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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김진규의 칠언절구 15首의 구성과 문학적 특징. 후편[後篇]>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앞 전편에 이어--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는 조선후기 노론의 대표적 정객으로 스승 송시열(宋時烈)의 입장을 고수했던 인물이다. 문장에 뛰어나 반교문·교서·서계 작성을 많이 했으며, 전서·예서 및 산수화·인물화에도 능했다. 그는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거제 반곡서원 터에서 귀양살이를 5년간 했다. 문집으로 『죽천집(竹泉集)』, 편저로 〈여문집성(儷文集成)〉이 있다. 거제 반곡서원(盤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청이다.
○ 거제도에서 선생은 슬픔과 어려움,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이를 억제하려고 노력하되, 유배 현실을 개인의 일로 한정하지 않고 국가와 가족의 문제와 연결시켜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현실적인 층위에서 일어난 가족 전체의 일과 내면화의 방법을 가족으로 정서를 전환한 것이다. 거제에서 적은 많은 시편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매개 대상을 통한 내면화로 남긴 많은 한시들의 바탕이 가족의 유리로 인한 번민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죽천 선생은 거제도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었고 곧 그들이 거제 반곡서원을 창건(1704년)하여 거제도 유학의 절정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죽천집(竹泉集)』은 35권 12책, 목판본으로, 1773년(영조 49) 아들 양택(陽澤)이 간행했다. 권두에 양택이 쓴 어제(御製)서문이 있다. 권1은 부, 권2~5는 시, 권6은 기(記)·제(題) 등, 권7은 주(奏), 권8은 책문, 권9는 반교문(頒敎文)·교서 등, 권10은 옥책문(玉冊文)·전(箋) 등, 권11·12는 제문, 권13은 서(書), 권14~28은 소(疏), 권29는 차(箚), 권30은 계(啓), 권31·32는 묘표, 권33·34는 묘지명, 권35는 행장·비명 등이다.
○ [거제유배문학 김진규(金鎭圭)의 칠언절구 15首의 구성과 문학적 특징. 후편(後篇)]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선생의 칠언절구 연작 중 후편(後篇) 10편 15수(首)는 앞서 전편(前篇)이 보여준 일상과 계절의 변화를 넘어, 유배 공간이라는 실존적 감옥 안에서의 심리적 고립감, 가족·조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슬픔, 그리고 생(生)의 마지막을 응시하는 비장미로 심화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다음은 후편 15수의 구조적 구성과 이를 통해 완성되는 김진규 칠언절구의 문학적 특징을 알아보자.
먼저 (1) 후편(後篇)의 칠언절구 15首의 구조적 구성에 대해 알아보자. 후편의 15수는 유배의 장기화에 따른 '폐쇄성(공간·고독)', '그리움의 구체화(가족·선조)', 그리고 '체념과 마무리의 비장미'라는 세 가지 내면적 전개를 보여준다.
첫째 유배 배소(귀양집) 안에서의 철저한 고립(⑫~⑭)이다. ⑫ 「제우사벽(題寓舍壁)」에선, 좁은 유배집(寓舍) 벽에 시를 쓰며 갇혀 있는 자신의 신세를 시각화했다. ⑬ 「풍우종일 독좌무료만제(風雨終日 獨坐無聊漫題)」와 ⑭ 「독야(獨夜)」에선, 온종일 비바람이 부는 날의 무료함과 홀로 맞는 밤의 적막감을 대조했다.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유배객의 극심한 고독을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전개했다.
