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건 죽은 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죽은 이들은 비록 이 세상을 떠나 함께 살아가진 못한다 해도 무형으로 존재한다.
그들이 남은 자들에게 끼쳤던 편편의 자취들이 거저 사리질 리 없는 것이다.
늦은 성묘를 다녀왔다. 용인천주교 공원 묘지엔 친정 아버지, 큰 아버지, 조카의 남편,
그리고 내 남편이 잠들어 있다. 고인들은 아무 말이 없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사연과 추억으로 그들은 산 자들과 여전히 연결된다.
성묘를 떠나기 전 나는 아들에게 '이오요구르트'를 사오라고 부탁했다.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가를 알아차렸다.
자기 아버지가 눈을 감기 전 맨 마지막으로 몰래 먹은 음식인 까닭이다.
그 작은 용기 안에 든 몇 모금의 시큼달달한 액체는 내겐 늘 눈물겹다.
남편이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입원 중에 있을 때 의사는 모든 음식과 물을 금지했다.
그는 수액과 링거를 통해서만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는데,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니 먹고 싶은 음식들이 200가지도 넘게 생각이 난다며 하루는 내게 이오요구르트 몇 줄만 사다가 냉장고 안에 넣어달라고 부탁햇다. 내가 눈을 둥그렇게 떠보이자 값이 비싼 건 부담스러우니 이오요구르트나 사다 놓고 주위 사람들이나 간호사들에게 주고 싶다는 것이다.
하루는 그가 나 몰래 이오요구르트 하나를 먹어버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오요구르트가 이렇게 맛있는 줄 전엔 몰랐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금지된 것들은 그 금령으로 인해 치명적 위력으로 인간을 유혹한다. 하물며 먹을 권리를 박탈당한 그에게 이 세상의 금지된 모든 음식들은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하게 와닿았을까. 더구나 그는 미식가적 기질도 지녔었지 않는가.
그는 이오요구르트를 끝으로 식도 천공을 일으킨 바람에 정말 물 한모금 넘기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나버렸다. 목이 탈 때는 물을 한모금 입안에 머금었다가 뱉는 정도로 견뎌내야만 했는데, 나중엔 입안에 감도는 물 몇방울조차도 그리 달 수가 없다고 했다.
어제 성묘를 하며 이오요구르트를 곁들였다.
이오요구르트를 볼 때면 차라리 그 때 한 개가 아니라 한줄을 다 마시라 할 것을 그랬구나 싶은 후회가 밀려와 새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첫댓글 남편 떠난 뒤 블로그에 올렸던 글. 이오요구르트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일. 그 때 한줄을 다 먹으라고 할 걸.
무척이나 안타까우셨겠어요...
가슴이 찡합니다. 작품으로 재탄생하면 좋을 것 같은...저의 어머니도 물을 입에만 물고 있다게 못참고 살짝 삼키는 걸 보았습니다. 걱정은 되었지만 모르는 척 했지요.
남편은 생전에 내용과 상관없이 내 글에 자기가 나오는 걸 무지 싫어했어요.한데 죽기 1년 전 어느 날, 앞으론 자기 얘기 써도 좋다하더라구요. 자기 팔아서 돈을 벌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죽음을 예감하는가봐요. 남편에 대한 글이 제법 있는 편이어서 자꾸 쓰는 걸 자제하고 있답니다. 단순한 애도로는 안 될 것 같고 뭔가 새로운 접근을 해야할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