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앞에 〈유마경변상도(維摩經變相圖)〉를 구할 수 있는데 까지 구해서 이것이 한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이렇게 편집했습니다. 처음에는 유마거사가 아주 거룩한 모습을 담았고, 그 다음에는 문수보살이 문병 가는 모습과, 그다음에는 유마거사가 사자좌를 만들어서 많은 대중들을 삼만 이천이나 되는 보살들을 앉게 하는 그러한 그림, 그 다음에 유마거사가 화신보살들로 하여금 공양을 받아오게 하는 그래서 공양 올리는 내용이라든지, 저 뒤편에 가면 이제 다시 유마거사가 부처님께로 이제 오게 되는, 부처님을 친견하는 내용이라든지 이러한 등등... 이 판화로 상당히 중요한 그림이기 때문에 좀 유심히 살펴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이 <유마경>은 경전이라는 것이 본래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보물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보물로 칩니다. 그중에서도 승보나 불보도 역시 법보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그런 그 이유에서 법보(法寶)를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보물 가운데 제일로 칩니다. 우리가 지금 대하고 있는 <유마경> 또한 그 수많은 보물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어떤 세상의 보물보다도 우수하고 수승하다고 하는 그런 믿음으로, 그런 그 신심으로 우리가 이 경전을 대해야 할줄 믿습니다. 유마거사는 비록 이 경전이 후대에 대승불교가 꽃을 피울 무렵에, <법화경>과 쌍벽을 이루는 그런 대승경전으로 손꼽히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후대에 결집 되었습니다만, 그러나 수행을 하는 우리들은, 그리고 신행을 우선으로 하는 신앙생활을 우선으로 하는 우리 종교인은 , 우리는 누구의 어떤 상황을 근거로 해서, 어느 시대에 결집되었건, 그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부처님께서 설하시고 아난존자가 들은 대로 나중에 결집을 해서 우리 손에 까지 전해진다, 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경전을 대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근래에 경전을 교리 발달사적인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리 분석하고 저리 연구해서 무슨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니 그런 이야기들을 합니다만 그것은 종교와 관계없고 믿음과 신심과 관계없이 그냥 학문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말이고, 우리는 오늘 누가 설사 경전을 편찬 했다 해도, 아니 <천지팔양경> 같은 우리나라에서 편찬한 줄 뻔히 알면서도 그래도 그것 역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아난존자가 듣고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라고 생각하고 읽습니다, 우리는. <부모은중경>이나 <목련경>이나 효도사상을 필요로 하는 중국에서 편찬된 경전이 또한 많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이 역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이다, 라고 하는 철석같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경전을 대하는 그러한 사실을 왜 모르겠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경전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그 시대의 어떤 그 사조(思潮)에 맞게 새롭게 편찬되고 또 새로운 경전이 무수히 편찬돼서 심지어 기원 이후까지도 편찬이 됐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구절, 한 게송이라도 이것은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대한다고 하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그러한 마음이 우리에게는 큰 소득을 가져다주고, 환희심과 신심(信心)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이 사실을 우리 경전을 대하는 스님들은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할줄 믿습니다. 