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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기차를 타고 청도역에 내려서 대합실밖으로 나가면 왼편에, 유명한 청도추어탕집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 "청도추어탕거리"가 보이고 바로 계단으로 내려가면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으로 가는 상동방면 5번
버스 정류소가 있는데 여기서 버스를 타고 '신도1리'정류소에 하차하면 됩니다(10분정도 소요)
버스정류소에서 하차후 내리막길로 내려가서 철길지하도를 통과하면 기념공원 입구가 나옵니다^^
*기행지 :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공원
*소재지 : 경북 청도군 청도읍 새마을1길 34(신도리)
*탐방코스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광장~신도리마을~새마을광장(옛신거역 재현시설)
~새마을운동 체험학습장~새마을테마파크(시대촌)
#신도마을 잘살기운동
신도마을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위치하며 일찌기 노는 사람, 술독에 빠진 사람, 노름하는 사람이 없는
3무(無)의 마을로 협동심이 유달리 강하고 부지런해 개미마을로 불리기도 했으며, 이러한 협동심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추진되기 오래전인 1957년 김봉영씨가 귀향하면서 신도마을의 잘살기운동이 시작되었는데 4단계로 추진되었습니다^*^
1)1단계사업(1957~1960) : 농촌환경개선사업
1957년 연인원 1,810명이 참여하여 폭4m, 길이2,500m의 농로개설사업을 43일만에 완공하고, 1959년부터 부엌
개량, 담장개축, 화장실개량, 실내장식 등 환경가꾸기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농촌마을을 도시생활수준으로 변화
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2)2단계사업(1961~1966) : 잘살기운동 및 가속화
1961년부터 감묘목,복숭아 등 호당평균 30주 이상으로 농가의 부업장려사업을 추진하고 아울러 1963년부터 생활개선구락부를 발족하여 절미저축, 공동구판장 운영 등 공동수익사업을 시행했고, 1964년에는 부락면모바꾸기사업을 추진, 자체예산 150,000원으로 소하천 450m에 석축을 쌓았으며 호당 1통장갖기와 마을금고를 육성하는 통장갖기운동을 전개하여 총자산이 2,000만원에 이르는 부자마을로 발전하였습니다.
3)3단계사업(1967~1971) : 간이역설치 및 마을정비
1967년 철도청과 마을주민부담을 각각 50%로 하여 총공사비 70만원을 들여 1967년6월11일 신거역을 개통함으로써 기차가 서는 마을로 발전시켰으며 마을정비를 위해 담장개보수, 지붕개량, 마을안길확장, 전기가설사업 추진.
4)4단계사업91972~1975) : 마을편입 및 도시형가옥 건축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추진되던 1972년에 희망농가에 대해 도시형가옥인 양옥을 신축하고 폭8m의 십자로를 개설하였으며, 1975년에 도곡부락 20호를 신거부락으로 편입하고 양옥25동 건립으로 총48호마을로 확대함.
##새마을운동발상지 유래
새망을운동은 1970년4월22일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제창되어 도시중심의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바,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농촌발전에 대한 연구를 지시하게 되면서 이것이 새마을운동의 시작이라 볼수있고, 1970년5월6일 구체적인 추진방안이 마련되어 본격적인 사업이 전개되었습니다.
1)일제강점과 6.25전쟁으로 살기가 더욱 어려워진 신도미을에 1957년 김봉영씨가 귀농하여 잘살기 위한 농촌을
만들기 위한 잘살기운동을 시작함
2)1969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으로 잘 정비된 신도마을을 덮치자 위기에 더욱 단결하여 전 주민이 함께 마을을
재정비함으로써 태풍전보다 더욱더 깨끗하게 정비함
3)1969년8월여름에 닥친 수해로 박정희 대촐령이 경남의 수해지역을 시찰하게 되었으며,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남녀노소 할것없이 제방보수와 마을안길을 보수하는 모습을 차창너머로 보고 열차를 정지시켜 "기왕 마을을 복구할 바에야 좀더 잘 가꾸어 살기좋은 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마을총회에서 결의하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
하여 이루었다"는 말을 듣고 박정희 대통령이 농민들의 자조 협동정신을 일깨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됨
4)1970년4월22일 한해대책 지방장관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중인 지조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마을운동을 처음으로 제창하게 되며, 특히 청도 신도마을을 예로 들며 농민의 자조노력을 갈하게 호소하여 이러한 구상을 시작으로 새마을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우리나라 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신도마을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1970년에만 제주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마을지도자 1,000여명이 마을
견학을 다녀갔으며 이후에도 전국각지에서 새마을지도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견학하게 됨
1.신도마을 안내판(기념공원입구로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안내판)
2.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공원안내도
3.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광장(공원진입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우뚝 솟은 '번영의 길' 기둥들부터 나타남)
1)기념관진입로에 설치된 "새마을운동 50주년기념 꽃탑"
새마을운동은 숙명처럼 여겨왔던 끝없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기치아래 1970년
4월22일 처음 제창한 범국민적 운동으로, 청도군은 새마을운동발상지로서 2020년4월22일을 맞이하여 새마을
운동 50주년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 앞으로 나아갈 21세기 새마을정신을 후손에 널리 전승하고자 하며 원조를 빋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유일한 나라로서 새마을운동을 전세계로 전파하는 선봉에 서서 명실공히 '새마을운동 메카'로 우뚝 서고자하는 의지를 담아 이 꽃탑을 설치하였다.
