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그레이스님이 올리신 글을 보며 오해가 있는 것 같아 굵기와 밑줄을 첨가했습니다.
존 파이퍼, 거듭남(두란노), 130-3.
핵심은 하나님이 말씀을 거듭남의 도구로 삼으시고, 거듭남에서 말씀은 믿음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 10장 17절에서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거듭남이 우리의 믿음(believing, 믿는 행위)을 포함하며, 말씀이 우리 믿음의 원인이며, 베드로전서 1장 24절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거듭남을 일으키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말씀 뒤에, 우리의 믿음 뒤에 하나님의 결정적인 행위가 있다. 이것이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 1장 18절에서 말하는 바다.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따라 우리를 낳으셨다. 하나님은 믿으려는 우리의 의지에 속박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의지(뜻)가 우리의 의지를 가능하게 했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낳음이 우리의 믿음의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셋째 단서는 베드로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에서 이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베드로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이 똑같이 구원 받는다고 말한다. 베드로가 이 사실을 말하는 방식이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이]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행15:9).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서 “너희가 진리의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고 말한다. 이 말의 뜻은 바로 ‘믿음으로 너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사도행전 15장 9절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말한다. 다만 사도행전 15장 9절에서는 동일한 정화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이] 믿음으로 그들의 믿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믿음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거듭날 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인 동시에 필수적인 도구라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정화가 근본 원인은 아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 근본 원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 네 가지를 의미한다. 당신이 이 의미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1. 우리가 구원 받으려면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거듭남이 믿음을 대신하지 않는다. 거듭남은 믿음을 포함한다. 거듭남은 믿음으로 나는 것이다.
2. 우리는 내버려두면 믿지 않으리라는 뜻이다. 죽은 자들이 스스로 호흡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3. 풍성한 긍휼과 큰 사랑과 주권적 은혜의 하나님이 당신 믿음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뜻이다.
4.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따르면, 거듭난 마음의 열매는 사랑이다. 이것은 삶에서 거듭남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인종차별, 지구온난화, 낙태, 제한적인 아동 건강보험, 노숙자 문제, 가난, 이라크 전쟁, 화이트칼라 범죄, 인신매매, 세계적인 에이즈 위기, 급속한 사생아 증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뒤에 숨겨진 탐욕, 불법 체류자들 처리, 막 출소한 그리스도인들의 곤경 등-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모든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예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권하는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분을 당신의 삶의 구주요 보화로 받아들여라. 이미 신자라면,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 아래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세상이 감당 못할 하나님의 자녀로서 고통을, 특히 영원한 고통을 제거하는 일에 자신을 바쳐라. 우리 주변에 있는 젊은 클레렌스 토마스들이 진리와 사랑의 관계를, 거듭남의 복음과 자유의 복음의 관계를 깨닫도록 도우라.
첫댓글 역시 동자님^^ 이 글 보고 연중론 비판하는 사람들이 존 파이퍼를 알미니안주의자라고 할까 염려됩니다~
사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새벽에 글을 올렸다가 이 글만 달랑보면 관한 오해와 혼돈만 더 할 것 같아서 삭제 했는데 홀리조이님께서 지계표님에게 답하신 글을 읽으면서 함께 읽으면 저 같은 사람은 이해가 조금 더 쉽겠다 싶어서 다시 올렸습니다.
<믿음>...이 안에 얼마나 많은 보화들이 있었던고!!~~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존 파이퍼라 생각이 듭니다^^
거듭남이 우리의 믿음(believing, 믿는 행위)을 포함하며, 말씀이 우리 믿음의 원인이며, 베드로전서 1장 24절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거듭남을 일으키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말씀 뒤에, 우리의 믿음 뒤에 하나님의 결정적인 행위가 있다./이 모든것이 순간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낳음이 우리의 믿음의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셋째 단서는 "
여기서 하나님의 낳음은 넓은 의미의 중생을 일컫습니다.
약1:18이 넓은 의미의 중생을 의미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리고 파이퍼는 그 넓은 의미의 중생이 믿음의 원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동자님.. 파이퍼는 연중론자가 아닙니다.
저도 그것이 넓은 의미의 중생인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좁은 의미의 중생이 앞서 있었다는 것인데, 그 앞섬이 순간적이라고 보느냐고 지계표님에게 물어보고 싶군요. 그러니 좁은 의미의 중생과 넓은 의미의 중생이 순간적으로 동시에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두 개의 중생을 구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계표님이 지계를 그어주었으면 하는데....?
@holyjoy 홀리조이님~ 오랜만이네요.
1년도 넘은 글에 답글을 다셨습니다. 카페 알림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낳음'이 넓은 의미의 중생인 것을 인정하시면 존 파이퍼가 넓은 의미의 중생이 믿음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신다는 것이군요.
연중론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좁은의미의중생과 넓은의미의중생이 순간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좁은 의미의 중생이 <인간의 믿음과 회개라는 행위를 통해서> 넓은 의미의 중생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연중론의 핵심적인 오류입니다.
파이퍼도 믿음이 넓은 의미의 중생의 원인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중생이 믿음의 원인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