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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상으로 진화한 SNS 검색용 메타데이터
2015년 4월25일, 네팔 수도 카투만두에선 참사가 발생했다. 진도 7.8의 강진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공식 사망자만 3200명에 이른다.
전세계 애도 메시지도 네팔로 모였다. 누리꾼들의 애도 방식이 눈길을 끈다. 누리꾼들은 네팔 참상을 알리고 애도의 뜻을 전하는 메시지를 올리며 ‘#PrayForNepal’(네팔을 위해 기도하자)이란 꼬리표를 붙였다.
한 사람이 글을 올리면 누군가 똑같은 꼬리표를 단 다른 글로 꼬리를 물었다. 약속한 열쇳말을 통해 한마음 한뜻을 담은 글을 결집시키는 것이다.
■ 해시 태그란
해시태그(hashtag)는 게시물에 일종의 꼬리표를 다는 기능이다. 특정 단어 또는 문구 앞에 해시(‘#’)를 붙여 연관된 정보를 한데 묶을 때 쓴다.
해시(hash) 기호를 써서 게시물을 묶는다(tag)고 해서 해시태그라는 이름이 붙었다. 해시 기호 뒤 문구는 띄어쓰지 않는다. 띄어 쓸 경우 해시태그가 아닌 것으로 인식한다.
처음에는 관련 정보를 묶는 정도의 기능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검색 등 다른 용도에도 쓰인다. 예컨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게시물을 올리고 해시태그를 달면,다른 사용자도 그 게시물과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함께 찾아볼 수 있다.

해시태그는 처음엔 관련 정보를 묶는 용도로 쓰였지만, 지금은 검색 등 활용 범위가 확대됐다. <사진: 플리커 SXSW Gingerman - Hashtag. CC BY Brian Solis>
■ 등장
해시 기호는 영미권에서는 숫자를 가리키는 기호로 쓰인다. 국내에서는 흔히 ‘우물정자’나 ‘샤프’ 기호로 부른다. IT업계에선 해시 기호에 다른 의미를 덧입혔다. 1970년대 어셈블리 언어에서 해시 기호는 직접 주소 모드를 표현하는 뜻으로 쓰였다.
C언어를 만든 데니스 리치와 브라이언 커닝헌은 1978년 C언어에 해시 기호를 도입했다. 이들은 헤더파일 호출 같이 C언어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명령어 앞에 해시 기호를 붙였다.
#include <stdio.h>
int main(void)
{
printf(“Hello, World! n”);
return 0;
}
■ 발전
해시 기호가 정보 묶음을 가리키는 데 처음 쓰인 곳은 IRC(Internet Relay Chat)였다. IRC는 인터넷 채팅 서비스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전세계 누구와도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핀란드 개발자 자코 오이카리넨이 만들어 1988년 8월 대학교 자료실에 공개했다.
지금은 이런 게 있냐고 비웃을지 몰라도, 인터넷이 막 등장한 당시에는 IRC가 꽤 혁신적인 서비스였다. IRC는 소비에트 쿠데타가 일어난 1991년 정부에 의해 통제된 언론 대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일약 주목받았다. 걸프전에도 같은 식으로 활용됐다. 덕분에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쓰이던 IRC는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해시 기호는 IRC 네트워크 안에 그룹이나 토픽을 지정하는 데 쓰였다. 로컬 서버에서만 주제를 정하는 ‘&’ 기호와 달리 전체 IRC 네트워크를 통틀어 특정 주제를 공유할 수 있었다.
■ 해시태그로 트위터 글 엮어보면 어떨까
IRC에서 특정 주제를 묶을 때 해시 기호를 쓰는 점은 오픈소스 운동가 크리스 메시나에게 영감을 줬다. 그는 2006년 7월 세상에 나온 단문 SNS 트위터에서 많은 메시지가 오고가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트위터로 쏟아지는 정보가 흩뿌려지는 점을 안타까워해, 해시 기호를 써서 특정 주제를 묶을 수 있도록 하자고 트위터에 제안했다. 트위터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2007년 8월23일 크리스 메시나는 트위터에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를 써서 정보를 묶는 걸 어떻게 생각해? #바캠프 [메시지]라는 식으로 말이야.” 해시태그가 탄생한 순간이다.

2007년 8월23일 나온 최초의 해시태그 <출처: 크리스 메시나 트위터>
3일 뒤인 8월26일 소셜미디어 전문가 스토 보이드는 블로그에 “해시 태그=트위터 그루핑”이라는 글을 올렸다. 여기서 스토 보이드는 크리스 메시나가 트위터에 제안한 기능에 ‘해시태그(hash tag)’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해시태그가 처음부터 널리 쓰이진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술 덕후’들이나 쓸 법하다며 해시태그를 허투루 봤다.
