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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4:1-4) 떡을 교회에서 찾는 신자들
누가복음 강해 (26)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눅4:1-4)
최고의 비책
예수님은 이 땅에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오신 목적과 의미는 아주 심층적이고 매우 다양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항 하나씩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어떻게 그분의 창조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는지 직접 당신의 삶으로 보여주려는 뜻이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죄로 타락한 세상과 인간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알게 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
당신의 삼 년간의 공사역 전부에 이 두 가지 가르침이 함께 계시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당한 사건도 당연히 그러합니다. 먼저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주님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모든 인간을 대표해서 이브가 사탄에 져서 죄에 빠졌던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신자가 현실 삶에서 먹음직한 것을 탐하려는 일차적이고 원초적인 시험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제 첫 시험을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이겨내심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는지에 관해 계시해 주는 내용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최초 인간 부부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그 모든 후손이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에서 벗어났습니다. 주님은 먼저 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연 후에 인간더러 그 길을 발견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동안 하나님이 바랐던 바와는 반대로 살게 된 경위와 그런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정확하게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요컨대 주님은 이 시험을 통해서 에덴에서부터 인간에게 원죄의 멍에를 씌어놓은 사탄의 흉계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 드러내어야 합니다.
사탄도 주님의 의도를 눈치채고서 세 번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소명을 제대로 수행해 낼지 점검해 보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훼방을 놓으려는 뜻이었습니다. 금식을 끝낸 주님은 유대 사회로 나가 본격적으로 공사역을 시작할 것인데 사탄으로선 그 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그 방향이라도 살짝 비틀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게끔 만들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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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사십일 간의 온갖 궁리 끝에 그렇게 하기에 가장 합당한 유혹 셋을 준비했습니다. 첫째가 실패하면 유혹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서 둘째, 셋째 질문으로 넘어가겠다는 뜻입니다.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그동안 통치해 온 흑암의 나라에서 계속 왕 노릇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첫째 시험은 그래서 나름대로 모든 지혜를 동원한 최고의 비책이었을 것입니다. 생명이 오갈 정도로 주님이 아주 쇠약해졌기에 먹혀들 것이라고 예상하고서, 단번에 메시아 사역에 결정적인 흠집을 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탄의 첫째 시도는 실패했으나 그 판단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고 교묘했습니다. 과연 어떤 점에서 그러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떡을 만드는 사역
사탄의 의도는 아주 간단한데, 그 유혹의 속삭임대로 주님더러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주는 사역에 주력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먹고 마실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는 아주 흥미로울 뿐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차원입니다. 사탄이 존재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로 사람들로 어떻게든 하나님과 등을 지게 만드는 것인데, 정작 이 시험은 그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탄은 자기 수하의 백성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예수님은그중에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이 땅을 다스리는지 정확하게 알게 해주어서 사람들로 사탄과 등을 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탄은 주님의 그런 의도를 알고서도, 오히려 자청해서 주님더러 자기 노예들을 빼가라고 부추기는 셈입니다. 사탄의 요구대로 주님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많이 주면 하나님을 더 뜨겁게 경배하고 따를 것입니다.
당연히 사탄에게 그렇게 만들 의도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정반대로 주님이 떡을 많이 주어야만 자기 노예가 된 자들이 하나님의 편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편에 있던 사람마저 자기 편이 된다고 계산한 것입니다. 참으로 교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간이 배부르면 게을러져서 영적으로 쇠퇴해진다고 여긴 것입니까? 또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까? 사탄의 모략은 절대로 그렇게 단순한 차원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지금 사탄은 주님의 신분인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선 아무런 시비를 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그렇게 경배를 받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사람으로 계속 떡만 찾는 상태로 남겨 준다면 이 땅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로 사역하는 데에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배짱이며 무엇에 근거한 자신감입니까?
