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의 배경 시점은 2015년입니다. >
123. 진영 읍내파
“그래, 알았어! 박 사장이 직원들 감시할 CCTV 설치할 위인은 아니지. 우리 사무실에도 그런 거 설치 안 했다.”
문도가 무안하다는 듯 웃으며 강철을 달랬다.
“그날만 잠시 달았다가 떼면 되니까, 그렇게 하시지요? 설치비용은 우리 마약 수사팀 활동비에서 지불하겠습니다.”
어방배달 사무실에서 장유파가 물건과 예치금을 건네는 CCTV 화면이 확실한 물증이 된다고 말했던 정훈이, 미안해서 임시로 잠시만 달자고 제안했다.
“그러세요, 사장님! 요즘은 몰카처럼 눈에 잘 안 띄는 소형 CCTV도 많이 나오던데요. 혹시 새벽에 좀도둑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계속 달아놔도 저희는 괜찮습니다.”
어방배달 직원인 짱구까지 나서서 달아도 좋다고 했다.
-디르륵 디르륵
바로 그때, 강철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장유파 중간보스 전환데?”
강철이 의아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봤다. 아까 인사 나누고 식사하면서 곧바로 번호를 저장해 뒀던 모양이다.
모두의 시선이 강철의 핸드폰에 집중됐다.
“예, 부사장님. 박강철입니다.”
-“아, 잘 들어가셨소? 우리 사장님이 그 예치금 1천만 원을 지금 갖다 드리라고 해서요. 어방 사무실로 가면 되겠소?”
“지금이요? 아.. 제가 볼일이 있어 아직 사무실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기, 이따가 6시쯤에 오시면 좋겠습니다만.”
-“그래요? 그럼 6시에 내가 그리로 가겠소. 가는 김에 우리가 쓰던 전단지 조금하고 물건도 한 30개 함께 갖다 드리겠소. 우리 사장님이 성질이 좀 급하셔서, 하하. 이해하시기 바라요.”
“예, 잘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철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뭐래?”
문도가 궁금해서 못 참고 물었다.
“응. 예치금 1천만 원하고 전단지랑, 물건 30개를 오늘 갖다주겠단다. 6시까지 오랬어. CCTV 사다 다는 데 두어 시간이면 되지?”
강철이 오히려 결심한 듯 어서 달자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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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현금 5만 원권으로 1천만 원이요. 사장님이 일부러 은행 가서 새 돈으로 찾은 거라 따끈따끈하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우리 사장님이 박 사장님하고 거래를 터서 기분이 억수로 좋으신가 보요. 하하.”
그날 저녁 6시에, 장유파 중간보스 물소는 어방배달 사무실로 현금 1천만 원을 들고 와서 강철에게 자랑스럽게 건넸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역시 이무계 사장님은 통도 크고 인정도 많으신 분 같습니다. 금액은 맞겠지요? 여기, 보관증은 제가 미리 작성해 뒀습니다.”
강철은 돈을 세어 보지도 않고 현금보관증을 건넸다.
“이 전단지는 쓰다가 남은 거지만, 내용은 똑같으니까, 그냥 뿌리고 이 스티커도 화장실에 잘 붙이면 되요. 새로 인쇄할 거는 나오는 대로 보내드리겠소.”
장유파가 자기들 나와바리인 장유면 코아상가 사거리 일대에 뿌리던 전단지와 스티커 한 뭉치를 꺼냈다.
“어쩌면 전단지 뿌리자마자 구매요청이 들어올지도 모르요. 우리 물건이 쪼매 싸거든. 흐흐.”
담뱃갑 속에 포장된 물건 30개도 함께 가져와 조심스레 건네주며 히죽거렸다.
이런 장면은 어방배달 사무실 천정에 급히 설치한 몰카 형 CCTV에 고스란히 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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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 이정훈 경사가 지휘하는 해경 마약단속반이 김해 장유면 코아상가 사거리 북쪽 먹자골목에 들이닥쳤다.
골목 끝자락에 있는 3층 건물 ‘무계헌’ 아귀찜집을 수색했는데, 이 건물의 소유주는 장유파 두목 이무계이다.
두목 이무계와 중간보스 물소는, 강철이가 예치금 1천만 원을 선급해 준 답례로 점심 대접을 하겠다며, 김해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불러내어, 무계헌에 없었다.
수색 결과, 계단 옆 한쪽으로만 올라간 4층 이무계의 사무실에서 담뱃갑 한 개에 0.2g씩 담긴 100갑, 필로폰 20g을 찾아냈다.
필로폰 1회 투여량이 0.03g이니까, 한 갑 0.2g은 대략 1주일분이다.
매주 배달하고 한 달 4주간이면, 중독자 1명당 1개월간 소요량이 0.8g이다.
