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위치도 국토의 중앙부에 있다. 순환 코스를 짜면서 초반에 살라망카를 가기 전에 넣었다가 나중에 그라나다와 발렌시아 사이로 옮겼는데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동선에 문제는 없으니, 그냥 변덕이었나?
그런데 여행지로는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나 세비야, 그라나다에 비해 인기가 없나 보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건지 몰라도 여행 카페에는 미술관에 관심이 없으면 가지 말라거나, 가더라도 근교에 있는 톨레도나 세고비아에 집중하라는 얘기가 흔하다. 우리도 미술관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넉넉하게 (근교 포함해서) 5일 일정을 잡았다.
# 2023년 1월 17일
그라나다에서 마드리드까지는 버스를 탔다. 10:30 - 15:00. 네 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와서 마드리드 남부 터미널에서 내리니 배가 몹시 고프다. 터미널 안에서 음식 파는 곳을 발견하고 샌드위치를 사서 먹었는데, 옆지기는 이번 여행 중 손꼽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고 했다. 시장이 반찬?
기차를 타고 (한 정거장 지나 아토차 역에서 환승을 한 다음 또 한 정거장 가서) 솔 역에서 잘 내렸는데, 나가는 길을 잘못 찾았다. 한 번 방향을 잘못 잡았더니 한참 멀리까지 가서야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안내판이 부실하기도 하지만 역이 너무 큰 것도 문제다, 솔 광장까지 걸어온 거리가 솔 광장에서 숙소까지 가는 거리보다 멀었다고.
솔 광장은 대규모 공사중이라 비주얼 전혀 꽝이었고
숙소인 Hostal Centro Sol은 사람들 친절하고 관리도 깨끗해서 배낭객이 묵기에 무난한 숙소였는데, 방이 작고 낡았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우리가 5일 430유로라는 거액을 지불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도시세 포함헤서 일박에 86유로, 이번 여행 중 제일 비싼 방이었다.) 위치는 100점.
짐 놓고 나와서 솔 광장을 거쳐 산 미구엘 시장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니 왼쪽으로 큰 광장이 보인다. 플라사 마요르, 사람이 바글바글하면 더 좋았을텐데, 비가 와서? 추워서?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저 쪽에 천막 아래 뭘 먹는 사람들도 있기는 한데 왠지 썰렁한 느낌이라 합류하지 않고 시장 쪽으로.
100년이 넘었다는 산 미구엘 시장은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나 말라가의 중앙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다. 사람도(한국 사람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데 마땅히 땡기는 게 없어서 구경만 하고 돌아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다가 솔 광장 근처에서 수퍼를 찾느라 지도를 보고 있으니 지나가던 현지인 아저씨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아니, 안 도와주셔도 지도 보면 되는데... 그러나 기꺼이 (말로는 못 알아듣는 외국인들을 위해) 옆 골목까지 동행해서 까르푸 익스프레스 위치를 알려주고 가셨다.
내일도 날이 춥다니 (최저 기온이 0도 이하, 여행 중 마드리드가 제일 추웠다) 일단 실내 관광지만 다니자 - 해서 오전에는 티센 미술관, 오후에는 프라도 미술관, 저녁에는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무료 입장), 미술관 세 곳을 예약했다.
# 2023년 1월 18일
티센 미술관 개관은 10시, 시간이 넉넉하니 일부러 길을 돌아서 시벨레스 광장을 찾았는데, 이곳은 우리가 생각한 그런 광장은 아니고 커다란 로터리, 교통광장이다. 가운데 분수대가 있는데 가까이 갈 수는 없고...
티센 미술관에서는 5유로를 주고 빌린 오디오가이드가 한국어 설정 부분에 에러가 있어서 불편했지만 (한글 화면에 일본어 해설, 일본어 화면에 한국어 해설), 대충 들으며 반다이크, 모네, 르누아르, 고흐, 고갱, 칸딘스키, 몬드리안, 피카소, 리히텐슈타인... 이름 들어본 화가들의 작품 위주로 구경했다.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12시 반이다. 아쉽지만 마무리하고 나와서 점심을 먹고,
2시 프라도 미술관 입장. 프라도 미술관은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힐 정도로 소장품의 양과 질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과연 규모가 엄청나다. 그림이 7천 점이 넘는다던가, 서둘러 대충 돌아다녀도 어디서 본 듯한 그림들이 막 나타나곤 한다.
'옷 입은 마야'와 '옷 벗은 마야'를 비롯해서 고야의 작품이 제일 많았다. 사라고사에서 고야 박물관을 못 들어간 걸 보충하고도 남은 듯하다. 루벤스, 벨라스케스, 엘그레코, 무리요 등의 작품이 많이 보였고 다른 나라의 유명 화가들도 총 출연(?)했다.
다만, 티센에서는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는데 여기는 촬영 금지라 아쉬웠다. (왜 그러는 거지?)
네 시간을 돌아다녔어도 상설 전시관을 다 못 봤다. 그러나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이제는 나가야 할 시간, 마지막으로 렘브란트의 그림과 보쉬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찾아 보고 철수했다. 기획 전시관은 가보지도 못했고, 예약해 둔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도 포기했다.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에는 피카소와 달리 등 스페인 현대 미술 작품들이 많다던데... 다 못 보더라도 무료 입장 들어가서 게르니카는 보려고 했었는데... 체력이 안 받쳐주는 데야 뭐 어쩔 수 없지.
하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도 중노동에 속하는데 관람 시간만 6시간 반이었으니 힘들 만도 하다.
# 2023년 1월 19일
톨레도 당일치기
# 2023년 1월 20일
세고비아 당일치기
# 2023년 1월 21일
이틀 연속 원정을 다닌 탓인가 피로가 쌓이는 느낌이다. 숙소에서 느그적거리다 11시가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 목표는 왕궁, 자금성만큼 크지 않고 베르사이유만큼 화려하지 않은 2등 왕궁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세계에서 2등이면 대단한 거 아닌가?
들어가 구경해 보니 12유로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구경거리 맞다.
광장 건너편에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 있는데, 왕궁 안에서 보는 뷰가 최고라고 한다. 알무데나 성당. (들어가지는 않음)
왕궁 근처에서 맛집을 찾다가 (하나 찾은 데는 예약이 없다고 쫓겨나고) 우연히 들아간 집이 괜찮은 식당이었다. Taberna Rayuela. 스테이크도 타파스도 다 맛있게 먹음.
다음 행선지는 왕실 식물원, 왕립이란 말만 믿고 표를 사서 들어갔는데 (입장료가 4유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넓은 부지에 잘 꾸며놓은 공원이긴 하지만 겨울이라서 볼 게 없다. 식물원이니 대형 온실이 있겠지 했으나 온실 규모가 너무 작다. (하긴, 입장료가 없었으면 불만도 없었겠지)
20분 정도를 걸어서 도착한 레티로 공원. 넓은 공원 안에는 예쁜 호수가 있고 운동하는 사람, 놀러 나온 사람도 많다. 사람들이 몰린 데서는 마술 공연이 열리고 있나? 버스킹을 준비하는 팀들도 여럿 보인다. 그래, 이런 데가 진짜 공원이지. (그리고 공짜잖아?)
느긋하게 공원에서 쉬다가 돌아오는데 길가 작은 공원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보인다. 저것은 이란 국기고... 자세히 보니 근처에 이란 대사관이 있다. 히잡 시위를 준비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