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지요.
그런데 진정으로 살기 위한다면, 다시 말해 구원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기 원한다면,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을 따라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비행기 운전에 서툰 당신이 비행기 조정석에 앉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비행기 기장을 그 자리에 앉혀서 비행기를 잘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왜 운전에 서툰 당신이 삶의 기장석에 앉아있고,
하느님께서는 부기장석에 계실까요?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던 니코데모는
분명 자타가 공인하는 종교인으로 최고의 명성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밤에 찾아가지요.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지만, 실상 참 행복을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는 인정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이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에 찾아갔다는 표현을 쓰지요.
마음이 어두운 밤과 같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참된 아들의 모습을 닮은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역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으로 보고
그 기준에 맞게 살아가는 삶을 향한 새로운 탄생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앞에는 여전히 하느님이 아니라
세상을 또 나를 그 첫째 자리에 계속해서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의 부조정사가 하느님이라면, 얼른 자리를 바꾸십시오.
그래야 안전하게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