거기다 사탄이 제의한 일은 아주 선하기까지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에 착취당하는 데다 성전세도 바쳐야 하는 이중적인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게 가장 시급한 일인 그 문제부터 해결해 주어야만 메시아로서 소명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 아니냐고 부추긴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들이 바라는 대로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켜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일에 앞장서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고서 하나님의 진리까지 활용해서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너무나 영악하고 사악한 존재입니다. 지금도 주님더러 백성들에게 크게 유익한 일을 베풀어서 곧바로 메시아 사역을 완성하라고, 그러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 않느냐고 속삭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째 말씀
만약 예수님이 단순히 인간 랍비였다면 사탄의 말대로 금식을 중단하고 먹을 것을 찾으러 나섰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음식을 도적질하거나 강탈하지 않는 한 아무 죄가 아닙니다. 우리도 사십 일 금식 기도하려고 작정했다가, 너무 힘들어 중도에 그쳤다고 해서 하나님이 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목숨을 잃거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습니다. 인간이 불규칙적이고 난잡한 생활 습관에 빠지고 또 게을러서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해 건강을 잃는 것입니다. 또 그런 잘못들이 오랫동안 쌓여서 유전적 질병도 생기는 것입니다.
인간이 먹고 마실 것을 충당하는 일은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인간을 창조하고서 처음으로 주신 명령이자 축복이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창1:28) 물질인 흙에서 만들어졌기에 물리적 법칙에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먹고 마시는 것들은 가장 먼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적 존재인 사탄은 그런 원리는 물론이고, 또 그것을 충당하는 일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후에 주신 첫째 축복이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에덴에서 이브에게 먹음직한 욕망을 자극해서 죄에 빠트린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 주님에게도 하나님은 인간이 풍요롭게 사는 것을 바라고 지금 이스라엘에게 가장 절실한 일도 그것이지 않으냐고 다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단 잘 먹고 힘을 얻어야 하나님의 거룩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십 일이나 주린 주님더러 당장 건강을 회복하여 이 땅에 온 목적을 빨리 달성하라고 재촉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주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떡이었고, 작정한 사십 일 기도를 마쳤으니까 안 그래도 식사를 시작해야 할 참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말했으므로, 떡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생육 번성하려면 식량 조달은 인간이 이 땅에서 가장 먼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러는 것이 하나님의 첫째 말씀에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첫째 말씀대로 떡을 조달하는 일은 제쳐두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처음 주신 명령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더 중요한 둘째 말씀
그 전에 먼저 아셔야 할 사항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은 모든 생물에게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창1:22) 그래서 생육 번성은 생명이 갖는 근본적이고 물리적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탄생하여 성장하다가 성체가 되면 후손을 번식시킨 후에 죽습니다. 생명은 생육 번성하도록 하나님에 의해서 설계 창조되었고, 또 그런 사이클은 이 땅의 생명에게 영원토록 적용됩니다. 공기, 물, 빛, 흙같이 생명이 없는 무기체들도 그런 유기체 생물이 계속 번창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으로서, 하나님이 생물보다 먼저 완벽하게 조성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만드신 지구를 각기 물리적 여건이 다르도록 여러 공간으로 나누었습니다. 모든 생명체를 종류별로 만들어서 생존하기 가장 좋은 공간에 배치했습니다. 하늘에는 새를, 땅에는 짐승을, 물에는 고기를 두셨으며, 또 생명이 먹을 양식으로 식물을 이 땅에 채워주었습니다. 창조 이래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배분 계획해 놓으신 법칙대로 실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육 번성은 생명이 땅에 존재하는 의미이자 가치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 법칙대로 생존하는 것 자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8:1)라고 찬양한 그대로입니다. 인간 또한 생명을 지닌 유기체 피조물인지라 당연히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 고유의 본성대로,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성장 발육하여 어른이 되고 후손을 낳다가 죽을 때가 되면 죽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데에는 떡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당신의 창조 법칙에 동참할 수 있는 고귀한 축복이자 엄중한 명령을 따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8) 하나님을 대신하여서 이 땅을 잘 관리 경작하여서 모든 피조물이 조화를 이루면서 풍성히 생육 번성해 나가도록 하라고 명했습니다.
