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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태복음 5장 6절
요즈음 제 18회 아시안 게임이 인도네시아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종목에 여러 선수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번에는 종합 2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없는 땀을 흘리며 단련하고 연습했던 선수들이 각축을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고 보는 종목이 있는데 바로 남자 축구경기입니다. 왜냐하면 영국의 프로축구 팀인 토트넘에서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손 흥민 선수 때문에 더 그럴 것입니다. 요즈음 한참 주가가 올라 영국은 물론 국내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선수로써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면 병역 면제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손 흥민 선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골키퍼 조 현우 선수를 비롯하여 이번에 국가대표선수로 참여한 선수 모두에게 병역면제의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것인데 23일 16강전에서 숙적 이란 팀을 만나서 경기를 했습니다. 결과는 멋지게 2 대 0으로 승리 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징크시가 깨지기는 했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저 혼자 시청하기에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승리해서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나라 축구국가대표 팀이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오늘은 네 번째 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우리 민족들은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를 산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저희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한 끼가 생명 전체로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소나무 껍질까지 벗겨 먹을 정도였다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주리고 목마른 것이 무엇인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눈을 돌려보면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보다도 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북한에서 찍은 동영상에서 비가 와서 질퍽거리는 땅에 떨어진 밥 풀 몇 개를 눈치 보면서 주워 먹는 북한의 어린이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던 당시도 바로 그런 시대였습니다.
한 끼를 어떻게 때울까? 염려하던 때였습니다. 갈증의 경우에는 오히려 더 심각했습니다. 여행하다가 모래 폭풍을 만나 콧구멍과 목구멍을 모래가 매워 숨이 막히고 갈증으로 목을 태워도 근본적으로 물이 없는 곳이므로 속수무책이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의 말씀을 이해할 때 이 본문은 팔복 중 어느 것보다도 그 당시나, 오늘 날 우리들에게도 가장 강렬하고, 가장 근본적인 요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실제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신 말씀이 실감나게 마음에 와 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굶주림’과 ‘목마름’에 대해 원래 어떤 의미를 가지고 말씀하셨는지 확실히 알아보십시다.
‘굶주림’즉 ‘페이논테스(Peinontes)’는 약간 시장기를 느끼는 정도의 배고픔이 아닙니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걸고 압록강,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는 북한 동포들의 배고픔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목마름’즉 ‘딥손테스(Dipsontes)’는 갈증이 나서 한 잔의 물을 청하는 정도의 목마름이 아닙니다. 불볕같이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 먼지와 모래를 뒤집어쓰고 며칠 동안 마실 물을 찾아‘르비딤’이란 곳에 도착했지만 물이 없으므로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는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끼는 목마름입니다. 굶주림으로 인해, 목마름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을 위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는 처절한 간절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처럼 생명을 걸고 먹을 것을 찾듯이, 생명을 걸고 마실 물을 찾듯이 우리들이 찾아야 할 ‘의’ 는 무엇이란 말씀입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의’는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행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이 ‘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먹을 것을 찾듯이, 생명을 걸고 마실 것을 찾듯이 하나님의 뜻대로 간절하게 살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주님께서는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해 놓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요한복음 6장 40절을 보아야 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우리가 주리고 목마른 자들처럼 목숨을 걸고 찾아야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 은 한 영혼이라도 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 받아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인해 영원한 사망과 저주를 피할 수 없는 이 세상 사람들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적인 뜻이요,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렬한 의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저주받아 마땅한 악인이라도 그가 죄 값으로 영원한 심판에 이르는 것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불쌍한 그들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열망이 주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생명을 걸고 먹을 것을 찾듯이, 생명을 걸고 마실 것을 찾듯이 정말 이 세상의 죄인들을 위해 그처럼 절실하게 자신의 생명을 걸으셨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우리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으시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셔야 했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시는 슬픔을 참으셔야 했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 처절한 아픔과 죽음을 온 몸으로 감당하셔야 했던 주님의 마음은 정말 생명을 걸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는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우리들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동참하고 있습니까?
