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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산 최고봉 응봉(매봉)
간밤에 비가 내리고
아침부터 작열하는 태양으로
내연산은 온통 안개로 덮여 있었지만
샘재에 버스가 오르자
발 아래 계곡은 새하얀 구름바다가 되고
수목원의 봉우리들은 햇빛에 얼굴을 마알갛게 씻고
의연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겼다.
꽃 이름을 모르겠다. 백합과인데...소담한 색이 참 좋다.
옛 사람들이 넘나들던 외솔배기 고개.
오늘도 외솔은 늠름하게 말 없이 고개를 지키고 서 있다. 볼수록 듬직하다.
수목원 자연 관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좋았다. 아침 8시경 고요하고 신선한 오솔길이 정말 좋았다.
중학교 국어책에서 배운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난다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1874–1963
무슨 꽃인지 모르겠다.
산머루. 산포도. 서역에서 들어온 포도를 당나라 때는 마유馬乳라고도 하였다.
신사임당의 포도 그림이 생각난다.
참 정겨운 열매이다.
청산별곡
살어리 살어리랏다. / 청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래랑 먹고 / 청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살고 싶구나 살고 싶구나. 청산에 가서 살고 싶구나.
머루와 다래를 먹으면서 청산에서 살고 싶구나.]
우러라 우러라 새여. /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 자고 니러 우니로라.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여! 자고 일어나서 우는구나, 새여!
너보다 근심이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울며 지내노라. ]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 무든 쟝글란 가지고 /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날아가는 새(갈던 논밭), 날아가는 새(갈던 논밭)를 보고 있도다.
평원(속세)으로 날아가는 새를 보고 있도다. 이끼 묻은(녹쓴) 쟁기(연장)를
가지고 날아가는 새(갈던 농토)를 바라보노라. ]
이링공 뎌렁공 야 / 나즈란 디내와숀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 바므란 엇디 호리라.
[이럭저럭 하여 낮은 지내왔지만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외로움)은 또 어찌하리요. ]
어듸라 더디던 돌코, /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 마자셔 우니노라.
[어디에 던지던 돌인고? 누구를 맞히려던 돌인고?
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그 돌에) 맞아서 울며 지내노라. ]
살어리 살어리랏다. / 바래 살어리랏다.
자기 구조개랑 먹고, / 바래 살어리랏다.
[살고 싶구나, 살고 싶구나. 바다에 가서 살고 싶구나.
나문재(해초)와 굴과 조개를 먹으면서 바다에서 살고 싶구나. ]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
사미 짐ㅅ대예 올아셔 / 금(奚琴)을 혀거를 드로라.
[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외딴 부엌(멀리 떨어진 평원) 지나다가 듣노라.
사슴으로 분장한 광대가 장대에 올라가서 해금을 연주하는 것을 듣노라. ]
가다니, 브른 도긔 / 설진 강수를 비조라.
취 조롱곳 누로기 와 / 잡와니 내 엇디 리잇고. <‘악장가사’>
[가다 보니 불룩한 술독에 술을 빚고 있구나.
조랑박꽃 같은 누룩(술)이 매워(독해) 나를 붙잡으니 (취하지 않고) 난들
어찌하리오.]
한 알 따서 씹으니 새콤한 맛이 입 안에 가득 감돌고 침이 고였다.
여기가 해월 황여일 선생의 유내영산록에 등장하는 주연(舟淵)일 것이다.
주연의 위치는 삼동석 10리 하류이고,
주연의 특징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다고 하였다.
거의 이 정보와 일치한다.
수영하는 미국인의 키가 190센티미터이니 주연의 크기를 짐작할 수가 있다.
물론 나도 수영을 즐겼다.
물 속의 버들치들이 수 없이 몰려들어서 나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즐거운 체험이었다. 물고기들이 사람을 전혀 겁내지 않고, 심지어 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와서
한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보기도 하였다.
주연 바로 위의 여기를 나는 금강산의 명경대(明鏡臺)와 흡사하여 보경대(寶鏡臺)라고 명명하였다.
암반이 조금만 더 경사가 없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하지만
이 보경대 일원이 내연산 최고의 비경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연에서 수영을 즐기고
여기 보경대 너럭 바위에 누워 잠시 낮잠을 즐겼다.