둘째 혈육과 선조를 향한 피맺힌 그리움(⑮, ⑯, ⑲, (21))이다. ⑮ 「견소제부시감이화지(見小弟符詩感而和之)」에선, 친동생(김진부)의 시를 보고 감격하여 화답한 시로, 유배지까지 가닿은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를 보여준다. ⑯ 「청망(晴望)」에선, 날이 개자 멀리 육지와 고향 땅을 바라보며 가족을 그리워하는 애틋함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⑲ 「단오일 억광릉회천선묘(端午日 憶廣陵懷川先墓)」 (2수)에선, 명절인 단오를 맞아 고향 광릉과 회천에 있는 조상의 묘소를 참배하지 못하는 불효의 죄책감과 슬픔을 절절하게 노래했다. 또 (21) 「증별내제한화보 영희 부황산독우(贈別內弟韓和甫 永煕 赴黃山督郵)」 (3수)에선, 자신을 찾아와 준 처남(내제) 한영희가 황산독우로 떠날 때 이별의 정을 담아 준 시로, 유배지의 고립을 잠시 깨뜨려 준 인간적 정에 대한 고마움과 석별의 정이 3수에 걸쳐 깊이 있게 나타난다.
셋째 초여름의 감흥과 절필의 비장미(⑰, ⑱, ⑳)다. ⑰ 「초하(初夏)」에선, 계절이 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자연의 변화를 포착했다. ⑱ 「절필(絶筆)」 (2수)와 ⑳ 「우제(又題)」 (2수)에선, 후편의 가장 극적인 정점이다. 생사의 기로에 서거나 유배의 절망감이 극에 달했을 때,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할 것 같은 예감 속에서 자신의 선비로서의 지조와 내면의 고백을 '절필'이라는 비장한 형식에 담아 마무리를 지었다.
다음으로 (2) 김진규 후편 칠언절구의 문학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전편이 '화이부랑(華而不浪, 화려하지만 방탕하지 않음)'의 절제미와 자연 관조에 머물렀다면, 후편의 칠언절구는 인간적 한계 상황을 마주한 지식인의 숭고미와 비장미가 한층 짙어진다. 먼저 ①실존적 폐쇄성과 '독(獨)'의 미학이 있다. 제목마다 유독 '독좌(獨坐, 홀로 앉음)', '독야(獨夜, 홀로 맞는 밤)' 등 '홀로 독(獨)' 자가 반복된다. 사방이 가시울타리로 막힌 위리안치 상태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가 된 주체의 고독을 시적 에너지를 채우는 내면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또한 ②구체적 대상(혈육·선조)을 향한 정서의 심화가 있다. 전편의 그리움이 막연한 '고향(故園)'이었다면, 후편에서는 '아우(小弟)', '처남(내제)', '선묘(先墓)' 등 구체적인 인물과 장소로 좁혀진다. 명문가(광산 김씨)의 일원으로서 조상의 묘를 돌보지 못하는 유교적 죄책감과 혈육의 정이 칠언절구라는 짧은 형식 안에 응축되어 감정의 밀도가 매우 높다. 게다가 ③연작(連作) 형식을 통한 감정의 입체적 확장을 꾀했다. 단오날의 시(⑲) 2수, 절필시(⑱) 2수, 송별시(21) 3수 등 후편으로 갈수록 연작시의 비중이 늘어난다. 이는 칠언절구(28자)가 가진 분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일한 주제를 여러 수로 이어 부름으로써 서사성과 감정의 깊이를 층층이 쌓아 올리는 지적인 작시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④죽음과 절망을 응시하는 선비의 비장미를 갖추었다. 「절필」과 「우제」 등에서 드러나듯, 기사환국이라는 잔혹한 정치 현실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유배객의 위기감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했다. 슬픔에 침잠하기보다 시를 거둠(절필)으로써 자신의 결백과 지조를 완성하려는 서리발 같은 정신력이 돋보인다.
*결론적으로 죽천 김진규의 거제도 유배문학 중 전편 11수가 '유배지의 사계절과 일상'이라는 외부적 풍경을 관조했다면, 후편 15수는 '고독·가족·죽음'이라는 유배객의 가장 깊숙한 내면 세계를 고백한 유배문학의 정수라고 평가할 수 있다.
● 이번 <김진규(金鎭圭)의 유배문학 칠언절구 11首의 구성과 문학적 특징>편에선, ‘총 21편 26수(首)’를 전편[前篇, 11편(11首)]과 후편[後篇, 10편(15首)] 2parts로 나누어 소개한다. 이번 지면에는 후편(後篇) 10편(15首)를 게재하겠다.