불교를 이 <유마경>에서 만약에 찾는다면, 다 아시는 아주 유명한 말이죠? “중생이 아프면 나도 또한 아프다! ” 이것이 불교입니다. 나는 이 한 말씀에 이것이 진정한 불교 구나! “중생이 아프면 나도 또한 아프다! ”라고 하는 것, 그 속에 불교의 진수가 그대로 다 들어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참, 그 대목을 대할 때 참, 너무나도 가슴이 저며 오다시피 했습니다. 정말 이것은 유마거사의 인격이지만 따라서 이것은 불교의 근본정신이다, 중생이 아프면 나 또한 아플 줄 아는 것, 이것이 불자고,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고, 부처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자세다, 하는 그런 생각 입니다. 그래서 만인이 불행하면 나 또한 불행하고 만인이 행복하면 나도 또한 행복하다. 이렇게 이제 발전 시켜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유마경>의 중요한 종지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물론 <유마경>의 절정은 ‘불이법문(不二法門)’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 또는 모든 생명이, 모든 존재가 궁극적인 입장에서는 절대 평등한 차원이기 때문에 그 절대 평등의 차원에서는 둘이 없다. 너와 나의 차별이 없고, 남녀의 차별이 없고, 승속(僧俗)의 차별이 있을 수가 없고, ‘불이(不二)’다! 둘이 아닌 그런 경지를 표현한 그런 ‘불이법문’을 절정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현실적으로 더욱 필요한 불교가 무엇일까 라고 생각 했을 때 “중생이 아프면 나도 또한 아프다! ” 라고 하는 중생이 불행하면 내가 행복할 수 없다, 도저히! 나는 중생이 불행한데 내가 어찌 행복하랴! 하는 그러한 유마거사의 심정의 표현이 더욱 필요한 불교고, 정말 불교다운 불교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시는 대로 유마거사는 병이 나셨습니다. 이 <유마경>은 유마거사가 병이 나서 병이 원인이 됐었습니다. 그리고 <법화경>은 ‘일대사인연 ’이 그 근본 원인이 돼서 <법화경>이 설해지게 되죠. <금엄경>은 ‘걸식(乞食)’ 이 되었었습니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시성정각(始成正覺)을 ,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능엄경>은 아난존자의 ‘미명"이 원인이 되었었습니다. 참 이 불교는요, 불교의 경전은 그 하나하나, 그 출발이 정말 너무나도 극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유마경>은 유마거사가 병이 나서 그것이 인연이 돼서 이 천하에 유명한 이 경전을 이 세상에 남기게 되었다고 하는 것. 그래서 병도 무시 못 합니다. 그 병 하나로 이런 <유마경>이 탄생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필 유마거사 분이겠습니까? 여기에 동참하신 스님들, 불자님들 모두도 똑같이 여러분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간에 각자의 그 문제, 앓고 있는 문제 그 하나 만으로도 얼마든지 인생의 찬란한 꽃을 피울 수가 있는 그런 씨앗이 될 줄 믿습니다.