미국인은 그세 알지 못할 꿈을 꾸었단다.
집착이 지어내는 괴로움과 진퇴양난의 갈등이
그의 아뢰야식에서 의식의 세계로 올라온 것이리라.
나는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고 오온은 모두가 공하다는 도리를
이해하고 수행으로 철견하기를 빈다.
연민의 마음으로 그를 보고, 연민심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 담마 브라더의 미덕일 것이었다.
인생은 일장춘몽, 한단지몽.
인간 몸 받고 태어날 확률은
대지의 흙에 비하면 손톱 위의 흙만큼 적다.
더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는
맹구우목(盲龜遇木), 침개상투(針芥相投)라고 하였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調信)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서라벌 세달사의 승려 조신이 절의 전답 관리인으로 강릉으로 왔다.
강릉태수 김흔의 딸을 짝사랑하여
여러번 낙산사 관세음보살님에게 사랑이 이루어지길 여러 해 동안 남몰래 기도하였다.
태수의 딸은 다른 남자와 이미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낙산사 원통전의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원망하는 마음으로 울면서 기도하다가 옷을 입은 채로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깜박 잠이 들었다.
문득 낭자가 기쁜 얼굴로 문으로 들어와서 반가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일찍이 스님을 잠깐 보고 알게 되어 속으로 사랑하여
아직 잠시라도 잊지 못하고 있는데
부모의 명령에 못 이겨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습니다.
그러니 이제 부부가 되고 싶어 왔습니다."
조신은 매우 기뻐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흔 해 넘게 같이 살며 아이 다섯을 두었으나 집은 가난하여
끼니조차 잇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지독한 가난이 들어서 사방으로 떧로며 걸식하기에 이르렀다.
해령에 이르러서 열다섯 살 먹은 큰 아이가 죽자 그 아이를 해령 고개에 묻었다.
어느 날 어린 딸 아이가 동냥하다가 개에게 물려 아프다며 울면서 돌아와 움막에 앓아 누우니
부부도 목이 메어 눈물이 그칠 줄을 모르고 쏟아졌다.
마침내는 부인이 헤어지자며 말했다.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옷도 많고 깨끗했습니다.
한 가지 음식이라도 당신과 나누어 먹었고 얼마 안 되는 옷도 당신과 나누어 입으면서
함께 산 지 열다섯 해에 정이 맺어져 매우 친밀해졌으며, 은애(恩愛)도 굳게 얽혀졌으니
두터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새 와서는 쇠약해져 생긴 병이 해마다 더욱 심해지고
굶주림과 추위가 날로 더욱 닥쳐오니,
곁방살이와 보잘것 없는 음식도 남에게 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집 만집에 걸식하는 그 부끄러움은 산더미를 진 것보다 더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려도 이조차 미처 돌보지 못하는데,
어느틈에 부부의 애정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혈색 좋던 얼굴과 어여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처럼 사라져버렸고
지란(芝蘭) 같은 백년가약도 버들개지 꽃이 바람에 날리듯 없어져버렸습니다.
당신은 나 때문에 괴롭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이 되니
옛날의 기쁨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우환의 터전이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어찌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뭇새가 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 잃은 난새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역경을 당하면 버리고
순경에 처하면 친하고 하는 것은 인정상 차마 못할 짓이지만,
행하고 그치고 하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헤어지고 만나고 하는 것도 운수가 있는 것이니,
제발 지금부터 헤어집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기 아이 둘씩을 맡아 바야흐로 떠나려 하니 여인이 말했다.
"저는 고향으로 가겠습니다.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막 헤어져 길을 떠나려 할 때 그만 꿈을 깨었다.
이때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은 새려하고 새벽이 희붐하게 밝아왔다.
아침이 되니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희어지고 망연자실하여
전혀 세상에 뜻이 없어지고 사는 것도 벌써 싫어지고
한평생 괴로움을 겪은 것 같았다.
탐욕심이 얼음 녹듯 녹아버리고 관세음보살님 뵙기에 부끄러울 뿐이었다.
참회를 하고 돌아와
해현에 묻은 아이를 파보니 돌부처였다.
서라벌로 돌아와 돌부처를 모시고 정토사라는 절을 짓고 청정 수도승이 되었다.