다음은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총 21편 26수(首)’ 중에, 후편(後篇) 10편(15首) ⑫「제우사벽(題寓舍壁)」, ⑬「풍우종일 독좌무료만제(風雨終日 獨坐無聊漫題)」, ⑭「독야(獨夜)」, ⑮「견소제부시감이화지(見小弟符詩感而和之)」, ⑯「청망(晴望)」, ⑰「초하(初夏)」, ⑱「절필(絶筆)」 2수(二首), ⑲「단오일 억광릉회천선묘(端午日 憶廣陵懷川先墓)」 2수(二首), ⑳「우제(又題)」 2수(二絶), (21)「증별내제한화보 영희 부황산독우(贈別內弟韓和甫 永煕 赴黃山督郵)」 3수(三首), 등을 차례대로 소개하겠다.
12) 다음 ‘魚’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제우사벽(題寓舍壁)」 ‘유배지 초막 벽에 쓰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평기식 한시는 작가가 1689년 기사환국으로 거제도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작품이다. 좁고 초라한 유배지 처소(寓舍)에 만족하려는 안분지족의 자세를 보이면서도, 함께 유배길에 올랐으나 한곳에 모여 살지 못하고 흩어져야 했던 친형 김진구(金鎭龜)를 향한 절절한 형제애와 그리움을 중국의 역사적 인물인 '이륙(二陸)'에 비유하여 표현했다.
**「제우사벽(題寓舍壁)」**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茅簷短短竹扉踈 띠집 처마는 나지막하고 대나무 사립문은 성긴데
老屋三間亦有餘 낡은 초가집 세 칸도 (내 몸 하나 뉘기엔) 오히려 넉넉하구나.
洛下海南均異土 한양(낙하)이나 남쪽 바다나 낯선 타향이기는 마찬가지이나
所嗟二陸未同居 오직 탄식스러운 것은 우리 형제가 함께 살지 못함이라네.
[주1] 죽비소(竹扉踈) : 대나무로 엮은 사립문(竹扉)이 틈이 넓고 헐성하다(踈)는 뜻으로, 매우 소박하고 가난한 거처를 묘사함.
[주2] 이륙(二陸) : 중국 서진(西晉) 시대의 유명한 문장가 형제인 육기(陸機)와 육운(陸雲)을 뜻한다. 여기서는 김진규 자신과 그의 친형 김진구를 비유한 핵심 시어다.
○ 내용인즉, [1~2구]에선,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과 안분지족(安分知足)을, [3~4구]에선, 타향살이의 진짜 슬픔과 형제에 대한 그리움을 읊었다. 결국 이 시는 거제도의 쓸쓸한 독방 벽에 시를 적으며, 육체적 고단함이나 권력의 상실보다 '형제가 생이별하여 서로 안부조차 알 수 없는 고통'을 가장 아파했던 유배 지식인의 지극한 형제애와 슬픔이 절제된 언어로 표현된 수작이다.
13) 다음 ‘支’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풍우종일 독좌무료만제(風雨終日 獨坐無聊漫題)」 ‘비바람 치는 종일토록 홀로 심심하게 앉아 부질없이 쓰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유배지 외로운 처지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고독을 달래며 지은 측기식 한시다.
**「풍우종일 독좌무료만제(風雨終日 獨坐無聊漫題)」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風雨凄然晝掩扉 비바람 쓸쓸히 몰아쳐 낮에도 사립문(문)을 닫아걸고
終朝不語坐如癡 아침이 다 가도록 말 한마디 없이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 있네.
涓涓薄酒誰同酌 졸졸 따르는 시원치 않은 술(박주)을 누구와 함께 주고받으랴,
黯黯幽愁只自知 어두컴컴하고 깊은 시름은 오직 나 혼자만 알 뿐이네.