크리스 메시나는 2007년 10월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이 나자 ‘#SandieoFire’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관련 소식을 한데 모으자고 제안했다. 누리꾼은 서서히 해시태그의 존재를 깨달았다. 해시태그가 진가를 발휘한 건 몇 년이 더 지난 뒤다.
■ 해시태그 아랍에 봄볕을 부르다
2009년 이란에서 대선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다.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표 63%를 가져가며 재선에 성공하자 상대 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 등 개혁파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녹색혁명이라 불리는 이란 대선 불복 시위는 2009년 6월부터 2010년 2월에 걸쳐 8개월 동안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이란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망자는 36명이었고, 4천여명이 체포됐다.
시위대는 트위터를 써서 정보를 교환하고 집회 일정을 잡았다. 이때 해시태그가 주효했다. ‘#IranElection’ 같은 해시태그를 단 트위터 메시지가 전세계로 퍼졌다.
시위가 비교적 평화로웠던 초기부터 친정부 조직은 시위대를 경계했다. 2009년 6월20일 친정부 민병대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쐈다. 26세 여학생 네다 하그하-솔탄 등 7명이 사망했다.
네다가 가슴에 총을 맞고 아버지 품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은 스마트폰에 포착돼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에 방송됐다. ‘#neda’는 ‘#IranElection’과 더불어 이란 시위를 대표하는 해시태그로 떠올랐다.
이란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왕정 또는 전제주의 정부가 지배하던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돼 2011년 1월 재스민혁명으로 번졌다.
이집트도 2월 코사리혁명을 일으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리비아에선 42년째 정권을 쥐었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죽으며 독재정치에 마침표를 찍었다.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도 11월24일 권력 이양안에 서명해 33년간 계속된 철권통치에 안녕을 고했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다.
2010년, 미국 심장부에서도 정치 운동이 일어났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불러오고도 정부 지원금으로 거액의 보너스를 가져간 금융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다. 분노한 미국 시민은 ‘#OccupyWallStreet’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 해시태그 검색을 입다
트위터는 2009년 7월 모든 해시태그에 링크를 달았다. 그때부터 트위터 해시태그를 누르면 똑같은 해시태그를 단 글을 검색한 결과가 떴다.
2010년에는 트위터 첫 화면에 ‘실시간 트렌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네이버 실시간 인기 검색어 같이 트위터상에서 많은 사용자가 공유하는 관심사를 묶어 보여주는 기능이다.
트위터는 어떤 주제가 인기 있는지 판단하는 데 해시태그를 활용했다. 많이 달린 해시태그를 중심으로 인기 키워드를 실시간으로 알아냈다. 해시태그는 트위터에 핵심적인 기능으로 자리잡았다.
트위터가 해시태그를 도입해 쏠쏠하게 재미를 보자 다른 SNS도 잇따라 해시태그를 도입했다.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은 2011년 1월 해시태그 기능을 선보였다.
해시태그 덕분에 검색이 어려웠던 사진 공유 서비스의 한계를 뛰어넘어 같은 관심사를 지닌 사용자가 활발히 소통할 길을 열었다. 페이스북도 2013년 6월 해시태그 기능을 덧붙였다.
트위터와 유사한 중국산 단문 SNS 시나웨이보는 2009년 8월부터 해시태그 기능을 지원했다. 띄어쓰기를 안 하는 중국어의 특징 때문에 웨이보는 해시태그를 2개 쓴다.
‘#세월호#’ 같이 단어 앞뒤에 해시태그를 붙여 어떤 단어가 해시태그인지 특정한다. 트위터처럼 해시 기호 하나만 쓸 때는 해시태그 앞뒤로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
이들 뿐 아니다. 구글플러스, 바인, 텀블러, 플리커, 유튜브 등 많은 서비스가 현재 해시태그를 지원한다.
■ 정치 도구에서 광고 수단으로
‘#OccupyWallStreet’와 ‘#IranElection’은 세계 곳곳에서 시민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해시태그가 달린 트윗은 해시태그가 없는 글보다 2배 이상 더 많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자 여러 분야에서 해시태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해시태그를 가장 활발하게 사용한 곳은 홍보업계다.
집회·시위와 마찬가지로 홍보 캠페인도 관심과 참여를 많이 끌어내야 한다. 이 점에서 해시태그는 고객의 이목을 모을 훌륭한 수단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이스티 제조사 BOS는 2012년 6월 특이한 자판기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 자판기 앞에 서서 ‘#BosTweet4T’라는 해시태그를 단 트위터 메시지를 보내면 5초 뒤에 아이스티를 뽑아줬다.
이벤트 기간 동안 1천개가 넘는 음료수가 배포됐다. BOS는 이 이벤트로 트위터 팔로워 증가세를 65% 늘렸다.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도 5만6천번을 기록했다.
이보다 더 주목할 만한 점은 <포브스>와 <BBC>, <AFP> 통신 등 전세계 언론이 이 이벤트를 보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홍보 효과를 만들어낸 재료는 트위터 해시태그로 작동하는 자판기 1대였다.
