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프라이데이가 지나고
2019.12.5.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 지난주에 끝났다.
지금
당신은 어떤 마음인가?
광고
전단을 열심히 연구하면서 마음을 두던 물건을 사서
기쁜가,
아니면
사지 못해 속상한가?
아마도,
당신은
사고 나서 계획 없이 예산을 초과한 충동적 구매에
후회하는 이 중의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11월
네 번째 주 금요일인 추수 감사절 다음날 크리스마스
쇼핑 기간으로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은 이제 유럽과 한국
등 세계 곳곳으로 번져 나가는 판촉 행사가 되었다.
미국
내 블랙 프라이데이 무렵 4일간
매출이 미 달러로 500억
불이 넘는다고 하니 정말 쇼핑 광기가 분출하는 셈이다.
이를
모방한 중국 알리바바의 광군제가 블랙 프라이데이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데 정말 엄청난 관심을
쏟고 살아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매장마다
고객이 넘쳐나는 북미의 최대 쇼핑 시즌에 사람들은
커다란 텔레비전 같은 가전제품,
가구,
옷,
가방
등을 사느라 바쁘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지역 신문에 끼어 들어오는 광고
전단은 자세히 들여다보는 적이 없는 나는 이번에도
책 두께만큼 두툼한 광고지를 그대로 재활용 통에
넣었다.
하지만,
샴푸를
사러 런던드러그에 들린 게 화근이었다.
이민
오기 전 한국에서는 스팀 청소기가 유행이었다.
한경애라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를 탄생시킨 이 제품을 한국에서
쓰다 이민 짐으로 부쳐 가져왔다.
그리고,
타일이나
마룻바닥을 뜨거운 증기를 내뿜어 청소하면서 제품
광고처럼 위생에 좋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몇
년 쓰다 보니 증기가 발생하지 않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밴쿠버는 스팀 청소기가 유행하지 않아 그 이후로는
그냥 청소기로 먼지를 뽑은 후 걸레질을 하는 식으로
청소를 했다.
그렇지만,
바닥에
찌든 때가 있는 듯하기도 하고,
특히
화장실 바닥은 뭔가 더 청결하게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파격적으로
할인하는 스팀 청소기를 발견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아마존의 가격의 1/3밖에
안 되는 가격이었다.
제품
모델 번호 뒤쪽의 숫자는 달랐지만 사실상 같은
제품이었다.
그래서,
구매
예정이 없던 그 청소기를 사서 왔다.
막상
손에 넣고 나니,
제품의
결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떨어지는 물통과 세제통,
그리고
무엇보다 침대 밑이나 가구 아래 등 좁고 낮은 공간은
닦을 수 없는 청소기의 높이.
괜히
충동구매를 하고 나서 마음만 무거워졌다.
며칠을
수납공간에 그냥 놔두다 반품하기로 했다.
다행히
런던드러그는 반품이 수월한 매장이기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쉽게 반품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렇게 반품이 용이해 북미의 소비자들은 더욱 즉흥적으로
물건을 사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일단 사고 나면 반품이나 교환이 힘들어 좀 더 신중히
물건을 샀었는데.
결국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 기간 내가 산 것은 잘 안
들어 산 주방용 가위 세트뿐이다.
다행이다!
우리를
유혹하는 할인 행사,
끝없이
진화하며 소비자의 소비욕을 더욱 효과적으로 조장하는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잘 버티어냈다.
꼭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산다면 경제적 소비를 한 것이지만
어디 그런가.
세일이라면
괜히 손이 가고,
있는데도
더 나은 것,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싶은 것이 소비가 미덕인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구매 습관 아닌가?
화질이
낫고 화면이 큰 텔레비전,
용량이
큰 냉장고,
최신의
셀폰,
조금
더 이름난 상표의 의류,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끄는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해 우리의
삶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많이
살수록 많은 돈이 필요하니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더
괴로워야 해야 한다.
가족과
친구와 보낼 시간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일에 바쳐야
한다.
무엇이든
많은 가질수록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
이
악의 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소비에서도 절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에도 무수한 소비자가 대할인을 받아
물건을 샀다고 흐뭇해하면서 여러 가지 물품을 집으로
날랐을 것이다.
그러나,
영수증에
찍혀 나오는 것처럼 정말 당신이 돈을 절약한 것이
아니라 금전적 어려움,
비좁아지는
공간에 대한 불만과 고통의 보증 수표를 들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소비하기 위해 살지 말고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만
사고 지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가사 한 벌로 살아가는 구도승은 아닐지라도 우리를
좀 더 자유롭게 하는 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