1회 투여량 0.03g인 필로폰의 소비자 가격이 비싼 건 10만 원 정도나 한다.
하루 한 번, 1주일 7회분이면 70만 원인데, 장유파가 1주일 치 한 갑에 30만 원 정도 받는다면, 절반 가격으로 무척 싼 편으로 보인다.
소비자는 1주일 단위로 손쉽게 살 수도 있으니까, 매일매일 하루살이처럼 벌어서 먹고사는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중독자들 입장에서는 부담도 적어 구매자가 많이 몰릴 것이 분명하다.
배달하려던 포장이 100갑이니까, 적어도 고객이 100명 이상은 확보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 달 소요량은 최소한 80g인데, 적어도 이번에 진주 이병율파로부터 석 달 분 240g은 구입했을 것이다.
조폭들 간의 거래가격이 대략 1g당 100만 원 정도라면, 240g이면 2억 4천만 원이 된다. 한번 거래 금액으로 적당해 보인다.
240g이면 8천 회 투여량이니까 소비자 가격 1회당 10만 원이면 8억 원어치이고, 장유파는 그 가격의 절반에 팔아도 4억 원은 받게 된다.
석 달에 1억 6천만 원이 남는 셈이고, 한 달에 5천만 원은 벌어들이는 꼴이다.
“필로폰이 더 있을 거니까, 샅샅이 뒤져보세요! 구매자 리스트도 찾아보고.”
정훈의 지시로 수색영장을 내민 대원들이 집안을 구석구석 수색했지만, 더 이상의 마약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엊그제 진주 이병율파에서 새로 사들인 물건이 있을 텐데 어디다 숨겨뒀지?’
정훈은 계속 고개만 갸웃거렸다.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의 필로폰과 구매자 리스트도 찾지 못했다.
그래도 그 정도의 필로폰이 물증으로 확보되었고, ‘두레박’에서의 녹음 기록과 어방배달에서 찍힌 영상도 있어, 이무계와 중간보스 물소를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입건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들이 마약을 제조했다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마약을 판매만 했기 때문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확률이 높다.
강철도 함께 입건되었지만, 당연히 불구속이었고, 수사 과정에서도 오히려 증인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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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김해 지방신문에 대서특필이 되었고 주요 일간지에도 사회면에 조그맣게 기사가 보도되었지만, 며칠이 지나고부터 늘 그렇듯이 조용해졌다.
그 사건이 발생하고 1주일쯤 지난 어느 날.
장유면에서 북서쪽으로 14km 거리에 있는 진영읍 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조그만 2층 건물.
1층은 의류, 신발, 가방 가게이고 2층은 삼겹살 식당 ‘돈 벌’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데, 전 메뉴 6천 원이라고 큼직하게 쓰여있다.
2층 ‘돈 벌’ 식탁에 장유파 행동대장 쌍칼이 건장한 사내 두 명과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구석진 자린 데다 식사 시간도 아니라 다른 손님도 없고, 불판 위에는 이제 막 얹은 삼겹살이 지글거리고 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소주병은 한 개만 따져 있고, 각자의 소주잔은 채워져 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형님.”
쌍칼이 마주 앉은 마흔 중반의 사내에게 허리를 굽히며 예의를 갖춘다.
“짜식! 내 밑에 있기 싫다고 이무계한테 가더니 꼴좋게 됐고마. 송사리 너도 쌍칼 따라가지 그랬냐?”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옆에 앉은 젊은 사내를 흘깃 돌아봤다.
“쌍칼은 객지에서 떠돌다 온 거고, 저는 형님 밑에서 쭉 컸는데, 제가 왜 갑니까?”
송사리라는 사내가 히죽거리며 쌍칼을 아니꼬운 눈으로 쳐다봤다.
객지라는 말로 미루어 쌍칼이 이곳 진영에서 성장하고 타지에 나가 좀 놀다 왔던 모양이다.
“그때는 솔직히 송사리가 있는데, 둘씩이나 함께 있을 수는 없지 않았습니까?”
쌍칼이 변명하며 송사리를 흘겨봤다.
쌍칼과 송사리의 대화와 행동으로 봐서 두 사람은 학교 동창이거나 잘 아는 사이로 보인다.
“그래, 그때만 해도 내가 버거워서 네놈까지 건사할 입장이 못됐었지. 뭐, 지금도 애들이 서른 명으로 늘어서 먹여 살리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지 마는.”
형님 소리 듣는 사내가 아쉬운 표정으로 괜히 삼겹살을 뒤적거렸다.
“그래서 말인데요, 불사 형님! 제가 형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쌍칼이 진지한 표정으로 사내의 눈에 초점을 맞췄다.
“긴히 할 말이 있다고? 그게 뭔데?”