[주1] 만제(漫題) : 특별한 목적 없이 생각나는 대로 부질없이 제목을 붙여 씀.
[주2] 연연(涓涓) : 술이 가늘게 흐르거나 떨어지는 모양.
○ 내용인즉, 이 시는 김진규가 정치적 격변(기사환국 등으로 인한 유배 생활) 속에서 겪었던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마음속 깊은 슬픔을 담담하면서도 애절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1~2구]에선, 외부 세계와 차단된 채 홀로 지내는 화자의 처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낮인데도 비바람 때문에 문을 닫아걸고, 아침 내내 누구와도 말 한마디 섞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은 화자의 극심한 고독감을 드러냈다. [3~4구]에선, 내면의 쓸쓸함을 술에 의지해 달래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함께 마실 벗이 없어 외로움이 배가되는 상황을 그린다. 결국 자신을 둘러싼 깊은 시름과 슬픔은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고 오직 자기 자신만 속으로 삼켜야 한다는 독백으로 시가 마무리되었다. 자연의 음산한 날씨(비바람)와 화자의 암울한 심경(幽愁)이 완벽하게 대응을 이루며, 조선 시대 지식인이 외딴곳에서 느꼈던 단절감과 쓸쓸한 정취를 잘 보여주는 서정시다.
14) 다음 ‘庚’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독야(獨夜)」 ‘홀로 보내는 밤’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깊은 밤 홀로 깨어 느기는 극도의 쓸쓸함과 적막함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평기식 한시다. 흔들리는 등불 그림자, 차가운 베갯머리의 한기, 창밖의 빗소리 등 시각·촉각·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유배지의 소외된 처지에서 오는 고독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꿈과 술기운이 깬 자리에 울려 퍼지는 귀뚜라미 소리는 이러한 적막감을 극대화하며 여운을 남겼다.
**「독야(獨夜)」**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虛窓影動燈搖焰 빈 창에 그림자 흔들리고 등불은 불꽃을 뒤흔드는데
孤枕寒生雨送聲 외로운 베갯머리에 한기가 일어날 제 비는 소리를 보내오네.
夢覺酒醒身獨卧 꿈에서도 깨고 술도 깨어 몸으로 홀로 누워 있노라니
壁間唯有一蛩鳴 벽 사이에는 오직 귀뚜라미 한 마리만 울고 있구나.
○내용인즉, 이 시는 앞서 소개한 「풍우종일 독좌무료만제」와 상통하는 정서를 담고 있지만, 시간적 배경이 '낮'에서 '깊은 밤'으로 옮겨 가면서 그 고독의 깊이가 더욱 심화된 작품이다. 1구에서는 흔들리는 불꽃과 그림자(시각), 2구에서는 베갯머리에 스며드는 찬 기운(촉각)과 창밖의 빗소리(청각)를 배치하여 홀로 남겨진 방 안의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3구에서 화자는 꿈과 술 기운에서 모두 깨어난다. 보통 현실의 고통과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매개체인 '꿈'과 '술'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적막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직시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4구에서 방 안의 소음은 오직 벽 사이에서 우는 귀뚜라미 한 마리의 울음소리뿐이다. 이 작은 곤충의 소리에 집중하게 될 만큼 방 안이 지독하게 조용하다는 것을 반증하며, 귀뚜라미를 자신처럼 외로운 존재로 감정을 이입하여 쓸쓸한 여운을 남겼다.
15) 다음 ‘先’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견소제부시감이화지(見小弟符詩感而和之)」 ‘아우 부(符)의 시를 보고 느낀 바가 있어 화답하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측기식 한시는 당쟁(기사환국 등)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가족들이 사방으로 유배되거나 흩어진 비극적인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견소제부시감이화지(見小弟符詩感而和之)」**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南北東西各落然 남북동서로 각자 외롭게 떨어져 있으니
三年骨肉散如烟 3년 동안 골육(형제)들이 연기처럼 흩어졌구나.
