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기 시작한 지 언 1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주로 넘어와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주와 사랑에 빠졌고
3개월의 시간을 넘어 1년 아니 2년 혹은 평생을
제주와 함께 하고자 한다.
나는 현재 제주에서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주의 여름은 비와 떨어질려야 떨어질 수 없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구름이 모여 이틀에 한 번꼴로는 늘 비가 오는 제주의 여름, 제주에 산다면 이런 여름을 적응해야 한다. 나 또한 여러 방법으로 비오는 여름에 녹아들었다. 카페에서 빗소리와 함께 책을 읽기도, 우산을 쓰고 곶자왈이나 숲을 거닐기도, 이런 멋들어진 절에 들러 마음의 안정과 절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오늘 다녀온 이곳 산방굴사는 비와 잘 어울리는 절이자, 여행지였다.
산방굴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로 218-12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방산 아래 200m 지점에 있는 길이 10m, 높이와 너비 5m의 천연 석굴로 원래는 산방굴이라 불리는 곳이었는데 이 안에 불상을 안치하고 있어 현재는 '산방굴사'라는 사찰로 불린다.
이곳은 고려 시대 승려 혜일이 창건한 곳으로 굴 내부는 석벽처럼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천장 암벽에서는 사시사철 눈물처럼 맑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이를 본 사람들은 이 물방울을 산방산 암벽을 지키는 산방덕 여신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 불렀고, 이 전설이 현재까지도 전해진다.
굴 밖에는 노속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일출, 용머리해안과 형제섬, 날이 좋을 때는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이며 절경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이곳은 산방산 안벽 식물지대는 천연기념물 제37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산방굴사를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산방산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 현재는 산방산 등산로가 모두 막히어 입산이 불가능하지만, 이곳 산방굴사를 여행한다면 어느 지점까지 산방산을 오를 수도 있다. 이곳 산방산은 한라산만큼 아름다운 절경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모든 것 또한 산방굴사를 오르면 경험할 수 있다. 멀리 보이는 형제섬과 그 앞에 보이는 하멜 표류 기념탑 그리고 그 앞의 천연기념물 제526호로 지정된 용머리해안까지 모든 것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산방산
제주도가 형성되었을 시기에 생성된 산방산은 높이 395m로 원래 한라산 정성이던 것이 뽑혀 산방산이 되었고, 그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실제 분화구가 없고 풍화작용에 의한 침식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또한 봄이면 이곳 주변으로 유채꽃이 활짝 피는데 유채의 발자취와 함께 이곳을 여행하는 것도 묘미로 다가올 것이다.
산방굴사 밑에 위치한 보문사도 산방굴사처럼 아름다웠다.
비가 오는 날 여행을 떠나는 것은 떠나기 전부터 왜인지 두근거린다. 이 두근거림은 설렘보단 도전할 때 느끼는 두근거림과 퍽 비슷하다. 그럼에도 비 오는 날 여행을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일단 제주는 비 오는 날, 오지 않는 날 가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 여름의 제주는 대부분 비가 내리고, 맑은 날에도 비가 떨어진다. 제주에 산다는 것은 비에 적응한다는 의미고, 여행을 업으로 하는 나에겐 비는 친구처럼 옆에 두어야 할 존재였다.
산방굴사를 올라가는 길 보이는 멋진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처음엔 이런 비 오는 날 여행이 쉽지는 않았다. 대부분 억지로 여행하기 일쑤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오히려 비 오는 날이면 우비를 챙기고 먼저 밖으로 나간다. 그 이유를 하나 꼽자면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은 같은 여행지어도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곶자왈은 맑은 날, 빛줄기가 숲 사이사이로 들어오며 연둣빛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면, 비 오는 날은 두둑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초록빛보다 더 진한 카키색의 잎들이 나를 반긴다. 연둣빛 숲과 카키색 숲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혀 다른 감성을 선사하기에 비 오는 날의 여행은 꽤나 즐겁게 다가온다.
멋진 나무들이 이곳 산방굴사 산책로를 가득 채운다.
오늘 떠난 이곳 산방굴사도 마찬가지였다. 산방굴사는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적막을 선사한다. 이 적막은 내 기분을 침착하게 또, 차분하게 만든다. 이 차분함은 200m 높이에 위치한 절을 만나러 가는 내내 유지되었다. 이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절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서귀포의 바다가 눈을 가득 채운다. 이 절과는 반대로 원래였다면 파란 바다가 가득 찰 이곳이 짙은 남색의 바다가 파도로 요동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상반되는 두 이미지는 몽환적인 기분을 선사했다.
산방굴에서 만난 불상은 이 여행의 목적이었다.
정상에 올라와 만난 산방굴사는 어쩌면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는 달랐다. 가는 여정은 아름답고 행복했으나, 도착한 곳은 여행지로서는 크게 매력으로 다가오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잠시 굴을 등지고 바다가 보이는 곳을 바라보는 순간 이 모든 것이 깨졌다.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는 서귀포의 바다는 가까이서는 경험하지 못할 전경을 보여주며 자연의 놀라움을 선사했고, 그 모습을 보기 위해 경험한 모든 여정이 부처의 자비처럼 느껴졌다.
여정을 마무리하고 내려와 위에서 보았던 서귀포의 바다를 만났다. 가까이서 만난 바다는 위에서 장엄한 모습으로 서있던 바다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느껴졌다. 오히려 위와는 다르게 조금 차분한 모습이었고, 오히려 반대로 여기서 바라본 산방산이 차분함과는 거리가 먼 장엄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서로 이렇게 다를 수 있음에 놀랐다.
비 오는 날의 서귀포 여행은 옳았고, 그곳에서 만난 산방굴사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만약 비 오는 날, 제주를 여행한다면 이곳 산방굴사를 찾아보자.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 그 자체가 아름다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