그 뒤에 조신 스님이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는 알 수 없다.
일연 스님은 조신 스님의 전기를 읽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 이 전기를 읽고서 책을 덮고 지나간 일을 생각해보니
하필 조신 스님만 그렇했겠느냐?
지금 모든 사람들이 속세의 즐거움만 알고서 기뻐 날뛰고 애쓰고 있으나
이것은 다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게송을 지어 경계한다.
잠시 즐거울 땐 한가롭더니
어느덧 근심 속에 늙어버렸구나
좁쌀밥이 다 되기 전에
인생이란 한 꿈인 줄을 깨달았구나
수신(修身-수행)의 잘잘못은
먼저 성의(誠意-이욕심, 계행: 유교 대학의 팔조목을 인용하고 있다.)에 있는데
홀아비는 미인을, 도적은 창고를 꿈꾼다
어찌 가을의 청야몽(淸夜夢)만으로
때때로 눈만 감아 청량(淸凉-해탈 열반)에 이르랴 "
조신과 꿈 속에 결혼한 여인은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이고
관세음보살님이 조신 스님의 기도에 감응하여 현몽하여
조신에게 설법을 한 것이다.
향적 스님 계시는 해인사의 지족암자에는 법당 현판이
대몽각전(大夢覺殿)이라고 하였다.
요즈음 낙산사에 가면 모토가 "꿈이 이루어지는 절"이라고 하였다.
낙산사 원통보전 관세음보살님이 그립다.
파랑새가 깃들어 사는
홍련암 이근원통(耳根圓通)의 파도소리와
의상대 해돋이가 그립다.
여름꽃은 크고 탐스럽다.
백합꽃 종류인데 정확히 무슨 나리꽃인지 모르겠다.
계곡에는 연한 갈색에 흰색 가로선이 나 있는 독사들이 변온동물들이라
햇빛에 체온을 올리려고 바위 위에 나와 있는 놈들이 여럿 보았다.
오늘 처음으로 수달을 보았지만 사진 촬영은 하지 못했다.
물까마귀도 물속에서 놀고 있었다.
폭포 옆의 꽃이 범의 꼬리인가?
열흘 뒤엔 세 해 동안의 한국 생활을 접고
히말라야의 라다크-시킴-다람살라로 구도여행을 떠나는 미국인 젊은 친구
주연에서 같이 다이빙하고 수영하고 보경대 바위에서 잠자고
보현암 스님과 차를 마시고 한 오늘이
우리에겐 잊히지 않을 것이다.
기나긴 윤회의 수레바퀴 위에서 다시 또 만날 업연이 있을 것이다.
다음생엔 같이 부탄의 곰파에서 수도승이 되어 만날까
아니면 미국에서 태어나 부자지간의 인연을 맺을까?
수끼 호뚜!!!
관음폭, 관음담(감로담), 관음굴
사람들과 비교하면 내연계곡 첫 폭포인
사자폭포와 사자담, 낙구암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상생폭은 버리고 사자폭이라고 하는 제 이름을 어서 찾아주기를!
미국인 젊은 친구는 트렉킹 중 계곡에 버려진
빈 페트병, 스치로폴 등 계곡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비닐 봉지에 주워담아 내려왔다.
귀찮아서 쓰레기들을 줍지 않는 나와 얌체족 한국인들이 부끄러웠다.
둘 다 바나나, 복숭아만 먹고
아침, 점심을 먹지 않고 계곡 트렉킹을 하였다.
아침7시 30분 수목원에서 출발하여 보경사 사하촌 식당에서 밥 먹고
6시 시내버스 타고 집으로 왔다.
여름 내연산은 활기가 넘쳤다.
사계절이 모두 좋은 명산 내연산이 길이길이 아름답게 보존되길 빈다.
첫댓글 벽안의 젊은 구도자와 뜻있는 내연산 트레킹을 하였네요.
보니는 내연산 종주를 한 지가 참 오래 되었다 싶어요.
귀한 머루 사진이 어린시절 금오산에서 따 먹던 머루송이보다 너무 왜소하여
왠지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슬픈 마음도 듭니다.
태평양 상공의 탄산개스 농도가 400ppm을 넘어서서 지구행성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느고야 말았다는 환경론자들의
말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멋진 여름의 내연산 잘 보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