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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과 허황후
김수로왕과 허왕후 어진
▶ 가야와 임나의 진실
가야란 나라는 도데체 어디서 왔는가?
가야 문화의 신비와 역사정신의 근본을 볼려면 북삼한에서 남산한으로 전환되는 역사의 전환논리를 알아야 한다.
단군조선이 멸망할때 삼한체제가 붕괴되어서 만주에서 한반도로 내려오게 된다. 변한은 가야가 되고. 백제는 마한, 진한은 신라가 되었습니다.
가야는 북방 훈족이 변한을 세웠습니다. (훈족은 동이족으로 고조선 3세 가륵단군때 지방정권 삭정이 훈족의 시초입니다.)
가야는 고구려,백제,신라와는 달리 동서문명을 교류시킨 북방 흉노의 왕손 김수로와 남방 인도 허황옥이 손을 잡고 만든 나라이다.
수로왕의 딸 묘견 공주가 야마토정권을 열었다.
일곱왕자가 구주에 가서 해외개척을 했다는 말이 규슈 남쪽 사쓰마 반도에 있다고 한다. 쿠로해안에 두개의 비석이 있는데 "쿠로해안은 가야 일곱왕자가 온것을 니니기 천손 강림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다카치호봉으로 내려와서 카라쿠니다케산 그리고 그 중간에 기리시마 라는 비옥한 땅이 있는데 이곳에서 일곱왕자의 일곱산성이 있다.
이 근처 칠사신사가 있는데 바로 일곱왕자를 기리는 곳이다.
가야를 카라쿠니 라고 불렀는데 가야인의 신사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임나일본부라 하여 일본이 가야를 만들었다는 불의한 얘기를 아직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얘기하고 있다.
이것을 깰려고 이덕일 소장이 밝혔으나 2015년 대법원에 고소당했다가 풀려 났다. 아직도 우리나라 역사계는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임나는 일본서기 숭신왕 65년조. 축자국으로 부터 2000리,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으며 계림(신라의 서남쪽) 이라고 적혀있는데, 그대로 지도에 대입해보면 대마도가 나온다.
임나에 대한 환단고기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다.
지리학적 문헌학적 최종 결론이 나온다.
임나는 어디있나? 임나는 대마도의 서북경계에 위치하여 라고,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 자세히 나와있다.
대마에 백제,신라,고구려가 삼분위하여 다스린 그때의 지명이 그대로 남아있다. 대마도는 임나의 본래 땅이다. (계지가라,인위가라,좌호가라)
1991년 갑자기 금관가야 의 왕릉이 발견되었다.
파형동기가 발견되었는데 똑같은 것이 발견된 일본 보다 1세기 더 앞선다고 한다.
한마디로 가야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걸 NHK에서 역사탄생이라는 프로그램에서 1991년 3월4일 임나일본부에 니시타니 타다시 와 우리나라 제작진이 방송제작을 했는데 일본인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사관의 중요한 요소로 임나일본설이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한 거 같다. 하지만 그런 유물은 이곳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다.
- 니시타니 타다시 교수"
효고현 행자촌고분의 파형동기 보다 앞선다는 것. 이런걸로 보면 임나 일본부는 없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 강화하는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등재 재검토해야<!--/CM_TITLE-->
임나일본부설 강화하는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등재 중단하고 재검토해야한다.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등재로 일제 침략이론 임나일본부설은 전 세계에 인정받게 생겼다. 왜 고대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라는 거짓역사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주려 하는가? 임나일본부 부활을 우리 스스로 꿈꾸는 것인가?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등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야 고분군의 등재는 그자체로 기쁜 일이다. 그런데 이 훌륭한 가야 고분군을 임나일본부설에 이용되는 『일본서기』국명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어 국민들의 우려와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메이지 때 일본군 참모본부가 만든 학설로서 그 핵심은 고대 야마토왜(大和倭)가 369년 한반도의 가야를 점령해서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562년까지 지배했다는 것이다. 그 핵심 논리는 야마토 왜가 한반도 남쪽을 정복했고 그 정벌한 7국이 한반도 남부에 있다는 것이고 임나10국,임나4현,기문,대사 등 임나가 들어가거나 그와 관련있는 모든 국명이 한반도 남부에 있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을 정벌하려는 정한론(征韓論)의 배경이자 침략이론이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함안 말이산 고분군,고성 송학동 고분군,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합천 옥전 고분군,남원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등이 2022년 유네스코 등재 대상 가야 유산이다. 모두 훌륭한 가야 유적이다.