유마거사는 다른 경전에도 소개 됩니다. 해서, 아내는 아주 무구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 이름은 ‘월산’ 이다, 라고 하는 그런 경전이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데 ‘선사(善思)’다 착할 선(善), 생각할 사(思), ‘선사(善思)’ 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이야기가 아주 평범한, 저 밖에 나가면, 이 바로 저 문 밖에, 무수히 많고 많은, 저 평범한 시민 가운데 한 사람 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평범한 많고 많은 시민 중의 한 사람인 유마거사, 그런 평범한 삶 속에서 이러한 그 위대함은 그야말로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유마거사 같은 그런 위대한 인물이 태어났고 오늘날 유마거사 <유마경> 같은 이러한 경전이 이 세상에 존재 하게 되었다고 하는것, 이것은 아주 어떻게 보면 <유마경>의 의미를 또한 잘 내포하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유마경>의 한 가지 또 특색은요, 오시교(五時敎), 소위 아함시, 방등시, 반야시, 법화열반시, 화엄시, 이렇게 오시교를 전통적으로 이야기 할 때, 이 <유마경>은 방등시에 해당 시킵니다. 대개 대승경전으로서 한 어떤 한 군(群)을 이루지 못하는 어떤 경전은 대개 방등부에다가 소속시키는데, 순서상으로는 반야부에 밑에 방등부가 있어요. 그러니까 반야부 이전에 있지만 사실 이<유마경>은 반야부가 끝나고 반야사상이 절정을 이루었을 때, <법화경>과 함께 대승불교의 꽃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반야부 보다 훨씬 차원이 높습니다. 그리고 반야부보다 늦게 이 세상에 결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상판석(敎相判釋)상 ‘탄하교(彈訶敎)’다 그런 표현을 해요. 이건 이제 부정하고 꾸짖는 교다, 그런 뜻을 내포 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은 소승을 전부 아우르는 그런 논조 가 많은 반면에 이 <유마경>은 가차 없이 소승을 비판하고, 부정하고 꾸짖습니다. 이것이 아주 이 <유마경>의 또한 특색중의 한 가지 입니다. 대개 경전은 낮은 가르침을 배척하거나 이렇게 꾸짖거나 하는 예는 사실 드뭅니다. 대개 감싸죠. 감싸주죠. 근기에 따라서는 이러한 가르침도 있을 수 있다 라고 감싸 줍니다.한데 이 <유마경>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차 없이, 아주 매정하게, 아주 신랄하게 소승을, 그리고 바르지 못한 소견은 그렇게 비판하고 나서는 것이 아주 다른 경전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점도 <유마경>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유의해 볼 만한 그러한 대목 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경전을 살펴보면서 대승불교, 대승불교는 곧 대중 불교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승불교내지 대중불교운동의 선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화경>과 아울러서 이 <유마경> 두 가지 경전을 대중불교 운동의 선언서다 이렇게 저는 감히 잘 표현 합니다. 한마디로 어떤운동을 일으키려면 운동은 하나의 표면적인 것이고 그 저변에 어떤 철학이 있어야 됩니다.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 철학과 사상으로써 뒷받침 해주는 것이 <법화경>이고, <유마경>이라는 거죠. 그래서 <법화경>과 <유마경>을 통해서 비로소 대승불교 운동이 아주 활발히 전개 되었다, 라고 저는 저 나름대로 그런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유마경>의 또 한 특색은 법문이 아주 화려 합니다 .다른 경전과 달리 아주 화려합니다. 화려하다 못해 현란합니다. 한마디 말이 시작되면은 그 다음부터는 뭐 수십 종류의 설명과 표현이 아주 현란할 정도로, 정말 어지러울 정도로 그 뛰어난 변재로써 표현 하고 있는 것이 또 <유마경>의 특색 입니다. 화엄경이 뭐 소위 한 가지 법문을 하면 꼭 열가지로 반복해서 표현했다고 하지마는 <유마경>을 그런 입장에서 보면 화엄경보다 더 합니다. 훨씬 더 하게 20종류 내지 30종류 이런 정도로 같은 하나의 그 영언(永言)을 가지고 20~30가지가 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로 현란한 법문이다, 저가 본 중에는 그러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공부한 뒤에 그다음에 한 호흡에 읽어야 됩니다. 한 호흡에 그냥 주욱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에 쫘~악 읽어 내려가면 정말 이 <유마경>의 그 뛰어난 변재로서의 설법 한 것이 가슴에 잘 와 닿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경전을 이제 펼쳐 보십시오. 처음에 목차부터 보면,