2)새마을운동상징 조형물(협동마당)
새마을운동로고를 형상화한 조형물로 주위에 설치된 5개의 벽면에 새마을운동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음
3)새마을운동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등재 기념조형물
4)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 전경
입구로비, 5개전시실, 스마트타운, 지구촌새마을운동, 야외조형물 등으로 구성
(입구로비) 희망과 미래가 태어난 도시, 청도
(제1전시실) 신도마을에서 태동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제2전시실) 새마을운동의 초석이 된 신도마을
(제3전시실) 전국으로 퍼진 새마을운동
(제4전시실) 활발했던 청도의 새마을운동
(제5전시실) 새마을운동의 기록들을 담은 사료실
(스마트타운) 첨단기술을 활용한 주민주도형
(지구촌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 한국을 넘어 세계로
(야외조형물) 신도마을과 기념관이 하나되는 공간 : 기념비/번영의 길/50주년기념 꽃탑/협동마당
4.새마을광장(기념공원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나옴)
신도정미소, 신도교복사와 이발소, 새싹어린이 조형물,박정희대통령 동상과 새마을운동 관련서적, 대통령
전용열차(복제차량), 신거역 복원역사 등이 있음.
1)신도정미소
1969년 신도마을 박종태 소유로 운영되다가 1989년 폐쇄되었고 2007년 청도군에서 인수하여 당시의 내부 도정
기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훼손된 건물외부 일부만 리모델링해 추억속의 옛날정미소를 볼수 있도록 하였음.
2)신도교복사와 이발소
3)새싹어린이 조형물(작품명 : 태동)
새마을운동은 과거세대들만의 잘살기운동이 아니라 이 나라의 기둥이 될 새싹어린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의식
운동이며 공동체운동으로써 새마을운동정신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동그란 알모양은 새생명을 상징하며
그 안에서 행복한 어린이들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상징하기도 하며, 알모양위의 초록새싹잎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
지닌 희망찬 미래가 우리들의 자손들에게 함께 하기를 염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음.
4)박정희대통령 동상과 새마을운동 관련책자
5)신거역 복원역사 전경과 역사내부모습
신거역은 청도읍 신도리와 거연리 앞글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으로, 신도마을 잘살기운동 제7차사업으로 1967년
주민들이 철도청에 건의하여 만들었던 간이역이었고 1988년 여객수요 감소로 철거되어 현재는 정차하지 않음.
6)대통령 전용열차
이 객차는 1926년 덕혜옹주가 이용한 1등 전망차를 1955년 대통령전용으로 리모델링하여 이승만대통령과
박정희대통령이 지방순시때 특별열차로 이용하였던, 등록문화재 제419호 귀빈차로 철도박물관에 보존 전시된
대통령전용 귀빈객차를 청도군에서 복제한 차량임.
7)각종체험 안내판
5.신도마을 풍경(주민들이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음)
새마을광장 맞은편에는 '플랫폼'이란 카페가 있어서 커피,차와 음료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할수 있고 새마을테마파크방향으로 가는 길엔 새마을식당이 있어서 식사를 할수 있도록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숙박 및 체험프로그램
1)숙박시설 : 1980년대 농촌모습을 재현한 9개의 기와동이 있으며 이용하기 편리한 내부시설로 꾸며져 있음
2)체험프로그램 : 인증제프로그램과 이벤트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음
*인증제프로그램 : 잘살아보세(새마을정신 함양을 위한 초.중.고등학생대상 당일형 프로그램)
*이벤트프로그램 : '구미호뎐'야간공포체험/새마을의 날 스탬프투어/감따기체험/와인터널투어/감물염색체험
홍콩할매 잡는 새마을파수꾼
6.새마을운동 체험학습장
1)'잘살아보세'관
새마을운동 당시 청도 전역의 마을단위에서 주민들이 활발하게 전개한 새마을단위사업들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수 있도록 재현해 놓은 시설로서 새마을운동의 캐치프레이즈인 "잘살아보세"를 테마로 새마을단위사업을
연출한 세트장으로 새마을회관, 새마을운동전 초가집 모습, 지붕개량, 절미가정, 부녀회저축, 마을안길 정비,
퇴비증산운동, 농로확장, 새마을창고, 공동작업장, 전기사업 점화식 등을 연출하여 새마을운동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였습니다.
