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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5-27
열두 지파 / 이수영 목사
이스라엘 민족의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로 이루어진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마음속으로 한 가지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면 유다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할 터인데 자기 백성이 예루살렘에 드나들다보면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자기를 죽이고 그에게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왕상12:25-27).
그래서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이 제사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가지 않도록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이스라엘 왕국 최남단의 마을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최북단의 마을 단에 두고는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여 백성들이 그 금송아지에게 경배하게 했습니다(왕상12:28-30).
그뿐 아닙니다. 여로보암은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으며(왕상12:31) 자기 마음대로 정한 때를 이스라엘 자손의 절기로 정하고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왕상12:32-33). 이것은 하나님께서 묵과하실 리가 없는 죄였습니다(왕상12:30). 하나님께서는 즉각 유다 땅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람 하나를 벧엘로 보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을 만나 행한 일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도착했을 때 마침 여로보암은 자기가 만들어 세운 금송아지의 제단 곁에 서서 분향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제단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징조로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또 전했습니다. 그것은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여로보암이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했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향해 뻗었던 그의 팔이 말라서 다시 거둘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의 사람을 통해 말씀하신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졌습니다. 이것은 여로보암이 자기 마음대로 정하고 행한 모든 절기와 제사가 다 헛것이며 그 가치와 효력이 하나님에 의해 전적으로 부정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뻗은 채로 말라버려 움직일 수 없게 된 그의 팔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다시 성하게 해주시도록 기도해달라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청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팔을 곧 고쳐주신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권위를 확증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고 행한 것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을 따라 행해진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은 제단이 그 자리에서 갈라진 것이 그 징조로서 보여주었듯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에게 이제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바른 신앙으로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한 팔을 되돌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를 바로 고치고 신앙을 회복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본문이 들어있는 13장 끝에 보면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33-34절)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 즉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열왕기하 22장 이하에 보면 과연 요시야가 나이 여덟 살에 유다의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면서(왕하22:1)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불사르고 전국의 산당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고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며 모든 우상의 석상들을 깨뜨리며 목상들을 찍어버렸습니다(왕하23:4-15).
요시야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개혁하고 예배를 정화하는 과정에서 오늘 본문에서의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삼백 년 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예언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봅니다.
왕하23:19-20의 기록입니다: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다시 여로보암 왕과 유다에서 벧엘로 찾아온 하나님의 사람과의 대면으로 돌아옵니다.
팔이 말라버렸다가 다시 성해진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에게 대답하기를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는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명을 성공적으로 잘 수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 본문의 내용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오늘 본문의 이야기처럼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의 이야기이며 안타깝고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났을 때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가 그의 아들들로부터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와서 말하고 행한 모든 것을 듣고는 그가 어느 길로 갔는지를 물어 그의 뒤를 좇아가 그를 만났고 그에게 자기와 함께 자기 집으로 가서 떡을 먹기를 청했습니다(왕상13:11-15).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에게 대답했던 것과 꼭 같은 말로 대답하기를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왕상13:16-17) 했습니다.
그러자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말하기를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왕상13:18)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왕상13:18).
그러나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그 속임수에 넘어가 발걸음을 돌이켜 그 사람과 함께 그의 집에 가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셨습니다(왕상13:19).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베델의 늙은 선지자에게 임했고(왕상13:20)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것입니다(왕상13:21-22).
그리고 그 말대로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났지만 길에서 사자를 만났고 그 사자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왕상13:24).
길 가던 사람들로부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베델의 늙은 선지자가 나귀를 타고 가서 보니 그의 시체가 길에 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서 있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왕상13:25-28).
