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제(解題)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光佛華嚴經)의 약칭(略稱)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인도 마가다국의 보리수 아래서 정각(正覺)을 이루신 지 三·七일이 되던 때에,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시고 등각(等覺)보살들을 우두머리로 구름처럼 모여 온 대중들을 위하여,
당신의 깨달으신 내용, 곧 자기 마음속에 나타난 경계[自內證]를 그대로 털어 놓으신 근본 경전이다.
그래서 이 화엄경은 여느 경전이 교화를 받을 만한 대중[對告衆]을 위해서
그들에게 알맞은 법문을 말씀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교화를 받을 만한 중생에게 말한 경전을,
근기를 따라서 말한 지말법륜(枝末法輪)이라고 한 데 대하여,
이 화엄경은 법계(法界)의 성품과 어울리는 근본법륜(根本法輪)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전하는 말이 화엄경에 여러 가지 본(本)이 있다고 하는데,
현수대사(賢首大師)의 <탐현기(探玄記)>에서는 여섯 가지를 말하였으니,
항본(恒本)⦁
대본(大本)⦁
상본(上本)⦁
중본(中本)⦁
하본(下本)⦁
약본(略本) 등이다.
그 가운데 항본과 대본은 시방 법계에서 항상 말씀하는 것으로 그 수량도 엄청나게 많아서
붓으로는 기록할 수 없는 것이므로, 부처님이나 등각보살들만이 받아 지닐 수 있는 것이라 하고,
상본⦁중본은 인도의 용수보살이 용궁에서 한 번 본 것으로
상본은 열삼천대천세계 티끌 수 게송,四천하의 티끌 수 품[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偈 一四千下微塵數品]이고,
중본은 四十九만八천八백 게송, 一천二백품이라 하니,
남섬부주 사람으로는 읽을 수 없는 것이어서 용궁에 그냥 두었고,
하본은 十만 게송, 四十八품이므로, 그것을 가지고 와서 인도에 펼친 것이라 한다.
그러나, 하본 화엄경도 그 전부가 중국에 들어와서 번역된 것이 아니고,
그 중의 어느 부분만이 전해 와서 번역되었으니 이것을 <약본(略本)>이라고 한다.
동진(東晋) 나라에서 번역한 六十권 경은
三만八천게송, 三十四품이니 이것을 <진본(晋本)> 또는 <六十화엄>이라 하고,
당나라 중종 임금 때에 시차아난다[實叉難陀]가 번역한 八十권 경은
四만五천 게송, 三十九품이니 이것을<당본(唐本)> 또는 <八十화엄>이라하며,
당나라 덕종 임금 정원(貞元) 十一년에 남인도 오드라[烏茶]국의
사자왕이 친히 써서 보내 온 범본(梵本)을 그 이듬해부터 정원 十四년까지에
반야 삼장(般若三藏)이 장안의 숭복사에서번역한 것이<四十화엄경>인데,
다른 이름으로 <입부사의 해탈경계 보현행원품(入不思議 解脫境界 普賢行願品)>이니,
이것은 六十화엄이나 八十화엄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는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이란 제목 일곱 자의 뜻을 해석하는 데는 <탐현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방광불화엄의 여섯 자는 이 경에서 말한 뜻이요,
경이란 한 자는 대방광불화엄의 이치를 말하는 글이며,
또 대방광불의 넉 자는 법이요,
화엄의 두 자는 비유이니,
곧 자체가 크고[大]
모양새가 방정하고[方]
작용이 넓은[廣]뜻을 가진 법계를 증득한 부처님[佛]을
화려한 꽃[華]으로 어떤 물체를 장엄하게 꾸미[嚴]듯이,
인위(因位)의 모든 수행의 꽃으로 부처님의 과위(果位)를 장엄하였다고 비유한 것이라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인도에서 소승불교가 성행하였으므로,
대승불교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되어 오랫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였던 것인데,
부처님 열반하신 지 五백년쯤 지나서 대승불교의 사상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다가
六백년쯤에는 마명(馬鳴)보살이 나타나서 대승불교의 사상과 학설을 조리있게 체계를 세웠고,
七백년쯤에 용수(龍樹)보살이 나서 대승사상을 적극 선전하면서 대승경전을 활발히 연구하게 되었다.
용수보살은 대승불교를 선양하다가 설산에서 어떤 늙은 비구의 인도로 용궁에 들어가서 많은 경전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에 용수는 한없이 많은 화엄경의 범본(梵本) 가운데서 십만 게(偈) 四十八품의 하본(下本) 화엄경을 가지고 와 연구하면서
<대부사의논(大不思議論)> 十만 게송을 지어 해석하였다고 전한다. 이것이 인도에서 화엄사상이 발달하게 된 시초이다.