2)새마을학교
7080부모님세대의 당시 교실모습 그대로를 연출하였으며 어린이들에게 새마을운동과 새마을정신을 보다 친근감있고 재미있게 체험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수해복구, 편백나무 모래놀이장, 물길만들기, 집짓기체험, 새마을
농장, 지붕개량체험, 마을 불밝히기, 분리수거체험, 희망메시지 남기기, 지구촌새마을운동, 나라이름 맞추기 등
새마을운동을 테마로 하는 어린이종합체험센터입니다.
7.새마을 테마파크(시대촌)
새마을운동 이전인 1960년대 초가집모습에서부터 새마을운동 이후인 1970년대 슬레이트집, 그리고 1980년대
개량기와집까지 시대에 따라 비뀌어가는 주택의 변화모습뿐 아니라 부엌, 실내의 가재도구, 가전제품, 장롱 등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변화를 느낄수 있는 초가집3동, 슬레이트집3동, 개량기와집9동이 있습니다.
1)초가집(1960년대)
갈대,억새,볏짚 등으로 지붕을 인 집으로 단열과 보온성은 우수하나 화재위험이 많고 특히 볏짚으로 인 것은 매년
한번씩 다시 이어야 하므로 번거로움이 있었으며, 호박이나 박을 심어 넝쿨이 지붕을 덮게 하기도 하고 고추를
수확하여 말리는 풍경은 우리나라 농촌의 전통적인 모습이 되었지만 새마을사업이 시작되면서 시멘트 슬레이트
와 기와지붕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만수할아버지
6.25전쟁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향은 찢어지도록 가난해서 이장을 맡은 할아버지는 "더이상 가난을 대물림
할수 없다"며 각오를 다지고 주민들과 힘을 모아 지역개발에 나서 담장정비,농로개설,부업장려,감 복숭아 사과
나무 심기운동을 펼쳤습니다.
**꼭지누나
가난을 면하기 위해 일하러 나간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업어 키우는 13살 누나는 아직 걷지도 못하는 동생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놀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해가 질 무렵, 마을입구 감나무밑에서 부모를 기다리는 일이 가장 즐거운 시간입니다.
**말타기놀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네친구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편을 나누어 즐기던 놀이로 차레로 상대편 아이들의 등을
올라타고 있네요^^
2)슬레이트집(1970년대)
시멘트와 석면을 물로 개어 센 압력으로 압착성형한 얇은 판으로, 지붕을 덮거나 벽을 치는데 사용되었으며
시멘트슬레이트 이음지붕은 중량이 가볍고 외관은 좋으나 파손이 심하고 비가 새기 쉬운 것이 결점입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불길처럼 번져갈때 시멘트슬레이트는 저렴한 가격과 실용성 때문에 초가지붕 개량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당시 시멘트슬레이트 지붕개량은 농촌새마을운동의 상징이자 근대화의 표본임.
**슬레이트집의 외부와 내부모습들
**새마을 꽃동산을 지나갑니다^*^
**영식이삼촌
내고장이 잘살기를바라는 마음으로 마을발전에 앞장섰는데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3무활동을 주창하고
애향단활동(동네청소,꽃길가꾸기,샘청소)도 부지런히 실천했으며 기록의 달인으로 1967년 마을안길 넓히기,
지붕과 담장개량 기록을 남겼습니다.
3)개량기와집(1980년대)
1970년에는 전국농가 가운데 80%가 초가지붕으로 당시 농촌에서는 볏짚의 대부분이 지붕으로 올라가 겨울철
소먹잇감이 모자라 풀을 베어 보관해야만 했으나 때마침 새마을사업으로 도로확장과 동력경운기의 보급으로
운반할수있게 되자 기왓장을 만드는 틀을 공동으로 구입, 이웃끼리 시멘트기와를 직접 만들었고, 지붕개량을
한뒤 초록,주황,파란색 등 원색의 페인트를 칠해 마을색깔을 바꾸는게 유행처럼 되었습니다.
1975년에는 전국 거의 모든 농가지붕이 슬레이트나 기와로 바뀌면서 농촌모습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철수
부모님을 따라 시골로 이사온 철수는 도시생활보다 놀거리,먹을거리가 많아 농촌생활에 만족하며 가끔 아버지를
따라 부역활동에 참여하여 새참을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8.새마을테마파크 관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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