국내에서 해시태그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슈퍼스타K’다. CJ E&M은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 일정 순위 이상 출연자를 선별할 때 생방송으로 무대에서 경연을 벌이고 시청자에게 실시간으로 문자투표를 받았다.
‘#0199’로 자신이 지지하는 출연자 이름이나 번호를 적어 보내는 식이다. 걸출한 출연자와 시청자가 직접 승자를 결정하는 ‘대국민 오디션’ 형식 덕분에 슈퍼스타K는 큰 인기를 누렸다. 최종회 시청률은 8.4%가 넘어 ‘슈스케 효과’라는 말을 낳았다. 문자투표 참여자는 16만명이 넘었다.
■ 문화현상으로
해시태그가 마케팅 수단으로만 쓰인 건 아니다. 집회·시위에서 사용자를 모으는 촉매 역할을 했듯 누리꾼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으는 구심점으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멕시코 여배우 셀마 헤이엑은 2014년 5월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 ‘#BringBackOurGirls’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등장했다. 이슬람 무장단체가 납치한 여학생 270명을 돌려보내라는 뜻이다.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 동북부에 있는 한 여학교 기숙사를 습격해 여학생 270여명을 납치했다. 이들은 정부가 수감 중인 조직원을 석방하면 납치한 여학생을 풀어주겠다고 주장했지만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셀마 헤이엑은 영화제에 쏠린 이목을 나이지리아로 돌려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했다. 그 덕분에 납치 학생 반환운동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왔다.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도 이 운동에 손을 보탰다.

미셸 오바마 미국 영부인도 ‘#BringBackOurGirls’(우리소녀를돌려달라)는 해시태그를 들고 동참을 촉구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CC PD>
같은 영화제에서 ‘윈터 슬립’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터키 감독 빌제 세일란은 탄광 사고로 숨진 터키 광부 301명을 기억하자며 배우들과 함께 ‘#soma’라는 해시태그를 손에 들었다.
5월13일 터키 마니사주 소마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광부 30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100여명이 아직 갱도 안에 있었지만 터키 정부는 닷새 만에 구조 작업을 종료했다.
터키 시민은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빌제 세일란 감독은 해시태그를 들어 국제사회에 소마 탄광 폭발 사고를 주목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글 머리에 인용한 신화 김동완 씨 글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인기 연예인이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을 사회 공론장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 가벼운 놀이수단으로
해시태그가 늘 무거운 정치·사회적 이슈만 다루는 건 아니다. 해시태그 본연의 기능에서 벗어나 유희적인 요소로도 쓰인다.
인스타그램에서는 ‘#OOTD’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한다. 데일리룩(Outfit Of The Day)을 가리키는 해시태그다. 오늘 입은 옷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건 인스타그램의 대표적인 문화가 됐다.
요즘 트위터에는 ‘#제_그림체는_어디서_제_티가_나나요’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한다. 많은 사용자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올리며 자기 그림체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해시태그를 처음 만든 크리스 메시나는 해시태그의 본래 역할을 강조하며 “해시태그는 애매모호하거나 너무 길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리꾼은 일부러 해시태그의 기능적인 면을 해치며 재미를 찾는다.
■ 모바일 시대 맞아 조연에서 주연으로

해시태그를 전면에 내세운 사진 기반 관심사 공유 앱 ‘폴라’
해시태그 인기가 높아지자 이를 전면에 내세운 서비스도 등장한다. 네이버가 지난 4월 내놓은 ‘폴라’다. 폴라는 해시태그와 사진을 최일선에 배치한 관심사 중심 SNS다. 그래서 이름도 사진(photo)과 인기(popular)를 합친 폴라(Pholar)다.
폴라에는 정해진 카테고리가 없다. 사용자가 올린 해시태그가 카테고리가 돼 정보를 분류한다. 사용자가 해시태그를 달며 관심사별로 모인다고 해서 ‘관심사 SNS’라고 한다. 해시태그를 달기 쉽도록 해시 단추(‘#’)를 키보드에서 따로 빼뒀다.
네이버는 폴라뿐 아니라 모바일 블로깅 콘텐츠를 보여주는 네이버포스트와 네이버 블로그 등에도 해시태그를 덧붙였다. 네이버는 해시태그가 모바일 시대에 파편화된 정보를 분류하는 중요한 데이터가 되리라고 보고 있다.
사진 같이 검색이 어려운 데이터도 사용자가 달아둔 해시태그로는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텍스트 속에서 검색 키워드를 찾기보다 사용자가 직접 단 해시태그가 글의 요점을 콕 집어줄 수도 있다.
네이버는 모바일 시대에 검색 결과를 벼리는 데 해시태그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실시간 검색어에 지금 유행 중인 해시태그를 보여주거나 검색에 해시태그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