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중학교
때는 1953년 5월 어느날 강원도 횡성땅 풍수원성당에서 학생을 모집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6.25와 1.4후퇴 전쟁후라 청운 초등학교는 폭격에 교실이라곤 모두 없어지고 교장 사택 방 한칸에서 남학생 27명 여학생 13명 모두 40명이 2월말경 빛나는 졸업은 하였으나 진학할 중학교가없어 모두들 놀고있는중이였다,
내 기억에 어렴풋이 생각이나는데 전쟁전에는 현재 우리집뒤에 공회당에서 고등공민학교가 처음 설립되여 학업을시작으로 청운초등학교 좌측편에 초가 흙벽돌공민학교로 이전 학업이 진행되였으나 난리통에 모두 폭격으로 흔적을 찾을수도없이 자연 폐쇄되고말았다,
진학할 학교가없던차에 강원도 풍수원 거리가 14키로 멀기는하여도 반가움에 성당학교 광동중학교에 입하하였다,
학교 설립자는 미국에있는 독실한 천주교인 여인으로 전후 어려운 한국인 젊은이들을 돕고자 학교를 설립하였다한다,
막상 입학하고보니 전후라 나이차이가 5,6세가 보통 덩치가 큰학생이 많았다, 학생분포는 강원도와 경기도 반반 정도이며 멀리 양수리에서 2명 용문에서 2명 다음은 청운에서 29명(1,2학년 포함)33명이 다녔다.
학교 등하교길은 열악하였다, 자갈밭 흙길을 매일 35리길을 뛰어다니자니 보통힘든것이아니였다. 혹은 숙부님이 애처럽던지 자전차로 통학도 몇차례, 몇 명씩 짝을지어 방을 얻어 자취도 해보고, 종당에는 보리쌀 4말주고 하숙생활을? 하지만 하숙방은 낡은 돗자리에 가마니 방바닦 먼지속에서 생활. 그래도 학생시절은 즐겁기만하였다.
전후 천주교학교라서인지는 모르나 구호물자가 자주 도착 학생들에게도 골고루 배당되여 토요일엔 한가방씩 지고 도둑고개를 넘어 집에가져온다,
구호물자속에는 별것이 다있다, 료마이, 가다마이, 구두, 신사바지, 원피스, 예쁜노란옷핀으로 주름단을 모두접은 투피스치마, 여자속옷, 각종 옷과 각종 모자 종류 다양하고 먹을 것은 대형 종이드럼통에 분유가 대형차량으로 수시로 도착한다, 한말씩 배당된 분유 집에 가져오면 곧바로 쩌서 식사 대용으로 온식구가 맞나게 먹는다,
한번은 호마이카 하이힐이 배당이되여,
보아하니?
구두는 구두인데 하며 생가다못해 뾰족한 뒷굽을 도끼로 잘라 신어보니, 도저히 신을수가없어 버리고말았다.
이제와 생각하니 너무나 무지하다는 생각에 폭소~!
학교건물은 성당마당 한편에 목조건물에서 선생님은 가토릭신자로 서울에서 최고실력자 국어,영어,수학,역사선생님을 초빙하여 타학교에 뒤처짐없이 지도하고 체육선생님은 김학용신부님(교장)의 조카분으로 호랑이 선생님으로 학생 규율에 최선을다하여 지도하였다.
당시 풍수원 성당은 강원도에서 제일먼저 축성되였으며 성지로 지정되어 주민들은 모두 천주교신자로 온순하며 우리경기도 학생들의 우락부락한 품위와는 전혀다른 정직한 사람들이라 혹여 물들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도학생들에 품격은 나날이 본색을 드러내기시작 순식간에 상스러운 말 행동거지로 염색이되고말았다.
하물며 겨울에 산골하천에 서식하는 개구리와 물고기가 수난을 당하여 씨가 마를지경이다.
한편으로는 영구적인 돌집 콘크리트 학교건물을 현재 유현초등학교 교정에 마련한다는 계획으로 학생 모두는 개인별로 지계를 걸어 무수히많은 하천 돌을 운반하기 시작하였다.
횡성군 가을 학생 체육대회가 열려 개교이래 처음 참석하여 힘을겨루어 평가회에서 각학교에서 깜짝놀랐다한다,
육상부분에서 단거리달리기와 마라톤 모두석권함으로 촌놈들이라고 깔보다 큰코 다친격이다.
이렇다보니 횡성읍내 중고생들이 조용할리 만무하여 풍수원 산골학생들에게 일격을 당한 분푸리로 우리학생들을 에워싸고 시비를 걸어오는데 광동중학교에는 나이 20살정도에 덩치가큰 학생들이 여러명이 버티고있어 감히 달려들지 못하고 으름장만 놓을뿐이였다.
학생중에는 특기자가 몇 명 있었다.
씨름선수,도원리 이환영 마라톤선수, 양수리 고재봉 트럼팻으로 행진때나 운동회때는 멋지게 불어대니 학생들은 사기 충천하고 기분 좋아했다,
그러나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아버지에 권유로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크게된다시며 서울로 전학을 가게되였다. 그동안 정들었던 친구들과 이별에 아쉬움을 머금고 나홀로 상경하였다.
한편 2학년 여학생 김학순 누이와 헤여지기는 더욱 힘들었다.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고 천주교 세례를 목표로 교리를 가르처주던 하급생이지만 수양누이와 그동안 정들었던 심정 해여지기 정말 섭섭한마음 어쩔수없이 눈물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야만했었다.
세월은흘러 광동중학교 상태를 알아보니 교육청에서 학교인가를 내주지않아 1회 졸업도 못마치고 페쇄되였다한다,
내가 전학한후 곤바로 학교가 인가에 미흡한 일이있었는가싶다, 그리고 사랑하던 누이에 소식도 감감 무소식 알길이없다. 정말 이마음 안타깝고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