불교의 교리를 말하는 데 두 가지 계통이 있다.
하나는 유정(有情)⦁무정(無情)의 온 법계를 통틀어서 철학적으로 관찰하여,
우주 만상은 어떠한 성질을 가졌으며, 종류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며,
그들 서로의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연구하는 실상론(實相論)과
다른 하나는 법계의 온갖 것은 어떤 순서로 이루어졌으며,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연구하는 연기론(緣起論)이다.
그런데, 이 화엄경은 온 법계가 서로 서로 인연이 되어 생겨난다는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이다.
화엄경의 교리로 말하면, 일진법계(一眞-諸法實相의 極則)를 네 가지 방면으로 관찰하여
네가지 법계로 나누니,
곧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가 그것이다.
이 네 법계는 화엄경의 중요한 이치만이 아니라,
실로 불교 전체의 철리(哲理)를 체계적으로 총괄한 것이다.
첫째, 사법계란 현재에 생겨나고 변천하고 없어지고 하는 여러 가지 차별한 현상계(現象界)를 말하는 것이니,
이 현상계의 모양이 천태만상(千態萬象)이어서 통틀어 표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마는 불교에서는 이것을
오온(五蘊-色⦁受⦁想⦁行⦁識),
십이처(十二處=六根-眼⦁耳⦁鼻⦁舌⦁身⦁意와 六塵-色⦁聲⦁香⦁味⦁觸⦁法),
십팔계(十八界-六根⦁六塵⦁六識)라고도 한다.
七十五법 혹은 백법이라고도 하는데,
화엄경에서는 모든 사법(事法)은 서로 장애되지 않고 원융(圓融-일체 제법의 사리가 골고루 융통되어 無二함)하여
서로서로 인이 되고 연이 되어 한량없이 생겨나고 없어진다고 한다. 이것이 사법계이다.
둘째, 이법계란 우주 만상의 참 성품인 본체계(本體界)를 말하는 것이니, 한량없이 차별한 현상계인 사법계는 인이 되고 연이 되어 생겨나서 변천하다가 필경에 없어지는 것이지마는, 이 본체는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늘지도 줄지도 아니하면서 끝없는
세월에 변하지 않는 절대의 진리라는 것이다. 이 이법계는 우리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끝까지 어떻다고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므로 억지로 공(空)이라 하지마는, 공이라는 말만으로는 이 절대적인 경계를 표현할 수 없으므로 공이라는 생각까지 없어지는 경지에서만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중도(中道)라고 하나니, 이른바 이법계(理法界)이다.
셋째, 이사무애법계란 차별한 현상계와 평등한 본체계와의 관계가 그것이 곧 그것이어서 서로 여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니,
하나의 진여(眞如)에 대하여 변하지 않는[不變]뜻과 인연을 따르는[隨緣]뜻이 있다는 것이다.
고요한 편으로 보면 진여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지마는,
움직이는 편으로 보면 인연을 따라서 전체가 움직여서 온갖 현상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진여의 자체를 물에 비유하면,
고요하던 진여의 이(理)인 물이 무명(無明)이란 바람을 만나면 곧 여러 가지 차별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며,
그렇게 한량없이 차별한 현상계도 그 자체나 성품으로 보면 오직 하나의 진여의 이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상계와 본체계는 한 진여의 두 가지 방면으로서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 제 성품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
이것이 곧 이사무애법계라는 것이다.
끝으로, 사사무애법계란 우주의 실상(實相)은 본체를 떠나서 현상이 없고, 현상을 떠나서 본체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앞의 이사무애법계에서 밝힌 바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보면, 차별한 현상계의 온갖 사물(事物)도 그 서로서로의 사이에
번거롭고 복잡한 한량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래 한 알 풀 한 포기까지도 모두 본체 그대로가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 속에는 법계의 전체를 포함한 것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가 곧 여럿이요, 여럿이 곧 하나이며, 하나 속에 온갖 것이 들어 있고
온갖 것 속에 하나가 들어 있는 것이므로,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융통(融通)하여 장애되지 아니하고,
영겁(永劫)과 찰나(刹那)가 다르지 아니하며, 유정과 무정이 어긋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곧 사사무애법계로서 화엄사상의 법계연기 혹은 무진연기(無盡緣起)라는 것이다.
이 경계는 평등 무차별한 참된 지혜로써만 증득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의 분별있는 지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화엄법계의 헤아릴 수 없는 현묘한 경지에 접촉하려면 먼저 우리가 가진 상식의 전부를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두 살 먹은 아기의 천진한 마음에서부터 새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