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 :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강박의 세계』, 필립 블롬, 이민아 옮김, 동녘, 2006
『책사냥꾼』, 존 백스터, 서민아 옮김, 동녘, 2006
무언가를 수집한다는 것은 수집하는 그 대상 속으로 자기를 들이밀어 자기만의 비밀, 자기만의 행복을 살려는 욕망의 발현이다. 수집벽의 극단은 물건과 자아의 동일시이다. 일종의 물애증이다. 물애증에 빠진 사람들은 세상의 공허와 혼돈을 피해 그 물건 속으로 도망간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건들이 아니라 물건들의 아우라와 질서의 세계 속으로 도망하는 것이다. 그 물건들이 만들어내는 질서란 세상의 견고한 혼돈과 맞서 그 혼돈을 일시 정지시킨 채 “혼돈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질서”이다. 수집가란 그 속에서 자아의 충만감과 황홀경을 지속시키는 사람들이다.
수집가들에게 우표, 화폐, 나비, 악기, 화석, 골동품, 구형 자동차 등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다 수집의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책수집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할 만큼 다중적인 수집의 양상을 드러낸다. 수집의 그 기묘하고도 이상한 강박증의 세계를 파헤친 필립 블롬은 책수집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책을 단순히 수집품으로 여겨 인쇄 날짜와 장소, 판과 쇄, 종이질과 활자체를 확인하면 다시 펼쳐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판만 수집하는 사람, 특정 출판사에서 나온 모은 책을 수집하는 사람, 특정 작가의 모든 책을 수집하는 사람, 16세기에 뷔르츠부르크 혹은 런던에서 제본한 책을 수집하는 사람, 청서(靑書, 영국 의회나 추밀원의 보고서)를 수집하는 사람, 크기가 작은 책만 수집하는 사람, 길쭉한 책을 수집하는 사람, 도련을 치지 않은 책을 수집하는 사람 등 그야말로 십인십색이다.”
『책사냥꾼』이란 책 제목만 보고 속으로 뜨끔했다. 책사냥꾼이란 말 그대로 책 수집에 열 올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나 역시 책을 모으는 사람이 아닌가 ? 수집가들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책을 소유하기 위해서 책을 구한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경우 읽기 위해 책을 구한다. 그런 점에서 “책 사냥꾼”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열심히 수집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같지만 나는 수집 대상의 중요성에만 가치를 둘뿐, 그것의 희소가치와 상품가치, 아울러 그것을 찾으러 다니면서 느끼는 흥분을 더 뜻있다고 생각하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르다. 이들 사냥꾼들은 “이 사냥감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한밤중에 음침한 런던 뒷골목에서 은밀히 약속을 잡기도 하고, 경매에서 숨이 넘어갈 만큼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낙찰을 받기도 하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를 찾아 아슬아슬하게 차를 몰아서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책 수집가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초판본과 저자서명이 들어 있는 책이다. 거기에서 더 나가면 초판본 이전 단계인 교정본을, 그 다음엔 아예 저자의 육필 원고를 수집한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찾는 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이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주인 실비아 비치는 1922년 2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리넨 지(紙)로 750부를 찍어, 책의 가치를 높이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었다. 당시 이 책은 150프랑에 판매되었는데, 출판업자 로버트 매캘먼이 540번째 『율리시즈』를 사서 면지 바깥쪽에 장서표를 붙여 책의 가치를 껑충 높여놓았다. 매캘먼은 조이스의 원고에서 마지막 50쪽을 타이프 쳐주고 편집장 자격으로 약간의 교정가지 본 사람이었다. 그뿐아니라 그는 책 전체를 검은색 모로코 가죽으로 새로 장정한 데다, 조이스에게 직접 헌정까지 받아 그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별 생각 없이 벌인 일로 일명 ‘로버트 매캘먼 판’이라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책이 된 이 책은 1966년에 5만 5000달러에 판매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존 백스터는 책 수집가이다. 195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벽지에서 자라는데, 그곳에서 책 읽는 사람이란 희귀한 존재일 뿐이다. 백스터는 도서관에서 알파벳 순으로 책을 빌려 읽고 공상과학소설에 빠져 공상과학소설 동호회에도 나가며 훗날 책 수집가로서의 소양을 키운다. 그러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다섯 살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철도국에 취직한다. 그 뒤 작가라는 직업을 선망해서 철도국을 그만지만 결국은 책 수집가의 길로 들어선다. 희귀본들을 수집하기 전세계를 여행하는 백스터는 1978년 런던의 한 노점에서 그레이엄 그린이 쓴 아동서 희귀본을 우연히 발견한다. 그는 이 책을 단돈 5펜스에 샀는데, 그보다 더 큰 행운은 평생지기로 지내게 되는 책 거래 세계의 전설적인 인물 마틴 스톤을 거기서 만났다는 것이다. 마약중독자에다가 국제적인 탈주범이며, 록 음악가이기도 한 마틴 스톤은 백스터의 책사냥 인생에서 빠뜨릴 수 없는 스승이자 친구이다.