인간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 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창1:26) 그분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만 그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으므로 인간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존재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예를 든 시편 말씀에 이어서 이렇게 찬양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으니.”(시8:4-6)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게 하려고 거의 당신과 방불한 존재로 만들어서 당신의 대리자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모든 생명체가 생육 번성할 수 있도록 무상으로 베푸는 모든 은총을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모든 피조물과 공유할 책임을 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자연환경을 마련하고서 마지막으로 인간을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했으며, 무엇보다 당신의 대리인을 세웠으니까, 그날에 안식했던 까닭입니다. (창1:31-2:3)
말하자면 다른 모든 생명의 존재 가치는 생육 번성으로 그치는 반면에, 인간의 존재 가치는 하나님의 창조 경륜을 이 땅에 더 아름답게 승화 발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그 일을 등한히 하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 즉 짐승 수준으로 스스로를 비하하는 짓입니다. 인간 고유의 그 직무를 너무 거창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완벽하게 배치된 생물들의 영역을 그대로 보존 유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실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창조의 법칙대로만 살기에 자연스럽게 생육 번성하게 마련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2016년 노르웨이 하르당에르비다 국립공원에서 폭우와 벼락으로 순록 323마리가 떼죽임당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그때 자연 현상에 인간이 개입하지 않겠다며 사체를 수거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인위적인 처리 하나 없이 버려두었더니 4년 만에 썩은 사체가 영양분이 되어서 생태계가 오히려 더 다양하게 더 활발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이 자연을 침범 훼손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불신자는 불신자대로 이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또 신자는 신자대로 온전히 그 뜻대로 지키지 않아서, 인간은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셨던 자연을 완전히 오염 파괴해 버렸습니다. 작금 그 형벌로 지구 온난화라는 엄청난 자연 재앙으로 되돌려 받고 있습니다.
인간다우려면?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한 첫째 요소는 생육 번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닮게 만들어 준 그 거룩한 형상을 자신의 삶으로 구현해 내지 못하면 인간이 아닙니다. 창세기 2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당신을 대리할 청지기 직분을 잘 감당하라고 최초 인간인 아담과 이브를 서로 돕는 배필로 만들었습니다. 단순히 화목한 가정을 이루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직무를 맡겼으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라서 이브를 붙여준 것입니다. 남녀가 동일한 자격과 신분으로 함께 동산을 지키도록, 즉 모든 인간이 서로 도우면서 당신의 일을 대신하게 한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에덴동산의 창조자이자 주권자인 하나님과 온전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담과 이브는 사탄에게 넘어가 하나님을 제쳐두고 자기들이 에덴의 주인이 되려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경고대로 영적인 죽음이 그들에게 임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비난하기에 바빴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도우면서 인간끼리는 물론 자연과도 함께 아름답게 공존해야 할 창조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인데 인간이 사는 영역에서만 자연의 선물을 서로 많이 빨리 차지하려는 끝없는 전쟁터로 바뀌었습니다. 온 땅이 엉겅퀴와 가시덤불로 가득 찼고 이마에 땀을 흘려도 제대로 공존도 못 하는 죄악의 나라, 즉 사탄을 왕으로 모시는 흑암의 세계로 전도되었습니다.
요컨대 모든 인간이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되어서 물질계의 생육 번성만을 위해서 살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이 에덴에서 주신 첫째가는 말씀과는 반대로 이웃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지금 사람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채워주어서 자기들의 풍요와 출세만 추구하는 존재로 계속 남겨 두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해서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현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니까, 주님더러 제발 그렇게 해주라고 속삭이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해방되어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로 든든히 서는 것은 분명히 의로운 소망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자기 민족만 잘살면 된다는 뜻이고 실제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부정한 족속이라고 정죄하고서 멸시 천대했습니다. 한마디로, 원죄로 인해서 로마 제국도 이스라엘도 자기 나라만 최고가 되려고 했지, 서로 나누어서 함께 공존 번성해 나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최근의 사회상과 국제 정세를 보면 인간이 타락한 이런 상태가 이천 년이 지났음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사탄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유혹은 인간으로 다른 모든 생명처럼 생육 번성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만들라고 부추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은 하나님 대신에 이 땅을 다스려야 하는 창조 당시의 고귀했던 인간의 자리로 되돌리려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그 시험을 물리친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으로 오신 주님은 지금 하나님이 인간을 어떤 목적으로 창조했고 또 인간에게 부여한 축복이 얼마나 고귀하고 엄청난 것인지 알게 해주려고 합니다.