伶俜鶴髮誰同老 외로운 흰머리 어머니는 누구와 함께 늙어갈꼬,
唯有阿奴在眼邊 오직 아노(내 아우)만이 내 눈가에 아른거리는구나.
[주1] 소제부(小弟符) : 김진규의 친아우인 김진부(金鎭符).
[주2] 영빙(伶俜) : 외롭고 고단하게 유랑하는 모양. 홀로 외로운 모양
[주3] 아노(阿奴) : 중국 진(晉)나라 때 왕도(王導)가 사촌동생 왕돈(王敦)을 친근하게 부른 데서 유래한 말로, 남동생(아우)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이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숙종 연간의 치열한 당쟁 속에서 가문이 겪은 유배의 고통과 형제간의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절창이다. 김진규의 가문(광산 김씨)은 서인의 핵심 가문(김장생의 증손, 김만기의 아들, 인경왕후의 오빠)이었으나, 1689년 기사환국 등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집안 전체가 큰 화를 입었다. 김진규 자신도 거제도 등 오랜 유배 생활을 겪었다. 결국 이 작품은 권력의 무상함과 유배객의 쓸쓸함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정과 그리움이 애절하게 녹아 있다.
16) 다음 ‘歌’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청망(晴望)」 ‘맑은 날 멀리 바라보며’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4(卷之四)에 수록되어 있다. 이 측기식 한시는 암울한 현실(유배 생활)의 답답함을 극복하고, 날이 개듯 언젠가 찾아올 광명과 군자로서의 맑고 깨끗한 지조를 노래하고 있다.
**「청망(晴望)」**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海上春來陰雨多 바다에 봄이 오니 흐리고 비 오는 날 많아,
茫茫雲霧共相和 아득한 구름과 안개가 서로 뒤섞여 어우러졌네.
今朝日出登高望 오늘 아침 해가 돋아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니
唯見靑天映碧波 오직 푸른 하늘이 푸른 파도에 비치는 것만 보이누나.
[주1] 음우(陰雨)와 운무(雲霧) : 시인을 둘러싼 유배지의 거친 환경, 혹은 자신을 모함하고 조정을 어지럽히는 정적들과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상징한다.
[주2] 일출(日出)과 청천(靑天) : 마침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혹은 임금의 은혜(성은)가 다시금 자신에게 닿아 억울함이 풀리는 날을 소망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17) 다음 ‘齊’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초하(初夏)」 ‘초여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4(卷之四)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봄이 가고 여름이 찾아온 시골(또는 유배지)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낮 풍경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아낸 평기식 한시다.
**「초하(初夏)」**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花飛欲盡草生齊 꽃잎은 날려 다 떨어지려 하고 풀들은 가지런히 자라나는데
綠樹陰中白屋低 푸른 나무 우거진 그늘 속에 초가집 한 채 나지막이 앉아 있네.
門巷無人簷日永 마을 골목길엔 지나는 사람 없고 처마에 걸린 햇살은 길기만 한데
卧聽籬下午鷄啼 낮잠 자듯 누워서 울타리 밑 씨닭 우는 소리를 한가로이 듣노라.
○ 내용인즉, 김진규는 거제도 등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겪었던 인물이다. 이 시는 화려한 도성(한양)의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외딴 시골(또는 유배지)에서 맞이한 초여름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고 있다. 게다가 시 전체가 매우 고요하고 멈춰 있는 듯한 분위기(사람 없는 골목, 나지막한 집, 긴 햇살)를 유지하다가, 마지막 구절의 '닭 울음소리'라는 청각적 요소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닭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고요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이다. 그리고 비록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외로이 지내는 처지일지라도, 계절의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의 한가로움을 즐길 줄 아는 선비의 초연한 내면세계와 안분지족(安分知足)과 은일(隱逸)의 지조가 잘 나타나 있다.