14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불국품 제2방편품 제3제자품 제4보살품 제5문수사리문병품 제6불사의품 제7관중생품 제8.불도품 제9 입불이법문품 제10.향적불품 제11.보살행품 제12.견아촉불품 제13.법공양품 제14.촉루품
처음 불국토품은 서분이 되겠는데, 정말 이상적인 세계, 그것을 우리는 불국(佛國)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아주 불교 이상향으로서, 신라인의 이상향으로서 불국사를 창건 했던 것이고 이 <유마경>에도 또한 그러한 취지에서 불국품을 맨 처음에 등장시켰습니다. 그 다음은 방편품부터 이제 정종분이 되겠는데 방편품에는 비로소 유마거사가 등장합니다. 또 유마거사는 병이라고 하는, 신체적 병을 앓는다고 하는 이 방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법문을 거기서 펼쳐 보이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아시는 대로 그 병난 유마거사를 문병을 하러 가는 그런 그 과정, 다시 말해서 문병할 대표자를 뽑는 과정이 아주 또 기가 막히죠. 제자품 이라든지 보살품 이것은 부처님의 십대제자도 꼭 십 명의 큰제자 ,이런 의미는 <유마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법화경>에서도 거의 비슷하기는 하지마는 이렇게 딱 잘라서 열명의 큰 제자라고 한곳은 <유마경>입니다. 그래서 제자분에서는 열명의 큰 제자들에게 하나하나 문병하라고 하지만 ‘나는 과거에 유마거사를 만난 인연을 기억해 보면은 도저히 저는 유마거사를 가서 문병할 정도로 자신이 없습니다.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는 한결같이 십대제자가 다 사양하고 또 보살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부처님께서 분부를 내리지만 다 사양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는 수 없이 문수보살이 ‘저도 사실은 실력이 안 됩니다마는 그러나 저마저 사양하면 누가 가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유마거사의 문병을 문수보살이 자청해서 가게 되는 거죠 . 그런 과정이 너무나도 아주 극적입니다. 이것은 한편의 영화를 찍어도 아주 좋은 영화가 되고 연극을 해도 아주 멋진, 참 무대에 올려놓으면 멋진 연극이 될 수 있는 경전입니다. 그래서 <유마경>을 가지고 소설을 쓴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런 내용이 끝나고는 그다음 중반부터 문수보살이 문병하러 가는 내용과 또 그 안에 불가사의한 도리에 대한 내용, 중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관중생품, 그 다음에 불도(佛道)란 과연 무엇인가? 그 불도품에 보면 나중에 유마거사의 게송이 나오는데 우리가 익히 들어온 “지혜는 아버지요 방편은 어머니라!” 그 두 분에게서 비로소 부처라고 하는 위대한 성품이 태어났도다. 부처가 바로 지혜와 방편으로 부모를 삼고 태어났다는 아주 유명한 게송도 이 불도품에 있습니다. 이번 강의가 거기까지는 못가겠습니다만 그래도 이 이 전반적인 구성을 소개 해줌으로 해서 ‘아, 이 <유마경>을 한번 제대로 공부 좀 해야겠다’ 하는 그런 그 욕심이 나도록 제가 이제 유혹을 하는 말씀입니다. (대중 웃음)
제9에서는 입불이법문품 !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이게 이제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소위 그 <유마경>의 절정이죠. 무엇이 절대 평등한 둘이 아닌 도리인가? 그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주장자로써도, 할! 로써도 표현할 수 없다, 그저 침묵으로써 밖에. 그래서 유수한 사찰에 가면 전부 산문앞에 다 불이문(不二門)이 있습니다. 이 불이문이 바로 <유마경>의 영향입니다. <유마경>의 영향! 또 “불이(不二)” 라고 하면 침묵이여! 이 문 들어오거든 입 딱 다물어라 ! 이 문 안에 들어오거든 지금부터 입 딱 다물어라! 그래서 이 불이문(不二門)에는 대개 이런 주련(柱聯)이 걸려있죠.