오스트레일리의 오지에서 런던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책 사냥꾼으로 나서게 된 백스터의 그 뒤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 백스터는 수다스럽게 그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수집한 책과 손을 거쳐나간 수백권의 책들, 그리고 작가들과 그들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다. 왜냐하면 백스터는 책 그 자체, 책 수집에 대한 여정에 빠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백스터는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미국의 홀린스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것과 거기서 만난 학생과 결혼해 런던으로 돌아오는 얘기, 방송국 생활을 하면서 만난 작가들과 그들의 서명이 든 초판본 손에 넣는 얘기와 여러 에피소드, 온통 비밀로 뒤덮인 폴린 레아주 얘기, 에로물만 전문으로 찍어내는 올랭피아 출판사의 사장 지로아디스의 얘기, 장서표 얘기, 런던의 책 시장 풍경 들을 수다로 풀어놓는다. 백스터가 가장 몰입한 작가는 그레이엄 그린이다. 그는 1980년까지 런던에 살며 『그레이엄 그린: 참고 서적 목록과 연구 안내서』를 몇 시간씩 들여다보고 런던의 책방들을 뒤져 그레이엄 그린의 책으로 채워나간다. 아파트 전체를 그레이엄 그린이란 한 작가의 책으로 채운다는 일은 좀 기묘한 취향이 아닐까 ?
이렇듯 수집이란 “기묘하고 아름다운 강박”(필립 블롬)의 세계이다. 수집가의 내면에 대해 누구보다 이해가 깊었던 이가 그 자신이 장서광이었던 발터 벤야민이다. 수집가들은 내면에 비상한 열정을 품은 사람들인데, 그 열정은 기억의 혼돈과 접해 있다고 말한 이도 발터 벤야민이다. “수집가는 그 물건이 자신의 내면 깊숙이 황홀감을 일으킬 때 그것을 자기 세계 안에 포함시킨다. 그 안에서 그 물건은 최후의 전율, 그것을 획득했을 때 느낀 그 전율 상태 그대로 굳어 있으며, 그 물건은 영원히 그 황홀함으로 충만하다.” 수집가들은 원하는 대상을 손에 넣었을 때의 전율과 황홀 상태 그대로 굳은 채 그 순간의 행복을 지속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물건들이 수집가 안에 사는 것이 아니다. 바로 수집가, 그 사람이 물건을 통해서, 그 물건들 안에 사는 것이다.” 수집의 열병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를 우리가 다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들이 보여주는 기괴하고 광기어린 세계에서는 사기나 절도,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다. 수집벽에 빠진 사람들의 세계는 우리의 상식을 훨씬 넘어선다. 한마디로 미친 것이다. “구스타브 해스퍼드는 전 세계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다가 캘리포니아의 창고에 숨긴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그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티븐 블럼버그라는 수집가는 수년 동안 미국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몰래 훔쳐, 라벨과 표지에 붙은 접착제가 떨어질 때까지 침으로 핥아댔다. 이 엽기적인 방법은 책으로 보여주는 시체 애호가의 황홀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사냥꾼은 곧 책중독자이다. 그들은 중독의 황홀경에 빠진 사람들이다. 백스터는 그 책중독자들의 세계를 수다로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