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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은 각박한 현실과 피곤한 인생행로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아름다운 여백일 수 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나날의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해방이기도 하다.
또한 여행은 나날이 부딫치는 수 많은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초연한 위치에서 몸과 마음을 맡기고
평안하게 망중한의 자유룰 누릴 수 있는 혜택받은 방랑이 되기도 한다.
여행은 아울러 고달픈 인생항로에 한 가닥의 휴식을 가져다 주는 즐겁고 유익한 막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곧 나 자신의 객관화일 것이다.
사랑하는 내 가족, 내 가정, 내 일터와 이웃들, 그리고 일상의 모든것들로 부터 벗어난 타지에서
그 모든것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그 애정의 도가니 속에 자신을 투영시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것은 곧 그 모든것들 속에서의 자기 존재의 재확인의 기회이기도 하다.
산속에 살면서도 산을 보지 못하듯이 넘치는 혜택속에 있을수록 오히려 그 혜택에 둔감해지고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타지의 여행길에 나서게 되면 본능적으로 향수를 느끼게 마련이고, 내 가정, 내 가족, 내 주위의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되고 그 속에서의 나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여행은 인생의 즐거운 막간이요, 아름다운 여백이다.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아오다보니 어머님도 내가 모시질 못하고, 어릴적 돌아가신
아버님 기일마져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울산의 동생네에서 모시는 불효막심한 놈이다.
섣달 중순 아버님 제사를 모시고, 오랜만에 아들놈과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길에 나섰다.
울산시가지를 남과 북으로 나누며, 서쪽 언양의 가지산자락을 타고내려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태화강의
북편 강변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리노라면 가장 먼저 H-자동차공장의 광활함을 만난다.
새차 주행시험장의 굉음과, 누군가에게 선택되어 가기위해 기다리고 있는 야외 출고장, <Made in Korea>란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기 위해 기다리는 선착장의 수 천대의 차량들,
그리고 그 많은 차량들을 싣고 태극기 휘날리며 오대양을 누비게 될 거대한 함선들.
그것을 스쳐 지나면서 강 건너편의 석유화학단지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웅장한 굴뚝들과,
마치 거대한 조각상처럼 절묘하게 얽켜있는 파이프라인들을 바라보면서 내달리다 보면 차는 어느새 울산 동부의 명소
방어진 울기등대에 닿는다.
아름드리 울창한 해송숲과 빼어난 괴암(대왕암, 탄금바위.....)들과 천년을 넘도록 아직도 용이되어 승천하기를 기다리는
이무기가 살고있다는 그 길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용굴이 있으며 그 용굴 위에 우둑 솟아올라 차마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 많은 생을 스스로 접어야만 했던 수 많은 가련한 중생들이 생명을
버리게 한 자살바위....... 아이러니 하게도 그 자살바위에 올라서면 바로 눈앞에 수 백대의 거대한 크레인들이
마치 외계에서 온 괴물처럼 상하,좌우로 분주하게 움직이고있는 H-중공업의 광활함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 아비규환 속에서도 내 가족과 내 자신의 보다나은 삶을 위하여 발버둥치고 있는 수 많은 군상들을 바라보면서도
끝내 죽음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죽은이들...... 그들의 선택은 과연 ..???
수 Km에 달하는 중공업의 돌담길을 지나고 주전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고갯마루 정상에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다.
옛부터 바다를 타고 수시로 나타나 이 땅의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고, 아녀자들을 겁탈하고
납치해가는 저 바다 건너 못된 왜구들로 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라시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저 못된 왜구놈둘운 이 땅에 눈독을 들이며 호시탐탐 이 땅을 노리며 못된 짓거릴 하고 있다.
봉수대를 돌아 고갯길을 내려서면 드디어 짙푸른 우리의 바다 동해바다를 만나게 된다.
푸르른 동해바다를 오른편으로 끼고 구비구비 돌고 또 돌며 해안로를 달리다 보면 정자읍을 시작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해안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7번 국도에 오르게 된다.
예전에 좁고 굴곡이 심했던 도로를 산은 터널을 뚫고, 계곡은 다리를 건설하여 시원스레 새로운 넓은 길로 바뀌어
내달리기에는 더 없이 좋아 인근 주민들의 편리와 안전운행에다 시간, 연료절감 및 교통사고 감소등의 장점이 많지만,
다만 아름다운 동해안의 절경을 많이 놓치게 되는 아쉬움이 많은게 여행길의 길손에겐 서운함이 되기도 한다.
그리 넉넉한 여정이 못되는지라 아쉬운데로 시원스레 뻗은 새길로 달리다 보면 차는 금새 월성 원자력발전소를 지나
경북의 감포읍 초입으로 들어선다.