사자가 그 사람을 물어 죽이기만 하고 그를 뜯어먹지는 않았으며 그가 타고 간 나귀는 전혀 건드리지도 않았다는 것은 정상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이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베델의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들어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례를 치르고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안장했습니다(왕상13:29).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유다 사람에게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 또한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유다로부터 벧엘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그의 사명을 잘 수행한 사람에게 그 후에 일어나 사건은 참으로 기이하게 여겨지며 많은 의문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정확하게 수행하던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에 속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되었는지? 어떻게 선지자라 하는 사람이 충직했던 하나님의 사람을 속여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만들 수 있는지? 또 그런 선지자가 어떻게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대언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의 물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다 온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때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수행한 사람도 실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도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 악인조차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지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유다에서 벧엘로 보내졌던 하나님의 사람에 관한 전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참된 예배와 절대적 순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자기 맘대로 정하고 만든 절기와 제사를 참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보내셔서 즉각 그것을 정죄하시고 파괴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의 죄는 무엇입니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신이라는 엄청난 거짓말로 백성을 우상숭배로 몰아갔으며 그 우상들을 위하여 산당을 짓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며 정식 레위지파 제사장들을 내쫓고 엉터리 제사장들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 모든 가증스러운 일들을 행한 근본이유는 백성의 마음을 유다왕 르호보암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의 마음이 남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의 왕좌와 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참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고 백성에게 거짓 신과 거짓 신앙을 심어주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의 집안뿐 아니라 그의 나라와 백성이 함께 멸망의 길을 가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망각하고 배신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짓 신앙을 만들며 자기 멋대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심을 아주 단호하게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사건, 즉 하나님께서 유다로부터 벧엘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에게 닥친 비극적인 일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순종이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베델에서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여로보암 앞에서는 그랬습니다. 또 벧엘의 늙은 선지자를 대하고서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벧엘의 선지자가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하며 거짓말로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는 말을 듣고는 흔들린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말씀의 확실함과 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뀐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뜻밖에 조성된 새로운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처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른데 남도 아니고 비슷한 지위의 어른의 청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인간적인 판단을 하다가 그만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너 좋고 나 좋은 편한 쪽을 택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용납하지 않으심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은 비록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 잘 이해되지 않고 우리를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끝까지 바르게 따라야 하며 사람의 판단이나 자의적 해석에 따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가르치신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과 그 뒤를 따르는 이야기는 북한교회의 문제에 관하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여로보암이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그랬듯이 분단된 한반도의 북쪽에서 권력을 잡은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그들의 권력을 대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주체사상을 만들고 자신들이 민족의 해방자고 구원자라고 온 북한주민들을 세뇌시키며 스스로를 우상화했습니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듯이 그들은 북한전역에 김일성의 황금빛 동상들을 세워놓고 누구든 그 앞에 가서 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로보암이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을 해임하고 일반 백성 중에서 제사장을 세우자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자기들의 마을과 유업을 떠나 남왕국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었으며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는 백성이 그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제사 드리러 몰려오게 되었던 것(대하11:13-16)처럼 김일성 부자도 북한에서 진짜 목사들은 다 없애버렸고 엉터리 목사들을 만들어냈으며 수많은 목회자와 신도들이 고향을 버리고 남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북에 남은 신자들은 다 처형을 당했거나 지하로 다 숨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주간신문 최근호에 실린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외부세계에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선전하기 위해 만든 북한교회의 목사나 신도들은 모두 골수 공산당원들이며 잘 훈련된 대남사업요원들이라고 합니다.
정기적인 주일예배는 없고 남한이나 외국에서 방문객들이 올 경우에만 예배드리는 연극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일반주민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고, 그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특수교육을 받은 요원들이지만 그들조차도 예배 후에는 그 예배에서 말하고 들은 것들을 뇌리에서 씻어내기 위해 혹독한 을 치러야 한다고 합니다.
이 전시용 교회는 남한의 교회로부터 막대한 선교헌금을 빨아들이기 위한 창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 헌금의 대부분은 김정일 정권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며 그것은 결국 북한의 진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데 쓰인다고 탈북자들은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북한의 이 교회들이 거짓 교회이며 거기서 드려지는 예배 또한 거짓임을 밝혀줄 사명을 남한의 교회에게 주셨을진대 과연 남한의 교회와 지도자들이 그 사명을 바르게 감당해왔는지를 냉철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은 무너질 우상의 제단을 가리켜 참된 교회라고 오히려 거짓선전에 열을 올려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북한교회는 반드시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참된 신앙이 자리 잡으며 진짜 신자들에 의해 진정한 예배가 드려지는 교회가 서도록 우리는 기도와 물질로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인 순종을 드리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