18) 다음 ‘東’과 ‘魚’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절필(絶筆)」 ‘글을 끊다’ 2수(首)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5(卷之五)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그가 평생 지켜온 선비로서의 지조,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달관한 태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내려놓지 못했던 임금과 부모를 향한 충효의 마음이 절절히 드러난 평기식(첫수)과 측기식(둘째 수) 한시다.
**「절필(絶筆)」**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死生一理自能通 삶과 죽음이 하나의 이치임을 스스로 온전히 깨달으니
斯世元來弊屣同 이 인간 세상은 원래 닳아 빠진 짚신 짝과 같아라.
只有君親餘寸念 다만 임금과 부모님을 향한 한 조각 생각만이 남아 있으니
應知耿耿九原中 저승에 가서도 내 마음 마냥 떨치지 못하고 빛나고 있음을 알리라.
又
來自太虛返太虛 거대한 허공(우주의 본체)에서 왔다가 다시 그 태허로 돌아가니
淸明一氣復其初 맑고 밝은 한 줄기 기운이 다시 그 처음으로 회복되누나.
世人那識吾歸處 세상 사람들이 내가 돌아가는 곳을 어찌 알겠는가,
杳杳靑天萬里餘 아득하고 아득한 푸른 하늘 만 리 너머라네.
○ 내용인즉, 김진규의 「절필」 2수는 죽음을 앞둔 인간의 공포나 원망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대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거인의 태도만 가득하다. 치열한 서인과 남인의 당쟁 속에서 유배를 거듭하며 삶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세상을 '헌 짚신(弊屣)'에 비유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뼈속까지 선비였기에 임금과 부모에 대한 은애(恩愛)를 저승까지 가져가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죽음을 슬픔이 아닌, 영혼의 기운이 맑은 푸른 하늘(靑天)로 돌아가는 장엄한 귀환으로 승화시키며 삶을 마감하려고 생각했다. 김진규가 남긴 앞선 시들(「청망」, 「초하」)이 자연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이었다면, 이 「절필」은 그 모든 수양의 최종 종착지라고 볼 수 있다.
19) 다음 ‘尤’와 ‘陽’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단오일 억광릉회천선묘(端午日 憶廣陵懷川先墓)」 ‘단오날 광릉(廣陵)·회천(懷川) 선영을 생각하며’ 2수(二首)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단오라는 명절을 맞이했음에도 유배지에 갇혀 조상의 묘소를 돌보지 못하는 후손의 애통함과 가문의 쓸쓸한 처지를 담고 있는 평기식(二首) 한시다.
**「단오일 억광릉회천선묘(端午日 憶廣陵懷川先墓)」 2수(二首)**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去年手掃蘆山墓 작년에는 내 손으로 노산(蘆山)의 묘소를 청소했건만
今日魂隨竹浦舟 오늘은 내 넋만 죽포(竹浦)의 배를 따라가는구나.
憑仗南風寄雙淚 부는 남풍에 의지하여 두 줄기 눈물을 부치니
遙和雨露浥松楸 멀리 비이슬과 섞여 조상님 묘역의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적시겠네.
新阡草沒貞民里 새로 만든 무덤길은 정민리(貞民里) 풀 속에 묻혔고
舊宅堂空嘉會坊 옛집의 대청마루는 가회방(嘉會坊)에서 텅 비어 있네.
一子三孫皆海外 한 아들과 세 손자가 모두 바다 바깥(유배지)에 있으니
誰將麥飯薦端陽 그 누가 보리밥이라도 가져다 단오 제사를 올릴까.
[주1] 광릉(廣陵)·회천(懷川)·노산(蘆山) : 김진규의 선조들이 묻혀 있는 선영(조상의 무덤)의 위치를 가리킨다. 대전시 회덕구 일대에 광산 김씨 선영이 있다.
[주2] 죽포(竹浦) : 거제면 죽림포(竹林浦), 작가가 당시 유배되어 있던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포구다. 몸은 유배지의 배에 묶여 있지만 마음(넋)은 고향으로 향한다는 뜻.