그런데 이들 각 지역의 고분군을 문헌적으로 고찰, 고분의 주인되는 나라를 지칭함에 있어서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경남 합천의 고분군을 ‘다라국’의 고분으로 , 전북 남원 고분군을 ‘기문국’의 고분으로 등재하려고 한다. 이 ‘다라국’과 ‘기문국’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명칭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6가야라 했지 임나7국 등은 한 마디도 없다.
그런데 임나일본부를 세우기 위해『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초기기록 불신론을 만든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에게 세뇌된 이 땅의 주류역사학자들은 『일본서기』를 뼈대로 하여 가야사를 세우겠다는 이상한 논리를 만들었다.
『일본서기』 369년 신공황후의 7국 평정 기록을 보면 [신공황후] 49년(249→369년)에 비자발(比自㶱)⋅남가라(南加羅)⋅녹국(㖨國)⋅안라(安羅)⋅다라(多羅)⋅탁순(卓淳)⋅가라(加羅)의 7국을 평정하였다라고 나온다.
“일본의 한반도 영유는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의 자랑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일본이 한국에 대한 예속을 주장할 수 있는 정신을 임나일본부설이 인도해준다”고 했던 스에마쓰 야스카즈라는 일본학자는 1949년 『임나흥망사』를 통해서 신공황후가 정벌했다는 7국을 모두 한반도 남부에 비정했다. 그런데 해방이후에 국내 주류 역사학계가 이를 그대로 계승해버렸다. 그가 비정한 그대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7국은 대마도이거나 일본열도 큐슈로 보는 주장도 있으며 이 내용을 검토해보면 일본서기 내용은 일본열도에서 있었던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학계는 무조건 한반도 남부다. 주장한다
▶다라국은 합천이 아니다
다라국은 4세기 야마토왜가 정벌했다는 7국의 소국 중 하나이고 이후 임나10국중에도 다라국이 있습니다. 있었다고 해도 일본열도(큐슈 등)에서 있었을 일을 일제는 한반도 남부의 일로 조작했고 그 중 다라국은 합천이라고 일본학자(쓰에마쓰 등)들이 주장했는데 그걸 우리 학계도 그대로 인정해버려 이 다라국의 위치가 합천이 되어버렸다. 이를 그대로 등재하는 순간 소위 임나7국,임나10국에 등장하는 다라국이 되어버려 나머지 6국,9국도 자동으로 한반도 남부에 비정되게 된다.
오순제 박사는 “이곳은 고대의 어느 사적에 6가야로 언급되지 않은 곳으로써 다라국이라는 것조차 없었던 곳이다”라고 하였고 이병선 교수는 “만일에 『일본서기』의 다라(多羅)를 (합천) 옥전의 다라로 본다면, 임나(任那)10국 중 9국도 남한에 있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다라국이 합천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라국이 되는 순간 다라국이 나오는 일본서기의 임나7국,임나10국을 모두 한반도 남부에 비정하는 치명적인 왜곡을 범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등재하는 모든 다른 지역의 고분들도 고령은 가라,김해는 남가라,함안은 안라,고성은 고차국,창녕은 비자발이라는 일본서기 명칭을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임나7국과 임나10국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노린 등재 시도라면 정말 큰일이다. 이 정부가 가야사 연구하라고 했더니 임나사를 확고히 해버리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합천박물관은 이미 다라국으로 도배되어있다
▶남원은 기문국이 아니다
남원이 <기문국>으로 등재되면 기문국이 남원지역이니 『일본서기』에 의하면 주변에 '대사국'이 있어야 하고 그 주변에 임나4현(상치리,하치리,하타,모루)이 비정되게 된다. 우리 학계가 이를 모두 남부에 비정하고 있으니 이또한 기문국 등재에 따라오게 된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특별전시 연대표중 6세기
512년 왜,임나4현 백제에 상실 (일본서기)
512년 왜,백제로부터 기문지역 반환요구를 받음 (일본서기)
529년 왜,대사지역을 백제에 반환(일본서기)