동해바다속 수중묘인 문무대왕릉과 절은 이미 소멸되고 없지만 저 유명한 감은사 절터를 만나게 된다.
천년고도 경주이 토함산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천년어린 역사의 묵은 내음을 코끝으로 음미하며
죽어 물귀신이 되어서라도 저 못되고 막되쳐먹은 왜구놈들로 부터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지키겠노라며 차디찬
동해의 바닷물속에 뭍히신 문무대왕의 나라와 백성사랑을 떠올리며 오늘날 이 땅의 위정자들을 생각하니
묵묵히 핸들을 잡고있는 아들놈 보기가 부끄럽고 민망스러워 괜시리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감포읍을 벗어나 다시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돌고 또 돌기를 수 십번을 하여 구룡포에 들어선다.
구룡포읍에서 925번 지방도로를 이용해 대보면 대보리의 등대박물관을 둘러보고, 지도상에서 흔히들 토끼꼬리라 하는
구만리를 돌아나와 구룡소암과 하선대를 거쳐 나오면 영일만(혹은 삼일만이라고도 한다.))푸른 바닷물응 들끓게 하는
거대한 용광로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철강생산국의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영일만 해안을 열기로 가득채우고 있는 제철공장이 떡하니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껏 스쳐 지나온 자동차공장, 석유화학단지, 중공업 그리고 여기 이 제철공장등......
< 이것들은 너희 할아버지(내 아버지)세대들이 황량했던 황무지를 피땀으로 개간하여 터를 닦았었고, 오늘날 네 아버지.
우리들이 젊음의 열정과 청춘을 다 바쳐 이 만큼씩이나마 이루어 놓았으니, 이제 그 모든것들을 잘 활용하고 개선하여
후손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해줄일은 너희들의 몫이다.> 라고 아들놈에게 일장연설을 하였더니,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묵묵히 운전대만 잡고 있다.
조금 이른감도 있고, 처음의 예정에는 영덕의 강구항에서 영덕대게나, 대하로 점심을 하기로 하였으나, 그래도
이 도시 포항을 지나치면서 그냥 가기가 도저히 서운해서 아들놈에게 차를 죽도시장으로 돌리라고 했다.
죽도시장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포항의 명물, 죽도시장의 특미로 잘 알려진 시원, 매콤 달콤한 (물회) 한 대접씩을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 이 도시에서 동종업종에 종사하고있는 지인에게 전화로 안부를 물었더니 기어이 만나서 저녁이라도 한 끼
같이 나누고 하루 쉬어가라는 걸 지키지도 못할 다음에라는 헛됫 기약을 남기고 빠르고 쉬운 국도 대신 배도 부르겠다, 여유롭게
동해안 절경을 즐기기 위해 20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포항의 북부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차거운 겨울바다와 얼어붙은 백사장에는 귀신잡는 해병대원들의 훈련이 창이다.
이리도 추운 겨울에 하늘의 헬기에서 차디찬 바닷물로 뛰어내려 보트를 타고, 메고 하면서 해변으로 기어오르고있는
저 젊은 청춘들은 지금 머리속에 무슨 생각들을 하면서 저 고된 훈련을 하고들 있을까?
젊은 청춘들의 훈련모습을 뒤로하고 다시 북으로 북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칠포, 월포, 화진포해수욕장을 지나면서 부터는
다시 차를 7번 국도에 올려 삼사해상공원을 끼고있는 영덕의 강구항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부터 구수한 게살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예전의 한가롭고 서정적으로 조용하던 어촌의 작은 마을이 90년대 연속극(그대 그리고 나)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조용하던 마을이 번잡한 관광명소로 변해 덩달아 강구항 대게촌도 번잡하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평화롭고 소박했던 마을이 세속에 찌들은 상술이 판치는 아수라장의 거리로 변해버렸음이 못내 서운하다.
포항의 죽도시장에서 물회로 배를 채운지라 그냥 대게 몇마리 찜하여 포장하고 냉동대하 한 상자를 추가로 구입하여 서둘러
차에 싣고 그 혼탁한 거리를 벗어나 918번과 20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북상길을 제촉한다.
구불구불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동해안의 절경을 즐기며 북으로 북으로 가다보면 어느새 차는 대진해수욕장,
명사이십리해수욕장, 고래불해수욕장을 지나고, 일곱군데의 보석같이 아름다운 비경을 품고있는 칠보산이 눈앞에 나타난다.
여정상 칠보산 산행은 못하고 대신 칠보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먼 발치에서나마 칠보산을 바라보며 또 지키지못할
다음에 오리라는 헛된 기약을 남기고 다시 북상길에 올랐다.
