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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1zWU8ok-DI?si=uEg3FAygaAW4UBvI
*신앙 성숙의 이중주*
"오늘 제가 전할 말씀의 제목은
이것입니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Childlike Dependence) 되라,
그러나 어린아이의 일
(Childish Selfishness)을
버리라.'"
1장: 외교관이 될 뻔한 목사
나는 외무고시 준비생이었다.
고시학원 독서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날 밤도 독서실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서울 도심의 불빛이
반짝였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목소리.
*"내가 너를 부른다."*
나는 책을 덮었다. 환청인가?
피곤해서 그런가?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었다.
영혼으로 듣는 음성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독서실에 가지
않았다. 대신 근처 교회로 갔다.
비어 있는 예배당에 혼자 앉아
기도했다.
아니, 기도라기보다는
협상이었다.
"하나님, 제가 외교관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영향력도 있고, 돈도 벌어서
선교에 헌금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 달 뒤, 나는 고시학원을
그만두고
신학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다.
친구들은 미쳤다고 했다.
"3년간 공부한 게 아깝지 않냐?"
2장: 겸손이란 무엇인가
신학교에서 나는
마태복음 18장을 깊이 연구했다.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Childlike)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교수님은 물으셨다.
"왜 어린아이인가?
순수해서?
순진해서?"
"아닙니다."
교수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헬라어 원문을 보십시오.
'타페이노센'
– 스스로를 낮추다,
겸손하게 하다.
이 구절의 핵심은
순수함이 아니라
**겸손**입니다."
그날 밤 나는 기숙사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겸손은
"저는 부족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해 그래도 "이만큼은
했습니다"로 끝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경적 겸손은 달랐다.
**"나는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다."**
세 살짜리 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엄마, 나 혼자 밥 먹을 수 있어.
그러니까 엄마는 그만 나를
도와줘도 돼."
세 살짜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자신이 엄마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Childlike Dependence).
그것이 신앙의 출발점이었다.
3장: 첼리스트 윤서
목회를 시작하고 10년째 되던 해,
나는 교회 청년부에서
윤서를 만났다.
윤서는 첼리스트였다.
서울대 음대를 수석으로 입학했고,
대학 2학년 때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
언론에서는
"한국의 로스트로포비치"라고
불렀다.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
시간이 멈췄다.
첼로 현이 울릴 때마다
영혼이 떨렸다.
그런 윤서가 어느 날
상담을 요청했다.
"목사님, 저 교만한 것 같아요."
나는 놀랐다. "무슨 일인데요?"
윤서는 손을 떨며 말했다.
"제가 연주할 때마다...
박수갈채를 받잖아요.
그럼 제 안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요.
'이건 다 내가 한 거야.
10년간 하루 8시간씩 연습한
내 노력이야.'
그런데 어제 밤...
꿈을 꿨어요."
"어떤 꿈이었는데요?"
"제가 무대에 올라갔어요.
첼로를 들었는데...
팔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아무리 연주하려고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어요.
꿈속에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내가 네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고,
내가 네 귀를 열어주었다' 고."
윤서는 울기 시작했다.
"목사님, 저는...
제가 다 한 줄 알았어요."
4장: 피아노의 법칙
나는 윤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세기 프랑스에 장 프랑수아
밀레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만종』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그렸죠.
석양 아래 기도하는
농부 부부의 모습을."
윤서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밀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린 게 아니다.
하나님이 내 손을 잡고 그리셨다.'"
"정말요?"
"네. 그는 캔버스 앞에 서기 전에
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손을 사용하소서.'
그의 심정은 이것이었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나를 보라'가 아니라.
'재능을 주신 하나님을 보라'였죠."
윤서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그럼... 제 연습은 의미가 없는 건가요?
10년간의 노력은요?"
"아닙니다." 나는 웃었다.
"윤서 씨,
피아노 건반을 생각해보세요.
88개의 건반이 있죠.
연주자가 한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납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누가 만든 건가요?"
"피아노를 만든 장인이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 피아노를
조율한 조율사.
그 피아노를 교회에 헌납한 교인.
그 교회를 세운 선교사들.
나무를 재배한 농부들.
그 나무가 자라도록
비를 내린 하나님.
윤서 씨의 한 번의 연주 뒤에는
수천 명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윤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니까 제가 연습하는 것도...
하나님이 제게 주신 몫이군요."
"정확합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한
'어린아이의 일
(Childish Selfishness)을
버리는 것'입니다."
5장: 고린도전서 13장의 반전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나는 설교 준비를 하며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시 읽었다.
>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3:11)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구절을
"미성숙에서 성숙으로"의
단순한 성장 모델로 읽는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읽었다.
**마태복음 18장은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하고,
고린도전서 13장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고 한다.**
모순인가? 아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린아이의 **겸손**
(Childlike 의존성)은
가져야 하고,
어린아이의 **교만**
(Childish 자기중심성)은
버려야 한다.
세 살짜리는 레고를 세 개 쌓고
"엄마, 나 혼자 다 했어!"라고 외친다.
엄마가 바닥을 치우고,
레고를 사주고,
아이 옆에 앉아 응원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는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은 다르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행하셨습니다."
6장: 병원의 기적
2023년 겨울, 나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4기였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남았습니다."
처음 며칠은 패닉이었다.
왜 하필 나인가?
나는 하나님께 헌신했는데.
나는 교회를 섬겼는데.
