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만한 오목이라고 누구든 어설픈 솜씨로 한 판 덤벼들었다가는 실컷 놀림(?)만 당하다가 낭패보기 십상이다. 오목에도 고단수의 포석이 있다는 것을 다섯 고수(?)들은 흑이면 흑 백이면 백, 현란스런 ‘맥짚기’로 보여준다. 내기? 만두든 빵이든 지갑 털릴 각오가 돼 있다면 누구든 한판 대들어도 좋다. 화천/사진 글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
|
|
|
강원도 어느 깊은 선이골.
밤새 울어댄 산개구리가 이른 아침에 살짝 잠잠해집니다.
외딴집 다섯 말썽꾸러기들이 기지개를 펼 무렵이지요.
아마도 잠을 설친 꾸러기들이 어쩔까 싶어 두려웠을 듯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매번 봄이면 치르는 산개구리들과의 전쟁을 아이들은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뜰채를 들고 길다란 나무꼬챙이도 찾으며 옹알옹알 부산한 전투준비를 치릅니다.
“네들 다 일루와!”
바람이
산이
나무들이
풀잎새들이
마악 털을 드러낸 버들강아지 꽃들이
겨우내 움츠렀던 골짜기를 흔들어 깨웁니다.
기지개도 켜고 편안한 자세도 꾸리고
모처럼 신나는 싸움구경입니다.
|
» 밤새 산개구리울음소리에 시달린 아이들이 아침맞이를 끝내자마다 뜰채를 들고 연못을 찾았다. 4월이면 하늘을 찢을듯 울어대니 미리 기선을 제압하려는 시도지만 사실 어림도 없다. 선이골의 봄은 개구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다.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 |
|
|
“개굴 개굴”
“저기닷! 야호!”
“개굴 개굴”
“에이~. 잘 좀 잡아봐요오.”
“개굴 개굴”
“뭐야아~. 다 어디로 간 거~여어.”
무디게 다가오는 도심 속 봄기운은 얄밉기만 한데
외딴집 선이골 봄기운은 엉덩이까지 깔고 앉았습니다.
|
» 김명식씨는 아내가 지인들과 나눈 편지와 일기 등을 엮어 유고집을 내고 싶어한다. 그는 "묘 주변을 작은 꽃과 나무로 꾸며 모두가 편안히 찾을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며 아내와의 소중한 추억들을 아끼고 다듬는다. 화천/사진 글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 |
|
|
“아부지! 뭐 빼먹은 거 없씨요? 안경이나 뭐 딴 거라두?”
“어쿠야. 그래. 내 돋보기를 깜빡했구나.”
꼼꼼한 셋째 일목(13)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건넨 말에 김명식(61)씨는 급히 내딛던 걸음을 멈췄다. 이내 막내 원목(9)이는 쪼르르 달려가 돋보기를 가져와 건네주며 손을 흔든다. 다섯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배웅을 하고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다시 서둘러 길을 나선다.
지난 11일 이른 아침 강원도 화천 선이골 한 외딴집의 살가운 풍경이다. 이날은 김씨가 서울 당산동 새터교회에 우리말 강좌를 하러 올라가는 날. 한달에 한번씩 2년 넘게 해 온 일이다.
김씨는 이날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먼저 방 한가운데의 난로에 장작을 채웠다. 조금 있으면 방 안 공기는 다시 후끈하게 달아올라 아이들의 새벽잠을 곤하게 이끌 것이다. 솥단지에 현미를 씻어 넣고 물높이까지 맞췄다. 부엌살림을 만지면 아직도 마음이 아려온다. 곳곳에 두 달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립다. 그리움을 털어내려는 듯 김씨는 분주히 몸을 움직인다.
|
» ‘선이골 외딴집 일곱식구 이야기’를 본 누나들이 아이들을 찾아 선이골에 왔다. 으니누나, 똑끼누나, 밉둥이 누나가 아이들의 새로 생긴 친구들이다. 식사때면 언제나 어머니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따로 놓는 아이들과 새(?)친구들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화천/사진 글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 |
|
|
하루살이 채비가 대충 끝나자 아이들이 하나둘 깨어난다. 마음이 분주해진다. 일찍 읍내에 나가 버스를 타야 제시간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진중한 그로서는 모처럼 해보는 서두름이다. 결국 자신의 돋보기는 아이들이 챙겼다.