[주3] 송추(松楸) : 소나무와 가래나무라는 뜻, 보통 조상의 무덤 주변에 심는 나무를 말하여 '조상의 무덤(선영)'을 비유한다.
[주4] 정민리(貞民里)·가회방(嘉會坊) : 김진규 가문이 살던 한양의 동네 이름이나 연고지다. 가문이 화를 입어 집이 비어 있음을 보여준다.
[주4] 일자삼손개해외(一子三孫皆海外) : 당쟁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과 손자들까지 모두 변방이나 섬으로 유배(해외)를 떠난 비극적인 가문의 상황.
[주5] 맥반(麥飯)·단양(端陽) : 단양은 단오(음력 5월 5일). 단오 무렵에는 햇보리를 수확하므로, 가난하거나 처지가 곤궁해도 햇보리밥을 지어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 관습이었다. 하지만 제사를 지낼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탄식하는 구절이다.
○내용인즉, [제1수]에선, 유배지에서 선영을 향한 그리움과 눈물을, [제2수]에선, 가문의 몰락과 단오 제사를 올리지 못하는 슬픔을 노래했다. 이 시는 명절인 단오를 맞아 고향 집과 조상의 묘소를 바라보지 못하는 유배객의 절망감을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20) 다음 ‘眞’과 ‘庚’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우제(又題)」 ‘또 쓰다’ 2수(二絶)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두편의 평기식 한시는 김진규가 머나먼 거제섬으로 유배되었을 때, 당쟁(기사환국 등)의 여파로 온 집안 형제들이 남해의 여러 섬으로 흩어져 유배 생활을 하던 비극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서문에 나타나듯, 누이가 남편을 따라 전라도 강진에 가 있고, 형제들은 제주도와 진도 등 가까운 섬에 모여 있는 것을 부러워하며, 멀리 떨어져 홀로 외로이 있는 자신의 처지와 조카들을 향한 그리움을 담았다.
「又題 2수(二絶)」 <서문> 누이가 남편을 따라 강진(康津)에 가 있다. 영주(瀛洲)와 옥주(沃洲)는 제주(濟州)와 진도(珍島)의 별칭이다. 이 세 곳(강진, 제주, 진도)은 서로 거리가 모두 멀지 않은데, 내가 머무는 곳만 유독 멀리 떨어져 막혀 있다.(妹從夫在康津 瀛洲沃洲 濟州珍島別號 三地相去皆不遠 余所居獨敻絶)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弟兄三島各飄淪 형제들은 세 섬으로 각각 떠밀려 유배되었고
유매초초역해빈 누이 또한 멀고 먼 바닷가에 가 있구나.
同是流離還羨爾 다 함께 떠돌아다니는 신세지만 도리어 네가 부러우니
瀛洲入望沃洲鄰 (네가 있는 강진에서는) 제주의 모습이 보이고 진도가 이웃해 있기 때문이라네. -누이를 그리워하며(右憶妹)-
長兒奇俊次純明 큰아이는 기이하게 뛰어날 테고 둘째 또한 순수하고 총명할 터,
更喜前年得小甥 게다가 기쁘게도 지난해야 막내 조카까지 얻었구나.
自愧舅愚那足似 외삼촌인 내가 어리석어 그 아이들이 나를 닮기엔 부족하지만
袁楊可繼爾家聲 원(袁)나라와 양(楊)나라의 명모처럼 너희 가문의 명성을 잘 이어가리라. -조카들을 그리워하며(右憶甥)-
[주] 원양(袁楊) : 중국 역사에서 외삼촌과 조카 사이의 재능이 모두 뛰어나 명성을 떨쳤던 '원안(袁安)과 양수(楊修)' 혹은 중국 남북조 시대 문장가였던 '원숙(袁淑)과 양현(楊炫)' 등의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외가와 친가가 모두 명문장가 집안임을 뜻함.
