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종 시인의 시집 『목포, 에말이요』(푸른사상 시선 140)가 출간되었다. 목포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시집은 남도 특유의 토속적인 방언과 더불어 민중들의 정서, 풍습, 전통 등을 정감 있게 담아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거점이기도 했던 목포의 역사와 민중의식을 생동감 있는 방언으로 쓰인 시편들은 목포 문학의 지형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2020년 12월 31일 간행.
■ 시인 소개
1956년 전북 부안군 동진면 당봉리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85년 목포에 들어와서 항도여중, 청호중, 제일여고, 목포공고, 목상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은퇴하여 현재 남악리에서 살고 있다.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에 「이 땅의 헤엄 못 치는 선생이 되어」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어머니 나라』 『나쁜 사과』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 『슬픔아 놀자』가 있다. 목포작가회의 지부장, 전남민예총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목포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으로 있다.
(E-mail : jogi-choi@hanmail.net)
■ 시인의 말 중에서
교직을 은퇴하고도 여길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내 고향 당봉리가 그리운디도 여그 머무는 까닭은 목포에서 살아온 세월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귄 벗들이 수두룩허고 거리거리 골목골목이 산도 바다도 섬들도 나를 붙들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목포에 들어와서 6월 항쟁을 겪었고 전교조 문제로 해직이 되어 거리의 교사로 살아야 했다. 1990년대 교육운동, 시민운동을 계속허다가 복직이 되어 그리운 아이들과 해우도 허고 월드컵 때 아이들과 거리응원도 허고 압해도, 가거도를 거치면서 강산을 세 번이나 바꿨으니 목포는 나에게 체화된 그 무엇인 것이다.
그런디 나에게 목포를 소재로 하는 시가 별로 없다. 이제라도 목포에서 살아온 세월을 담금하고 간을 쳐서 짭짤한 밥상을 차린다. 에말이요∼ 목포가 고맙다.
■ 작품 세계
최기종 시인이 목포를 제재로 삼은 작품들은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에서 나타난 역사의식과 민중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하수도 공사」는 1년 동안 일해온 3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청부업자 중정 대리(中井 代理)의 농락으로 4달 동안 삯을 받지 못하자 경찰서에 몰려가 항의하는 내용이다. (중략)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 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라고 선언했다. 역사가가 연구하는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라는 관점인데, 시인에게도 해당된다. 시인이 역사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문학이 아무리 소외되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시인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는데, 최기종 시인의 목포 시편들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략)
“목포 사투리로 ‘에말이요∼’란 말”의 뜻은 “내 말 좀 들어보라”는 것이다. “여보세요”에 해당하는 방언이다. 작품의 화자는 “처음에는 그 말뜻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왜 말을 싸가지 없게 그따위로 허느냐고 시비 거는 줄 알았”다. 그리하여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밀고는 ‘에말이요∼’ 이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혹여 내가 뭘 잘못헌 건 아닌지 머리를 핑핑 굴려야” 했다.
그런데 “목포살이 오래 허다 봉게 이제는 ‘에말이요∼’란 말이 얼매나 살가운지” 모를 지경이다. “혹여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에말이요∼’ 이리 부르면 솔깃 여흥이 생”길 정도이다. 심지어 “이제 목포 사람 다 되어서 ‘에말이요∼’ 아무나 붙잡고 수작을 부리기도” 한다.
위의 작품은 “에말이요”의 언어적 가치는 물론 사회적 가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목포라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인 만큼 국어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친밀감도 볼 수 있다. 표준어를 뛰어넘는 민중들의 정서와 전통과 풍습 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화자는 “에말이요”란 방언을 연결고리로 삼고 목포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말
최기종 시인의 시집 『목포, 에말이요』를 보면 목포의 풍경과 사투리와 먹거리가 잘도 버무려진 목포만의 정내미가 물씬 묻어난다. 아울러 남도 특유의 문화와 토속과 생태가 긴 호흡으로 펼쳐지는 것 같다. “목포에 가며는/홍탁에다 갈치속젓만으로도/맹헌 낯뿌닥 솔찬히 불콰혀지는디/쩐득쩐득헌 낙자발이며 멍게, 해삼, 개불꺼정 디려서는/씹을수록 개미지고 오돌토돌한 감흥이라니/오메! 얼척없당게”. 사실 나나 최 시인은 젊은 시절 직장을 따라서 목포에 정착하여 은퇴하고도 여전히 붙박이로 살아가고 있는 처지다. 낯선 곳에서 정든 곳으로 그리고 마침내 목포는 ‘사랑하는 곳’이 되어서 최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하여 목포 사람, 목포 시인임을 입증한 것이다.
― 고석규(목포대 명예교수, 전 총장)
시는 거짓이 아니라는 말은 시가 언어로 시작되지만 언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이름과 동시에 시를 언어 안에 가두지 말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닐 터이다. 최소한 최기종 시인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행동하는 시로 살아와서 환갑의 고개를 넘어간다. 그리하여 먼 곳에 있는 정의를 무릎 아래로 물리고, 저 홀로 놀던 시의 언어를 끌어당겨 애인처럼 보듬고 뒹굴기를 주문한다.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 무엇을 남길 청사야 저네들의 것일지라도 언제나 질펀한 지상은 우리들의 것이었기 때문에 말이다. ― 박관서(시인, 전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 시집 속으로
에말이요∼
최기종
목포 사투리로 ‘에말이요∼’란 말이 있지. 그 뜻이 뭔고 허니 내 말 좀 들어보라는 것이야. 처음에는 그 말뜻을 몰라서 어리둥절혔어. 왜 말을 싸가지 없게 그따위로 허느냐고 시비 거는 줄 알았어.
목포 말이 워낙 건조혀서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밀고는 ‘에말이요∼’ 이러면 가슴이 철렁혔어. 혹여 내가 뭘 잘못헌 건 아닌지 머리를 핑핑 굴려야 혔어. 누군가 등 뒤에서 ‘에말이요∼’ 이러면 흠칫 뒤가 시렸지.
그런디 목포살이 오래 허다 봉게 이제는 ‘에말이요∼’란 말이 얼매나 살가운지 몰라. 혹여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에말이요∼’ 이리 부르면 솔깃 여흥이 생기는 거야. 나도 이제 목포 사람 다 되어서 ‘에말이요∼’ 아무나 붙잡고 수작을 부리기도 허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