불사라고 불린 형님이 동작을 멈추고 눈길을 쌍칼에게 꽂았다.
이 사내, 성불사(成不死)는 쌍칼과 송사리(宋舍利)의 초등학교 16년 선배이며 진영 읍내 토박이로, 폭력조직 ‘진영읍내파’ 두목이고 나이는 45세이다.
진영읍은 단감으로 유명한데 구석진 시골이라, 그 흔한 공장도 별로 없어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거의 수십 년 전 모습 그대로이다.
시골 태생으로 가방끈도 짧아서, 할 일 없어 빈둥대던 젊은 놈팡이들이, 읍내로 모여들어 주먹질로 먹고사는 조직이 ‘진영읍내파’이다.
경찰 단속이나 폭력배의 횡포를 막아주겠다는 명목으로 마사지 가게, 노래방 업주들을 협박하고, 유흥주점 도우미 불법 보도방을 운영하며 겨우 먹고 산다.
최근에는 병원과 짜고, 조직원들이 실손보험 여러 개에 가입해서 설사약을 먹고 만성 장염으로 허위 입원하는 치사한 방법으로 수천만 원 상당의 보험금을 타내기도 했다.
“예, 형님. 제가 물건을 수억 원어치 확보하고 있습니다.”
쌍칼이 성불사의 눈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 물건을 수억 원어치나 갖고 있어? 저번에 전부 압수되지 않았단 말이가?”
성불사가 깜짝 놀라 토끼 눈을 뜨고 쌍칼을 들여다봤다.
송사리도 동그란 눈으로 쌍칼과 성불사를 번갈아 본다.
“예, 형님. 형님도 이제 식구들 제대로 먹여 살리려면 큰돈을 좀 만지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쌍칼이 성불사의 아픈 데를 건드리며 넌지시 유혹했다.
“야, 인마! 나까지 잡혀가란 말이가?”
말은 그러면서도 성불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멍청한 이무계 보스는 물소 얘기 듣다가 완전히 미끼에 걸려들어서 그리된 겁니다. 저는 그놈들이 누군지도 잘 아니까, 형님은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창원 시내 쪽으로 진출할 계획을 한번 세워보십시오.”
쌍칼이 자신감을 내비치며 성불사를 부추겼다.
“그래? 창원이라··· 야, 송사리야! 너는 어찌 생각하냐?”
솔깃해진 성불사가 심복을 돌아보며 물었다. 물어본다기보다는 아예 그러자는 눈짓이다.
김해와 창원의 중간에 있는 진영읍내파는 엄청나게 큰 창원지역으로 나와바리를 확장하는 것이 꿈이었다.
창원은 항구도시인 옛날 마산이고, 창원산업단지가 있어 유흥업소는 대도시에 버금가게 넘쳐난다.
그러나 뭔가 내세울 게 있어야 막강한 창원 시내 조직들과 손을 잡고 진출할 건데, 아무것도 없는 진영읍내파로서는 화중지병,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런데, 마약이 수억 원어치나 있으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요, 형님! 마약은 한 번만 거래하고 마는 게 아니잖습니까? 계속해서 공급할 수 있어야 할 건데요?”
쌍칼과 친구면서 라이벌인 송사리가 일단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그래, 맞다! 야, 쌍칼아! 어때? 계속해서 공급받을 수는 있는 거냐?”
마약 거래를 해서 창원에 진출할 꿈이 생긴 성불사가, 제발 그렇다고 대답하라는 표정으로 쌍칼을 바라봤다.
“예, 형님. 그것도 다른 데서 구입하는 가격보다 월등히 싼 가격으로 사들일 수 있습니다.”
“뭐? 정말이야? 어디서 구입하길래 그렇게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이가?”
성불사가 믿기 어렵다는 듯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진주 이병율팝니다! 제가 저번에 이무계 보스랑 함께 가서, 직접 이병율 보스 만나고 구입해 왔습니다.”
쌍칼이 의기양양하게 폼을 잡으며 우쭐거렸다.
“뭐? 진주 이병율파? 네가 이병율이와 직접 만났다고?”
송사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캐물었다.
“그럼! 이병율 보스랑 식사도 함께했어. 내가 중간보스한테 전화 한 통만 걸면 이병율파 대원들 열 명은 불러낼 수 있다. 하하.”
쌍칼이 자랑스럽게 송사리를 흘겨보며 웃었다.
“뻥까지 마라! 처음 인사하고 거래 한번 텄는데, 네 전화 받고 이병율파 애들이 열 명이나 우르르 달려온다고? 웃기고 자빠졌네! 킥킥.”
“진짜야, 인마! 그날 헤어지고 나서 내가 실제로 남강 둔치에서 불러냈는데? 내가 이상한 놈들한테 미행당하고 있다니까, 배 타고 열 명이나 달려오더라.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