○ 내용인즉, 이 시는 단순한 개인의 슬픔을 넘어, 당쟁으로 인해 한 가문 전체가 남해바다 전역으로 쫓겨 나간 조선 시대의 비극적인 역사적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친형제들은 섬(제주, 진도)에 갇히고, 누이는 육지 끝(강진)에 있으며, 자신은 홀로 아주 먼 곳에 고립된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에만 머무르지 않고, 먼발치서나마 서로의 거리를 헤아리며 조카들의 탄생과 성장을 축복하는 인간적이고 가족애 넘치는 면모를 시 속에 녹여냈다.
21) 다음 ‘先’, ‘魚’ ‘刪’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증별내제한화보 영희 부황산독우(贈別內弟韓和甫 永煕 赴黃山督郵)」 ‘처남 한화보(韓和甫, 영희永煕)가 황산(黃山, 경남 양산 황산역)의 독우(督郵)로 부임하러 떠날 때, 작별하며 짓다’ 3수(三首)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화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 『죽천집(竹泉集)』 권4(卷之四)에 수록되어 있다. 차레대로 평기식, 측기식, 평기식인 이번 3수의 한시는 오랜 세월 함께 고난을 겪은 처남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관직에 나아가는 처남에게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당부하며, 가문에 닥친 비극을 함께 애도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증별내제한화보 영희 부황산독우(贈別內弟韓和甫 永煕 赴黃山督郵)」** 3수(三首)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西城南陌廿年前 서쪽 성곽과 남쪽 길거리에서 놀던 이십 년 전,
夏荔春蠔勝事偏 여름의 여지(荔枝)와 봄의 굴(蠔)을 맛보던 좋은 일들이 유독 많았지.
嶺海嚴秋今遠別 영남과 바다 멀리 매서운 가을날 이제 멀리 이별하려니
相看鬢髮各蒼然 서로 바라보는 살쩍과 머리털이 각자 하얗게 세었구나.
寢殿三年持被餘 침전(왕릉)에서 삼 년 동안 이불을 지키고 남은 신세로
馹行今日擧鞭初 역말을 타고 가는 길에 오늘 처음으로 채찍을 드는구나.
須知一命恩逾重 모름지기 한 등급의 관직을 제수받은 은혜가 중함을 알아야 하니
夙夜存心愼莫踈 아침부터 밤까지 마음을 보존하여 삼가 소홀히 하지 말아라.
鴒原深慟在完山 할미새 홰나무 언덕(형제의 죽음)의 깊은 슬픔이 완산(完山)에 있으니
兩斧傷生卽一般 두 자루 도끼가 삶을 상하게 한 것은 똑같은 처지라네.
縱使洛江爲美酒 비록 낙동강 강물을 모두 좋은 술로 만든다 한들,知君
知君不忍把盃歡 그대가 차마 잔을 잡고 기겁게 즐기지 못할 것을 내 아노라.
[주1] 침전삼년(寢殿三年) : 임금이나 가문의 상사(喪事)로 인해 오랜 기간 시묘살이를 하거나 관직에서 물러나 자숙하던 시기를 의미한다.
[주2] 영원(鴒原) : 《시경》에서 유래한 말로 '형제의 이별이나 죽음'을 애도할 때 쓰는 표현이다.
○ 내용인즉, [제1수]에선, 20년 세월의 회상과 이별의 아쉬움을, [제2수]에선, 공직에 임하는 처남을 향한 격려와 당부를, [제3수]에선, 가문의 슬픔과 슬픈 이별을 그렸다. 이 시는 김진규의 다른 가족 시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정감과 역사적 고난이 촘촘히 얽혀 있다. 젊은 날의 화려했던 기억(1수)과 대조되는 현재의 쓸쓸한 늙음, 새로 관직을 얻어 떠나는 처남에게 건네는 처세와 공직자로서의 조언(2수), 그리고 집안에 닥친 참혹한 슬픔을 공유하며 차마 술 한 잔도 편히 마시지 못하는 처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깊은 연민(3수)이 짜임새 있게 연결되어 있다. 화려한 수사 대신 진솔하고 애틋한 어조로 처남을 배웅하는 매력적인 연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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