일본서기에 나온 기문국은 무엇일까? 야마토왜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 기문국이다. 야마토왜의 나라다. 남원이 기문국을 주장한다면 야마토왜가 지배했던 남원이 되고 만다. 물론 이는 거짓 역사이지만 이 거짓되고 왜곡된 역사를 우리가 인정한 것이 되고 만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백제, 임나 등은 동네국가,성읍국가 수준이다. 『삼국사기』의 가야, 백제가 아니다. 『일본서기』도 조금만 분석해보면 ‘가야=임나’는 헛소리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이것이 일본열도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문국으로 등재가 되면 결국에는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설에 해당하는 임나7국,임나10국,임나4현,기문,대사가 모두 비정되게 된다. "한반도 남부는 야마토왜의 식민지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서기 지명인 기문,대사를 넣었다가 5월 개막된 부산박물관 전시에서는 삭제했다
▶아라가야도 안라국이 아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도 아라가야지 안라국(일본서기)이 아니다. 함안 박물관도 안라국을 내세우는 설명글을 삭제해야한다. 안라는 아라가야와 다르다. 왜 그토록 일본서기 지명에 집착할까? 이는 전체 고분군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함안박물관의 안라국 표기 : 일본서기 국명 안라국을 먼저 표기한다
안라신사 : 일본에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연구 예산으로 임나일본부설 강화해버린 학계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지시했고,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되었다. 그동안 고구려 백제 신라에 가려져 있던 가야사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가야사 복원 작업을 지금의 강단사학계에 맡기면 이들은 임나일본부설을 은연중에 확대 재생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깊이 들었다.
2년 6개월이 지나서 그동안의 가야사 연구를 총결산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유물 특별전시인 <가야본성> 전시회가 2019년 12월에 열렸다.
임나일본부설 전시회라고 할 정도의 전시 내용에 깜짝 놀랐고 국민들은 거세게 항의했으며 이를 이어 늦게 개봉된 2020년 5월의 부산박물관 가야본성 전시에서는 임나일본부 지명들 대부분이 삭제되어 전시되었다. 그리고 이후 국정감사 때 일제식민사관을 전시했다고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학계를 총동원하여 진행된 ‘임나일본부’ 유적 찾기는 모두 허사였다. 아무것도 발굴되지 않았던 거다. 그들에게는 아주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해방후 7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왜 임나일본부를 외치고 있는건가? 겉으로는 극복했다고 하면서 왜 가야는 임나라고 하고 한반도 남부에서 임나7국,10국의위치를 찾는건가?
▶가야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재검토해야한다.
2017년부터 준비된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가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합니다. 유네스코 등재가 능사가 아니다. 등재되는 순간 가장 기뻐할나라는 일본이다. “오 드디어 우리도 못했던 임나일본부설을 한국이 스스로 만들어주는구나”라고 하면서 말이다.
동북아는 역사전쟁중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일본은 독도와 임나일본부설로 무장하여 영토전쟁까지 벌어질 기세다. 이런 때에 우리는 스스로 그들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을 주고 있다. 큰일이다. 이제는 이땅에서 친일을 척결하고 매국사관, 식민사관을 완전히 몰아내야 할 때다.
-韓문화타임즈
첫댓글 과거의 일이라고 절대 무시하면 안돼죠.
미래를 바꾸어버리니까요.
이덕일선생님 애타던 목소리가 생각나요.
미소씨 반가워요~
이 한적한 공부방에 예쁜 미소가 문을 여니
미소가 절로 피어요.^^!
공부하는 순서를 몰라 헤매인 생애가 아쉬워요.
시간은 영체 같아서 상고와 현금이 하나인
몸맛을 요새 즐겨요.
태양계 속 지구, 신계 인간계, 선천 후천, 인간과 종교,
인류와 역사, 종족, 영토, 침략...
지구의 반을 하늘의 뜻으로 다스린 우리 상고의 역사를
신화로 날려버리고 동북방 끄트머리 작은 반도로 흘러들어
그마저 반토막으로 허리가 잘린 한 세기를 나고 있으니...
그러나 상고사를 공부하면 힘이 절로 솟아요.
감았던 눈이 풀리고 이마에 흰 서리가 내려 앉아요.
내게 문득 시간이 조급해지는 바가 생겼다는 거죠.
