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인의 좋은 죽음 이야기
고현종(노년 유니온 사무처장)
등록일: 2023.08.08 조회수: 494
70대 노인의 좋은 죽음 이야기
고현종(노년 유니온 사무처장)
등록일: 2023.08.08 조회수: 494노인들과 대화할 때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하거든 이 점을 기억해 두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당신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신용희(73세) 씨가 세상에 던지는 불평이다.
신용희 씨는 얼마 전 딸 전화를 받았다.
“엄마, 요즘 노인들 많아지고 하니까 웰다잉이 대세야. 엄마도, 건강할 때 준비 좀 해.”
“나, 운동 열심히 하고 있다. 걱정하지마라”
“아니, 운동하라는 말이 아니고 웰다잉이라고”
“웰... 뭐라고?”
“엄마는 한국말도 못 알아들어!”
딸의 큰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더는 묻지 못하고 알았다고 했다.
웰다잉 뭐라고,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하면 안 되나. 2023년 현재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8.4%이다. 2070년에는 46.4%로 전체인구의 절반이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면 익숙한 단어나 말도 잘 들리지 않는데 외국어를 남발해서 소통을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신용희 씨가 웰다잉(well-dying)을 이해한 것은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면서다. 노인 일자리 참여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구청에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갔다. “70대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을까요?” 담당 주무관은 “시니어클럽(senior club)으로 가세요. 거기에 일자리가 많아요.” “어디요?” “시니어클럽이요” “노인 일자리를 찾는데 무슨 사교클럽을 가보라고 하면 어떡해요!” “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 하는 곳입니다!”
노인 일자리 전담 기관이라고 하면 될 것을 시니어 클럽이라는 외국어를 써서 신용희 씨를 당황하게 만들고 주무관과 언성을 높이게 했다.
신용희 씨는 노인 일자리 전담 기관에서 일하면서 소양 교육을 받았다. 소양 교육 주제는 웰다잉이었다. 딸에게 무시당했던 그 웰다잉.
신용희 씨는 교육이 끝나고 사회복지사에게 물었다. 웰다잉이 죽음을 잘 준비하자는 거 아니냐고 근데 왜 알아듣기 어렵게 영어를 써야 하냐고.
사회복지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영어를 섞어 줘야 폼 나잖아요.” “요즘 노래 가사도 한국어와 영어를 같이 쓰잖아요.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70대 노인의 좋은 죽음 이야기
고현종 (노년 유니온 사무처장) 2023.08.08 /한글문화연대
웰다잉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생명을 의학적 치료에 의존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되었다. 국어사전에는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국어문화원연합회가 2023년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국민 2,500여 명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에 대한 우리말 대체어 국민 수용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0.2%는 웰다잉이라는 단어를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고 대답했다. 가장 적절한 대체어로 품위사는 62.9%를 적절하다고 답했고, 존엄사는 47.3%로 나타났다. 다만 이 조사에서 주어진 선택지는 ‘품위사’, ‘존엄사’, ‘존중사’, ‘존경사’였기에 품위사가 가장 높은 선택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70세 이상 노인분들에게 물어보았다. 웰다잉을 어떤 한국어로 바꾸면 좋을지. 어떤 말로 표현하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지.
여론의 지지를 많이 받은 품위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절이 생각나.” “무슨 주식회사 같은데.” “품위사도 결국 한자어잖아. 생소해.”
노인들은 품위사보다는 좋은 죽음, 평온한 죽음이 이해하기 쉽고 입에도 잘 달라붙는다고 했다. 좋은 죽음, 평온한 죽음은 죽음을 부드럽게 표현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준다. 이런 표현은 사람들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위로와 추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신용희 씨는 웰다잉이라는 외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자신을 책망했다.
“나만 못 난 것 같고. 무식이 탄로 나는 것 같고. 창피해서 몰라도 아는 척 고개를 까딱이지.”
노인들은 아파트 이름에 외국어가 많이 등장하는 게 부모들이 집을 잘 찾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거라는 농을 건넨다.
신용희 씨는 필자와 함께 웰다잉을 대체하는 한국어를 고민하면서,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 외국어 모르는 거 당연한 거지. 외국어를 한국어를 바꿔 말 할 수 있는 게 더 큰 능력이잖아.”
자신은 웰다잉을 ‘좋은 죽음’으로 부르겠다고 한다. 좋은 죽음의 핵심은 내 뜻대로 결정하는 것이라며.
연명 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장기와 시신 기증은 할 것인가. 장례 절차, 재산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등에 대해 미리 정하는 것이다. 가족과 타인에게 부담 주지 않고 가족 등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많이 하기, 소원한 사람과 화해하기,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 전하기를 자신의 의지대로 실행하겠다고 한다.
신용희 씨는 여기에 좋은 죽음의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남은 생은 외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주눅 들지 않고 한국어를 사랑하는 당당한 세종대왕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것이란다.
이 또한 좋은 죽음의 핵심인 자신의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에.
고현종(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