선이골의 아침은 겨울바람을 찾아 북쪽으로 향하는 청둥오리때의 꺼억 거리는 울음소리와 겨울잠에서 깬 산개구리의 요란스런 울음이 뒤섞여 소란스럽다.
|
» 이른 아침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이젠 슬슬 일어나 아침맞이를 준비해야한다. 화천/사진 글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 |
|
|
“에유, 한 4월쯤 되어 보세요. 저 정도면 소리도 없는 거래요. 귀가 쨍쨍한 게 꽹과리 소리 같다니깐요.”
봄이 오는 게 반가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선목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부쩍 자신에게 의지하는 아버지를 몸으로 느낀다. 김씨는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돌보는 선목이가 기특하기만 하다.
“일시무시 일석삼극 무진본…” 아이들의 아침맞이는 민족 고유의 경전으로 우주 탄생의 원리를 담고 있다는 천부경을 외우면서 시작된다. 이어 오늘 할 일에 대한 토론 시간. 아랫동네에 사는 경식이 삼촌이 닭도리탕을 해준다고 했다며 신나해 하더니 오후엔 엄마의 책을 본, 모르는 누나들 셋이 자기들 보러온다고 했다며 ‘오늘 바쁘다’고 했다. 투정처럼 말하지만 은근한 자랑질이다.
|
» 화목이는 예술적 재능을 아주 많이 지녔다. 수준급의 하모니카 솜씨는 물론 건반악기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벌써 수십편의 시까지 써내려가고 있다. 하나 더 있다. 기계만 보면 원리을 알기위해 한없이 뜯어 매달린다. 화천/사진 글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 |
|
|
화목(12)이가 하모니카를 꺼내들고 <사노라면>을 분다. 찾아올 손님을 위해 공연이라도 하려는지 앙코르곡으로 <유아마이선샤인>까지 미리 들려준다.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철 이와 똑같은 머리스타일을 고수하는 주목(14)이는 동식물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해박하다.
“여기 있는 거. 물고기, 파충류, 벌레, 곤충, 곡식, 채소…. 꽃들 피고 지는 거까지 모두 사진까지 찍어서 책 만들 거야.”
관찰한 내용을 빽빽하게 기록한 공책은 주목이의 보물이다.
|
» 자신의 보물이라며 꺼내놓는 상자 속에 편지다발이 가득했다. 한달 평균 10통이 넘는 편지가 오는 선목이는 일일이 답장을 빼놓지 않는다. 화천/사진 글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 |
|
|
아이들은 내년 여름 한달 일정으로 선이골에서 전남 완도를 거쳐 제주도를 일주하고 돌아오는 자전거여행을 준비중이다. 잠은? “분교 같은데서 재워달라고 떼를 쓰려고 해요.” 그럼 밥은? “해먹으면 돼요.” 아이들은 벌써 우도 해변에서 바닷바람을 덮고 잘 꿈에 부풀어 있다.
저녁맺음의 시간. 모두가 피곤한 몸을 뉘어 잠이 든 사이 화목이가 얼기설기 직접 엮어 만든 책을 한 권 부끄러이 내놓는다. 제법 서문까지 곁들인 시집이다.
“작년 12월 11일부터…그때 그냥 재미로 써보니까…아부지가 더 쓰라고 하셔서…쓰니까 이렇게 나오더라구요.”
글쓰기를 즐기던 엄마가 아플 무렵 화목이는 그냥 갑자기 써지더라며 스스로 낱장 종이들을 엮어 책의 꼴을 만들고는 그 안에 시를 써내려 갔다고 한다. 아직 내놓기 창피스럽다며 한 30여편 정도 더 쓰면 책 한 권이 완성된다고 했다.
“시를 쓸 땐 맘이 편해지더라니까요.” 양볼이 불그스레해진 화목이. 시집 안에는 2월쯤 엄마 생각이 많이 나서 썼다는 ‘어머니’ 다섯 편과 선이골의 나무와 꽃, 산짐승들, 바람, 그리고 평화에 대한 열두 살 소년의 기도가 담긴 글이 담겨 있다.
산들바람이 부니 산이 바람결에 흔들려 춤을 춘다.
새소리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네
산속에
나무와 함께 들짐승들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네. <산의 노래>
|
» 2001년 여름 처음 선이골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당시 아이들이 보여주던 이 배트맨 흉내는 재미없다며 더이상 보여주지 않는다. 화천/사진 글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
| |
|
|
산자락엔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겨울빛 높새바람이 개구리의 울음소리에 서서히 밀리고 있었다.
다시 선이골에 내리는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