울릉도행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후포항을 지나고 평해읍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다보면 또 하나의 절경 월송정(越松亭)을
만나게 된다. 드넓은 금빛고운 백사장에 저 멀리 越(월)나라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여정에 지친 나그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읍내의 푸줏간에 들러 쇠고기 두근을 구입하여 포장을 하고 정종 큰병 한병까지 구입하여 강구항에서 준비했던 대게, 대하와
며칠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곶감까지 챙겨들고 사전에 미리 연락해 두었던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울산으로 유학했던
고등학교 동창놈의 집에 들어서니 반가이 맞아준다.
어른들께 인사를 올리면서 염치없이 하룻밤 묵어갈것을 청하니 혼쾌히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리고, 친구놈이 미리 준비해둔
낚시도구를 챙겨들고 근처 갯바위로 낚시질을 나선다.
이곳 해안에는 마을 어촌계에서 주민공동으로 전복,소라등의 어패류를 파종해둔 곳이라 외지인의 출입은 금지된 곳이지만
마을 주민인 친구와의 동행으로 두-세시간의 낚시질로 박카스병만한 놀래미, 게레치등.... 한 20여 마리를 잡아
친구집에서 회를 뜨고, 얼큰한 매운탕을 끓여, 대게, 대하와 쇠고기국 까지 푸짐한 저녁에다 어르신께서 권하시는지라 평소에
마시지 않던 술까지 두어잔 곁들여 저녁을 마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친구부인에다 아들놈을 대동하여 월송정 밤산책에
나섰다. 이름 그대로 월송정..... 천하의 절경에다. 섣달의 둥근달아래 천하의 월경(月景)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싶다.
검푸른 바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의 파도, 달빛에 반짝이는 금빛 고운모래, 드넓은 백사장, 아름드리 울창한 소나무,
솔숲을 헤집고 불어오는 솔바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파도소리..... 그리고 이 모든것들을 위해 맑은 밤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섣달의 둥근달, 과히 천하의 절경이요, 천하의 월송정이다.
친구 부인의 따뜻한 배려로 오랜만에 친구놈과 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지나간 긴 세월의 얘기들을 나누느라
잠을 설치기는 했으나 그래도 참으로 편안하고 정겹고 아름다운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새벽 5시경에 일어나 아직 주무시고 계시는 어른들께의 하직인사는 친구에게 대신 아뢰게 하고 10여Km를 역행하여 평해에서
백암온천으로 접어들었다.
여행 하룻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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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행후기 잘읽었심더 즐거운 여행 되시이소~~~~
구름나그네님의 넉넉한 여행후기가 마음에 와 닿지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아들과의 마지막여행이란 글귀 앞에서 마음이 철령 내려않습니다
나그네님의 현실이 어떨 거란걸 짐작을 하기에 . . . . .
부디 마음 강하게 잡으시고 힘내시길 바람니다
가슴에 간직하는 좋은 여행 되셨습니다.
여행이란 항상 설레임을 안겨 주는것인데....
동해안의 절경.친구와의 우정 어린 시간들.모두가 부러움의 대상 입니다.
감축! 그런데 글이 너무 길어 읽기가 힘드네요~~~
매끄럽고 상세하게 펼치신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여행 자주 다니시고 또 이렇게 좋으신 글 기대합니다.
나이들어 자식과 하는여행은 가슴이 따스하고 뭔가 가슴이 뭉클하더라구요.
저도 딸고 제주도 3박4일 여행하면서 한이불에서 자고 가슴깊이 있는 이야기도 꺼내고 하였답니다
남은여행도 즐겁게 즐기시고 아드님과 더욱더 돈독해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와아들여행?? ( 딸과 엄마와의 여행은)
두부류의 페센트를 보면 엄마와딸은 여행을 많이들 갑니다.
엄마없이 키운 아드님이기에 두분은 더 각별 하시리라 생각 합니다..
그래도 효자 아들을 두신거라고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여행이라고 생각하지마시고, 첫번째 여행으로 시작 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즐거운여행 자주 다니시길바라고, 후기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좀 한가하길래 구름나그네님의 비교적 긴 여행기를 다 읽어봤습니다.
모녀간의 여행은 종종 있지만 부자간의 여행은 좀처럼 드문 일인것 같은데
아들이 참 효자입니다.
읽는동안 동해안 구비구비 제작년 자전거 여행으로 5박 6일을 돌았었는데
우리가 돌아온 곳곳의 설명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이라 생각지 마시고 또 다음 여행을 생각하시며 힘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