참된 역사가의 애타는 마음이 많아지면 세상이 차차 좋아질 겁니다.
애 태우면서도 '깨달아 가는' '늦은 듯 이른' 참 행복한 공부 같아요...
김진수 선생님! 안녕하세요.
귀중한 사료를 읽게되어 감사합니다.
"1만년 한민족사 - 유네스코,인류의 시원은 한국으로 인정" 게시글에 댓글 올렸습니다.
전라도 지역과 관련한 사료를 수집하려고 검색하면 전라도 시도민들은 지역역사에 무관심하고 지역역사를 찾으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어서 한숨만 나옵니다.
전라도분의 게시물은 "전남 들꽃연구회"카페에서 올린 게시물과
제가 올려드린 마고문명,마고족 마한인의 내용이 실린 "시"와 역사칼럼만 보일 뿐 다른 전라도 시도민의 게시물이 없어서 유감스럽습니다.
저는 특권 패권에 집착하는 신라사관과 중화사대주의와 일제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노론사관은 거부합니다.
신라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들만의 이익를 쟁취하려고 타자를 압제하는 특권 패권주의를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노론사관과 신라사관은 패권을 유지하는 공통분모가 있고 이들은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죽여야 그들의 사관이 살 수 있고 그들의 패권을 계속해서 행사할 수 있다는 역사의식으로 불순한 의지와
탐욕이 있다는 것입니다.
경상도 분들은 신라사관으로 일치한 구심력이 있고 역사해석을
무리해서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집념이 집요합니다.
그런 경상도 분들을 전라도분들이 탓하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반성부터 해야하는 처참한 현실입니다.
전라도는 마고문명의 마고족 마한인의 직계후손들이 문명을 일구고 역사를 이어온 지역으로서
자신의 씨족 본관이 어디든 전라도 땅에서 살면 전라도 역사와 문명 문화를 적용받고 평가받을 수 밖에 없는 공동운명체입니다.
고려 왕건이 신임하는 인물에게 자신의 성씨인 왕씨 성을 사성한 것처럼 신라도 통일과정에서 자신에게 협력한 백제의 백성에게
신라 김씨를 사용하도록 신라 김씨로 편입하여 사성한 경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가락종친 김해김씨이기에
씨족사에 진심이듯이 전라도 지역사에도 똑같이 진심입니다.
김씨의 연원은 소호금천씨입니다.
김수로 시조왕님이 흉노족이라는 학설이 있지만 김해 고분을 발굴한 결과는 부여 유물이 잔뜩 발굴되었습니다.
지금은 시조왕님께서 부여의 지배층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시조왕 부부는 합심하여 고대국가에서 보기드문 양성평등과 민본애민의 신덕정치를 하셨습니다.
단군조선의 분권분치의 정치문화를 계승하였습니다.
전라도의 역사는 상고시대에 변변한 세력으로 활동한 사료가 없어서 타지방 세력에게 복속되고
자활능력이 없는 하층민들이 많이 살고있다는
비아냥과 멸시를 당하면서 불리익을 감내하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젠 명망가 문벌자랑 경쟁만 하지말고 전라도에서 살아갈 모든 후대를 위해서 지역역사를 되찾고 자긍심이 넘치는 역사로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소망과 소명의식을 갖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조 김영모 선생님...
조촐한 자리를 찾아주어 감사합니다. 역사 공부를 참 깊게 많이 하셨군요.
김해김씨는 제 곁님 성씨고 저는 상산김, 제 모친은 광산김씨죠.^^
상고사 공부 중에 소호금천씨도 알게 되었답니다. 고향이 전라도신가요?
저는 젊은 날 '오월'을 겪고, '전교조' 활동을 했고, 은퇴 후 다시 목판화를 시작했어요.
내후년 쯤 개인전을 마치고 나면 곧장 근현대로 내달릴 수 있을까 싶지만
지금은 상고사 작업에만 열중하려고 합니다.
최근 '전라도 천년사' 문제로 지역이 부글거리고 있던데
우리 오월 미술인들의 창작활동도 활달하게 우리 민족의 역사 화두로 뜨거워졌으면 한답니다.
허조 선생님... 덕분에 한가한 카페에 패기와 생기가 도는 기분입니다.
선생님의 역사 바로 세우기 소망에 지지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종종 들르셔서 역사 인연 이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