入此門來이어든 莫存知解라 입차문래 막존지해
이 문안에 들어오거든 시시한 세속에서 배운 시시한 알음알이 절대 들어내지마라! 이런 주련이 걸려 있습니다. 침묵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죠. 아 근사합니다. 이 <유마경> 제대로 공부하면요. 저는 <법화경>을 제1의 경전, 이 세상에서 그 수 억만의 책들 중에서 단 한권을 선택하라면 <법화경>을 선택한다. 자나 깨나 오로지 <법화경> 한 권을 최상의 책이라고, 최상의 가르침이라고 나는 선택한다고 늘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유마경>을 공부해 보면 <법화경> 못지않구나! 그래서 옛사람들이 <유마경>이 <법화경>과 쌍벽을 이룬다, 이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구미가 좀 당기시죠? (대중 웃음) 입불이법문품이 그러한 내용입니다. 하권에 들어가면 향적불품, 부처님 세계에서 감로방, 향적방, 향적실 이라고 하면 얼마나 근사한 표현입니까? 우리 큰 절, 기본을 제대로 갖춘 사찰에서는 참, 현판 하나만 해도 경전하나를 다 설하고 있습니다. 저 향적방 , 향적실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 하면 <유마경>을 설명하지 않고는 설명이 안되지 않습니까? 불교는 이렇게 참 공부 할 것이 풍부 합니다. 그 다음에 보살행품. 과연 보살행, 보살행 하는데 보살행품이란 무엇인가? 저도 보살행품을 보다가요, ‘권청설법 수희찬탄(勸請說法 隨喜讚嘆)’, 많고 많은 보살행중에서 ‘권청설법 수희찬탄(勸請說法 隨喜讚嘆)’이라는 구절을 보고는 이게 바로 내가 이 법룡사에 와서 법문하게 되는 바로 이것을 이 <유마경>에서 언제 미리 알고 거기다가 설법해 놓았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이렇게 사람이 와서 법문 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렇게 경전을 대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 경전 그대로 부처님의 설법이니까 ! 경전을 대한다고 하는 이 사실을 이것을 우리는 무한히 기뻐해야한다, 그것이 ‘권청설법 수희찬탄(勸請說法 隨喜讚嘆)’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우리가 무슨 복으로, 세상의 무슨 복으로 부처님의, 그 하늘같은 부처님의경전을 우리가 대할 수 있습니까? 비록 그 뜻을 다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니 천분의 일, 만분의 일만 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가 대한다고 할 수 있는 것, 이건 뭐 정말 무량대복이죠, 정말! 뜻 몰라도 좋습니다. 그냥 경전만 손으로 어루만져도 좋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무량대복이다! 그런 뜻입니다. ‘권청설법 수희찬탄(勸請說法 隨喜讚嘆)’ 이란, 우리가 부처님의 설법, 그 책을 우리가 이렇게 지닐 수 있고 볼 수 있고 그 많은 구절 중에 한 구절만 와서 마음에 닿아도 그것만으로도 나는 무량대복이다, 라고 환희심에 넘치고 법희선열에 기꺼워 하는 그러한 마음 자세, 이것이 보살행 중에 아주 백미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 다음 견아촉불품 이라든지 그 다음 유통분에 가서는 법공양품, 무엇이 법공양인가? 법공양, 법공양 하는데 무엇이 법공양인가? 그리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촉루품(囑累品)이라고 해서, 이것은 촉은 부촉(咐囑)한다는 뜻이고 루(累) 자는 꼭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적으로 오래 오래가게 ,공간적으로 널리 널리,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간적으로 널리 라고 해도 많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짧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 욕심 많죠? 시간적으로 오래 오래 가게, 온 세상에 널리 널리, 그리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유마경>이 전해지기를 부촉하노라! 라고 하는 그런 내용으로 이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대개 <유마경>의 구성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친절 하게도 뒤에다 <유마경> 사전을 달아 놓았습니다. 더 친절한 것은, 요즘 저 부터도 한문에 좀 약하잖아요? (대중 웃음) 그래서 한문 읽기 편하게 음까지 이렇게 달아서 아주 고생하지 않고, 공부하기 좋도록, 뜻을 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까짓 글 새기냐, 못 새기냐? 그거 뭐 그래 중요한 것 아니잖아요? 정말 부처님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가? 부처님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가? 이것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가슴에 새길 수 있다면 그러면 그건 뭐 정말 경전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저는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또 이 자리에는 프로들만 모였어요. 저기 뒤에 또 아마추어들도 많이 오늘 오셨습니다마는 이 자리는 거의 프로들이 80%이상 모였네요. 그러니까 이왕이면 한문교재를 가지고 공부하는 데는 편리하게, 음까지 달고 토를 달고 이렇게 해서 좋은 그런 그 법석이 되도록 해야 되겠다! 저 나름대로는 참, 몇 밤을 설쳐 가면서 이렇게 준비를 했습니다. 회향날도 이렇게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도록 오늘 입재날과 같이 회향날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결코 저에게 실망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중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