 ‘장사꾼’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중국을 국빈방문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한‧미 양국은 올림픽 기간에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며 “나는 미국 측에 그런 제안을 했고, 미국 측에서도 지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한․미합동군사연습 연기는 발표만을 남겨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문학적 미국산 무기구입과 대북 독자제재와 사드 발사대 4기 전격배치 등 ‘트럼프 달래기’의 끝은 ‘전쟁 불가론’과 ‘평창 평화올림픽’이라는 값비싼 열매를 앞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백악관 파트너인 하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수시로 핫라인을 가동했고, 11월 14일 조윤제 신임 대사가 취임하기 직전까지 박근혜 정부의 안호영 대사와 함께 대미외교를 주도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친미․보수로 표상되는 관료 출신들이 대미외교를 이끈 셈이다.
‘10.31 협의’와 ‘힘 세진 시진핑’ 달래기
▲ 중국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확대 및 소인수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현안에 대해 협의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촛불정부가 등장하자 중국은 내심 환영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이전 보수정부의 한미동맹 우선 정책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드 알박기’를 되돌릴 수 있는 호기가 도래한 것으로 판단하고 강력한 경제보복조치로 한국의 정책변화를 압박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는 더욱 빈번해졌고, 급기야 9월 7일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까지 전격 단행됐다. 이제 거꾸로 사드라는 걸림돌을 어떻게든 우회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중국이 놓이게 된 모양새가 됐다.
9차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재선돼 힘이 세진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권위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한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어떻게든 개선해야 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척지기 보다는 끌어아는 방향을 잡은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담은 일명 ‘10.31 협의’가 발표돼 사드는 현 상태에서 봉합됐고, 한국은 MD 참여, 사드 추가배치,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NO)’을 사실상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중국측과의 협상 창구를 맡았지만, 물밑에서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문정인 특보 등 비공식 라인이 멍석을 깔아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연말 중국 국빈방문을 통해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과 회담을 갖고 ‘10.31 협의’의 조속한 이행, 즉 한․증관계 정상화의 구체적 조치를 약속받았다. 사드 보복조치의 구체적 철회가 시작된 것이다.
중국의 문 대통령 홀대나 한국 기자 폭행사건 등도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 중국을 방문해 정상외교를 편 문 대통령의 진정성은 평가받을 만 하다. 시진핑 주석의 평창 올림픽 참석 여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블루오션 신북방, 신남방 정책과 아베 초청
▲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19차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가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문재인 정부는 북․미 간 첨예한 대결이 진행된 상황 속에 남북관계는 막히고 ‘사드 걸림돌’은 치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 다변화’에 눈을 돌려 신북방, 신남방 정책을 추구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구성해 대선 당시 선대본부장을 역임하고 당선 직후 러시아 특사를 맡았던 송영길 의원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풀리기 전이라도 한-러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추후 남북관계가 풀리면 ‘남-북-러’ 경제협력으로 나아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인도네시아와 APEC 정상회의와 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가 열린 베트남과 필리핀을 방문 외교다변화와 신남방정책을 표방했다. 기존 4강 중심의 외교를 탈피, 신북방, 신남방 정책 등으로 우리 외교를 다변화한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ASEAN은 중국 다음으로 두 번째 교역국으로 사드 문제로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축소되면서 더욱 주목받는 곳으로 부상했다.
이에 비해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본격화 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사실상 합의해준 ‘12.28합의’를 두고 한․일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 방일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2월 19일 오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예방하고, 한․일 관계 및 북한․북핵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사진출처 - 외교부] |
최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일본을 방문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아베 총리가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일본 측은 사실상 ‘위안부’ 문제와 연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11월에 들어서야 4강 대사가 부임하고 ‘10.31 한․중 협의’, 11월 한․미 정상회담, 12월 한․중 정상회담 등 연말이 돼서야 겨우 큰 가닥이 잡힌 한국 외교가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살려 ‘평화 올림픽’의 기치를 실현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주인석에 앉을 수 있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여기에 남북관계 개선이 열쇠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김홍걸 민화협 상임대표의장 취임식에 보낸 축사에서 “지난 세 차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푸틴 대통령에 이어 이번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위기 극복의 큰 외교적 틀이 완성됐다고 생각한다”며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 우리임을 분명히 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큰 성과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러한 원칙을 확고하게 지켜가겠다”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