원죄의 멍에를 지고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 직분으로 스스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온전히 알아야만 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여 사탄에게 넘어가서 먹을 것부터 챙겼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얼마 후에, 십자가에 죽으셔서 인간의 죗값을 대신 갚으시고, 그 은혜를 순전히 믿으면 어떤 극악한 죄인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인간더러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을 깨닫게 해서 인간끼리 온전한 사랑을 하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창조 때 인간이 지녔던 영광스러운 정체성으로 회복시켜 주려는 것입니다.
만나를 주신 예수님
그런데 주님이 직접 사탄에게 대답한 말씀은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신명기에 기록된 모세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그 말도 사실은 하나님의 청지기 직분에 충실히 하라는 권면이었습니다. 사십 년의 광야 방황을 회상하면서 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신세대에게 제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함으로써 이웃도 온전히 사랑하라는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그들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가나안의 칼에 죽는 것이 두려워서, 즉 자신과 자기 가족의 목숨만 건지려고 하나님의 뜻과 언약을 대놓고 위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으니까, 떡만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낼 때부터 열방에게 당신의 복을 나눠주는 근원으로 세워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후손인 이스라엘도 출애굽 후 시내 산에서 모든 족속 앞에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제사장 나라가 되겠다고 서약했고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일을 실현해야 합니다. 출애굽으로 여호와의 사랑을 충분히 알게 해주었으므로 그 사랑으로 이웃에게 그분의 영광을 알게 하라는 것이 제사장 언약이었고, 그 구체적인 지침으로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만 잘 살려고, 즉 떡으로만 살려고 광야 방황 중에도 동일한 잘못을 범했습니다. 모세는 부모들의 잘못을 제발 답습하지 말라고 율법의 모든 말씀대로 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주님은 얼마 후에 여호와가 광야 방황 중인 이스라엘에 만나를 먹인 것과 같은 이적을 베풀었습니다. 넓은 들판에 모인 이만 여명의 이스라엘 사람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이 기적에도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계시하면서 인간더러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셨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네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기록하는 유일한 기적입니다. 그만큼 당시의 유대인들과 사도들에게 너무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뜻인데, 떡을 먹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님께 열광하고서 당장에 왕으로 모시려고 했는데, 요한 사도는 주님이 백성들의 그 요구를 단번에 거절했다고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6:15) ‘억지로 붙들어’라고 했으므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는 것은 주님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만나려고 끝까지 쫓아온 무리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것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라고 야단쳤습니다. 오병이어가 너희를 배부르게 해주려는 이적이 아니라, 당신께서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너희를 죄에서 구원해 주러 왔다는, 즉 십자가를 예시하는 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러 왔기에, 현실 왕국의 왕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어서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병이어의 물질적인 떡은 이 땅의 물질계에서 생육 번성하는 데 필요할 뿐으로, 그 양식을 아무리 먹어봐야 너희는 썩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당신이 바로 영생할 생명의 떡이므로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게 된다고 약속했습니다. (요6:28-59) 십자가에 찢기실 당신의 살과 흘리실 피를 말하는데, 그 대속 죽음의 은혜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는 뜻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는 것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서 그 사랑으로 심령에 채워지면 이웃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듯이 지금 광야에서 돌들을 쉽게 떡으로 만들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려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자, 주님께 떡을 많이 받으려고 기대하던 유대 백성들이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이 시기에 가득 차서 그러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19:40)라고 선언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피조물이 예수님의 십자가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그분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에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떡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 소진하면 사탄의 흉계에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불행하게도 예수 십자가 구원을 모르는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밝혀진 사탄의 흉계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도 돌들을 떡으로 만들라는 사탄의 첫째 시험이 소름이 끼치도록 음흉한 이유가 이제 밝혀졌습니다. 