나는 설교를 했는데.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모든 문장이 "나는"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병실에 혼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아니, 이번에는 진짜 기도였다.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설교한 것도
주님이 제 입을 여신 것이고,
제가 목회한 것도
주님이 제 발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제 병도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제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주님의 뜻입니다."
그날 밤, 평안이 찾아왔다.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머리카락이 빠졌다.
체중이 20킬로그램 줄었다.
교회 교인들이 돌아가며
병실을 지켰다.
윤서는 매주 와서
첼로를 연주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그 선율이 병실을 채울 때마다
나는 울었다.
6개월이 지났다.
나는 죽지 않았다.
1년이 지났다. CT 결과,
종양이 80% 줄었다.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의학 교과서에도
없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의학 교과서에는 없어도,
성경에는 있습니다."
7장: 출애굽기의 전쟁
나는 완치 판정을 받고
다시 강단에 섰다.
그날 본문은 출애굽기 17장이었다.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여호수아가 군대를 이끌고 싸웠다.
그런데 승패를 결정한 것은
여호수아의 칼이 아니었다.
산 위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있으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여러분, 이 전쟁에서 누가
싸운 겁니까?" 나는 물었다.
"여호수아요!"
몇몇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검을 휘둘렀지만,
싸운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증거가 모세의 손입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 있는
동안만 승리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이 승리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숙연해졌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노력이
무의미했습니까?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온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승리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어린아이처럼 의존
(Childlike Dependence) 하면서,
어린아이의 일
(Childish Selfishness)을
버리는 것'**입니다."
8장: 정원사의 고백
설교가 끝나고 한 노인이
내게 다가왔다.
8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손이 흙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목사님,
저는 50년간 정원사로 살았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젊었을 때 저는 교만했습니다.
'이 장미는 내가 키운 거야.
이 나무는 내가 심은 거야.'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한 일은 씨를 뿌리고 물을 준
것뿐이에요.
싹을 틀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 건 하나님이셨어요."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제가 50년간 정원을 가꾸는 동안,
실은 하나님이 저를 가꾸고
계셨던 겁니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꽉 잡았다.
흙 묻은 그 손에서 평생의 헌신이
느껴졌다.
9장: 엄마의 그림자
설교 시리즈의 마지막 주일,
나는 다른 예화를 준비했다.
"여러분, 제가 어렸을 때 일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혼자 학교에 갔습니다.
엄마는 '이제 너 혼자 갈 수 있지?'
라고 물으셨고,
저는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교인들이 미소 지었다.
"그날 저는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가방을 메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걸어갔죠.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학교 정문을 지나 교실까지
혼자 갔습니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자랑했죠.
'엄마, 나 혼자 다 했어!'"
"그런데 그날 저녁,
옆집 아주머니가 오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어머니, 오늘 아침에 골목 모퉁이에
숨어서 아들 뒷모습 지켜보시던데,
얼마나 안쓰럽던지.'"
교인들이 웃었다.
"여러분, 저는 혼자 학교에 간 게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20미터 뒤에서 따라오고
계셨던 겁니다.
제가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는지,
낯선 사람이 다가오지 않는지,
넘어지지 않는지 지켜보셨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몰랐습니다.
저는 '내가 다 했다'고 생각했죠."
나는 목이 메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가 다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이 거기 계십니다.
우리가 넘어질까 봐,
우리가 길을 잃을까 봐,
20미터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분은 늘 거기 계십니다.**"
10장: 윤서의 독주회
2025년 봄, 윤서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프로그램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
전 세계 첼리스트들이
꿈꾸는 곡이다.
나는 초대받아 2층 객석에 앉았다.
조명이 꺼지고 무대에 불이 켜졌다.
윤서가 검은 드레스를 입고
걸어 나왔다. 첼로를 안고 앉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활을 들어 올렸다.
첫 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윤서의 연주는 완벽했다.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그녀의 눈이 감겨 있었다.**
보통 연주자들은 악보를 보거나
청중을 본다.
하지만 윤서는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와 연결된 것처럼.
연주가 끝났다.
3초간의 침묵.
그리고 폭발하는 박수.
윤서는 일어나 인사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 연주는...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객석이 술렁였다.
"10년간 연습한 것은
제가 했습니다.
하지만 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신 분,
제 귀를 열어주신 분,
제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박수가 다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박수였다.
경외의 박수였다.
11장: 마지막 설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제가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교인들이 숙연해졌다.
"** '내가' 라는
말을 조심하십시오. **"
"'내가 성공했다.'
'내가 이뤘다.'
'내가 키웠다.'
'내가 만들었다.'
이 말들은 전부 거짓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나는 칠판에 썼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완성하셨다."
"여러분이 사업에 성공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지혜와 기회와 건강과 인내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잘 키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 아이의 심장을
뛰게 하시고,
뇌를 발달시키시고,
여러분에게 인내와 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노력은 귀합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통해
일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수아는 온 힘을 다해
싸웠지만, 승리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찬양을 불렀다.
윤서가 첼로로 반주했다.
## 에필로그: 찬양 「주님의 손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사람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님의 지혜로 삽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나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내가 아니었어요*
*주님이셨어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윤서의 첼로가 마지막 음을 연주했다.
여운이 예배당에 퍼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30년간 목회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저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제가 설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제 입을 여신 것입니다.
제가 암을 이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치료하신 것입니다."*
*"저는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교만을
버립니다."*
*"주님, 이 모든 영광을 받으소서."*
우리가 한 모든 일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그 손은 우리를 지탱하고,
인도하고, 축복합니다.
그 손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이사야 5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