전도하기 위해서 드리는 시간과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까? 전도 대상자가 잘 따르지 않는다고 “안 믿으면 당신 손해지”라고 하면서 냉정하게 돌아섰던 것은 아닙니까? 내 할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으로 형식적으로 전도한다고 했던 것은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들에게도 주님처럼,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처럼 생명을 걸고 믿지 않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 우리들도 영혼 구원에 열정을 기울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 전서 4장 3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나님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습니까?
제일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처럼 날마다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책꽂이 꽂아 놓고 죽은 말씀으로 만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결코 우리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쌀가마니 속의 쌀을 가지고 밥을 지어야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키고, 행해야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들이 거룩해질 수 있는 방법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어떻게 기도하는 것입니까?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기도를 영혼의 호흡처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에 빠지고 5분에서 8분이 지나면 소생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먹는 것보다도, 마실 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우리들은 몇 날, 몇 달씩 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의 영혼이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들이 거룩해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인간으로서 가장 숭고하고 영광된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바꾸어 말씀드리자면 “영으로 진실하게”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예배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는 우리들의 삶을 예배드리는 것처럼 진실하게 살아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의 영이 거룩해져서 아침이슬처럼 맑아지고, 우리들의 삶이 거룩해져서 해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하신 말씀에서 ‘배부를 것이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 말씀입니까?
“배부를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은 시제가 ‘현재 분사 형’입니다. 수시로 우리에게 먹여 주시고, 수시로 생수를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만나 주시기를 원하면, “너는 자주 만나면서 뭘 그리 자주 만나자고 하니?”하면서 귀찮아하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받았으면서 더 주시기를 바라면 “너는 받았으면서도 자꾸 달라고만 하니?” 하고 인색하신 분이 아닙니다.
자주 만나면 만날수록 더 만나 주시고, 주셨으면서도 더 많이, 더 좋은 것으로, 흔들어서, 눌러서, 차고, 넘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서 부익부 빈익빈은 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거룩한 법칙입니다.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렇다면 축복은 무엇입니까?
축복은 기도한 것보다도 더 좋게, 더 많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베풀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지금 생명을 걸고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변을 둘러보면서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돈을 손에 넣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 쾌락을 찾아서 밤낮으로 헤매는 사람, 명예와 권력을 움켜쥐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모두가 헛된 것들 때문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얻으면 얻을수록, 채우면 채울수록 더 채우고 싶을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보다 세상이 작기 때문입니다.
‘탠터라이징(Tantalizing)’ 영어 단어의 뜻은 무엇입니까?
바로 ‘감질 나는’ ‘애간장 태우는’ 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쉬지 않고 추구하는 이 세상의 것들은 손에 잡힌 듯하지만, 감질나게 빠져나가고 심지어 입에 물었다고 생각하고 삼켜 버리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더 갈증만 생기고, 애간장을 태우게 됩니다.
또한 이런 것에는 영혼을 죽이는 무서운 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을 가지고 유혹합니다. 그 헛된 것들 때문에 입술이 타고, 마음이 상하고, 뼈가 마르게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먹을수록 배고프고,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 나는 세상의 것에 생명 걸지 마시고, 먹으면 먹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거룩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 바랍니다. 하면 할수록 마음과 영혼이 거룩해지고 정결하게 되는 기도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살아생전에 한번이라도 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생명을 걸고 사모하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루과이 작은 교회의 벽에 기록되어 있는 기도문입니다.
기도드릴 때 세상일에만 흠뻑 빠져 있으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를 찾지 마시오.
나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시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시오.
내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하지 마시오.
물질만능의 내 나라가 되기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고 하지 마시오.
내 뜻대로 되기만을 바라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지 마시오.
가난한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 하지 마시오.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 하지 마시오.
죄 지를 기회만 찾아다니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 하지 마시오.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하지 마시오.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아멘” 이라 하지 마시오.
생명을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생명을 걸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반드시 생명 걸고 구하고, 찾고, 두르려야 할 것입니다.
영혼 구원과 성도의 거룩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구하고, 찾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