사탄으로선 주님이 어떻게 대답해도 자기로선 전혀 손해가 없습니다. 자기 말대로 주님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면, 원죄에 묶여서 떡만 추구하는 인간이 그 타락한 상태대로 남게 됩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로 사람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사역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니 그런 사역을 계속해 주면 해줄수록 자기 노예만 더 늘어납니다. 인간이 자기만 높아지려고 형통과 출세만 추구하면서 이웃을 돕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했을 때 수제자 베드로가 절대 그렇게 해선 안 되고 자기가 그렇게 되도록 버려두지도 않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때 주님은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은 제쳐두고 인간의 일만 생각한다고 야단쳤습니다. (마16:21-23) 한마디로 다윗 왕국 영광을 재현하려 드는 것 또한 떡을 많이 먹는 일이니까 오히려 사탄의 흉계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탄의 요구를 거역하고 돌들을 떡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현실 풍요와 출세를 보장해 주는 메시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인데, 당연히 원죄에 묶여서 탐욕스러워진 사람들의 반발을 살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이 오병이어 기적 후에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자 제자들 대부분이 주님을 비방하면서 떠나버렸습니다. 마지막 주일에도 며칠 만에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고서 사탄의 조종을 받은 유대교 지도자들의 선동에 넘어가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사탄은 그래서 지금 바둑의 꽃놀이 패처럼 주님이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자기만 좋아진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탄의 종들이 주님께 올무를 걸려는 질문들도 전부 그런 식이었지 않습니까? 어쩌면 사탄에게 굳이 주님을 시험에 걸려 넘어트릴 생각도 없었을 것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면 좋고, 안 만들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악한 사탄이 끝까지 눈치채지 못한 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사탄에 넘어가려는 베드로를 야단치셨다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할 것은 몰랐습니다. 영생할 생명의 떡인 당신을 모든 인간에게 내어주려고 주님은 이 시험을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즉 창조주로서 창조 때의 거룩한 경륜으로 물리친 것입니다
메시아로서 백성에게 떡을 조달해 주고,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은 분명히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치면 인간이 참 인간다워지는 데에 절대로 필수가 아니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점을 이 시험을 통해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험에서 사탄에게 대꾸했다기보다는 모든 인간더러 이 땅의 육신만 생육 번성케 하는 썩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엄숙하게 명령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껏 제가 드린 말씀도 예수님과 사탄의 시험보다는 오늘날의 우리에 관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떡으로만 살라고 부추기는 사탄에게 수시로 넘어가거나 심지어 그곳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과연 하나님이 창조하신 고귀한 인간의 위치에 바로 서 있습니까? 신자들이 새벽 기도회마다 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제목이 과연 무엇입니까? 엄밀히 따져보니까 혹시라도 전부 자신과 자기 가족이 떡으로만 살아가는 문제에 관한 것뿐이지는 않습니까? 바꿔 말해 네발로 기는 짐승처럼 생육 번성만을 위해서 빌지는 않습니까? 정말로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최소한 그렇게 하려는 기도라도 한 적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주님은 절대로 떡을 풍성히 주려고 이 땅에 오지 않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분을 거역하여 추방당한 인간을 에덴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것입니다. 요컨대 사탄의 음흉한 흉계를 완전히 까발리려고 오신 것입니다. 신자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삶이 너무 고달파서 미처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탄에게 미혹되어서 자신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로 창조되었는지도 모르고 원죄에 묶여 있었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그동안 왜곡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교회 생활을 오래 해도 참 인간이 아니라 짐승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라도 여전히 연약한 육신을 지녔기에 현실의 떡에 수시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 말씀 한두 구절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에덴 밖에 있다가 다시 그 안으로 옮겨졌다는 정체성을 확신해야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많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이웃에게 나누어서 발전 확장시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과 그렇게 하기 위한 기도와 실천만이 현실의 어떤 먹음직한 유혹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3/8/2026) 박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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